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편_ 마계 나들이(5)
“룰루.”
연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참 얻을 게 많다. 그 혼 한 돌도 마기가 잔뜩 배어 있었기 에 살짝 달궈 발 마사지를 해도 좋 을 정도였다. 나무들도 하나같이 거뭇거뭇한 게 벼락이나 지옥 불에 탄 숯도 있었는데, 연우는 그런 걸 하나씩 주워 담았다.
이런 탄 나무는 귀신을 쫓는 데 탁월하다. 여기선 악령이나 레이스 형 몬스터랄까. 거기에 불 속성도 강해서 재료로도 좋다.
또 뭐가 있나.
하염없이 걷다 보니 강줄기가 나 온다.
“낚시를 해 볼까.”
물만 보면 낚시가 당긴다. 물도 검은색이라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기가 꿈틀거리는 걸 보니 뭔가 있는 건 분명했다.
연우는 기분 좋게 헤맨을 불러 낚싯대를 받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티가 많이 나나?”
“네, 많이 나십니다.”
“휴, 이러면 안 되는데, 이자젤이 눈치채진 못하겠지?”
“네? 그게 무슨……
“이자젤이 옆에 없으니까 편하더 라고.”
“그, 그렇군요.”
헤맨은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더 니 황급히 아공간으로 들어가 버렸 다.
연우는 다 이해한다. 혹시나 이 말을 누군가 듣는다면 난리가 날 테니까. 하지만 이번엔 이자젤을 확실하게 떨어뜨려 놓고 왔다.
휙! 패르르르르.
낚싯대를 던지자 찌가 날아가 멀 찍이 퐁당, 들어갔다.
연우는 아공간에서 의자를 꺼내 고 간이 천장까지 만들어 앉았다. 해는 없지만, 약간의 빛은 있어서 연우의 자리에 그늘이 졌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 흡!”
팽!
낚싯줄이 팽팽해지며 강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단단한 비늘, 긴 주둥이와 육중 한 꼬리. 원 클래스 마스터급에 이 르는 크로커다일이었다. 크로커다일 은 발버둥 치며 줄을 끊으려고 했 지만, 수룡의 수염이 저 정도에 끊 어질 리가 없었다.
연우는 여유롭게 줄을 당겼다 풀 었다 하며 힘을 뺐다.
사실 그냥 건져 올려도 되지만, 이런 게 손맛이지 않은가.
“으차!”
힘을 주자 허공에 붕 떠오른 크 로커다일은 연우 옆으로 떨어졌다.
파닥파닥.
“아주 팔팔하구만!”
악어 고기는 지방질과 칼로리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면서 영양소 가 풍부해 알레르기와 스태미나에 좋다. 특히, 연한 핑크빛 속살은 소 금과 후추를 뿌려 누린내만 제거해 주면 꽤 맛이 좋다.
“마기에 범벅된 게 더 맛이 좋 지.”
아스가르드에서 마기가 깃든 음 식은 비위가 약해 먹지 못했었다. 그런데 마기를 정화하면서 드러난 속살은 보통 몬스터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마기가 육질을 잡아 주는 느낌이랄까.
퍽!
연우는 낚싯대로 크로커다일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연우는 여유롭게 또 낚싯대를 던 졌다.
휙! 패르르르르.
“역시 낚시는 세월을……
팽!
“아 놔, 또 잡혔어?”
세월을 느끼고 싶은데, 강에 몬 스터가 많은 건지 낚싯대가 좋은 건지 쉴 새도 없이 계속 잡힌다.
연우는 잡힌 몬스터를 건져 내 아공간에 넣어 버리곤 낚싯대도 넣 었다.
“산책이나 마저 해야겠다.”
오랜만에 혼자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다.
요즘 생각이 많았다. 먹는 것, 요 리하는 것, 쇼핑하는 것, 무언가를 만들어 돈을 버는 것까지. 모두 마 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 그 런지.
흥미나 성취감이 예전만 못하다.
“더 재미있는 걸 찾아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던 연우는 문득 그 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 코스프레.
연우는 씨익 웃으며 이동했다.
꽤 먼 거리였지만, 연우의 속도 로는 금방이었다.
“연우! 어디 다녀온 거야!”
이자젤이 연우를 찾았는지 호들 갑을 떨었다.
“왜 이제 손맛 떨어졌냐?”
발록을 얼마나 팼는지 전투의 신 이라 불리는 발록들이 끙끙 앓으며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아니거든! 쟤들이 너무 약해서 그런 거야.”
“네에, 네에, 그러시겠죠.”
연우는 이자젤을 무시하고 마신 과 헤르메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이, 잘 있었지?”
연우가 손을 번쩍 들자 마신이 기겁하며 뿔을 가렸다. 이미 세 개 였던 뿔이 두 개가 돼 있었는데, 그 하나는 연우의 아공간에 있었다.
“자재는 다 모았고?”
“네, 전 마계에서 끌어모으는 중
입니다.”
이곳은 중앙 성과 마신의 신전이 있던 곳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 회의사당과 청와대랄까.
연우가 부쉈기에 자재를 모아 복 구해 주기로 한 거다. 천족을 막아 준 대가로 자재를 좀 받기로 했다.
‘이런 게 바로 창조 경제지.’
다른 말로 사기라고도 한다.
연우는 자재가 모인 곳에 건설 스킬을 발동해 설계도를 띄웠다.
중앙 성과 마신의 신전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아스가르드에서 제 국의 황성과 갖가지 신전을 만들어 본 경험도 있었기에 저장된 설계도 는 많았다.
“이거 어때.”
연우가 보여 준 건 황금빛 신전 이었다. 태양의 신 ‘솔’에게 지어 줬었던 건데, 이것도 반쯤 강매를 했었다.
물론, 연우가 솔에게 강매한 거 다.
“이, 이건 너무 크지 않겠습니 까? 저 혼자 지내는 거고 마왕 회 의실과 직원들이 지낼 곳 정도만 있으면……
“그럼 이것도 작을 것 같은데?”
“네?”
연우가 보여 준 태양의 신전은 축구장 10여 개를 모아 놓은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니 마신도 기겁할 수밖에.
“너무 큽니다! 전 생각보다 소박 하거든요!”
“그래? 그런 스타일인 줄 몰랐 네.”
하긴 그럴 수 있다.
연우는 더 작은 신전과 왕성을 보여 줬고 수십 개를 걸러 낸 후에 나 적절한 걸 찾을 수 있었다.
“그, 그런데 연우 님이 사시는 곳은 그런 건축물이 많은가 봅니 다‘?”
아스가르드에야 넘친다. 지구만 한 고층 건물은 없지만, 규모로만 보면 더 큰 것도 많은 게 아스가르 드다. 어떤 건 히말라야 같은 산 전체가 건물인 것도 있으니까.
그것 역시 오래된 게임이 갖는 밸런스 붕괴의 현장이랄까.
‘나도 고층 건물이나 지어 볼까.’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거다. 거기서 레이드를 해도 되고 건축가 가 돼 봐도 된다. 카페 같은 곳에 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되고 직장인 이 돼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시도할 만한 일이기도 했 다.
“나도 할래! 나도 할 거야!”
어느새 옆으로 이자젤이 와 얼굴 을 디밀고 있었다.
“뭐, 뭐야? 하긴 뭘 해?”
“너 지금 뭘 하려고 계획 세우는
중이지?”
“…… 너 정체가 뭐냐.”
“흐흐. 그럴 줄 알았어. 척 하면 척이지. 뭔가 아주 재미있는 걸 계 획 중인 것 같은데?”
“…… 아닌데?”
“봐. 지금 딱 0.3초 머뭇거렸잖 아. 100%네.”
연우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려 건 설을 시작했다. 이미 예전의 스킬 은 찾은 후라 설계도를 선택하고 자재만 있으면 자동으로 건물이 올 라간다.
“우와와.”
그 모습을 본 마족들과 마신이 감탄했다.
그럴 만했다. 이런 식으로 건설 하는 건 처음 봤을 테니까. 해 봤 자 마법을 사용하고 마물을 이용하 는 정도에 불과할 거다.
“생각보다 순진하네.”
“응? 뭐가?”
“마족들.”
저런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 같 다.
“네가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쟤 들 얼마나 잔인한데. 동정심은커녕 평화로운 걸 증오하는 종족인 걸 몰라?”
맞는 말이다. 연우가 있으니까 저러는 거다. 이자젤이나 헤르메스 만 돼도 죽을 때까지 싸웠을 거다. 닿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으면 목숨을 내던지는 게 마족들 이니까.
“슬슬 가자.”
“응? 벌써?”
“가야지. 여기서 할 것도 없고. 농장도 그립고.”
이자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 메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칙칙한 곳보단 농장이 훨씬 좋다.
문제는 헤르메스의 아이린. 그 휘하야 언더 월드에 있으면 된다. 하지만 연인이 된 둘을 떨어뜨려 놓는 것도 말이 안 됐다.
“고민이네.”
“뭐가 고민이십니까?”
헤르메스가 물었다.
“원래 우리 농장은 커플 출입 금 지거든.”
“네?”
“솔로만 들어올 수 있다고.”
“일단, 생각해 볼 테니까. 돌아가 자.”
“…… 알겠습니다.”
연우는 마신과 마왕들에게 마무 리 인사를 했다.
“잘 지내고. 나랑 내 친구들 보 면 알아서 조심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있어라.”
“…… 그, 그냥 가십니까?”
“왜? 할 말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인간계 를 침입하지 말라거나……
“내가 왜?”
“네? 연우 님은 인간이시니까.”
“에이, 나랑 관련 없으니까 그런 건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힌트를 하나 주자면……
연우는 산맥 중앙에 절망의 도시 를 잘 주시하라고 했다.
뭐, 연우가 어쩌다 도시 자체를 쓸어버린 것도 있고 어차피 전쟁할 거면 연우에게 도움되면서 어느 정 도 조절할 수 있는 산맥 안에 있는 게 나을 테니까.
‘딱 산맥 안에서만 있어라.’
연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어서 농장으로 가고 싶었다. 아, 그보다 오늘은 강남에 새로 생겼다 는 햄버거를 먹어야겠다.
헤르메스는 언더 월드에 가서 남 은 정리를 하고 온다고 했기에 연 우와 이자젤만 강남으로 왔다.
“와, 역시 여기는 사람이 많아?”
“너무 복잡해서 문제지.”
정말 길까지 복잡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연우는 새로 생긴 ‘흔들어 흔들어 버거’ 가게에 줄을 섰다. 생 긴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줄 이 길다.
“으, 기대된다.”
이자젤이 양손을 부들부들 떨면 서 외쳤다.
아까부터 시선이 꽤 모여 있긴 했는데 이자젤의 자연스러운 한국 어에 더 시선이 모였다.
이자젤은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흰 티와 가죽 재킷, 위엔 롱 패딩 을 입었다. 그다지 추위를 느끼는 편은 아니라 패딩 지퍼를 잠그지 않은 상태라 몸매가 거의 드러나 있었다.
또 팔과 다리는 얼마나 길고 얇 은지 손목과 발목을 옷이 모두 감 싸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머리 는 초록색이니 얼마나 눈에 띌까.
문제는 이젠 이자젤만 그런 게 아니라 연우도 그에 못지않은 외모 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수많은 영약과 환골탈태를 거치 며 골격, 근육, 체형, 피부 등등. 모 든 게 최상급이 됐다. 물론, 본판이 있기에 이자젤처럼 환상적인 외모 는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수군거림도 많았다.
‘와, 대박. 연예인인가?’
‘배운가? 난 못 봤는데. 근데 미 모 대박이다.’
‘저 오빠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저런 외모가 나오지?’
‘미쳤다. 피부에서 꿀 흐르는 듯.’
이자젤이야 정말 신경 쓰지 않는 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소리가 나 올 때마다 어색했다. 왜냐하면 이 런 소리는 평생 단 하나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우는 눈 근처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어우, 어색해. 빨리 들어가자.”
다행히 줄이 금방 줄었고 연우는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연우는 담백하고 깔끔한 기본 ‘더블 패티 흔들어’와 스모크 향이 잔뜩 나는 ‘스모크 흔들어’. 그리고 트러플 향이 있다는 ‘머쉬룸 흔들 어’까지 시켰다.
이자젤도 역시 기본 ‘더블 패티 흔들어’와 ‘스테이크 흔들어’. 그리 고 ‘치즈 프라이’와 ‘쉐이크’ 두 개 까지 주문했다.
“…… 쉐이크까지. 총 버거 5개, 프라이 하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연우는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조금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연우와 이자젤에 게 이 정도는 많이 자제한 거다.
버거는 금방 나왔고 연우는 가장 먼저 더블 패티를 들었다.
잘 데워진 빵 사이에 상추, 토마 토, 패티 두 개. 그리고 치즈가 있 었는데 연우는 그대로 입으로 들이 밀었다. 한껏 문 버거에서 패티 육 즙과 소스가 흘러 입안을 적셨다.
“으으음, 맛 좋다.”
살짝 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미국 버거는 그런 맛으로 먹 는 거다. 그래서 옆에 쉐이크가 있 는 거고 말이다.
“괜찮은데?”
이자젤도 벌써 버거 하나를 다 먹고 치즈 프라이를 집어 먹고 있 었다.
연우는 더블 패티를 마저 먹고 머쉬룸을 물었다.
오돌거리는 버섯의 식감, 입안은 물론 코까지 점령해 버리는 트러플 의 향은 고기, 소스, 쉐이크의 향까 지 모두 잡아 버렸다.
너무 강한 게 아니냐고?
원래 트러플은 이래야 맛있다.
연우는 한 입 더 크게 베어 물고 쉐이크를 쪽 빨았다. 짠 패티에 달 달한 쉐이크는 환상적인 조합이다. 물론, 칼로리도 환상적이니 주의해 야 한다.
“맛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역시 줄이 있는 곳은 줄 서는 이 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