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편_ 삼미호의 탈모(2)
무언가 떨어진 건지 큼지막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잡아! 죽여! 강해져라!”
“네! 알겠습니다!”
“넵! 등에 탈까요?”
“응! 꽉 잡아!”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크아아앙!
크으으!
묵직한 울음과 뭔가 귀여운 울 음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파악!
흙먼지 속에서 튀어나온 건 하 얀 털을 가진 거대한 백호였고 그 위엔 갈색 털을 가진 꼬리 세 개 의…….
“삼미호?”
“ 백호?”
그리고 혜영이 있는 곳으로 다 가오는 한 명.
“ 연우?”
“오랜만? 이야, 몰골이 장난이 아닌데?”
셋은 며칠 씻지도 못한 모양인 지 장비나 얼굴이나 잔뜩 더러워 진 상태였다. 게다가 온갖 피가 굳어 거뭇한 피딱지에선 이상한 냄새까지 풍겼다.
“흥, 안 그래도 잘 왔다. 저기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오크 온 다.”
혜영은 연우의 태연한 얼굴을 보며 서운하기도 했지만, 속으론 안심했다. 연지랑 연호도 안심이 된 건지 후퇴를 멈췄다.
“백호! 삼미호! 가랏!
“네! 알겠습니다!”
“네! 저도요!”
“아니! 이제 일어서지 말라고! 어여 가 잡아!”
습관이 된 건지, 이제 재미가 있는 건지 두 발로 서서 대답했 다. 그래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오크를 느낀 건지, 둘은 빠르게 뛰어갔다.
생각보다 삼미호가 적극적이었 는데, 지금은 옆에서 툭툭 건드리 는 수준이어도 신력이 금방 모이 고 백호에게 배우다 보면 금방 늘 거다.
“설마 저기 삼미호야?”
“응, 귀엽지?”
“지금 삼미호를 쓰리 클래스 마 스터한테 보낸 거야!?”
삼미호의 수준을 잘 아는 혜영 이 깜짝 놀랐다.
“괜찮아. 저 백호가 포 클래스 마스터는 될 테니까. 오크 신력이 있어도 제압할 수준은 될걸? 옆에 서 삼미호는 신력이나 받아먹으라 고 하고.”
그때였다.
“연우 님! 잡아 왔습니다! 어떻 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어느새 사냥을 마친 백호는 오 크의 목을 물고 이곳까지 끌고 왔 다. 삼미호도 뿌듯한 건지 두 발 로 서서 꾹꾹이를 했다.
“아니, 그걸 왜 가져와! 빨리 죽이고 다른 놈들 사냥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저도 알겠습니다! 가요! 백호 아저씨!”
“아,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닌 데?”
“몇 살인데요?”
“나 1,200살?”
“전 7개월입니다! 가자! 할아버 지!”
연우는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혜영과 연지연호도 같은 표정이었다.
“이해해라. 백호가 좀 멍청해.”
“……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닌 데?”
서로 입장이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
연우는 삼미호랑 백호를 혜영에 게 맡기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몇 주만 사냥하다가 돌아오라고 했 다. 삼미호가 성장하는 것도 좋지 만, 옆에 데리고 있는 게 더 좋았 다.
“욕심이야.”
따듯한 차를 마시다 이자젤이 불쑥 말을 꺼냈다.
“뭐가.”
“얼굴에 딱 적혀 있잖아. 삼미 호 데려오고 싶다!”
“…… 너 진짜 생각 읽는 거 아 니야?”
“그런 걸 너한테 어떻게 쓰냐. 구속하지 마. 원래 여자는 구속하 면 더 멀어지는 거야.”
“어이구.”
“이 연애 고자야.”
“야!”
“맞잖아. 너 항상 차인 거 아니 냐?”
“내가 찬 거거든!”
“차일 거 같아서 찬 거지, 그 게.”
“내가 어? 농장에만 있어서 그 렇지. 나가면 인기 많거든?”
“누가 그래. 너처럼 생긴 걸 좋 아하는 사람도 있나.”
“내가 어때서……
연우는 저 멀리서 멀뚱히 쳐다 보는 후름과 이자젤의 얼굴을 보 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하필 주변 에 저런 얼굴이라니. 저건 인간이 아니…… 지. 엘프다, 엘프.
“하긴, 어차피 얼굴 보고 사람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이 더 나쁘거든!”
연우는 핸드폰을 꺼내 꺼진 화 면에 얼굴을 비쳤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 아 니냐? 환골탈태도 두 번이나 했는 데.”
“본판은 못 속이지. 저 후름도 못생긴 건데.”
저 둘 앞에서 얼굴을 논하는 게 문제다. 연우는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봄 오는 거 준비
해야 하는데.”
“어디서 말 돌리기야. 아직 1월 인데.”
역시 이런 수작은 통하지 않는 다.
“쳇, 아직 1월이었어?”
“그래.”
“번개 새나 키워야겠다. 새장 만들어야지.”
“어디에 만들게?”
“저 산 정상 옆의 바위 절벽?”
이건 재미있겠다 싶은지 말 돌 리기를 넘어가 줬다. 연우는 이자 젤과 함께 슬쩍 날아올라 정상 부 근에 바위로 된 작은 절벽으로 이 동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널찍했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 는데, 전에 메리쉽을 키울 때 만 들었던 울타리였다. 지금은 많아 져서 뒷산으로 옮겨 이곳이 비워 진 거다.
“여기에 결계 설치할까?”
“그러자. 좀 넓게.”
연우는 하급 땅의 정령을 불러 바위 절벽을 늘렸다. 갑자기 땅의 정령왕은 뭘 하고 살고 있을까 궁
금했다. 분명 전에 므깃도에서 지 내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이것부터 끝내야지.”
이름은 번개에 새라는 단어가 더해진 건데 생긴 건 그냥 노란 독수리다.
“여기 절벽은 마력석으로 바꾸 자.”
“리모델링인가.”
“자동으로 속성 저장되게 저장 석도 설치해야겠다.”
배설물이 전기를 생산하는 광물 이지만, 그것도 모이고 쌓여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거다.
“이걸로 최민아였나? 그분 장비 만들어 주면 괜찮겠는데?”
“그 사람이 전기였지?”
“응. 마스터급이고.”
“번개 새 한 마리 팔아도 되겠 네.”
“오, 그러게.”
특수 직업이라 이 번개 새와 속 성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봐 야 안다.
연우는 바위 곳곳에 구멍을 내 고 상급 마력석과 교체 가능한 석 성 저장석을 채웠다. 상급 마력석 만 해도 22조 원이라는 가격을 가졌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제 이곳의 화폐는 연우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걸로 던전이나 만들어서 팔 아야겠어.’
지금은 타르를 버는 게 중요하 다. 어차피 쓸 만한 걸 살 곳은 그곳뿐이니까.
“결계랑 그 마력석이랑 연결할 까?”
“그래 주면 좋고.”
역시 이자젤의 마법 실력은 알 아줘야 한다. 특히 마법진에 있어 서는 따라올 실력자가 없다.
이자젤이 손을 몇 번 저으니 환 한 빛이 퍼지며 결계와 마력석들 이 연결되며 하나의 마법진이 완 성 됐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다가 번개 새가 든 병을 꺼냈다.
“자, 나와라.”
연우가 병의 뚜껑을 열고 몇 번 흔들자 안에서 ‘끼야아아’라는 비 명이 들리며 노란 새들이 빠져나 왔다.
파지직. 파직.
번개 새라는 이름답게 주변에 스파크가 튀었다. 수준으로 봐선 5단계에서 8단계 사이였는데, 전 기만큼은 강력했다.
“오, 나쁘지 않고.”
몇몇 번개 새가 마력석 옆에 딱 붙더니 마력을 쭉쭉 흡수했다. 자 그마치 상급 마력석이다. 작았던 번개 새는 금세 큼지막해졌고 몇 몇은 바로 배설물까지 떨어뜨렸 다.
이자젤이 노란 광물을 들었다.
“손으로 만지긴 찝찝했는데, 생 각보다 깨끗한데?”
“따로 먹는 게 없으니까.”
연우도 하나 집었다.
속에서 스파크가 튀기도 하지 만, 마력과 상호작용하며 전기를 생성한다는 게 신기했다. 어떠한 마법도 없이 그저 광물의 힘일 뿐 이다.
“속성 저장석보다도 괜찮겠는 데?”
그래도 아직은 모아야 할 때다.
번개 새들은 일정 크기 이상 커 지지 않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녔 다. 그러다 결계의 크기를 파악했 는지 각자 자리를 잡았다.
활강할 정도는 아니라 답답할 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후에 닭처럼 풀어 둘 거다. 그 러면 낮엔 돌아다니다가 밤엔 이 곳으로 모인다고 레인이 그랬다.
“이 정도면 됐겠는데?”
“총 20마리라. 나쁘진 않네. 교 배도 할 거고. 그럼 이거 관리는 누가 해?”
“그러게. 요즘 사람이 없네. 헤 르메스랑 리젤도 곧 온다고 했는 데……
“일단 한동안은 그냥 둬도 되니 까.”
배설하는 번개석들은 쌓일 거고 속성 저장석도 알아서 찰 거다.
“연우, 그것보다 지옥 불의 신 전은 언제 공략할 거야? 나 몸이 근질거려!”
“그래? 오늘은 저녁 먹고 쉬고 내일 아침에나 가자.
“둘이?”
“ 괜찮겠어?”
“당연하지! 둘이 가야지, 누굴 데려가!”
소유욕이 강한 건가. 쇼핑할 때 보면 쇼핑만 하고 연우를 주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 만 전투에 있어선 소유욕을 넘어 집착으로 보일 정도다.
세븐 클래스 마스터급 보스.
저 정도면 이자젤도 잡몬스터나 처리해야 한다. 연우가 힘들어졌 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헤 맨이나 요르문간드 정도. 잘해 봐 야 오염된 신선이나 엔트족을 이 용하는 거다.
그런데 므깃도가 안 열리면?
‘뭐, 괜찮겠지.’
잠재력을 올리는 비약도 있고 염력, 정령력, 신력까지 있다. 사 실 전혀 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 다.
오랜만에 제대로 뛰어놀고 싶기 도 했다.
오늘의 메뉴는 양꼬치다.
양꼬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삼미호가 호주를 갔기 때문이다.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잔혹해 보 이지만, 직접 관리하며 지켜본 메 리쉽은 소중히 여기니까.
하여튼, 양꼬치는 주로 등심을 쓰고 갈빗살이나 삼겹살을 쓰면 꼬치 앞에 부위 이름을 붙인다. 이번에 연우가 준비한 건 이 세 부위다.
숯은 케루빔이 있는 마계에 갔 을 때 구했던 ‘벼락 맞은 게헨나 르’와 ‘지옥 불에 탄 세계수’를 사 용하기로 했다. 세계수는 은은한 화력과 향이, 게헨나르는 순간적 인 화력이 강해서 섞어 쓰는 게 좋다.
연우가 고기를 준비하고 수이니 가 밑반찬을 준비할 때, 요섭과 바벨이 들어왔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꼬치는 열 전도율을 고려해 레드 드래곤의 꼬리뼈를 사용했습니다. 주변 판 은 만년한철로 열이 전달되지 않 게 했고요.”
요섭이 설명했고 바벨이 설치했 다. 원래 요섭은 아다만티움 슬라 임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허기 가 없다. 그래서 밥도 잘 먹지 않 았는데, 양꼬치만큼은 정말 좋아 했는지 꼬치 제작을 의뢰하자 바 로 달려왔다.
바벨도 꽤 좋아하는 모양이다.
“원래 드워프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죠. 이 양꼬치에 맥주 한 잔이면. 크으!”
“쯔란 시즈닝을 빼놓을 수 없 죠!”
아스가르드의 요섭은 그렇다 쳐 도 바벨은 저런 걸 어떻게 아나 싶다. 둘이 몰래 나갔다 온 건가?
“다 앉자.”
연우가 직접 끼운 양꼬치를 잔 뜩 들고 나왔다.
한 번에 30개는 들어가는 판이 었는데, 이자젤, 수이니, 쇼타, 요 섭, 바벨, 헤맨. 거기에 연우까지 7명이었으니 절대 과하진 않았다.
치이 이익.
올리자마자 익는 소리가 들렸 다. 육즙 가득한 양꼬치에서 기름 이 보글보글 끓듯이 올라오고, 그 기름과 미리 묻혀 놓은 쯔란 시즈 닝이 섞이며 기가 막힌 냄새를 풍 겼다.
“으, 너무 좋아.”
양꼬치를 먹는 한국 사람은 최 근에 들어서야 급상승했다. 그 전 엔 유통이 좋지 못해 다 늙은 양 만 들어와서 냄새가 심했고 최근 엔 냄새가 덜한 어린 양들이 쉽게 들어왔기 때문일 거다.
“이렇게 좋은 고기는 덜 익혀 먹어도 되지.”
소고기처럼 레어까진 아니더라 도 미디움까지는 괜찮다. 아니, 레어도 사실 못 먹을 건 없지만, 맛이 별로다.
특히, 등심이나 갈빗살은 너무 익히면 질겨서 전체적으로 노릇해 지는 순간을 잘 봐야 하고, 삼겹 살은 기름이 많아서 조금 더 익혀 도 된다.
“자, 여기 피그미온 라거 받아 요!”
이자젤이 양손에 맥주를 잔뜩 받아와 나눠 줬다. 그러는 도중 슬슬 다 익기 시작했다.
겉이 노릇하게 익었고 김이 살 살 올라온다. 꼬치를 그대로 들어 입에 넣는다. 뜨겁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흐으으. 뜨거. 그데 마이다.”
“다 먹고 말해!”
이자젤이 연우를 타박했다. 그 러면서도 맥주잔을 밀어준다. 연 우는 차가운 맥주로 입을 식혔다.
“크으. 좋아. 어째 오늘따라 탄 산이 더 강한 느낌이네?”
“양꼬치 먹을 땐, 세야지.”
“맞습니다! 역시 이자젤 님!”
“꼬치엔 탄산입니다!”
요섭과 바벨이 소리쳤다. 원래 요섭은 이렇게 호들갑이 없었는데 바벨과 함께 있으면서 비슷해지는 것 같다.
“으음. 역시 고기질이 첫 번째 고 숯이 두 번째지.”
연우는 다시 한입 먹고 꼬치 몇 개를 더 올렸다. 역시 등심과 갈 빗살은 살짝 덜 익혀야 부드럽고, 삼겹살은 바싹 익혀야 맛이 좋다.
“아, 요섭. 우리 상급 던전 10 개만 만들자.”
“상급 던전이요?”
“응. 미로랑 함정 위주로 하고 10개 중에 하나만 보물 불사조를 넣는 거야.”
“네? 그걸 누가 삽니까?”
“사는 이들이야 많지. 원래 도 박, 복권은 남자들의 원초적 본능 을 자극한다고. 하나에 1억 타르 로 하고 보물 불사조가 못해도 10억 타르는 하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연우는 거기에 몇 가지 더 만들 어야 하는 던전을 알려 줬다. 타 르를 넣으면 보너스 몬스터가 나 오거나 체력의 샘물을 리필해 준 다든지 같은 말이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어!”
“그, 그렇군요.”
그날 밤은 양꼬치와 함께 던전 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타르를 벌 수 있는 가! 이 양꼬치는 이 부위가 맛있 고 어떤 맥주를 곁들여야 맛있는 가. 이러한 잡다한 것과 함께 말 이다.
역시 농장의 즐거움이란, 이렇 게 먹고 노는 게 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