제185편_ 새로운 취미?(1)
연우는 펍 옥상에 누웠다. 인면 지주의 실로 만든 천이 휘날리며 밤하늘에 우수수 박힌 별들이 보 였다.
“차원계. 그리고 전쟁이라.”
어딜 가나 전쟁은 사라지지 않 는 모양이다. 지구, 그라니아 대 륙, 케루빔이나 오크가 사는 오크 르트도 그 차원계에 속한 대륙이 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최상위 차원의 존재들은 다른 차원계와 전쟁을 하고 있다 는 것도 알았다. 그 전면엔 호전 적인 헬린이라는 종족이 있고 말 이다.
“참 무섭네. 매번 전쟁이야.”
아스가르드라는 게임에서부터 지구의 인간들끼리. 그라니아 대 륙과 지구. 그곳과 마계와 천계. 온통 서로 싸우기 위해 사는 것만 같다.
“에라, 나랑 상관없지.”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연우랑 어 울리지 않는다. 위기가 오면 부수 고 장애물이 있으면 넘으면 된다. 감당하지 못할 일, 확정되지도 않 은 미래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참 단순해.”
“뭐?”
“너답다고. 연우.”
“웬일로 이자젤 네가 그런 소릴 하냐.”
원래 멍청한 소릴 하는 건 이자 젤이었는데 말이다.
“아, 요르문간드는 어떻게 됐 어?”
이자젤이 연우에게 물었다. 요 르문간드는 세븐 클래스급 던전의 핵. 거의 세계급에 달하는 어마어 마한 핵을 삼키고 잠에 빠졌다.
그걸 50% 이상 소화할 때까지 는 일어날 수 없을 거다.
“한참 걸릴 거야. 나중에 시간 있으면 가서 도와줘야겠다.”
연우가 도와주면 그 시간은 급 격하게 단축된다. 이자젤은 고개 를 끄덕이곤 뭔가 생각났다는 중 얼거렸다.
“놀러나 갈까.”
“또? 이제 놀러 가는 것도 무섭 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사건들인 지.”
이 정도면 거의 명탐정이 된 기 분이다. 코난이라든지 김전일이라 든지 사건을 몰고 다니는 그런 운 명들 있지 않은가.
“취미가 가져 볼까.”
연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 다.
“취미?”
“헬기 조종 같은 거 있잖아.”
“그것보단 전투기가 재미있지 않을까?”
“근데 그것도 우리가 나는 것보 다 느리잖아.”
“우리보다 빠른 게 어디 있냐?”
하긴, 연우와 이자젤이 날기 시 작하면 웬만한 전투기는 물론이고 미사일이나 레인 건 탄환도 못 따 라올 거다.
“꼭 빨라야 재미가 있나.”
“그건 어때. 자동차 운전?”
“그게 취미가 돼?”
“막 돌고 드리프트하고 뒤로 달 리고! 오! 재미있겠는데?”
“재미 있을까.
연우는 남자치고 자동차에 관심 이 없는 편이었다. 자동차보다 집 을 먼저 사고 싶었고, 이번에 차 를 샀던 건 그저 필요에 의한 것 과 사치였을 뿐이다.
운전 자체엔 관심이 없다.
“한번 해 보자! 나도 해 보고 싶었어!”
“근데 너 면허증도 없잖아?”
“…… 따, 따면 되지 않을까?”
“…… 뭐, 못할 것도 없지.”
전에 이진철 협회장이 이자젤의 신분증을 만들어 준 적은 있다. 면허증을 따는 것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닐 거다.
연우도 분노의 질주와 같은 영 화를 볼 때면 한번 날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때 는 돈이 없어서, 사고가 날까 봐 생각에 그쳤지만 말이다. 지금은 한번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연우는 바로 움직였다.
어차피 농장의 봄 준비는 여유 가 있었다.
액션 스쿨. 연예인이나 스턴트 맨이 드라이빙 액션을 배우는 곳 이었다. 오랜 기간 숙달할 필요까 진 없었으니 단기 수강을 했다.
부우우웅!
연우는 연습용 차를 몰았다.
빠르게 나아가던 길에 코너가 보였다. 연우는 핸들을 꺾어 안쪽 으로 붙으면서 기어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끼이 이익!
부아아앙!
타이어가 바닥에 쓸리고 엔진이 과열된다. 단순히 빠른 것과는 다 르다. 전투기나 헬기가 빠르지 않 아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순간의 선택과 빠른 반응은 둘 째고, 조종하는 차가 자유롭게 움 직인다는 것에 있어서 엄청난 쾌 감이 있었다.
부우우우웅!
연우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홱! 타다닥!
끼이이익! 부아아앙!
이번엔 한 바퀴를 돌았다. 동시 에 등장한 S 모양의 코너를 통과 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몇 시간 배 운 것으로 이렇게 할 순 없었을 거다. 하지만 연우의 눈엔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푯말!’
빨간 푯말이다. 이곳에선 차체 를 푯말을 향하면서 한 바퀴 도는 거다. 핸들의 미묘한 조작, 액셀 과 브레이크의 완벽한 조합. 기어 이동의 순발력. 모든 게 하나가 돼야 한다.
타다닥! 홱!
끼익. 끼이이이! 부우우웅!
연우의 시선은 빨간 푯말에 고 정돼 있었다. 양쪽 창문으로는 검 은 연기가 줄줄 올라왔다. 고무 타는 냄새와 엔진이 과열돼 뿌리 는 매연의 냄새까지.
온 정신을 흥분시켰다.
타다닥!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기어 를 원상 복구했다.
“후우. 이거 장난 아닌데?”
그저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격렬한 전투가 속도로만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듯 말이다.
연우는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이야! 역시 잘하시네요. 정말 처음인 거 맞죠?”
강습 교사인 강도일이다.
연우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 다.
“네, 그냥 출퇴근하면서 운전했 던 게 다였죠.”
“정말 스턴트맨 할 생각 없으십 니까? 아니, 그 키와 몸매에 그리 고 그 얼굴에. 아예 액션 배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취미는 취미여야죠.”
연우는 이자젤이 올 때가 됐다 고 생각했다.
“어? 진짜 오네.”
“아, 늦게 오신다는 친구분이신 가요?”
“네, 엊그제부터 면허 딴다고 분주하더니.”
연우가 이곳에서 연습한 건 오 늘이 처음이다. 그건 오늘 이자젤 이 면허를 따는 날이었기 때문이 다. 물론, 합격하고도 시간이 필 요했지만, 그건 인맥을 조금 동원 했다.
부우웅! 부우우웅!
이자젤은 척 보기에도 비싼 차 를 끌고 왔다.
“쉐, 쉐보레 콜벳 마스터즈?”
“네? 아는 차예요?”
“알다마다요. 이번에 쉐보레에 서 7단계 마력석하고 드래고니아 본으로 제작한 슈퍼 카 아닙니까! 가격만 84억이 넘는 건데!”
“그렇군요. 여기야! 이자젤!”
차가 연우 앞으로 도착해 이자 젤이 내리자, 강도일의 눈은 더욱 커졌다.
“부, 부럽습니다. 연우 씨.”
“네?”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어우! 끝났다! 드디어 땄다!”
“괜찮은 거 샀네. 이걸로 연습 하게?”
연우는 이자젤이 끌고 온 쉐보 레 콜벳 마스터즈를 발로 툭툭 차 며 말했다.
“연습용으로 하나 샀지. 7단계 마력석도 잘 정제한 거 같고 쓸 만하더라고. 연습하다가 실전에서 는 개조하거나 새로 사든가 해야 겠다.”
“개조? 이걸 개조해서 뭐해. 새 로 사는 게 낫지.”
“하긴, 일단 연습부터 할까?”
연우와 이자젤은 턱이 빠져 아 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강도일을 바 라봤다.
“…… 일단 이 차로는 제가 먼저 연습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 을까요?”
“네, 뭐. 길들이는 것도 필요하 니까요.”
강도일은 연우와 이자젤을 직접 태우고 길들이면서 생중계로 알려 줬다. 기어, 엑셀, 브레이크, 좌우 보는 법, 코너와 드리프트 등등.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연우 와 이자젤은 실습을 시작했다.
“가 볼까?”
“간다! 두말하기 없기다!”
연우와 이자젤은 내기를 했다. 이 드라이브 액션 스쿨 연습 경기 장인 이곳. 턴, 드리프트, 회전, 전진과 후진까지. 모든 코스를 통 과한 기록을 재는 거다.
그리고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는 것.
“아, 아직 제대로 된 연습 전인 데 내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뭐 부서지면 다 물어 드리겠습 니다.”
“그, 그렇다면야.”
사고가 난다고 다치거나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용자인 걸 알 고 있었고, 저렇게 자신 있는 표 정이니 허락할 수밖에. 허락하지 않으면 밖에서라도 할 모양새였 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연우와 이자젤은 차에 탑승했고 강도일은 그 두 차 앞에 서서 심 판을 봤다.
“자, 준비!”
부르릉!
“시!”
우우우웅!
“ 작!”
부아아아앙!
강도일의 외침과 동시에 신호등 이 녹색으로 바뀌었고 연우와 이 자젤의 차가 출발했다. 이자젤은 80억이 넘는 최신형 슈퍼 카였고 연우는 연습용 차다.
시작은 이자젤이 빨랐다.
부우우웅!
첫 번째 코스는 코너.
끼이이익! 부우웅!
이자젤은 역시나 빠른 반응속도 와 섬세한 조종에 완벽한 주행을 해 나갔다. 연우도 마찬가지였는 데 차 성능에서 연우가 밀렸다.
턴이 한 번 더 나오고 긴 드리 프트를 이용해 S 모양의 코스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푯말 회전 코 스가 나왔고 이자젤의 실수에 연 우가 바로 옆까지 따라왔다.
끼이 이이익!
부아아앙! 부아아앙!
푯말을 중심으로 돈다. 이자젤 과 연우가 마주 보는 상황이었는 데 연우는 검은 연기 속에 이자젤 의 눈이 보였다.
연우는 씨익 웃으며 차에 마력 을 불어넣고 핸들을 홱 꺾었다. 이자젤도 바로 눈치를 채고 마력 으로 차체를 강화했다.
쿠아앙!
두 차가 부딪쳤다. 이자젤의 차 는 크게 흔들렸고 연우가 회전 코 스는 먼저 빠져나갔다. 그래도 강 화를 한 상태라 차에 상처는 없었 다.
부아아앙!
뒤에서 이자젤이 붉은 기운을 뿜으며 따라온다.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다. 하지만 연우는 웃으며 진로를 방해한다.
다음 코스는 원래 주행 도중 차 를 뒤로 돌려 주행하는 거다. 하 지만 이자젤이 마법을 사용해 코 스를 바꿔 버렸다.
우웅!
“이건 뭐야!”
눈앞에 나타난 건 점프대였다. 그것도 바깥쪽으로 회전하며 올라 가는 모양. 말 그대로 회전하면서 돌라는 거였다.
“해 보자는 거지.”
연우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부아아앙!
점프대에 거의 붙듯이 올라갔고 더 빨라진 연우의 차는 허공에 붕 떴다. 그러면서 차가 공중에서 회 전을 하니 몸이 콱 눌리는 기분이 었다.
휘리리릭!
연우는 착지하기 직전에 마법을 사용해 차를 강화하고 중심을 잡 아 제대로 착지했다.
그새 이자젤은 엔진의 마력석을 강화해 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연우도 지지 않았다. 마력으로 차체를 강화하고 마법을 엔진에 심어 과열시켰다. 이대로라면 엔 진이 주행을 마치기도 전에 타 버 리겠지만, 그 정도는 물어 주면 된다.
부아아아앙!
몇 번의 코스가 더 나오며 둘은 더 강하게 부딪혔고, 장애물 몇 개가 박살 났으며, 도로 몇 군데 가 미사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깨 져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직선 코스!
부아아앙! 부아아앙!
연우의 차 앞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이 활활 타올랐고, 이자젤 의 차체는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리고 결승선에서.
부와아아앙!
강도일은 입을 떡 벌린 상태로 결승선에 설치된 기록 체크 장치 를 바라봤다.
“1분 12초. 1분 12.02 초……
보통 최고 기록은 3분 50초가 정상이다. 게다가 불타오르는 차 를 타고 질주하고, 하늘을 날고, 장애물을 부수고, 서로 차체로 몸 싸움을 하기도 하는.
이런 경기는 태어나서 처음 봤 고. 이렇게 흥분된 적도 없었다.
“미쳤다! 이게…… 이게 레이싱 이지!”
강도일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다.
“후아, 내가 졌나?”
연우가 이자젤을 보며 말했다.
“내가 0.02초 빨랐다! 이예쓰으 으!”
이자젤이 좋다고 소리쳤다.
“아, 이길 줄 알았는데. 졌네. 다 차 때문이야!”
“흥, 어디 에잇 클래스가 쓰리 클래스한테 차 탓을 하고 있어? 마력을 안 썼으면 내가 할 말이 없었다만.”
“그건 또 그러네.”
연우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연 습용 차를 보며 혀를 찼다.
“죄송해요. 강도일 씨. 제가 다 물어 드리 겠습니 다.”
“저기요! 신연우 씨! 아니 신연 우 님!”
강도일의 눈은 열정으로 불타오 르고 있었다.
“이걸 경기로 만들고 싶습니 다!”
“이걸요? 사용자 아니면 크게 다칠 텐데.”
“사용자들이 하면 되지 않습니 까!”
“에이, 이런 차를 만드는 것도 문제고.”
연우는 난색을 표했지만, 이자 젤이 옆에서 거들었다.
“어때. 이번에 내가 인수한 슈 퍼 카 회사에서 만들어 보면 되 지. 어렵지도 않을 거 같고.”
“ 네가?”
“그래, 내기를 이대로 끝낼 생 각은 아니었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못해도 삼 판 이 승이지!”
“우리 전용 슈퍼 카 하나 만들 면서 프로토 타입으로 공장 돌려 보자.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안전 관련 부분은 마법으로 해결되니 까.”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면 위험 하지도 않으면서 격렬한 카 레이 싱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러지 뭐. 생각보다 재미있기 도 하고.”
“나이쓰! 일단 이것부터 개조해 야겠다.”
이자젤은 고장 나기 직전인 콜 벳 마스터즈를 바라봤다. 엔진에 마력석만 갈아 끼우고 마법진을 추가하면서 차 중심이 되는 구조 에 재료만 바꾸면 훨씬 좋은 놈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전에 밥부터 먹을까? 오랜 만에 땀 좀 흘렸더니 배고프네.”
“그러자. 강도일 씨. 같이 먹을 래요?”
“네? 네, 좋죠.”
농장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사회 에 나오는 것도 분위기 전환하기 에 좋았다. 덕분에 새로운 취미도 생겼고 말이다.
‘농장에 주차장이나 다시 만들 어야겠어.’
오랜만에 쇼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