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편_ 중위 차원(1)
처음엔 구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크는 생각보다 현명했 으며 전술과 전력을 사용할 줄도 알았다. 게다가 그 어마어마한 수 와 단단한 신력은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죽어!”
연호가 아공간에서 유리병 수십 개를 발사한다. 이제 손으로 직접 던지지 않아도 된다.
펑펑!
콰으으응!
단순한 불과 얼음 같은 속성이 아니었다. 아지랑이가 퍼지며 일정 범위를 파쇄해 버린다.
화륵! 콰과광!
연지는 여전히 정령 마법을 이용 해 불태우고, 터트리고, 산산조각 낸다.
“여러분 보이시나요! 지금 모두 호주로 와 주세요! 도움이 필요합 니다!”
혜영은 드론 카메라를 보며 외치 면서 공간 도살자를 휘둘렀다.
피잉. 쩌적!
얇은 빛줄기 하나가 수백 미터 밖까지 그어지고 갈라진다. 폭발음 도, 이펙트도 없다. 그저 쪼개지는 것뿐. 하지만 그것으로 수백 마리 의 오크가 죽어 사라진다.
화악!
그렇게 죽은 오크의 몸에서 하얀 빛들이 날아와 혜영의 몸에 흡수된 다. 처음엔 몰랐는데 죽이면 죽일 수록 선명해졌다.
그리고 수천 마리를 죽였을 때 알 수 있었다.
이건 연우가 말했던 신력이다.
끈질길 정도로 죽지 않았던 오크 들이 이젠 수월하다. 혜영뿐만이 아니다. 연지와 연호는 물론이고 아이델 필리아까지 신나게 하얀빛 을 흡수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드래곤인 필리아와 용마 족 신선인 아이델이 있다고 해도 이 많은 수를 한 번에 밀어 버릴 순 없었다. 생존자의 벙커는 곳곳 에 존재했고 이 많은 오크가 달려 오는 범위는 상당히 넓었으니까.
“크르르!”
“크으르르르!”
갑자기 오크들이 경련을 일으키 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왜 멈춘 거야?”
연지, 연호, 혜영, 아이델, 필리아 는 서로 등을 맞대고 섰다. 지금이 라도 정비를 해야 한다. 텅 빈 아 공간은 버리고 포션이나 소모품이 가득 찬 아공간을 꺼내 허리춤에 찼다.
체력 포션과 마력 포션을 하나씩 꺼내 먹고 손상된 장신구가 있나 확인하고 교체하기도 했다.
겨우 2분 남짓.
이럴 때 쓸어버릴까 했지만, 수 가 너무 많아 조금 더 죽이는 것보 단 정비가 효율적이었다.
그때,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 다.
크와아아앙!
오크의 눈은 붉게 변했고 근육은 터질 듯 팽창했다. 몸엔 붉은빛 기 류가 흐르며 한층 강해진 모습이었 다.
“미, 미친! 각성이야?”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수만 마 리다.
“어떻게 된 거지?”
“젠장 할!”
연지는 정령 마법을 준비했고 연 호는 아공간에 유리병을 쏟아 냈다. 아이델은 선술을 이용해 디버프를 걸고 필리아는 브레스를 충전했다.
혜영은 그사이에서 공간의 힘을 사용해 생존자를 보호하기 바빴다.
“이대론 안 되겠는데?”
필리아의 목소리였다.
혜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 델과 필리아라면 시간은 걸리겠지 만, 질 수는 없다. 구출하는 게 늦 어지고 덜 구하겠지만, 죽지는 않 을 거다.
그런데 저 앞에서 날아오듯 뛰어 오른 오크를 보곤 입을 다물 수밖 에 없었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쓰리 클래스 마스터가 아니 다. 신력을 가졌고 각성까지 한 붉 은 기류의 쓰리 클래스 마스터다.
“제가 맡겠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강한 아이델이었 다. 아이델이라면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다. 저 붉은 기류가 어떤 힘 을 가졌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 이다.
“저긴 제가 가야겠네요.”
뒤쪽에선 투 클래스 마스터 오크 가 달려왔다. 그건 필리아의 몫이 었다.
“왠지 천인종을 불러야 할 것 같 죠?”
“그래야겠습니다.”
혜영은 마법을 사용해 천인종을 호출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투 클래스 마스터급의 오크들이 다수 등장했다.
“젠장 할! 어디서 이렇게 나오는 거야!”
도망치는 건 가능하다. 여기 마 법이 경지에 오른 필리아와 혜영이 있으니까. 선술을 쓰는 아이델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 곳곳에 숨어 있는 생존자들을 구할 수 없 다. 잔뜩 흥분한 오크들에 의해 잔 인하게 죽고 말 거다.
“젠장! 어떻게든 해 봅시다.”
연호는 그렇게 소리치며 아공간 5개를 동시에 털었다. 지금까지 틈 나는 대로 만들었던 모든 연금술의 결과물을 다 쓰려는 것이다.
“다 해서 수백억은 나올 텐데!”
참고로 연호는 버는 족족 재료를 사는 데 써서 모은 돈이 없었다.
“네 꿈은 미뤄야겠네. 조물주 위 의 건물주?”
“후,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본전 찾고 만다.”
연호가 열의를 다졌다.
쿠우우웅!
아이델과 쓰리 클래스 마스터의 오크가 부딪혔다.
화륵! 콰과과과!
필리아와 연지가 움직였다.
콰자작! 쿠우우우우!
연호가 움직였고 언제 도착했는 지 모를 천인종이 다수의 투 클래 스 마스터의 오크를 막아섰다.
하지만 적이 너무, 너무 많았다.
연지연호의 작두는 이미 전투 불 능 상태였고 가장 먼저 필리아가 떨어져 나갔다. 아직 해츨링인 필 리아에게 이런 격한 전투는 무리였
다음으로 아이델이 밀렸고 천인 종이 주춤했다.
그 둘은 버틸 거다. 하지만 나머 지가 문제다.
“크윽. 더는 안 돼.”
연호가 초당 수백 개의 유리병을 던졌고 연지는 정령력과 마력을 뭉 텅이로 쏟았지만, 상처는 계속 늘 었고 체력은 한계였다.
그때 였다.
아우우우!
가장 처음은 TV에서나 들어 봤
을 법한 늑대 울음이었다.
휘릭!
사사사사삭!
검은 그림자가 오크 무리 사이를 오갔고 어디선가 검은 기류가 바닥 에 깔렸다.
“멈춰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 다.
동시에 검은 기류가 오크들의 발 목을 잡았다.
“죽어라.”
화악!
황금빛의 파장. 얇고 반투명한 빛이 원형을 그리며 넓게 퍼졌다.
스거거적. 투두두둑.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을 때, 수 천 오크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서히 궁지에 몰리던 혜영과 농 장 식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 엔 황금빛 기류를 풍기는 헤르메스 가 있었다. 옆엔 검은 연기를 뿌리 는 아이린이라는 마왕까지 있었다.
언더 월드의 지배자가 된 헤르메 스가 수만의 뱀파이어. 수만의 늑 대 인간을 끌고 온 것이었다.
rz rz tz tz f
n―i―r~r!
가장 먼저 들린 울음소리지만, 도착은 가장 늦은 늑대 인간들이 수많은 오크 사이를 매웠고 뱀파이 어는 그림자 사이에서 전투를 시작 했다.
“살았다!”
“나이쓰으!”
“아, 진짜 죽을 뻔했네.”
헤르메스는 혜영과 인사를 하고 전투에 투입됐고 혜영과 연지연호 는 정비를 마치고 생존자를 구출하 기 위해 움직였다.
헤르메스는 도착하자마자 어마어 마한 하얀빛을 얻었고 그 덕에 오 크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쉬워졌다. 그게 각성한 오크라도 말이다.
그런 상황은 미하옐, 버크셔, 셰 이크, 찰튼, 해밀튼이 이끄는 구조 대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전면에서 연우가 빌려준 이터 스 네이크가 오크를 집어삼키고 뒤에 서 그들이 데려온 사용자들이 공격 하고, 보호하고, 보조하며 전투를 하고 있었다.
오크들을 밀어내고 생존자를 확 보하면 퇴로로 일반 병력과 함께 안전을 확보한 해안가로 옮겼다.
“오크가 너무 많아!”
“빌어먹을 오크들. 생긴 건 더럽 게 생겨서!”
“미하옐, 너랑 좀 닮은 거 같은 데? 흐흐.”
“지금 장난칠 여유가 있나!? 딸 이나 그 아비나.”
“내 딸이 뭐!”
“전에 이토석 안 준다고 했다가 러시아에 폭격을 한다고 협박을 하 는데……! 어휴. 친구 딸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둘은 이터 스네이크 등에 각자 올라타서 전투 중이었다. PMC 회 장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면에 서서 싸우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저들은 저걸로 그 모든 걸 이룬 사 람들이다.
둘 다 탱커 쪽으로 원 클래스 마 스터는 이뤘다. 그건 찰튼과 해밀 튼도 마찬가지였고 오크들에 전혀 밀리지 않게 싸우고 있었다.
셰이크만 일반인으로 몇 명의 사 용자에게 호위를 받으며 생존자 구 출에 집중하고 있었다.
“크르르!”
오크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멈췄 다. 급하게 오크를 먹던 이너 스네 이크도 이상함을 느끼고 몇 발자국 물러섰다.
“뭐야? 무슨 일이야?”
“왜 멈춰! 이럴 때 하나라도 더 죽여야지!”
“크와아아아앙!”
오크가 변했다. 눈이 붉게 변하 고 근육이 팽창한다. 혜영이 있던 곳에서 일어났던 일과 같은 현상이 었다.
“이 미친놈들! 여기서 어떻게 더 강해지는 거야!”
저항은 더 거세졌고 수많은 오크 를 먹으며 강해졌던 이터 스네이크 가 버티지 못하고 찢겨 죽기 시작 했다.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오크들 을 죽이며 하얀빛. 그러니까 그들 이 어떻게든 모으려고 했던 미지의 힘이 몸에 축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오크들을 상대하기 편해 졌다.
그런데 이젠 그것도 부족했다.
“끄아아악!”
“저기 막아! 막으라고! 뚫리지 악!”
콰아아아!
난리가 났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적응하기 쉬웠을 거다. 하지만 전 투 중에 이런 식으로 전력이 상승 한다는 건 엄청난 변수였고 아군의 방어선은 혼란에 휩싸였다.
수만 명의 사용자와 수백이 이터 스네이크다. 적은 수만씩 수십 개 가 넘었고 구한 생존자만 해도 수 만이 넘는다.
이 상황에 방어선이 밀리면?
수만의 사용자는 물론이고 생존 자들까지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다.
“막아! 어떻게든!”
“화력 지원 요청해! 생존자가 없 는 곳만!”
“건물 같은 건 신경도 쓰지 말 고!”
아직 해안가엔 항공모함이 정착 해 있다. 생존자를 모으라고 연우 가 대단위 실드도 쳐 주고 갔다.
지금까지 생존자가 어디 숨어 있 을지 모르니 쉽게 사용하지 못했지 만, 이젠 이거라도 써야 했다.
“좌표 입력! 첫 번째 레일건 발 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핑!
쿠과과과과!
Im 남짓한 텅스텐 덩어리가 수 천의 오크를 조각내며 일대 건물까 지 쓸어버렸다. 김상철 박사가 설 계한 각종 마법진이 새겨진, 그러 니까 미칠 듯 비싼 탄환이다.
핑! 핑! 핑!
콰과과과과!
연속으로 몇 개가 발사됐다.
하나는 다시 수백의 오크를 박살 냈다. 하지만 두 번째 탄환에선 아 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뭐, 뭐야?”
폭발음이 들리지 않는 좌표 두 곳에선 3m가 될 법한 오크가 양손 으로 탄환을 받아든 채 서 있었다.
“젠장 할! 투 클래스 마스터! 아 니, 쓰리 클래스 근접한 오크야!”
이곳엔 저것들을 막은 전력이 없 었다.
“…… 미치겠네.”
미하옐이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버크셔도 반쯤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건 막을 수 없다. 마하 7 이 넘어가는 최강의 무기 레일건을 손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 가.
막연하기만 했던 쓰리 클래스 마 스터급 무력을 실감했다.
이대로 등을 보이고 도망가면 저 게 놔 줄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생존자와 후방의 병력이 탈출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그게 단 몇 분이고. 자신의 목숨 을 거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참, 난 너무 대단한 거 같아.”
“제발 닥쳐! 버크셔. 심란하니 까.”
“이렇게 희생정신 가득한 영웅을 보라고!”
“널 보라는 거지? 지금? 이 상황 에? 이 미친놈아!”
찰튼과 해밀튼은 그 둘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둘의 선택 은 이해가 간다.
저 뒤에. 그러니까 미하옐과 버 크셔가 데려온 사용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눈은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슷한 성정의 사용자를 데리고 지옥 같은 전장에서 항상 선봉에 섰던 영웅이 바로 저 둘이다. 그렇 기에 한 명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민간 군사 기업을 가지게 됐고 한 명은 미국에서 최고가 됐다.
“저것 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니까.”
“대통령님이 그래서 이렇게 말한 거구나.”
“저기 둘은 절대로 따라가지 말 라고?”
“응. 따라가면 아마 죽는 게 멋 있어 보일 수 있다고. 같이 미친다 고. 흐흐.”
“우린 이미 늦은 거 같지?”
“그래, 쓰리 클래스 마스터 한 마리. 투 클래스만 해도…… 어휴. 저게 몇 마리야.”
“조국을 위해, 셰이크 님과 생존 자들이 나갈 시간은 벌어 주자.”
“그래, 조국을 위해!”
미하옐과 버크셔가 이터 스네이 크와 휘하 사용자들을 데리고 달려 나갔다.
찰튼은 무전기를 들었다.
치 익.
“셰이크 님. 지금 바로 생존자들 과 함께 후퇴하셔야 할 거 같습니 다.”
-자네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희는 남아서 시간을 끌겠습니 다.”
.......그게 최선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3 분에서 5분 정도는 벌 것 같네요.”
-…… 내가 아프리카, 악의의 대 륙, 그라니아, 이곳까지! 제가 전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그런 일들을 한 건……!
셰이크는 말하다 잠시 흥분한 건 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한 셰이크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 같은, 그런 희생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부디 살아 돌아오세요.
그걸로 무전은 끝이었다.
이미 미하옐과 버크셔는 투 클래 스 마스터 오크 한 마리를 상대로 겨우 버티는 중이었고 수십 명의 사용자는 검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완전히 고기 방패였고 총알받이 다.
몸을 내주고 도끼 한 번 휘두르 게 하는 거다.
찰튼과 해밀튼도 휘하 사용자를 데리고 달렸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싸워라!
막아야 한다!
조국을 위해!
그때,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 렸다.
“메롱! 내가 더 빠르거든! 연우 니임! 어디 계신가요!”
“야,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소리 가 나오냐 해서웨이!”
“협회장님! 집중하시죠!”
콰과과과광!
샛노란 번개 수백 개가 오크들을 향해 떨어졌다. 하늘에선 메테오가 떨어지고 있었고 몸이 빠른 육체 계열 사용자는 이미 오크들을 향해 돌진한 후였다.
그라니아로 갔던 최강자들.
전쟁과 절망의 도시로 인해 더 강해진 지원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