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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편_ 중위 차원(2) (159/207)

제175편_ 중위 차원(2)

연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해가 진 상태였다. 사방에 오크와 몬스 터가 연우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막상 다가오진 못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헐벗은 몸을 내려다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한 번 환골탈태를 했을 때보다 더 하 얗고 완벽한 몸이다. 180이 되지 못했던 키가 더 큰 느낌이었고 몸 속에서 순환하던 마력은 한층 빠르 고 자연스러워졌다.

연우는 능력치를 봤지만 바뀐 건 없었다.

“능력치와 상관이 없는 건가. 아 니면……

능력치가 터무니없이 높았던 거 고, 이제 몸이 맞춰지는 걸 수도 있다.

‘아마 그거겠지.’

지금까지 능력치는 거짓말한 것 이 없으니까.

게다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건, 신력.

주변에서 노려보는 몬스터들이 가졌던 신력이 아예 느껴지지 않았 다. 그게 무슨 느낌이냐면, 마치 마 을에서 보호와 버프를 받는 경비 NPC의 제한이 풀린 느낌이랄까.

아스가르드에서 공성전을 할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성을 지키 는 NPC도 수성의 팀원으로 생각하 고 시스템적 제한을 푸는 거다.

마치 한 명의 플레이어처럼 말이 다.

“쯧. 너무 오래 시간을 끌어 버 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반나절 정도 지난 것 같다.

연우는 시스템 문구를 살폈다.

-중위 차원의 존재로 거듭납니 다.

-중위 차원에 알맞은 신력을 가 지게 됐습니다.

-하위 차원에서 신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런 거였군.”

왜 사자들이 그렇게 강했는지, 여기서 온 오크들이 강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오크를 쉽게 상대하려 면 이 신력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연우가 움직이자 주변에서 노려 보던 몬스터들이 움찔거렸다. 의식 이 없을 때조차 연우에게 접근하지 못했던 몬스터들이다.

“애들은 괜찮겠지?”

호주로 갔던 이들이 걱정되기 시 작했다. 그렇다고 연우가 혼자 가 봐야 바뀌는 건 별로 없다.

“더 확실한 방법……

연우는 주변을 살폈다. 식물, 동 물, 대기, 마력 등등. 모든 게 마음 에 든다. 게다가 저 몬스터를 봐라. 중위 차원? 지구보다 위의 차원이 라 그런지 더 크고 강하고 건강하 다.

“빨리 해결하고 가야겠다.”

연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 설명해 봐 렌싱.”

“?????? 그,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저 하위 차원의 존재들이 오크를 상대로 수월한 전투는커녕 그대로 잡아먹힐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50번대 중위 차원의 신력을 쭉쭉 빨아먹으며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신연우라는 이 미친 인간 은 50번대 차원으로 넘어가 버렸 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 떻게 된 건지 찾아보니 50번대 차 원에 존재하는 마계의 마신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걸 예상 못 해? 우리가 차원관리팀에 심어 놓은 인원이 몇 인데! 거기서 이걸 몰랐다고?”

“그게…… 해루스를 감사해 잡아 넣었을 때 생겼던 일입니다. 그래 서 팀장이 공석이었고……

“후, 변명은 그만하고! 해결을 하 라고 해결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중위 차원의 존재가 돼 버 렸다. 만약 여기서 직접 관여해 버 린다면? 정말 최상위 차원의 존재 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까?

“50번대 차원에 사자를 깨울까 요?”

“…… 그쪽이 7단계. 아니, 8단계 신분증이었나?”

“네, 기본 7단계고 빛을 내리면 8단계까지 오릅니다.”

“그걸 빼앗기면?”

“ 네?”

“또 죽으면! 그 미친 인간이 다 쓸어버리면!”

“그, 그래도 여명이 없기에……

“하나 가지고 있잖아! 어휴! 이 런 놈하고 내가 일을 하다간……

렌싱은 욕이 턱밑까지 차올랐지 만, 참았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게 그의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욕할 거면 자기가 해 보 든지. 자긴 못하면서……

이래서 월요일 직장인 검색어 순 위에 ‘청부살인’ 같은 단어가 뜨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예 신연우라는 인간 이 연결한 차원 게이트를 끊어 버 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오 크들이 다 죽는다고 해도 신연우가 다시 하위 차원에 돌아가지 못한다 면……

“그래! 그거야! 어차피 하위 차 원이야 그 인간만 없으면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갈 테니까. 나중에 사자를 싹 모아서!”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바로 시작해. 완전 히! 완전히 끊어 버려. 좌표도 몇 번 우회해서 미지화해 버리고. 그 러다 10번대 차원으로 떨어져 버렸 으면 좋겠군.”

“알겠습니……?”

렌싱의 말이 끊겼다. 그의 얼굴 은 아예 창백해져 버렸고 아무 말 도 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

“무슨 일이야? 빨리 하라니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연결해 버렸어? 차원이랑 차원 을? 아예? 끊지도 못하게?”

“…… 국장님. 이게 가능한 일입 니까?”

“…… 당연히 안 되지! 그게 되 면 내가……! 아, 미치겠군.”

“왜 그러십니까.”

“빌어먹을 차원관리국 놈들!”

벌컥!

감사국장실 문이 열리며 차원관 리국장과 해루스가 등장했다.

“이런, 이런. 아주 큰일을 내 버 렸군요. 권한도 없는 차원에 개입 해 30번대 차원과 50번대 차원은 연결? 이거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 요?”

렌싱은 비꼬는 해루스를 보며 얼 굴이 벌게졌다. 분명 해루스가 꾸 민 일이다. 어떻게 저 인간이 마신 의 뿔을 가지고 있고 그 모든 차원 을 연결할 수 있다는 ‘므깃도’를 가 지고 있는 건지.

그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저들이 직접 관여했다는 것뿐이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춰 볼까?”

“?????? 뭐?”

“우리가 저걸 꾸몄다고 생각했겠 지?”

정곡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해루스가 이 말을 꺼낸다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건가?

“우린 아니야. 우리도 저걸 막아 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직 도 소름이...... 아, 이건 아니고. 하

여튼 저 인간은 주인공이야.”

“주인공?”

“그래. 모든 일이 저 인간을 중 심으로 돌아가고, 별의별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끌고 다니는 거지. 모 든 혁명은 그렇게 시작하잖아?”

“그래서. 저걸 받아들이고 지켜 보라는 건가?”

“아니, 지켜봐서만은 안 되지. 우 리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 최상위 차원이랍시고 할 줄 아는 건 매번 쳐 맞고! 지고! 후퇴하고! 겨우겨우 우리 배만 채우는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저기 저 인간 에게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린지, 렌싱은 이 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난 알 수 있었다.

해루스는 진심이었다.

연우는 작업을 완료했다.

눈앞엔 큼지막한. 그러니까 4층 건물 세 개를 이어붙인 정도의 게 이트를 완성했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헤맨을 불러 므깃도와 김상철 박사가 만들었던 차원 게이 트를 개조해 연결하면서 해낼 수 있었다.

“또 시간이 많이 지체됐군.”

연우는 게이트를 가동했다.

최상급 마력석 10개가 들어갔지 만, 그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지이이잉.

게이트 중앙에 작은 파동이 퍼지 기 시작하며 푸른색의 마력이 가득 찼고 흰색 신력이 어렸다. 연우의 신력이 필요했고 헤맨의 공간의 힘 이 보조했고 므깃도가 주요했다.

게이트는 단순한 2차원 ‘면’의 통 로가 아니었다. 그 파장은 점점 커 지며 일대 숲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연우는 눈을 감았고.

동시에.

번쩍!

차원과 차원의 공유가 시작됐다.

지구라는 하위 차원을. 아니, 호 주 일대를 50번대 차원으로 업그레 이드하는 작업이었다.

화악! 화악!

연우의 몸을 무언가 훑고 지나간 후에 눈을 떴다.

“됐다.”

연우는 하늘 높이 날았다.

수백 미터를 지나 숲의 끝이 보 일 때쯤, 광경이 바뀌며 게이트를 열었던 호주 평야의 모습이 들어왔 다. 고개를 내리자 밑엔 작은 섬처 럼 초록빛 숲이 보였다.

“성공이군.”

일부 공간을 공유하는 거다. 50 번대 차원에선 이것과 완전히 반대 로 보일 거다.

연우는 빠른 속도로 농장 식구들 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날아갔다.

전투는 종일 계속됐다.

혜영과 연지연호. 아이델, 필리 아, 천인종, 헤르메스와 그의 부하 들. 또, 미하옐과 버크셔, 찰튼, 해 밀튼, 셰이크. 그리고 더 강해져 돌 아온 그라니아 선발대까지.

수많은 오크를 상대로 싸우며 생 존자를 구하고 있었다.

처음보단 훨씬 수월했다. 생존자 가운데서 꽤 고위급 사용자도 있었 고 연지연호와 셰이크를 통해 방송 을 뿌리고 지원 요청을 하며 병력 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가 쉬운 건 아니었다.

오크의 수는 너무 많았고 줄어드 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짜 미쳐 버리겠군.”

혜영이 공간 도살자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사방 에서 생겨나고 죽으면 또 들어온다. 이놈들이 얼마나 있는 걸까?

그때 였다.

화악!

하얀빛이. 오크를 죽일 때마다 소량씩 들어오는 하얀빛이 어디선 가 해일처럼 몰려와 그들을 쓸고 지나갔다.

전신을 감싸는 청량감. 척추를 훑는 쾌감. 뇌를 파고드는 아드레 날린. 더 강해졌다는 성취감. 그리 고 오크를 감싼 저 신력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거란 확신.

우아아아아!

혜영뿐이 아니었다. 연지연호, 필 리아, 천인종, 아이델 모두가! 그리 고 학교에서 구출했던 사용자들, 저기 셰이크와 이터 스네이크. 언 제 왔는지 모를 협회 사용자까지.

모두 같은 힘을 얻은 건지.

전보다 훨씬 손쉽게 오크를 밀어 내기 시작했다.

우뚝.

혜영은 묘하게 익숙한 감각에 저 먼 하늘을 바라봤다.

“누나, 뭐 있어요?”

“무슨 일이야?”

혜영이 바라보는 곳이 궁금했는 지 연지와 연호가 옆으로 다가왔다.

“어? 뭐가 날아오는데?”

그건 연우였다. 아주 빠른 속도 로 날아온 연우는 혜영과 연지연호 바로 앞으로 착륙했다.

“조금 늦었지?”

“조금? 조오그음?”

혜영이 눈을 부라리며 그렇게 말 했지만, 연우는 손을 들어 살짝 저 었다.

콰직. 파바바바밧!

이곳으로 달려오던 오크 수천 마 리가 한 번에 목이 달아났다. 그러 자 주변에서 싸우던 사용자들의 시 선이 몰렸다.

“어? 연우 님!”

“연우 님!”

몇몇 알아본 사용자들이 달려왔 다. 그중엔 협회장 이진철과 해서 웨이도 있었다.

“자자, 일단 내가 해 놓은 게 있 어서 더 쉽게 잡을 수 있을 테니 까. 생존자부터 구하자고요.”

역시 생색은 자연스럽게 내야 한 다.

연우라는 단 한 명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큰 사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실제로도, 단 한 명의 참 전이 전황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고 호주 전체를 집어삼켰던 오크를 빠 르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연우는 오랜만에 농장으로 돌아 왔다.

사실,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 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뿐이니 까.

치이이익.

뜨거운 철판에 빨간 소고기가 익 어 가는 소리는 언제나 귀르가즘을 선사한다. 거기에 진하게 풍기는 향은 어떻고. 이거야말로 최고의 육고기라고 할 수 있는 블랙 카우 의 등심이 아닌가!

“연우! 위스키? 소주?”

“난 소주!”

이자젤은 로얄 살루트를 하나 품 에 안고 양손에 소주 다섯 병을 들 고 왔다.

“근데 필리아는 아직도 안 왔 어?”

“응, 아이델하고 천인종하고 같 이 신나서 싸우고 있던데? 오크가 줄지 않아서 좋다고.”

“그래, 필리아 요리가 맛있는데.”

연우는 겉이 노릿하게 익은 등심 을 꺼냈다.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썰어서 입에 하나 넣었더니 육즙이 폭발한다.

“크으, 맛있다. 소고기는 오랜만 이네.”

이자젤도 연우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더니 두툼한 등심을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이 소금은 거기서 가져온 거지? 오크가 있는 곳.”

“응, 괜찮지? 나중에 제대로 가 서 식재료 탐방을 해야겠어.”

연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긴장 을 풀었다.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특별히 강한 건 아니었지만, 그 수는 꽤 위협적이었다. 물론, 그 덕에 지구 사용자들 수준이 대폭 올라가고 있 지만 말이다.

“좋은 현상이지.”

“이 신력이라는 게 진짜 대단하 더라. 만약에 상위 차원의 존재를 만나면 그 호주를 감쌌던 결계만큼 강할 거라는 거 아니야?”

“…… 그런가?”

호주를 감쌌던 결계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신력을 가 진 존재라면? 지금의 연우는 그걸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에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역시 단순한 연우였다.

연우는 특수 부위인 안창살과 안 심 한 덩이를 올렸다.

치이이익.

농장의 밤은 그렇게 고기 굽는 소리, 그리고 술잔 넘어가는 소리 와 함께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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