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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편_ 그라니아 대륙으로(1) (145/207)

제160편_ 그라니아 대륙으로(1)

“하암.”

어제 늦게까지 달렸다. 소주를 먹다가 잔뜩 취해 위스키로 바꿨다. 그것도 부족해 깔루아, 위스키, 맥 주를 섞은 폭탄주를 말았다.

물론 연우의 몸이 상할 일은 없 다. 하지만 아침이 돼서야 잠들었 으니 피곤할 수밖에.

“역시 아침까지 먹는 건 할 짓이 못돼.”

연우는 오늘만큼은 차나 커피를 피해 해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식당으로 직행했다. 이미 이 자젤과 수이니가 나와 있었다.

“필리아랑 쇼타는?”

항상 일찍 나오던 둘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

그러자 수이니와 이자젤은 웃으 며 대답했다.

“쇼타는 거의 반쯤 죽었어. 엘릭 서 하나 먹여서 재우긴 했는데, 점 심때까지 못 일어날 듯.”

숙취에 엘릭서를 사용하는 이자 젤의 스케일은 알아줘야 한다.

“필리아야 드래곤이니…… 조금 피곤한가 봐.”

연우는 의자를 빼 앉았다.

“다음 레인이 올 때가 언제지?”

“2일 뒤였나?”

“그때 5개 정도 팔면 될 거고. 드래고니아 대륙은 어떤 지 봤어?”

“아니, 내가 어떻게 보냐.”

연우는 그런가, 하면서 헤맨을 불렀다.

“헤맨?”

“네, 주인님.”

허공을 가르며 헤맨이 등장했다. 손엔 작은 거울을 들고 왔는데, 차 원의 거울이었다.

역시 센스가 좋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와,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그래? 나도 좀 보자.”

이자젤과 수이니도 관심을 보였 다.

거울 속 산맥엔 큼지막하게 악의 의 구역이 생겼고 몬스터와 악의 몬스터가 중심. 양옆으로 마족과 천족이 그들과 전쟁하고 있었다.

“이놈들은 왜 다 싸우는 거야?”

이런 쪽을 잘 모르는 수이니가 물었다.

“몬스터는 악의에게 감염되지 않 으려고 싸우는 거고.”

연우가 시작하고 이자젤이 덧붙 였다.

“마족은 악의를 이용하면 강해질 거란 사실을 아는 거고. 천족은 진 짜 의미 없는 적의가 생길걸?”

“마족이 강해지는 걸 견제하는 이유도 있지. 둘이 지금까지 싸우 지 않았던 건, 서로 타지에 온 거 고 이유 없이 싸우면서 전력에 손 해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젠 균형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싸운다는 거지?”

간단한 정리였다.

연우는 뭘 먹을까 하다가, 빨간 봉지를 발견했다.

“라면이나 먹어야겠어.”

오랜만이다. 처음 이곳에 농장을 지으며 모닥불에 라면을 먹었던 게 생각났다.

이번엔 조금 화려해도 되지 않을 까 싶다.

연우는 주방에 들어가 물을 올렸 다. 한쪽 어장에서 꽃새우 몇 개를 꺼내 머리와 꼬리를 남겨 두고 껍 질을 벗겼다. 그리고 마늘 하나, 대 파 조금, 적당히 매운 고추 하나를 썰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치즈냐 달걀이냐다. 둘 다 넣는 건 라면에 대한 모욕이다. 누구는 치즈를 넣으면, 누구는 계란을 넣 으면 라면이 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둘 다?

말도 안 된다.

연우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계 란을 골랐다.

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 스프를 먼저 넣는다.

또 여기서 논란이 많다. 연우는 면이 꼬들꼬들한 게 좋고 스프가 먼저 들어가 뭉치지 않게 물과 섞 이는 게 좋다.

다음으로 면을 넣고 마늘, 대파, 고추를 넣는다. 그리고 메인, 계란 은 최대한 만지지 않아 풀어지지 않게. 새우는 아주 살짝만 익혀야 한다는 거다.

“흐음. 좋아.”

수증기에 섞여 올라오는 해산물 의 향과 매콤한 향은 벌써 해장을 해 주는 듯했다.

연우는 냄비 뚜껑을 닫았다.

여기서 30초 정도 뜸을 들이면 맛이 더 좋아진다.

“아, 밥!”

더 중요한 게 남았다.

따듯한 밥이 식을 수 있게 미리 꺼내 놓는 거다. 내장이나 냉동고 는 사용해선 안 된다. 그럼 겉은 반쯤 얼어 푸석해지고 안은 그대로 따듯하니까.

연우는 자리에 앉아 냄비 뚜껑을 열었다.

“크으. 좋다. 여기서 마요네즈 듬 뿍 든 참치김밥이 있으면 좋은데.”

“그래, 진짜 좋은데.”

“……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보는 거냐? 너희가 끓여 먹어!”

연우는 필사적으로 냄비를 사수 했다. 절대 결계와 절대 실드를 두 겹으로 막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생성했다.

“이야, 너무한다. 라면 한 젓가락 먹으려고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 냐?”

“맞아. 내가 해 주는 요리가 얼 만데!”

“에이, 그래도 이건 다르지! 라면 하나에 한 입? 그건 내 삶의 절반 을 뺏어 가는 거야!”

그렇다. 재산이 1만 원인 사람이 5,000원을 기부하는 것과 수십억 있는 사람이 수천 기부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이 시간만큼은 이 라면이 연우의 전 재산이다.

“오지 마라.”

연우는 한껏 째려보곤 라면을 집 었다. 역시 처음엔 면만. 후에 국물 만 맛을 본다.

후루룩.

꼬들꼬들한 면이 입으로 빨려 들 어간다. 면에서 꽃새우의 향과 계 란의 담백함과 소스의 매콤함이 풍 긴다. 입속에 탱글탱글하게 춤을 추는 면은 몇 번 씹히지도 못하고 식도로 넘어간다.

꽤 인내심이 있다고 자신하는 연 우도 음식 앞에서만큼은 한낱 ADHD. 즉,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 다.

다음은 역시 뜨끈한 국물과 면 을

그다음은 마늘과 대파를 겸비한 국물.

피날레는 살짝 익은 꽃새우를 앙, 무는 거다.

“와, 진짜 바로 앞에서 너무 맛 있게 먹는 거 아니야?”

“우리도 끓여야겠다.”

둘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연 우는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은 음 식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제 밥인가.”

역시 밥은 식은 밥이다. 밥도 꼬 들하게 익힌 밥이어야 한다. 밥을 국물에 섞자 남은 면과 소스의 잔 여물이 군데군데 보인다.

“크으, 이 몸에 해로운 화학조미 료!”

이게 가장 맛있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의 수란이 됐던 계란 을 밥에 올려 터뜨린다.

역시 연우는 이번에도 참지 못하 고 허겁지겁 수저로 밥을 퍼먹었다.

그때 였다.

주방으로 들어간 수이니는 큼지 막한 냄비에 조개, 게, 새우, 도미 머리, 쑥갓과 미나리를 듬뿍 넣은 해물탕을 만들어 왔다.

“…… 너무한 거 아니냐?”

“홍! 네가 먼저 시작했거든!”

연우는 눈을 꼭 감았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

원래 무력이란 이럴 때 사용하라 고 있는 거다. 수이니와 이자젤은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보지만, 연우 앞에서야 태양 아래 반딧불일 뿐이다.

“악! 너무해! 반칙이잖아!”

“이건 아니야!”

연우는 여유롭게 라면 국물을 원 샷 하고 그 위에 해물탕을 부었다.

양이 많았기에 큼지막하게.

“자, 난 인정이 많은 사람이니 까.”

연우는 선심 쓰듯 남은 해물탕을 넘겼다.

“이 악질! 악덕 농장주!”

“갑질쟁이! 물러가라!”

오늘도 농장의 평화로운 아침이 었다.

연우는 밥을 배부르게 먹고 커피 까지 한 잔 마셨다. 그러자 어젯밤 마셨던 술을 싹 잊게 됐다. 역시 사용자가 된 후에 가장 좋은 점은 이거 였다.

“룰루.”

연우는 오랜만에 외출을 준비했 다.

이자젤과 그라니아 대륙을 가기 로 했는데 헤르메스가 지구에서 아 직 할 일이 남았다고 조금만 미뤄 달라고 했다.

연우는 그 틈에 서울로 돌아온 부모님도 보고 친구도 보기로 했다.

“역시 시게는 롤렉스.”

이 아름다운 자태. 아무리 에잇 클래스 마스터에 이른 연우라고 하 지만 이런 예술품을 만드는 건 불 가능했다.

“…… 요섭한테 시계 제작이나 배워 보라고 할까.”

스위스로 보내 몇 개월 수련하면 금방 하지 않을까? 아무리 어려워 도 포 클래스 마스터가 아닌가. 그 작은 부품도 크게 만든 후에 축소 할 수 있다는 큰 이점도 있다.

연우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옷을 챙겨 입었다. 역시 겨울엔 슬 랙스, 목티, 내피에 코트다. 목도리 를 해 주고 신발은 심플하면서 캐 주얼한 페니 로퍼를 신었다.

“차는…… 눈도 안 오니 롤스로 이스를.”

처음엔 롤스로이스를 타는 이유 가 과시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타 다 보니 중독이 된다.

안정적인 승차감, 빨려 들어갈 듯 편안한 쿠션, 미칠 듯한 주행감. 살짝 과장해서 주행 중에 티타임을 즐겨도 될 정도였다.

“연우! 같이 가자!”

이자젤이 뛰어왔다.

“안 돼!”

“왜에!”

“부모님 보러 가는 거야.”

“그럼 더 좋네!”

“그게 왜 좋아?”

“나도 너희 부모님 보고 싶은 데?”

“싫어. 안 돼.”

“힝, 그럼 그땐 쇼핑하고 있을 게.”

이자젤의 이런 떼는 싫지 않다. 너무 친하기에 그럴 수도 있고 저 아름다운 얼굴 때문일 수도 있다.

“에효. 알아서 해라. 저녁엔 내 친구들 보는데?”

“그건 같이 갈래!”

이자젤이 많이 심심하긴 했나 보 다. 게다가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 은 이자젤이 여자 친구로 알고 있 으니 같이 봐도 상관없을 것 같았 다.

오히려 연우보다 이자젤을 반기 지 않을까?

연우는 이자젤을 태우고 롤스로 이스를 운전했다. 역시 이 승차감 을 따라올 게 없다.

차창 너머로 산과 작은 철책들이 지나간다. 가끔 레이드를 하는 파 티도 보이고 몬스터에게 쫓기는 사 용자도 보인다.

“와, 평화롭다 역시.”

이자젤이 중얼거렸다.

“…… 저게 평화롭냐?”

“응? 당연하지. 전쟁도 없고 죽 는 사람도 몇 안 되고. 저 사용자 도 곧 죽겠네.”

“…… 그런 말을 태평하게도 한 다.”

하지만 이자젤이니 이해가 가긴 했다.

100만 명 규모의 전쟁이 끝나고 죽은 이들이 20만 명밖에 되지 않 는다고 평화로웠다고 하는 엘프가 바로 이자젤이다.

이자젤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멀리 사용자를 쫓던 몬스 터가 화려하게 터졌다. 쫓기던 사 용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지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됐지?”

그래 잘했다.”

연우와 이자젤은 곧 서울에 도착 했다.

이자젤은 S 백화점에 내려 주고 연우는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온 거다.

그런데, 집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보니 또 해외여행을 갔단다.

-그렇게 됐어. 집은 뭐하러 온 거야?

“아니, 엄마랑 아빠 보러 온 거

-아, 그래? 전에 봤는데 또 뭐하 러. 이야, 여기 좋다! 여보! 이것 좀 봐. 몬스터가 엄청 많아!

“아빠? 어디예요. 왜 몬스터가 많아요?”

-저것 봐! 공룡 같은 것도 있어! 아들. 잠깐 끊어야겠다. 여보! 여 보!

뚜. 뚜. 뚜.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 도대체 어딜 간 거지.”

하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알람 마법도 있고 작두도 있으니까.

이래서 연우가 집에 잘 오지 않 는 거다. 아들에게 말도 없이 해외 에 나가는 건 다반사고 이럴 땐 서 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두 분이 즐겁게 사는 거니 뭐라 할 수도 없 었다.

“그냥 이자젤하고 놀다가 친구나 봐야겠네.”

연우는 다시 운전해 S 백화점으 로 향했다.

또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직원 이 미리 나와 연우를 마중했다.

“반갑습니다. 이사님.”

“네. 반갑네요. 이자젤은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죠? 이사라 됴.”

“아, 이번에 이자젤 님이 S 그룹 계열사를 사들이면서 연우 님이 이 사가 됐고 이자젤 님이 사장님이 되셨습니다. 물론, 백화점하고 호텔 계열뿐이지만요.”

“…… 그런 걸 돈으로도 살 수 있는 모양이군요.”

“돈이 적당히 많으면 불가능하지 만, 아주 많으면 가능하더군요. 저 도 처음 알았습니다.”

원래 대기업의 계열사나 지분은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배 지분이나 그런 게 아니었 나. 아니면 계열사라서 가능했던 건가?’

연우가 신경 쓸 건 없었다.

금방 이자젤을 만났는데 뒤로 직 원들을 줄줄 달고 쇼핑하고 있었다. 이제 그게 익숙한지 손짓 하나로, 말 한마디로 사고 싶은 걸 다 담았 다.

“이제 쇼핑도 질리지 않냐?”

이런 것도 하루 이틀이다.

“사실 그렇긴 해. 기업이나 건물 도 마찬가지고.”

“그게 더 빨리 질릴걸.”

역시 이자젤은 전쟁을 원하고 있 다.

이자젤의 눈동자에 활기가 비치 는 건 그 어떤 순간보다도 싸울 때 였다. 특히 위험하고 규모가 큰 전 쟁에선 이자젤의 눈에선 후광이 비 칠 정도였다.

“슬슬 그라니아를 가 볼까?”

“아직 헤르메스 일이 안 끝난 거 아니야?”

“우리가 먼저 가 있으면 되지. 헤르메스는 나중에 데려오자.”

“그럴까?”

그럴 줄 알았다.

지금 이자젤의 눈동자는 반짝이 고 있었다.

“일단 우리도 확실하게 갈 수 있 는 건 아니니까. 김상철 박사? 그 사람 만나서 마법진 좀 보고 부탁 좀 하지.”

“그러자! 좋아!”

“아, 오늘은 일단 친구부터 보 고.”

약속이 있다는 걸 잊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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