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편_ 일반인 코스프레
연우는 그라니아 대륙에서 떠올 렸던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밤중에 은밀하게 나왔다.
‘이자젤에게 걸리면 안 되니까.’
혼자 하는 유희 같은 거다. 일반 인 코스프레. 평범하게 살았던 생 활이 그리워 잠깐 돌아가 보는 거 다. 드래곤은 성룡이 되기 직전에 전통처럼 유희를 나간다는 게 문득 떠올랐다.
연우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이 자젤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인기척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 때, 연우는 농장에 없 었다.
연우는 원룸에 들어갔다. 있는 거라곤 라텍스 15cm짜리 침구와 몇 가지 옷이 전부였다.
“이런 걸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 건가?”
별 쓸데없는 말을 한 연우는 라 텍스에 누웠다. 역시 자는 곳은 편 해야 한다. 딱딱한 곳 하나 없이 몸에 딱 들어맞는 라텍스의 질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곳에 오기 전, 미리 공인중개 사에게 팁까지 얹어 주며 준비해 놓은 곳이었다.
“으아 좋다.”
연우는 계획을 다 짜 놨다.
이번 주는 초보 레이드를 가는 거고 레이드를 꾸준히 하면서 안정 적인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건 설을 시작하는 거다.
연우는 부푼 꿈을 안고 눈을 감 았다.
[1 일 차]
연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 리얼로 아침을 먹고 3단계 검사로 등록하고 레이드를 찾아 나섰다. 당연히 쉽게 연락 오는 곳이 없었 고 연우는 종일 원룸에 있다가 잠 이 들었다.
“뭐…… 첫날이니까.”
[2 일 차]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혹시 몰라 검 사 5단계로 올려 버렸다. 아무래도 3단계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레이드 뜁니다! 5단계 검사예 요!”
5단계 필드 앞에 형성된 밀집 구 역에서 연우는 네 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질러야 했다.
“검사 초보인가요?”
“아니요! 몇 번 경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연우에게 다가와 물 었고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지 폰을 내밀면서 사용자 커뮤니티 아이디 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이 새끼, 사기꾼이잖아? 어제만 해도 3단계였어? 게다가 레이드 구 직 글도 하나뿐이잖아?”
연우는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서 욕을 얻어먹은 건 처음이었다. 한 번 엎을까 했지만, 일반인 코스 프레 2일 차에 끝내 버리고 싶진 않았다.
[3 일 차]
오늘은 제대로 하려고 했다.
글도 싹 지워 버리고 7단계 마법 사로 등록했다. 예전에 따 놨던 레 이드 라이선스도 찍어 올렸다. 연 우는 그걸로도 부족해서 6단계 레 이드에 간다고 적었다.
그러자 수십 곳에서 연락이 왔 다.
연우는 신이 나서 조건이 가장 좋은 곳을 골랐다.
“어서 오세요. 7단계 마법사님?”
“네, 반갑습니다.”
6단계 검사 3명, 5단계 마법사 1 명에 6단계 힐러 한 명이었다. 꽤 괜찮은 파티였고 연우는 경험을 쌓 기 좋다고 생각해서 바로 레이드에 참여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티 공대장이 연 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정말 죄송한데, 포션 하나만 빌 릴 수 있을까요?”
“네, 그러죠.”
누가 그랬던가. 한 번 쉽게 빌려 주면 또 빌리고 또 빌리는 거다. 그러다 나중엔 그게 당연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레이드가 끝났을 때, 연 우는 남는 게 하나도 없었고 그 레 이드팀은 연락이 끊겼다. 몇 번이 고 연락처를 찾아 연락해 봤지만, 계속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돈이 없다나.
나중엔 욕까지 하면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아씨, 나 사기당한 거임?”
이런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 다. 이유? 당연히 이런 좁은 곳에 서 그런 짓을 했다간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안조차 발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5대 길드인 로 열 나이츠에 인맥이 있는 사용자라 고 한다.
“…… 길드장도 아니고. 그 자식 인 이찬식도 아니고. 그냥 인맥이 있다는 것만으로?”
차라리 한번 엎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3일 차일 뿐이 다.
연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라텍 스에 올랐다.
[4 일 차]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하기로 했 다.
7단계 마법사이니 7단계 파티에 들어가 제대로 합을 맞추고 싶었다.
이번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 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아직 젊은데 벌써 7단계 마법사 라니, 대단한데?”
“아닙니다.”
“오빠네요! 전 29살이고 이제 6 단계에 올랐어요. 부족하지만 잘 부탁합니다!”
밝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연우까 지 5명이었지만, 모두 실력은 출중 한 소수 정예였다.
그들은 8단계 초입. 7단계라고 하기엔 강하고 8단계라고 하기엔 약한 블랙 트윈 헤드 오우거가 출 몰한다는 던전으로 갔다. 이 던전 은 그들이 찾은 신규 던전이라고 한다.
“신규 던전은 보상을 더 주잖아 요?”
“7단계이니 잘 알겠지만, 신규 던전은 로또라고 불릴 정도지.”
공대장은 연우에게 윙크하며 대 답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하다.
‘좋아. 이번엔 잘 풀리려나 보군.’
던전 초입에선 머리 하나짜리 오 우거가 나왔고 몇몇 함정도 나왔다. 그리고 더 뒤로 가자 머리 두 개인 블랙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나오면서 점점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우가 딱 7단계 정도의 힘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힘을 더 내서 깜짝 놀라게 해 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핑.
그그극!
눈앞에 오우거가 고꾸라지는 순 간, 양옆에 있던 두 검사가 연우 목에 검을 가져다 댔고 뒤에 있던 공대장의 마법이 팔과 다리. 그리 고 입을 얼렸다.
‘뭐, 뭐야 이건?’
연우는 당황했다.
“미안하네. 이 이상은 데려갈 수 가 없겠어.”
“미안해요. 오빠.”
“보내 줄 수도 없어. 여기서 죽 어 줘야겠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
었을까.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일까?
연우는 궁금했다.
쩌적.
마력으로 입에 있던 프리즈만 해 체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죠?”
공대장은 자신의 마법이 깨졌다 는 거에 놀랐지만, 이내 연우의 시 선에 얼굴을 피했다.
“그 정도로 돈이 급해요?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가요?”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거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앞에서 검을 겨눴던 한 명이 연우 의 심장에 검을 밀어 넣었다.
깡.
연우는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몸 근처에 있던 검은 부러지고 마 법은 해제됐다. 그런 수준 낮은 기 술로 연우를 붙잡을 순 없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갑니다.”
연우는 그 자리에서 죽일까 했 다.
하지만 일단은 돌아갔다.
연우는 3일째 사기를 쳤던 사용 자와 오늘 던전에 있었던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적었다. 아는 이름, 닉 네임, 직업, 단계 등등.
그 모든 걸 연우를 담당하는 이 지연이라는 직원에게 보냈다.
“아니, 이게 4일 차 만에 가능한 이야기야?”
얼마나 운이 안 좋으면 이런 사 건을 연달아 겪는 것일까. 하긴, 생 각해보니 평생 운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이 힘을 가지게 된 이후로 도 연우 곁엔 항상 많은 사건과 사 고들이 난무했으니까.
‘전쟁보다 여기가 더 무섭네.’
아무래도 농장 밖은 적자생존. 말 그대로 아마존의 생태계보다 더 무서운 곳인 것 같았다.
연우는 딱 하루만 더 해 보기로 했다.
[5 일 차]
아침에 일어나서 연우가 본 것은 이지연에게 전해 준 목록의 사용자 들을 잡아들였다는 보고였다.
“…… 뭐가 찝찝한데.”
죽이지 않은 건, 연우가 이렇게 인간을 죽여 본 적이 없었기에 직 접 손을 쓰기 싫었다는 게 컸다. 이종족이나 마족들하곤 당연히 느 낌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몬스터랑 다를 것 도 없네.’
몬스터도 동족을 저렇게 죽이진 않을 거다.
오늘은 좀 다를 거라며 평화롭게 레이드 구역에 간 연우는 대길드가 필드 하나를 통째로 막고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우가 알기론 이 필드는 분명 주인이 없는 필드였다.
“혹시 어디 길든지 알아요?”
연우가 지나가는 사용자에게 물 었다.
“5대 길드 중 하난데, 머셔너리 길드라고. 용병들이 모여 만든 길 드예요.”
하긴, 연우는 잊고 있었다.
대학 생활을 했을 때는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3년간 회사 생활을 했을 때는 어땠는가. 지독 할 정도로 괴로웠고 하루하루를 버 티는 수준이었다.
연우는 그나마 일을 잘하는 직원 이었기에 덜 까였지, 조금 어리바 리한 동기는 보기 힘들 정도로 혼 나다가 1년을 못 채우고 나갔었다.
“농장이 좋은 곳이긴 해.”
연우는 전화를 들었다.
이지연에게 전화해 보니 이진철 과 최민아가 한국에 없다는 걸 알 고 벌어진 사달이라고 한다. 마침 다른 간부들도 일이 바빴으니 중재 를 해 줄 곳이 아무도 없었다.
“…… 그렇게 보니까 나도 협회 장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네.”
그렇다고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 붙일 순 없지 않은가. 여긴 아스가 르드도 아니고 마계도 아니다.
“헤맨.”
“네, 주인님.”
“저것들 좀 적당히 혼내 줘. 몇 달 안 보이게.”
“흐음, 무인도로 보낼까요?”
“그래.”
일단, 임시방편이지만, 지금 저 상황은 해결해야 했다. 이유는 크 게 없다. 그저 보기 불편하다는 것 뿐일까.
“1인 사냥이 가능한 필드나 만들 어 볼까.”
이것도 몬스터 농장이나 마찬가 지다. 어려울 것도 없고 직접 관리 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다. 말 안 듣는 놈은 케로베로스나 댕댕이한 테 맡기면 되고 말이다.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호주 골드 코스트의 작은 마을에 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는 렌싱 감사 제1팀 팀장. 지구에 도착했다. 작전을 시작하겠 다.”
하얀 피부에 은발을 지닌 한 남 성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이동한 곳은 인적 없는 해안가에 들어선 원자력발전소였다.
마력석을 이용한 핵분열로 전기 를 생산하는 곳. 예전처럼 지독한 방사능 폐기물을 생성하진 않았지 만, 위험하긴 매한가지인 곳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희미한 진동은 원자력발전소를 기점으로 골드 코스트를 중심으로 호주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런 현 상은 골드 코스트뿐이 아니라 호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 진동은 서로 만나 공명했다.
“흐흐흐흐.”
감사 1팀의 팀장 렌싱은 음흉하 게 웃었다. 지구로 파견을 간 감사 팀이 개처럼 쳐 맞고 도망쳤다는 소식에 뒷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잘됐다 싶었다.
신격을 지닌, 그것도 아리움씩이 나 되는 최상위 차원의 존재에게 손을 댔으니 지구는 마땅한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거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이건 못 막을 거다.”
렌싱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o O O
~1~T 3” ?
원자력발전소. 그 안에 있던 모 든 마력이 폭발하면서 거대한 푸른 빛을 뿌렸다. 그 빛은 호주 전역으 로 퍼졌고 곳곳에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며 하나의 마법진을 완성했 다.
‘내가 관여하면 빠르겠지만.’
텐 클래스 마스터인 렌싱은 직접 관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위 차 원 담당인 팀원들을 보내자니 이미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도 당연한 게 일정 수준 이 상 오르면 하위 차원에 관여할 수 가 없는데, 그 신연우라는 주요 인 물은 이 차원에 맞지 않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오류 같은 인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게 이 방법이다.
중위 차원인 50번대 차원에 한 대륙인 ‘오크르트’를 연결하는 것!
오크르트란 무엇인가.
50억이 넘어가는 오크가 서식하 는 곳이다. 젖과 꿀이 가득한 차원! 사막엔 마력석이 넘치고 나무에선 영약이 열린다. 그런 곳에서 사는 오크가 하는 일이라곤 번식과 전쟁 뿐!
그래 봐야 오크이기에 평균 원 클래스 마스터고 간혹 쓰리 클래스 마스터에서 파이브 클래스 마스터 가 있지만, 아주 극소수다.
하지만 물량엔 장사가 없다고.
‘거기에 20개나 상위 차원이니 까.’
이 오크르트 대륙을 연결하면 웬 만한 중상위 차원도 순식간에 쑥대 밭이 될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 된 다. 그런데 하위 차원인 32번 차원 의 지구라면?
“흐흐흐. 기다려라. 푹 익을 때까 지.”
당연히 50억의 오크가 전부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곳에 문을 열고 오크가 환장하는 벨로키랍토 르의 대변을 사방에 뿌려 두면 한 달이면 2억이 넘는 오크가 모일 거 다.
렌싱은 마지막 작업을 완료했다. 관여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신력을 이용한 결계 정도는 괜찮을 거다. 직접적인 것도 아니고 간접적인 방 법으로 끄집어 온 거니까.
팀원과 함께 차원 이동으로 귀환 했다.
렌싱은 알지 못했다. 그가 이미 50번대 차원의 마계에 접근했었고 그곳의 식칼까지 두 개나 만들었다 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