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편_ 두 번째 환골탈태
말을 잇지 못할 광경이었다.
푸르르르르.
크아아악! 죽어라!
이상한 깃털을 지닌 ‘이터 스네 이크’란 몬스터가 2m가 넘어가는 근육질의 오크를 한입에 삼켜 버린 다. 오크만 당하는 건 아니었다. 오 크의 강력한 힘에 이터 스네이크도 갈기갈기 찢겨 버렸다.
하지만 한 번 오크를 삼킨 이터 스테이크는 깃털에 은은한 하얀빛 이 서리며 더욱 강력해졌다.
저 오크가 가진 신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이터 스네이크는 두 자릿수까지 줄었지만, 몸집은 두 배가 커졌고 연우의 옆에서 공간이 찢어지더니 수십 마리가 더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더 만들었 을 텐데.”
슬슬 이제 다 나왔다. 이제 100 마리가 안 될 숫자였는데 이곳 방 어는 충분할 것 같았다.
“자, 어때요? 괜찮죠?”
연우는 먹고 먹히는 살벌한 전장 을 배경 삼아 넋을 잃은 다섯의 돈 줄. 아니, 고객들에게 물건을 어필 했다.
“네? 아, 네. 괜찮네요. 멋있습니 다.”
찰튼과 해밀튼은 연우가 어떤 사 람인지 잘 알았고 조금이라도 친분 을 쌓고 싶은 건지 양손을 싹싹 비 비며 아부했다.
“ 대단하군요.”
셰이크 한마디 했다. 미하옐과 버크셔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런 멋진 광경을 또 어디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 중앙에서? 바로 앞에서 물고, 잘리 고, 뜯기고, 먹고 먹히는 이런 광경 을! 게다가 이 앞의 서서 웃는 사 람이 이 몬스터들의 주인이다.
게다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 는 소문이 있지 않은가!
“살 수 있을까요?”
그 터프하다는 러시아의 미하옐 이 공손하게 묻는다.
“당연하죠. 팔려고 가져온 건데.”
연우의 말에 다섯의 시선이 쏠렸 다. 셰이크가 고민도 없이 먼저 말 을 꺼냈다.
“최대한 사고 싶군요. 절반 정도 느......”
“아뇨. 그렇게 팔 건 아니고.”
이젠 그냥 돈만 받고 팔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고 하지만, 지금 그걸 받기엔 마음 이 영 좋지 못했다.
“일단 데려가서 쓰세요. 대금은 저들이 먹은 오크의 마력석으로 받 을 거니까요.”
최소 5단계다. 대부분 8단계 이 상이고 강한 건 원 클래스 마스터 에서 쓰리 클래스 마스터까지 된다. 물론, 이것들과 저들의 힘으론 투 클래스 마스터 이상은 힘들 거다.
‘수이니와 이자젤이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상대하면 딱이겠지.’
“사람들을 최대한 구해 주세요.”
“네? 그게 무슨……
연우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찰 튼이 입을 열었지만, 뒤에서 셰이 크가 말을 끊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최선 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들로 원 클래 스 마스터까진 어떻게 될 겁니다. 물론, 수가 너무 많으면 안 되겠지 만……
연우는 함선에서 내리기 시작한 사용자들을 훑어봤다. 역시 하나하 나 강한 수준이었고 가진 무기도 상당했다. 저 정도면 이터 스네이 크를 몇 마리 앞세우며 무난하게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을 거다.
“서로 함께하면 충분할 것 같네 요. 아, 투 클래스 마스터 이상도 있으니 조심해 주고, 쓰리 클래스 마스터는 제 친구 둘이 알아서 할 겁니다.”
투 클래스 마스터라는 말에 놀라 고, 쓰리 클래스 마스터라는 말에 턱관절이 빠진다. 그리고 뒤에 있 던 수이니와 이자젤을 보곤 더 놀 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이곳에서 이터 스네이크가 만들 어지는 대로 나올 거니 와서 데려 가면 되고요.”
연우는 이터 스네이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반지를 다섯 개씩, 다 섯 명에게 총 25개를 나눠 줬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연우는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곳에 사용자들이 얼마나 더 올 건지. 협회나 일반 사용자는 어떻게 할 건지 등의 정보였다.
그들은 성심성의껏 대답했고 연 우는 만족스러웠다.
어떤 생물이든 성장을 위해 가장 약해질 때를 겪어야만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애벌레든 갑각류 든 인간이든 말이다.
이번 사건은 인류에게 큰 위기지 만, 더 큰 성장의 동력원이 될 거 다.
“그럼 연우 님은 어디 가십니 까?”
넉살이 좋은 찰튼이. 사실 딱 봐 도 50이 넘은 중년이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500살 넘는 식구들도 있다 는 걸 상기하며 대답했다.
“네, 할 일이 있어서요.”
연우는 이글거리는 버크셔의 눈 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치 연우 를 평가하듯 바라보는 버크셔 해서 웨이의 기대와 걱정. 그리고 김치 국물이 가득한 그의 눈빛을 말이다.
혜영은 연지연호와 함께 농장으 로 갔다. 길드를 만들긴 했는데 길 드원을 모집하기도 전에 출동 요청 이 떨어진 것이다.
“왜 농장으로 가요?”
“맞아요. 헬기나 전투기 타야 하 는 거 아니에요?”
연지연호가 물었다. 혜영은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너네 아직 너희 오빠가 뭐하는 사람인 줄 모르는구나?”
“네? 오빠요?”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연 지랑 연호는 농장에 오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고 혜영은 그곳에서 살 았으니까.
그땐 그러려니 하며 지냈지만, 인제 와서 연우의 행동과 농장에서 의 일을 상상해 보면 아직도 제대 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일단 가 보자. 그쪽에 탈것을 준비해 놨대.”
원래 이런 이동은 항상 헤맨이 담당하는데 이터 스네이크 번식에 온 힘을 쏟고 이미 몇 개의 분신을 만들어 호주 전역을 돌고 있기에 여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어떤 것이든 가능한 헤맨이지 만, 생명과 관련된 일엔 한계가 있 는 법이었다.
“다 왔네요.”
혜영은 끌고 온 차를 대충 주차 하고 식당으로 뛰어갔다.
“식당으로 가요? 그럴 시간이 없 는데.”
연지가 의문이 든 듯했지만, 혜 영은 웃을 뿐이었다. 식당으로 가 는 이유는 오늘 이들을 맡아 줄 탈 것이 바로 식당에 있었기 때문이다.
덜컹.
혜영이 문을 열자 안엔 필리아와 쇼타가 사이 좋게 콩나물과 멸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어? 빨리 오셨네요?”
“네! 저쪽 상황이 좀 급한 것 같 아서요.”
“음, 아직 일이 남았는데…… 그 럼 일단 다녀오죠.”
필리아가 벌떡 일어나며 앞치마 를 풀었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 밖으로 나 가더니 폴리모프를 시전했다.
번쩍!
쿠우우우!
그러자 필리아의 여린 몸은 사라 지고 육중한 골드 드래곤의 자태가 드러났다. 아직 해츨링이라 몸집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황금빛 비늘 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 타세요!”
몸과 매치가 되지 않는 청명한 목소리에 혜영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
“웃지 마시고! 어서 타세요!”
필리아는 부끄러운지 날개를 파 닥거리며 재촉했다. 천인종과 아이 델도 같이 갈 모양인지 장비 몇 가 지를 챙겨 옆으로 다가왔다.
“둘만 같이 가는 건가?”
“네, 맞아요. 나머지는 다 일이 있어서요.”
아이델과 천인종은 가뿐하게 올 라탔고 뒤로 혜영과 연지연호가 이 어 올랐다.
연지연호는 굉장히 놀란 표정이 긴 한데,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는 눈치였다. 혜영은 생각보다 연우에 대해 더 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연지연호는 너무 놀라 아 무 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오, 따듯하네요?”
“부드럽기도 하고.”
연지연호는 예상과는 다른 드래 곤 비늘 느낌에 필리아의 등을 연 신 문질렀다.
“아앗! 하지 마욧! 간지러워요! 지금 일부러 마법으로 부드럽게 해 놓은 거라 예민하다고요!”
어찌어찌 필리아까지 6명의 인원 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호주를 향 해 출발했다. 금방 마하를 돌파하 고 중간 중간 워프까지 사용하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 었다.
“워우. 이거 위험하겠는데요?”
연호가 중얼거렸다.
수가 어마어마하다.
“괜찮아. 저걸 다 죽일 필요는 없어. 중앙으로 몰고 사람들만 구 하면 되니까.”
혜영의 말이 맞다.
지금 셰이크, 미하옐, 버크셔, 찰 튼, 해밀튼까지 모두 같은 일을 할 계획이었고 혜영과 연지연호. 아이 델과 필리아까지 같은 계획이다.
그리고 천인종은 신력이 담긴 결 계를 파악해 무력화하는 일을 할 거다.
“나도 하고 싶다!”
“안 돼.”
“나도 저기서 싸우고 싶다!”
“안 된다니까. 계속 그러면 연우 부른다.”
크흠.”
천인종을 사람 구출에 썼다가는 다 구한 사람도 죽을 거다.
“그럼 날아 볼까요!”
필리아는 오랜만에 전력으로 날 아서 신이 난 건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부우우웅!
천인종을 버리고 허공을 가르는 필리아는 호주 상공을 날았다. 그 러다 가장 많은 사람이 밀집한 곳 을 발견하고 하강을 시작했다.
후욱!
팡!
소닉 붐이 몇 번 지나가고 그들 은 큼지막한 학교 위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미 몇 겹이나 설치한 실 드와 결계가 무너지고 오크를 막던 사용자들이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 다.
혜영은 공간 스킬을 이용해 사방 의 오크 진입로를 막았고 연지와 연호는 뛰어내려 일반인이 모인 곳 을 보호했다. 동시에 아이델이 선 술을 펼쳐 부상자를 치료하고 필리 아의 마법이 오크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쿠아아아앙!
순식간이었다.
오크 수백 마리가 몰살되며 전장 은 소강 사태를 맞았고 일반인과 사용자들은 환호를 질렀다!
“와아아아아! 구조대다!”
“살았어! 우리가 살았다고!”
“으아아아‘!”
그들은 혜영과 일행을 격하게 반 겼다. 드래곤이 떡하고 자리를 잡 고 있었지만, 무서운 기색도 하나 없었다. 그 드래곤의 등에서 구조 대가 나오고 수백의 오크를 태워 버린 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혜영과 연지연호는 그들의 환호 에 머쓱했지만, 기분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연우는 오크들이 나온 곳을 찾아 나섰다.
“너무 똑같은데.”
오크들에게서 케루빔의 뿔을 잘 라 식칼을 만들었을 때의 향이 진 하게 풍겼다. 힘의 크기를 비교하 면 오크가 한참 떨어지지만, 질은 같다고 해야 할까.
호주 전체를 감싸던 결계는 아주 ‘달랐다’. 마치 전기로 고무 벽을 뚫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서 연우도 차원 게이트를 응용해 들어오려고 했던 거고.
“오크가 나온 곳으로 가면 더 강 한 신력을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문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풍기는 꾸리한 냄새를 찾으니 동물성 배설물이라는 걸 알 았고, 그걸 추적하다 보니 호주 전 역을 감싸는 다섯 군데의 마력 진 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 국, 그 중앙에 게이트를 생성하는 근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군.”
겉으로 봐선 아무것도 없는 평야 다. 하지만 강력한 마력의 엉킴과 공간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연우는 한동안 그걸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신력이 주변을 보 호하고 있었다. 연우조차도 손발이 떨릴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저 큰 결계보단 훨씬 약 해.’
그리고.
“이걸 쓰면 될까.”
연우는 마신의 뿔로 만든 식칼을 뽑았다.
쑤욱.
“ 역시.”
비슷하게 느꼈는데 정말 같은 성 질인가 보다. 신력이고 뭐고 아주 가볍게 뚫어 버린다.
파직!
전기가 탁 터지며 큼지막한 빈틈 이 생겨났고 연우는 놓치지 않고 마법과 각종 스킬을 이용해 좌표를 잡아냈다.
“잡았다.”
연우는 씨익 웃으며 오크들이 왔 던 차원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만들 어 냈다.
몸을 들이미는 건 어렵지 않았 다. 그 안에서 케루빔이 살던 마계 와 비슷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꿀렁.
연우가 몸을 집어넣자 그라니아 에 갈 때보다 훨씬 길고 깊은 공간 의 늪을 헤집는 감각이 전신을 휘 감았다.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몇 분이 며칠처럼 느껴진 찰나.
연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야. 여기 장난 아닌데?”
조금 어지러웠지만, 참을 만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므깃도보다 훨씬 굵고 에너지 넘치는 나무와 동물들 이 보였고 멀리 여러 몬스터도 간 간이 볼 수 있었다.
1흐으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차가우면서 이질적인 감각이 기 도를 타고 폐 속을 헤집었다. 강렬 한 아찔함과 쾌감이 동시에 척추를 훑었다. 신력이 흡수되는 게 느껴 졌다.
‘케루빔의 마계에서 느꼈던 힘과 는 다른데.’
마기와 천족의 신성력이 더 강했 기에 묻혔던 걸까. 아니면 그곳보 다 이곳이 훨씬 많은 건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력, 염력, 정령력의 힘을 컨트 롤했던 것처럼 이 신력도 움직여 봤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신력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신력입니다.
-경고!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습 니다.
-새로운 차원임을 확인합니다.
-육체를 재구성해 신력을 받아들 일 준비를 합니다.
-중위 차원의 존재로 거듭납니 다.
화악!
하얀빛이 연우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