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편_ 삼미호의 탈모(1)
호주는 점점 안정세를 찾아 갔 다.
그 중심엔 연지와 연호가 만든 길드 ‘농장에서 온 그들’이라는 ‘농온그’가 있었다. 세력으로 따지 면 셰이크와 이진철 협회장이 크 지만, 개인의 무력 수준은 농온그 가 한참 강했다.
연지랑 연호는 아니다. 혜영도 조금은 부족하다.
하지만 필리아, 아이델, 천인종. 이 셋은 이곳에서 영웅이었다.
“네, 협회장님. 골드 멜버른 쪽 에요? 거기까진 한참 걸리는데. 알겠습니다. 시간 끄는 것 정도는 되죠?”
연지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 필 리아와 아이델이 없는 상황에서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천인종뿐인데, 홀로 보내 는 게 불안하다.
몇 번의 공방이라면 죽일 수 있 는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오크를 잡는 데 오세니아 대륙 끄트머리 를 잘라버릴 정도로 무식하고 난 폭하게 때려 부수는 인물이니까.
“천인종 씨. 이쪽으로 가면 돼 요. 할 수 있죠?”
“후후. 당연하다. 이곳에선 날 찾는 곳이 많군.”
농장에선 사고뭉치 취급받다가 이곳에서 영웅이 되니 콧대가 한 껏 올라간 천인종이었다.
연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인종을 보냈다.
그리곤 멀리 떨어진 거대한 반 투명한 결계를 바라봤다. 연우가 나눠 준 스크롤을 기준으로 호주 전역에 이런 도시가 생겨 버렸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가 때려도 꿈쩍하지 않는 강도를 가진 결계. 인간이나 공격성이 없는 이종족까 지 오갈 수 있는 마법적 특성. 거 기에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기 반 시설들까지.
외부 발전기와 끊긴 상하수도 때문에 애를 먹는 곳도 많았지만, 인간은 순식간에 극복해 냈다. 하 지만 수많은 일반인과 해외에서 모인 사용자들로 가득 찬 상태. 상황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연지연호와 혜영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은 처참한 상황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편히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해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며칠은 물론이고 몇 주 동안 씻지도 못해 냄새를 풍기는 사람까지.
그래도 이곳은 농온그가 직접 활동하는 곳이라 형편이 좋은 쪽 에 속한 거다.
“어서 들어가자. 우리가 빨리 쉬고 다음 결계로 이동해 돕는 게 나아.”
“네, 언니. 셰이크랑 협회에서 보낸 구호품이 곧 올 거니까요.”
어차피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 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 는 거다.
삼미호는 요즘 심심했다. 항상 다정하게 놀아 주던 아이델이 사 라졌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잠깐 왔었는데 필리아와 함께 다시 가 버렸다.
“ 아함.”
턱이 아플 정도로 크게 벌어진 하품이었다. 멀리서 댕댕이가 검 둥이를 괴롭히고, 검둥이가 케베 를 괴롭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고 내리 갈굼이라고 하 던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매 일 저런다.
“어, 연우 님!”
삼미호는 메리쉽 농장에 들른 연우에게 날아갔다. 요즘 선술 경 지가 꽤 올라서 몸이 가벼웠다.
“미호구나. 왜 혼자 있어?”
“심심해요! 심심해!”
“왜, 댕댕이랑 검둥이가 안 놀 아 줘? 내가 혼내 줄까?”
“아니에요! 흥, 매일 저러고 노 니까 질려서 그래요. 유치하게!”
“유치해?”
“네, 애도 아니고. 흠흠.”
삼미호는 당당하게 세 꼬리를 바짝 세우며 말했다. 연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꼬리만 털갈이를 하나?”
“네? 아닌데. 그런 건 없는…… 꺄! 연우 님! 연우 님! 꼬리가 이 상해요! 내 윤기 흐르는 꼬리가! 내가 탈모라니! 탈모오오!”
“진정해. 미호야.”
연우는 삼미호의 꼬리를 쓰다듬 었다. 그러자 털이 뭉텅이로 빠졌 다. 겨울이라 그리고 겨울이 지나 는 때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봐도 꼬리만 이렇다는 건 좀 이상 했다.
“삼미호야. 이런 걸 누가 알까?”
연우는 모른다. 아스가르드의 구미호와 현실의 구미호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음. 엄마라면 알 텐데 연우도 지금까지 현실의 구미호 를 본 적이 없다. 그 귀하다는 요 정도 단체로 보고 정령이 사는 숲 까지 찾았는데, 구미호를 찾을 수 가 없다.
“헤맨.”
“네, 주인님.”
“혹시 아는 구미호 없지?”
“아는 구미호요? 음…… 네, 므 깃도에도 구미호는 없습니다. 워 낙 귀했기도 했고 므깃도랑은 잘 맞지 않아서.”
“그렇지.”
구미호는 꼭 사람이 사는 주변 산에 서식한다. 인간을 좋아하고 배신을 당했지만, 미련이 남아 멀 리 떠나지 못하고 뒷산에 숨어 인 간을 지켜보는.
아스가르드에선 그런 설정이다.
“어쩌지.”
“혹시…… 백호에게 물어보는 것 은 어떨까요?”
“백호라. 걔도 일단은 영물이었 던 신수니까?”
“네, 그렇습니다.”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삼미호
를 안아 들었다. 품에서 동그랗게 변한 눈동자로 연우를 올려다봤 다. 연우는 그 모습이 귀여워 머 리를 쓰다듬었다.
“연우 님. 어디 가게요? 백호는 또 뭐예요?”
“백호라고 단순하고 무식한 애 가 있는데, 너처럼 선술을 사용하 는 신수거든.”
“그래요? 신수요!?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신가 보네요!”
구미호가 되기 전엔 삼미호. 구 미호가 되면 신수로 변하는 모양 이다.
연우는 삼미호를 안고 므깃도로 들어갔다. 삼미호는 이곳이 처음 인지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며 여 기저기 둘러봤다. 풍부한 마력과 수많은 버프가 존재하는 곳이니 그럴 만했다.
“우와! 우아아! 대박! 쩌러요!”
“아니,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 운 거야?”
“네? TV에서요! 요즘 심심해서 TV를 많이 보거든요! 새로운 단 어가 많아요! 세상도 넓고…… 나 가고 싶은데. 그건 안 되겠죠?”
감정이 폭이 참 크다.
“왜 안 돼. 나중에 폴리모프. 그 러니까 선술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으면 갈 수 있지.”
“정말요? 그 정도 되려면 엄마 처럼 꼬리가 아홉 개는 돼야 하는 데.”
“그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천 년이나 걸리는데……
“천 년?”
“네, 저 아직 7개월인데……
삼미호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 다. 세상에 나가려고 천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라는 건 아직 어린 삼미호에게 너무 가혹했다.
“아, 아니야! 내가 누구니. 1년 안에 구미호로 만들어 줄게!”
“정말요? 진짜 그게 돼요?”
“그, 그럼. 당연하지!”
“와아! 좋아요! 사랑해요! 너무 좋아요!”
삼미호는 연우 품에서 세 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돌고 또 돌았다. 꼬리 탈모는 잊은 것처럼 말이다.
‘큰일 났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방법을 모른다. 다른 몬스터처럼 경지를 올리면 되는 걸까, 아니면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걸 까?
아스가르드에서도 신수를 키울 땐, 각종 캐시 아이템을 사용하고 사냥을 시켜 경지를 올리면 금방 성장한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되려나……
일단 탈모 해결부터 해결해야 한다.
“와! 저기 엄청난 기운이 느껴 져요! 엄마랑 비슷하기도 하고!”
백호였다.
자기가 무슨 라이온킹인 것마냥 길게 빠진 큼지막한 바위 위에서 수많은 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 백호야!”
“엇! 센느…… 아니, 연우 님!”
네 발로 서 있던 백호가 두 발 로 벌떡 일어난다.
“그래그래. 오랜만이다.”
연우는 뒤쪽에 도열한 백호들을 손짓해 해산시켰다.
“안녕하세요! 백호 님! 저는 삼 미호랍니다!”
삼미호도 두 발로 일어서서 인 사했다. 백호가 그러니 자기도 그 래야 한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둘 다 사람이야? 왜 그렇게 서 있어?”
“네? 전 연우 님께서 항상 이렇 게……
“내가 그랬나?”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 처음 이놈을 잡을 땐 콧대가 하도 높아서 며칠을 몽 등이로 찜질하다가 인사할 땐 두 발로, 뭘 받을 땐 두 앞발로 서라 고 했었다.
미안하게. 일단 편하게 있 고.
“네!”
“네!”
삼미호도 재미있는지 백호를 따 라 한다. 백호나 삼미호나 이렇게 꼬리가 달린 몬스터는 감정에 따 라 꼬리가 움직이는데, 그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구미호에 대해 아나 싶어서. 얘가 꼬리에 탈…… 갈이. 털갈이를 해서.”
“털갈이요? 꼬리에만? 그럼 그 거 원형 탈모 아닌가.”
백호는 눈치도 눈곱만치도 없 다.
“으아아앙! 내가 탈모라니! 탈 모라니!”
“미호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 야!”
연우가 백호를 째려보자 그제야 앞발로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린다.
“그럴 땐, 도깨비나 이무기 같 은 걸 잡아먹어도 효과가 있는 데.”
“그런 걸 어떻게 먹여!”
“그런가요. 그럼 내단 같은 걸 구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 삼미호 수준에선 힘들걸. 몸이 버티질 못할 거야.”
내단이라 하면 이무기의 심장이 나 용의 여의주 같은 걸 말한다. 적당한 걸 찾으면 되는데 연우의 아공간에 적당한 거란 없다.
못해도 원 클래스 마스터 이상 은 돼야 몸이 받아들일 거다.
“음, 그럼 이 방법밖엔 없네요! 사냥해서 경지를 올리면 사미호로 변하면서 완전히 털갈이를 하지 않을까요? 진짜 원형 탈모라면 안 변하겠지만……
“그래 사냥을 하자! 삼미호. 그 런 거 해 본 적 없지?”
“사냥이요? 좋아요! 잘할 수 있 어요! 그러고 보니 그런 지식도 있는 것 같아요. 털만 빠진다는 말은 없는데, 경지를 올리면 전부 털갈이를 한대요!”
구미호는 태생적으로 어머니의 지식을 일부 물려받는다.
삼미호는 두 발로 서서 두 앞발 을 꽉 쥐었다. 꼭 허공에 꾹꾹이 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귀 여울 수가 없었다.
“그, 그래. 해 보자.”
그렇게 삼미호의 첫 번째 사냥 이 결정됐다.
하지만 게임의 존재도 아니고 현실의 삼미호가 몬스터를 직접 죽인다고 경험치가 오르는 건 아 니다. 직접 전투할 때의 경험이 성장의 동력원인 건데, 삼미호를 그런 환경에 내몰 만큼 연우는 악 마가 아니다.
“호주로 가자! 호주로 가서, 신 력을 받아들이는 거야.”
“호주요!? 호주라면 아이델 님 하고 필리아 님이 있는 곳이죠!?”
“그래, 거기지.”
“좋아요! 너무 좋아요!”
삼미호는 빙글빙글 돌았다.
“아, 너도 따라와.”
“네? 저요?”
“그래. 여기 너 말고 누가 있 어?”
“저, 저는 요즘 할 일도 많고 집안일도 많이 밀려서……
“집안일은 무슨! 삼미호 등에 태우고 신력이나 흡수하러 가게. 너한테도 좋을 일일 거야.”
“…… 그, 그건.”
깨갱!
연우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변 명이 통할 리 만무했다. 연우는 백호의 뒷덜미를 잡아채 날기 시 작했다.
중간에 헤맨을 불러 호주로 직 행했다.
“셀린! 가라!”
연지의 셀린은 더욱 크고 사나 워져 있었다. 원래 불의 정령이라 는 게 활발하긴 하지만, 아름답고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주인 을 닮는다고 연지처럼 거친 여성 이 돼 버렸다.
“에라, 다 태우지 좀 말라니까! 저 오크의 눈알이 필요하다고!”
“그럼 먼저 쳐 죽이시든가!”
“으구. 너넨 매일 싸우면서 질 리지도 않니?”
혜영이 연지와 연호 사이를 파 고들면서 공간 도살자를 휘둘렀 다.
쿠구구궁!
쩌적!
이건 볼 때마다 어마어마하다.
마법으로 원 클래스 마스터를 이뤘고 공간이라는 특수 직업으로 7단계를 이뤘다. 거기에 이 무기 를 사용하니 거의 투 클래스 마스 터에 이르는 파괴력을 뽐낼 수 있 게 된 거다.
“역시 우리 혜영 누님!”
연호가 수십 개의 유리병을 뿌 리며 외쳤다.
쑤아아아!
콰과과광!
유리병 수십 개가 깨지며 푸른 거품이 확 퍼지더니 그 거품에 닿 은 오크를 모조리 얼려 버렸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떨어진 유리병이 깨지며 그 거품 을 모조리 압축해 버렸다.
당연히 그 거품에 닿아 얼었던 오크들도 빨려와 부서졌다.
“이야. 나보고 조심하라더니. 자 긴 아예 짓이겨 버리냐! 여러분! 이걸 보세요! 여기 병신이 있답니 다!”
“야! 우리 전체 이용가야! 말조 심해야지!”
이건 욕 축에도 못 낀다!”
수백 마리의 오크를 처치했다. 하지만 오크는 끝을 보일 생각도 없는지 끊임없이 몰려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잡느냐고? 이 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호주 전체 가 오크로 가득 차 버릴 테니까. 게다가 계속 죽여야 신력이 쌓이 면서 오크 잡기가 수월해진다.
“젠장!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이 다!”
혜영이 멀리 펼쳐 놓은 레이더 마법에 걸린 거다. 지금 아이델, 필리아, 천인종은 파견을 간 상태 였다.
“후퇴! 바로 후퇴!”
혜영은 물론이고 연지랑 연호도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때 였다.
휘우우우웅!
“뭐지?”
먼 곳에서부터 강한 바람 소리 가 났다.
쿠우우웅!
흙먼지가 확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