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편_ 농장은 언제나 평화롭
다(1)
혜영과 연지연호는 던전으로 진 입했다. 안에서 방송이 터지는 던 전도 있었고 끊기는 곳도 있는데 다행히 이곳은 방송이 그대로 전송 됐다.
“다행이네. 다들 두고 봅시다. 혜 영 언니가 실력 증명하는 대로 닉 네임을 블랙리스트에 걸 거예요!”
연지의 말에 채팅 창에 용서를 비는 글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연 지는 소용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였 다.
“쯧쯧 불쌍한 구독자들. 연지한 테 걸리다니.”
“…… 저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아? 나 때문이라면……
혜영이 괜히 미안해서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안 돼요. 계속 오냐오냐 해 주 면 끝도 없거든요. 잘됐어요. 이럴 때 정리해야죠.”
누가 봐도 악마라고 부를 정도로 독한 표정이었다.
혜영은 신경을 끄고 주변을 탐색 했다.
던전 제작에 참여했던 혜영에게 이런 보급형 던전이 쉬워 보이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켠 킴에 원 클래스 마스터라는 미친 던전에서 살아 돌아온 경험도 있다.
“어? 오빠한테 사진 왔는데?”
연지가 연호와 혜영에게 연우가 보낸 사진을 보여 줬다.
“우와, 크리스마스 파티야? 힝. 우린 이렇게 던전에서 씻지도 못하 고 구르는데!”
“…… 그러게, 나도 가고 싶다.”
연지연호는 그 모습을 부러워했 고 혜영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혜영이 직접 선택한 일이다. 조금 들었던 서운한 마음을 강한 의지로 바꾸는 건 금방이었다.
“자, 가 볼까‘?”
혜영이 앞장섰다.
1층의 첫 번째 관문은 함정이었 다. 길게 깔린 물과 돌들. 마력이 풀풀 올라오는 걸 보니 함정이 분 명했는데 뭔지 정확히 알 순 없었 다.
“어쩌지? 다 얼릴까? 프리즌 약 물을 쓰면 될 것 같긴 한데.”
“아예 마력을 흠수하거나 태우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연지와 연호는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지 능숙하게 회의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시청자들은 멍하게 서 있는 혜영을 보고 다시 수군거 렸다.
혜영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그냥 가면 돼.”
“ 네?”
“그냥 돌 밟고 가면 된다고.”
“누, 누나. 그러면 안 돼요. 진짜 큰일 난다니까요.”
“언니!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 요?”
연호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봤고 연지는 혜영에게 물었다.
“응. 이런 거 나도 만들어 봤어.”
“이런 걸요? 어떻게요? 왜요?”
“그런 게 있어. 하여튼, 날 잘 따 라오기만 해.”
혜영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마력 을 날리는 물결 사이에 솟은 바위 로 뛰었다.
폴짝. 폴짝.
그 모습에 채팅 창은 난리가 났 고 연지와 연호는 놀라서 눈을 감 았다.
“자, 다 왔다. 따라서 오면 돼.”
혜영은 이미 반대편으로 건넌 후 였다.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소름. 방금 리얼임?”
“대박, 누나! 어떻게 한 거예요?”
그러면서도 둘은 혜영이 간 길로 따라왔다. 당연히 밑의 물은 밟으 면 안 되는 걸 모를 바보가 아니 다.
“이거? 어렵지 않아. 1층의 첫 번째 관문이잖아. 그런 거에 길도 안 만들어 놓을 정도로 못된 애는 아니거든.”
혜영은 요섭을 생각하며 말했다. 요섭의 성향도 있고 혜영도 비슷한 걸로 연습을 해 봤기에 아는 거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아니야.”
연지는 이때다 싶어 채팅 창에 대고 소리쳤다.
“다 봤죠? 이 정도라니까요. 뭐? 아직 부족하다고? 하하. 그래요. 근 데 나도 성이 안 차네요.”
연지는 핸드폰을 이용해 화면 한 쪽 구석에 지금까지 외웠던 닉네임 들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에 부족하다고 했던 시청자까지 전 부
그러니 채팅 창은 또 한 번 난리 가 났다.
“지금 용서를 빈 사람은 용서해 줄 수 있어요. 딱 30초 드립니다.”
혜영과 연호는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지가 무서운 아이였구나.”
“쟤요? 쟤 완전 사이코예요. 완 전 또라이.”
“야! 다 들리거든!”
셋은 다음 관문으로 이동했다.
연지와 연호는 혜영에게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관문은 몬스터. 5단계에 서 6단계 정도 되는 몬스터들이었 다. 연지연호만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혜영이 나 섰다.
“자, 봐.”
혜영 아직 공간 도살자를 제대로 써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마법 만으로도 충분했고 공간 스킬만으 로 버틸 수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마법으로 끝낼까 하다가 괜히 자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게 좋지 않았기에 제대로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안 써 봤는데 괜찮겠지?’
혜영은 아공간에서 검을 꺼냈다.
공간 도살자, 공간 스킬에 특화 된 무기. 전설적인 메긴이라는 공 간 관련 종족이 사용했다던 무기.
“우와, 멋있다.”
“그거 칼이에요? 반투명한데?”
혜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달려 오는 몬스터들을 봤다. 좀비 계열 인 구울이었는데 악의로 물들어 검 은 기운을 풀풀 내뿜고 있었다.
보통 5, 6단계지만, 난이도는 훨 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지이이잉.
검에 공간의 힘을 밀어 넣었다.
푸확!
혜영의 주변에 얇은 공간의 막이 생겼다. 동시에 혜영이 가진 공간 의 힘이 크게 증폭됐다.
공간 도살자를 옆으로 한 번 휘 둘렀다.
스윽.
그뿐이었다.
혜영은 공간 도살자를 더 이상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공간에 집어넣었을 때.
좌측 벽부터 우측 벽까지 얇은 실금이 그어졌다.
피잉.
화악! 콰과과과!
동시에 그 금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범위 안의 모든 공간을 쓸 어 버렸다.
쿠우우웅.
그 충격으로 던전이 흔들렸다.
혜영, 연지, 연호. 셋은 모두 똑 같은 표정이었다. 혼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넋을 완전히 잃은 얼굴 이었다.
“어, 언니?”
“…… 누나 짱인데?”
“그, 그러네. 이 정도일 줄이야.”
셋도 그러할진대 시청자들은 어 떻겠나.
-미친, 방금 저거 검 한 번 휘두 른 거 맞지?
-저 무기 뭐지? 멋짐이 폭발한 다.
-마법사 아니었어? 무슨 검으로 저런 힘을!
-나 던전 흔들리는 거 처음 봐, 저 던전 대부분 아다만티움 통짜라 며?
-미쳤다. 연지 누님, 죄송합니다. 환승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혜영 누님 팬입니다!
“하, 하하. 다들 봤죠? 우리 혜영 언니가 이렇습니다! 뭐 갈아탄다고. 너 이 새끼 나와.”
“하하, 다음으로 이동하죠. 역시 저도 믿었습니다. 혜영 누님.”
혜영은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했 다.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다. 마 법도 상당히 강해졌다. 상급 마력 석도 하나 가지고 있었고 요섭이나 이자젤이 준 장신구와 장비는 월등 했기에.
그렇다고 이렇게나 강한 공간의 힘이라니.
혜영은 공간 도살자라는 무기가 새삼 대단했다. 더불어 레인이라는 차원 상인의 힘도 실감할 수 있었 다.
“다시 가 볼까?”
혜영은 어쩌다 보니 연지와 연호 의 멱살을 잡고 던전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연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 를 마시기 위해 후름의 카페로 이 동했다.
“자, 내가 새로 만든 차야.”
후름이 내온 차를 받아들고 멈칫 했다. 후름이 하는 건 믿기 힘들다. 특히, 이번 그림 그리는 건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차는…… 괜찮을 거라 생 각했던 것은 명백히 연우의 실수였 다.
“푸핫! 뭘 넣은 거야?”
꾸리하다면 적당할까. 묘하게 씁 쓸하면서 달짝지근한 것까지는 좋 다. 그런데 냄새가 한 달 넘게 씻 지 않은 발톱을 잘라 넣어 우린 물 같았다.
“응? 그거 청국장을 내려 봤는 데! 몸에도 좋고 냄새고 중독성 있 잖아.”
“으악, 그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오, 후각이 좋은데? 홍어 코도 들어갔어. 역시 겨울엔 삭힌 홍어 지.”
“이런 미친. 차에 그런 걸 넣는 사람이 어디 있냐?”
“당연히 사람은 없지. 엘프는 여 기 있네?”
이건 놀리는 게 분명했다.
연우는 차를 내려놓고 다시 주문 했다.
“그냥 커피 좀 줘. 입 좀 헹궈야 겠어. 제발 다른 거 섞지 말고.”
“하하. 알았어.”
그제야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연우는 겨울에도 아이 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식어 버린 따듯한 아메리카노는 너무 맛 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요즘 연우의 아침 일과다.
일찍 일어나서 후름에게 커피를 한 잔 얻어먹고 무엇을 먹을까 고 민하는 것. 반은 필리아와 쇼타가 차려 준 것을 먹지만, 반은 직접 골라 요리한다.
그 이후에 하는 일?
점심을 결정한다.
그다음은? 오후에 맥주랑 먹을 간식을 정하고.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오늘 저 녁 메뉴와 술의 종류. 그리고 저녁 이후에 안주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 한다.
또 하나의 일은 던전을 만드는 거였는데, 공급을 줄이고 있었다. 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이름을 알 리고 공급을 조절하는 게 중요할 때였다.
연우는 여유로워서 좋았다.
더 만들어 팔고 용족과 몬스터를 구매하며 잠재 능력치를 올릴 비약 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 필요한 일 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연우 는 이런 여유가 더 좋았다.
“귀찮은데 그냥 나중에 하지 뭐.”
어차피 호르드란의 예지도 있고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
“흠, 오늘 아침은 데리야끼 치킨 덮밥을 해야겠어.”
이건 예전에 치킨집에서 잠깐 아 르바이트를 할 때 배웠던 거다. 문 득 생각이 났는데, 잠깐 떠올린 것 만으로도 입맛이 돌았다.
연우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연우 님.”
필리아와 쇼타는 재료를 손질하 고 있었다. 해산물과 각종 야채. 그 리고 육수를 끓이고 있는 걸 보니 해산물이 들어간 탕을 만드는 것 같다.
“잠깐 쓸게, 만들고 싶은 게 있 어서.”
연우의 말에 필리아와 쇼타가 훙 미롭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둘 다 양식과 일식의 정통 요리 전문이다. 반면, 연우는 정체가 불분명한 요 리뿐이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진짜 맛있다는 거다.
연우는 팬에 기름을 올렸다.
불을 아주 약하게 튼 다음, 닭의 허벅지 살을 떼어 썰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작지만 씹 기 좋은 크기로. 이왕이면 껍질이 붙어 있는 게 좋다.
한 주먹 정도 썬 연우는 양념을 준비했다.
배합이 중요하다. 간장, 굴 소스, 청주를 섞고 설탕, 물엿, 케첩을 살 짝 넣어 준다. 마늘과 생각을 다져 넣어 섞고 고춧가루도 넣는다.
그렇게 만든 걸 냄비에 넣고 끓 이다 배와 다시마를 넣는다.
한참을 끓여야 한다. 하지만 연 우는 급했기에 적당히 마법을 가미 했다.
“이걸 버무리고……
썬 닭고기를 소스에 버무렸다.
이것도 하루 정도 숙성하면 좋 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해 먹기로 했다.
슬슬 기름이 타기 직전인 팬 위 의 기름에 닭고기를 넣었다.
치이이익.
타지 않게 계속 볶아 줘야 한다.
연우는 데리야끼 소스를 조금 더 넣었다. 조금 짜지긴 할 테지만, 연 우는 자극적인 게 좋다.
치이이익. 휘릭. 휘릭.
손목으로 팬을 잘 움직여 준다. 타지 않고 고루 잘 익도록. 슬슬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고 닭고기가 다 익었다고 생각되면 불을 끄고 그대로 잠깐 둔다.
연우는 적당한 대접에 밥을 한 주걱 얹고 얇게 채 썬 양배추를 올 린다. 그 위로 익힌 데리야끼 치킨 을 올리고 마요네즈를 골고루 뿌려 주면 완성이다.
“흐음, 냄새. 역시 좋아.”
“와! 냄새 좋아요!”
“이건 데리야끼? 덮밥인가요?”
연우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숟가 락으로 데리야끼 치킨, 마요네즈, 양배추, 밥이 고루 섞이도록 펐다.
꿀꺽.
필리아와 쇼타의 침이 넘어갔다.
연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넣었다.
한 번 씹었을 때, 고기와 양배추. 그사이에 마요네즈와 데리야끼 소 스의 조합. 짜고 달고 고소하다. 동 시에 횐밥이 주는 담백함.
이 조화는 연우의 수저를 한순간 도 쉬지 못하게 했다.
“아, 이건 맥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