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편_ 메리 크리스마스
생각해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 같다.
연우는 반짝이는 농장을 감상하 며 천천히 움직였다.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로 조용한 농장 안. 식당에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연우 기억으로는 악기를 다루거 나 노래를 할 줄 아는 이는 없다.
“누구지?”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큼지막한 스피커가 설치돼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안에서 필리아와 쇼타가 음식을 내왔고 이자젤, 후름, 수이니, 아이 델, 천인종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 었다. 삼미호는 댕댕이과 검둥이 사이에서 뛰어놀고 있었는데, 털이 푹 젖은 걸 보니 눈에서 놀다 온 모양이었다.
“요섭이나 바벨은?”
“뭐 만드는 중인가 본데?”
연우의 물음에 이자젤이 대답했 다.
그때 문이 열렸다. 요섭과 바벨 이었는데 뭔가 큼지막한 걸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와, 이쁜데?”
트리였다. 마령석 나무를 개조한 것 같은데 이젠 연우에게 쓸모도 없는 거라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 한 건 트리에 달린 조명들이 마령 석이나 상급 정령석이라는 것 정 도? 게다가 별, 리본, 종과 같은 장 식도 아다만티움이나 미스릴로 만 들어져 있었다.
저걸 팔면 얼마나 받을까?
다들 트리를 보며 좋아하자 요섭 과 바벨이 뿌듯해 했다.
“오늘 메인 메뉴는 농어구이!”
큰 농어다. 몬스터인 것 같은데 이번에도 아이델이 구해 온 건지 먹기 좋은 놈이었다.
팬에 올리브유와 버터를 올리고 칼집을 낸 농어를 올려 만든 요리 였다. 사이에 잔뜩 들어간 로즈 마 리와 마늘은 입맛을 돋웠다.
“저는 모둠 꼬치구이입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꼬치들이 다. 연우가 가장 좋아하는 바삭하 고 쫄깃한 닭 껍질 꼬치, 베이컨으 로 싼 팽이, 부추, 아스파라거스 등 이 있었고 염통, 똥집, 삼겹살, 소 고기 등도 있었다.
“크으, 오늘은 무조건 소주네!”
리젤이 위스키를 마다하고 소주 를 들었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리젤! 아니, 내가 가져올 게.”
연우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향 했다. 식탁 옆에 작은 얼음산을 만 들어 꽂아 놓는다.
“자, 잠깐.”
이자젤이 시계를 보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조명을 끄고 손가락을 튕긴다.
번쩍.
식당 안엔 트리 조명이 없었다.
이자젤의 손가락에 요섭이 가져 온 트리가 반짝였고 식당 전체를 감싸는 작은 반딧불들이 생겼다. 붉은 장미 잎이 허공을 떠다니며 빛을 반사하기도 했다.
“앗, 잠시만요!”
헤맨이 허겁지겁 나왔다. 손엔 사진기가 들려 있었다.
“다들 이곳 보세요!”
헤맨이 손을 들었다.
식구들은 은은한 조명 아래,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사진 안에 담았 다.
00:00.
헤맨이 시간을 보곤 렌즈를 통해 식구들을 바라봤다.
“메리 크리스마스.”
찰칵.
사진 속에 식구 전체가 담겼다.
“와아아!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다들 신나게 외쳤다. 삼미호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다들 신나 하 니까 따라서 신이 났다. 연우도 기 분 좋게 웃었다.
“이제 먹자!”
“헤맨, 너도 어서 오고!”
“네, 갑니다!”
모두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모 를 스피커에선 캐롤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연우는 농어구이의 껍질을 가르 고 하얀 속살을 집었다. 부드럽고 촉촉하다. 그냥 구운 게 아닌 올리 브유를 얹어 익힌 덕분이다.
그리고 쇼타가 만든 꼬치. 연우 는 그중에 삼겹살 꼬치를 집었다. 이게 잘못 구우면 퍽퍽하고 맛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쇼타가 누구 인가.
안 익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드 럽게 익혔다. 이렇게까지 맛있는 삼겹살을 먹어 본 적이 있을까?
따다닥.
“ 소주?”
“땡큐.”
리젤이 아닌 이자젤이 연우의 잔 을 채운다.
크리스마스다.
빨강, 초록, 조명, 맛있는 음식, 술. 그리고 음악까지. 이런 크리스 마스를 보내 본 적이 있을까? 연우 의 기억으론 없었다.
학생 때는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TV를 보는 게 다였고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소주 한 잔을 마시고 PC방을 갔던 게 전부 였다.
한 번이었던가.
애인과 보냈을 때도 특별했던 적 은 없었다.
“역시 농장이 좋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아, 연우.”
“그거 구슬인가? 네가 분석해 보 라고 했던 거.”
“응. 해 봤어?”
“해 봤는데, 스킬 증폭하고 마력 폭발 관련 마법진이 발견됐어. 8단 계급 마력석이고 한순간이지만 10 배에 달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10배나?”
그건 말이 안 된다. 연우, 헤맨,
이자젤이 힘을 합하면 될 수도 있 다. 게다가 8단계 정도에서 10배라 면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방법에 따라 다르 다.
1에서 9를 더하는 건 어렵지 않 다.
하지만 1을 10으로 늘리는 건 어렵다.
방법의 차이지만, 이자젤이 말하 는 건 후자일 거다.
“그래, 맞아. 10배나 증폭하지. 대신 증폭을 사용한 대상은 며칠 버티다 죽을 거야.”
“부작용이 엄청나구나?”
“응. 문제는 이걸 왜 만들었냐는 거지.”
“그러게, 바보도 아니고.”
이자젤이나 연우에겐 어처구니없 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 만 두 배도 증폭하기 어려운 지구 에서 이런 걸 만든다면?
“꽤 쓸 만하긴 하겠네.”
“이게? 이런 쓰레기가?”
아직 이자젤은 지구라는 곳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돈 있는 사람이 아랫사 람에게 쓰겠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랄까?”
“으흠. 스크롤 몬스터랑 비슷한 건가?”
스크롤 몬스터. 연우처럼 길들여 서 몬스터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을 이용해 사 로잡은 몬스터를 사용하는 거다.
한때 인기가 많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한 번 잡은 몬스터는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진다. 최고급 스크롤은 반영구 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있지만, 그것도 죽으면 끝이다.
일회용이라는 요소 때문인지 부 작용이 심한 마법을 도배해 놓고 사용하기도 한다.
“…… 뭐, 비슷하긴 하네.”
생각해 보니 상상 이상으로 더러 운 짓이다.
“누가 한 거지?”
“그러게, 같은 사람한테 그런 걸 쓰다니. 오크도 동족에게 그런 짓 을 안 하겠는데.”
“흠. 협회장이 오면 물어봐야 하 나.”
연우는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다음에 이런 게 생기면 다시 찾아 보면 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아니, 12 시가 지났으니 크리스마스였다.
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헤맨에 게 사진을 받았다. 부모님과 두 동 생에게 보내 주기 위해서였다. 별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냥 지금 이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내가 요리 하나 해야겠어.”
농어구이도 좋고 모둠 꼬치도 좋 다.
하지만 이럴 때 살몬테르와 참치 가 빠질 순 없었다. 거기에 오븐을 이용한 머리 구이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연우는 주방으로 향했다.
연지와 연호는 악의의 대륙에 있 었다.
[포션 제작 툴 세트]를 개조해 자동 제작이 가능하게 만든 연우의 도움으로 둘은 자유를 찾았다. 그 런 후에 던전을 찾았을 때였다.
“어머, 연지랑 연호네?”
“어! 누나!”
“혜영 언니?”
친하진 않지만, 가끔 봐서 알고 는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당연히 사냥하러 왔지.”
“오오! 대박. 언니 여기 인사 한 번 해 주세요.”
연지연호는 드론 카메라로 방송 하는 중이었다. 연지가 카메라에 손짓하자 혜영은 환하게 웃으며 인
사했다.
“언니, 완전 방송 타고났는데요? 안 어색해요?”
“나? 괜찮은데? 저 예쁘다고요? 감사합니다. 셀린아때려줘 님 감사 합니다.”
“자, 잠깐. 셀때 님. 제 팬이잖아 요? 왜 아무한테나 잘해 주는 거 죠?”
혜영은 그런 연지의 모습에 웃음 이 났다.
“누나, 저희랑 같이 사냥할래요? 누나 몇 단계예요?”
“나…… 원 클래스 마스터?”
“헐. 진짜요? 그 정도였어요? 대 박! 여러분 누님이 원 클래스 마스 터랍니다!”
“진짜요? 대박! 언니 언제 그렇 게 올렸어요? 농장에 있으면 다들 그렇게 되는 건가?”
방송에서의 반응도 둘과 다를 게 없었다.
-진짜? 레알? 트루? 맞는 말이 야? 어떻게 저 나이에 원 클래스 마스터가 돼?
-안 될 거 있나. 최민아 님도 원 클래스 마스터급이잖아.
-구라일 듯. 저게 말처럼 쉽냐? 그 정도면 월드 리거 실력이라는 건데, 그런 곳에도 안 나가고.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 하게도 그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하 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 지연호의 팬들은 조금 달랐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죠? 확인도 안 하고 떠들었다가 고소미 먹을 듯.
-이게 모욕인가? 무슨 고소미?
-아니, 일단 저 악의의 대륙에 있으면 최소 마스터급. 7단계 이상 이라는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7단계랑 원 클 래스 마스터는 다르지.
-저기요 님들. 마스터급이 7단계 고 원 클래스 마스터가 뭐가 다른 거임?
-그런 게 있음. 이 방 초보면 동 영상 싹 돌고 오세요.
“저기 여러분. 지금 제 말 못 믿 는 거 맞죠?”
그 말은 혜영이 아닌 연지의 말 이었다.
“지금 팬분들이 제가 믿는 오빠 의 친구분. 그러니까 혜영 언니의 말을 못 믿는 게 맞는 거죠? 지금 닉네임 다 보고 있습니다. 저 기억 력 좋은 거 아시죠?”
연지의 으름장에 채팅 창이 조용 해졌다. 누군가는 자기가 쓴 채팅 을 올리려고 다른 말로 도배를 시 작했다.
“하여튼 다 기억했어요. 혜영 언 니가 다 증명해 줄 겁니다. 그렇죠. 언니?”
“그, 그러. 그래야지.”
혜영은 굳이 그래야 하나 생각했 지만, 이 방송에서 연지가 쌓은 신 뢰도가 걸린 문제니 증명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 차피 숨길 이유도 없고 말이다.
“그럼 같이 가시는 거죠?”
“그, 그래. 나야 좋지. 혼자서는 힘들더라고.”
혜영은 일본에 와서 검은 땅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다. 검은 땅을 통 해 악의의 대륙으로 오는 건 더 힘 들었으며, 악의의 대륙에 들어와서 이 던전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았
그런데 이번엔 던전을 직접 클리 어하는 거다.
권장 수준은 최소 7단계, 최소 인원은 2명이다.
“어차피 여기 최소 인원이 2명이 었기도 하네요. 언니, 포션이랑 비 상 소모품은 준비 다 됐죠?”
“응? 그런 것도 있어야 하나? 포 션은 조금 있긴 한데……
그것도 체력 포션은 하나도 없었 고 마력 포션과 상급 마력석 하나 가 다였다. 그리고 비상용으로 엘 릭서 몇 개. 이건 후름이 급하게
챙겨 준 것이었다.
“그런 것도 없이 여기까지 왔어 요? 여기서 비상 탈출 킷하고 방어 및 치료 스크롤은 기본인데. 특히, 악의 저항력 관련 스크롤은 기본이 에요. 그거 없으면 큰일 나거든요.”
혜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이들에겐 기본이지만, 혜영 은 공간 스킬을 이용해 악의를 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법 스킬로 마스터급에 이르렀다. 따로 힐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뿐인가. 이자젤에게 배운 마법 을 이용해 마법 장신구를 만들었으 며 요섭에게 선물받은 장비도 있다. 게다가 타르로 구매한 ‘공간 도살 자’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도 있다.
-저것 봐. 완전 초본데? 여기에 그런 것도 없이 왔다고? 말이 되 나?
-그럼 말이 되지. 여기까지 왔는 데 어떻게 왔겠어?
-분명 어딘가에 껴서 온 거겠지.
-저 실력으로 어떻게 와?
채팅 창이 난리가 났다. 연지는 괜히 화가 나는지 채팅 창에 뭐라 크게 소리쳤고 연호는 혜영을 달래 며 아공간에 있던 아이템 몇 개를 넘겨주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가지세요. 전 예비가 있으니까요. 뭐, 방송 보는 사람들 은 몰라도 연우 형이 준 경호 몬스 터도 있고.”
“아, 그런 것도 줬어?”
“네, 그 적에 죽지는 않을 거 같 으니까요. 일단, 이거랑 이거랑
“나 그런 거 필요 없는데.”
“네? 안 돼요. 진짜 위험하단 말 이에요. 아무리 원 클래스 마스터 라도 악의가 혈관에 파고들기 시작 하면 진짜 끔찍하거든요. 원 클래 스 마스터가 죽는 것도 수시로 본 다니까요?”
혜영은 연지와 연호를 보면서 ‘역시 연우의 동생이구나’라는 생각 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