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편_ 언더 월드(3)
연우는 1계층으로 들어왔다. 그 땐, 오염된 신선이 수성을, 천공 세 계의 마족 진형이 공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우가 등장하자마자 전 쟁은 중단됐다.
“어이, 안녕! 오랜만이다?”
연우가 손을 들어 오염된 신선을 불렀다. 그러자 성에서 대단위 선 술을 펼치던 것을 중지하고 쫄래쫄 래 다가왔다.
“클클. 어서 오게.”
“웅, 요즘 어때? 할 만해?”
“뭐, 나쁠 게 있을까.”
허공에서 오염된 신선과 대화하 던 연우는 멀리 천공 세계 2계층에 서 올라오는 입구에 쭈뼛거리며 서 있던 리젤을 바라봤다.
옆엔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리그 너트가 보였다.
연우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리 그너트는 움찔거렸고 리젤은 고민 하다 이쪽으로 날아왔다.
“잘 지내고 있지?”
“네, 연우 님.”
“싸울 만은 하고?”
“네, 연우 님 덕분에 괜찮은 장 비를 샀습니다.”
무기는 아직 연우가 준 낫을 사 용하고 있었고 전신 갑옷과 장신구 몇 개가 바뀌어 있었다. 최소 얼티 밋 정도로 보이는 장비였다.
“이건 레인에게 산 거고. 이건 요섭이 만들어 준 건가?”
“네, 제가 돈이 없어서 타르로 요섭 님에게 샀습니다.”
“잘했네. 어쩐지 던전 제작에 열 중하더니 여기 와서 아버지를 도우 려고 한 거야?”
“네…… 그런 것도 있고 저도 조 금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연우는 요즘 부쩍 식구들이 성장 을 원한다는 걸 느낀다. 왜 그러는 지는 모르겠다. 그저 호승심일 수 도 있고 짐이 되지 않고 싶을 수도 있다.
“뭐, 나쁘지 않지.”
오히려 좋다. 식구들이 강해질수 록 연우가 할 일은 없어지니까.
어쩐지 새 얼굴이 보이더 니 연우가 아는 사람. 아니, 사신이 었군.”
“요즘 어때, 적들이 많아졌는데.”
“클클, 나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매일 쟤네랑 싸우는 것도 질 리던 참이었는데. 마침 두 번째 11 단계가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연우가 이곳까지 온 건 리 젤을 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오염 된 신선에게 11단계에 관한 이야기 를 들으러 온 것도 있다.
오염된 신선이 말도 안 되는 캐 릭터였던 건 단순히 11단계라는 것 때문이 아니다. 단 하나의 스킬이 11단계가 되면서 쓰리 클래스 이상 의 힘을 냈다는 것 때문이다.
게임에 있을 때는 캐릭터의 설정 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나 몬스터도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운영자가 알려 줬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니다.
연우는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물었다.
“뭐랄까. 하나의 스킬을 수백 년 동안 파면. 그것도 클래스를 마스 터한 이후에도 계속 파는 거지. 별 거 있나…… 끌려? 끌리면 내가 하 나 11단계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오염된 신선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 어떤 존재도 오염된 신선의 능 력으로 11단계가 되면 그의 수하가 된다. 절대로 불복종할 수 없는 상 태.
물론, 대상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 사기적인 공격이 되진 않는다.
“그건 됐고……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8단계에서 9단 계가 되는 건 그저 깨달음을 얻거 나 능력치를 올려 한층 강해지는 거다.
9단계에서 마스터도 마찬가지고.
오염된 신선은 그거랑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능력치를 올 인해서 하나 올려 볼까.’
연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볼일이 있어서. 여 기 늑대 인간도 있었나?”
“이쪽은 4계층인가에 있을 거고 천공 세계는……
오염된 신선이 리젤에게 턱짓을 했다.
“이쪽엔 3계층 쪽에 있긴 합니 다. 그건 왜 찾으세요?”
“쓸 일이 조금 있어서.”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지구에 도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이 싸우는 언더 월드가 있다고 한다. 헤르메 스가 뱀파이어 쪽을 처리하러 갔는 데 늑대 인간 쪽도 뭔가 조치를 해 야 할 것 같아서 이곳으로 온 거 다.
연우가 리젤에게 묻자 리젤은 친 절하게 알려 줬다.
“블랙 그레이트 울프라고. 검은 털을 가진 늑대 인간이라고?”
“네, 천공 세계 3계층에 있었습 니다.”
연우는 블랙 그레이트 울프가 가 장 끌렸다.
늑대 인간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이기 때문 이다. 특히, 조상 증 거인 족이 있 었기에 큰 덩치와 마법 저항력을 지녔다…… 라는 리젤의 설명이었 다.
“그놈을 몇 마리 잡아가자. 그놈 들 인간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
“네, 가능합니다.”
연우는 1계층과 천공 세계 2계층 의 입구를 바라봤다.
“오늘은 내가 있는 날이니까 전 쟁은 금지한다. 1계층과 2계층에서
만.”
“클클, 오랜만에 휴식이구만.”
오염된 신선은 그래도 상관없다 는 듯 병력을 물렸다. 리그너트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우는 리그너트와 인사하러 이 동했다.
“안녕하세요.”
리그너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인간이 오더니 오염된 신선이 와서 인사를 하고 리젤까지 쫄래쫄 래 쫓아간다.
듣기는 했다. 이 세계의 주인. 이 밖의 있는 세계도 그의 것이고 그 는 새로운 세상에서 산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게다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에잇 클래스 마스터라는 것.
‘이렇게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는데?’
하지만 마신과 천신이 이 인간에 게 죽었다는 것도 들었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오염된 신선에게 저런 태도를 갖게 하는 인간. 절대로 쉽 게 대할 순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때요. 살기 괜찮죠?”
“?????? 네, 뭐.”
리그너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당황했다. 이런 곳에 가둬 놓고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나 태연했으 니까.
“죽지 말고 꼭 살아서 여길 점령 해요. 그럼 밖으로 나가는 입구를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어쩜 저렇게 잔인한 말을 웃으면 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 그, 그래야죠.”
“그럼 이만.”
연우는 리젤을 데리고 3계층을 향했다. 그러는 도중, 문득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12계층 전에 입구인가?”
“네?”
연우는 아무 말 없이 리젤을 데 리고 천공 세계 입구로 향했다. 몇 번의 워프와 고속 이동에 금방 도 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주 익숙한 사람 들이 보였다.
이진철은 알파 지점에 준비해 놨 던 비상 탈출 킷을 사용했다. 순간 이진철과 200명의 아군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보통 워프와는 달랐다.
몸이 기우뚱 휘청거리며 하수구 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0.1 초 정 도 지속하는 게 보통 워프라면, 이 건 그것의 수만 배는 긴 느낌이었 다.
“커 억!”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발목을 움켜쥐었다.
휙! 휘휙!
중력이 사방으로 튀는 공간의 틈. 그곳의 경로가 비틀어지는 걸 느꼈다.
화악!
눈앞의 밝은 빛이 터지며 배경이 바뀌었다.
그곳은 수많은 별이 박혀 있는 드넓은 대지였다.
“크윽, 여, 여긴 어디지?”
이진철이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 려 일어났다. 200여 명의 사용자가 널브러져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엔 마족들까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연우가 챙겨 줬던 비상 탈출 킷 이다. 초장거리 대량 워프 기능이 있다고는 했지만, 200명을 넘기고 저 마족들까지 끌고 와 버릴 줄은 몰랐다.
이진철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나마 지금이 기회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마족들도 만만치는 않았 다. 벌써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진철을 보고 달려들었다. 다행히 아군도 정신을 차리며 전투 에 합세했다.
“빌어먹을!”
가슴이 아픈 건 연우가 챙겨 준 이 비상 탈'출 킷이 1조 원짜리라는 것이다. 분명 챙겨 준 건데 할인을 해 준단다.
콰아앙
이진철은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마법을 완성했다.
뒤로 다가온 최민아가 수백 개의 번개를 내려치고 스미스와 해서웨 이가 보조한다. 시누자키 아이와 데이비드도 뒤로 붙었다.
하지만 이길 전투였다면 여기까 지 도망치지도 않았을 거다.
핑! 콰아앙!
마족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투 클 래스 마스터급이 이진철이 구축한 진형을 날려 버렸다.
“끄윽, 끄, 끝인가……
수십의 마족이 힘없이 날아가는 사용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푸 욱. 섬뜩한 소리를 내면서 한두 명 씩 죽어 간다.
찌릿.
그때 멀리서 이진철을 지켜보던 우두머리가 빠르게 다가와 검을 휘 두른다. 이전철은 이미 피할 수 없 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고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자는 생각으 로 자폭 마법을 발동했다.
기이이이잉.
화악!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하지만 그때였다.
이미 자폭 직전까지 온 이진철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려졌다. 동시에 이진철의 마법은 소멸한다. 그뿐이 아니다. 앞에서 달려들던 마족이 머리부터 재가 돼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마족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은 물에 젖은 모래성처럼 부스스 녹아내린다.
“여, 연우 님!?”
이진철은 그제야 뒤에 있는 사람 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왜 여기 있어요? 그라니아 대륙 에 간 거 아니었어요?”
“…… 여기가 그라니아 대륙이 아닌가요? 저는 비상 탈출 킷을 사 용했을 뿐인데.”
연우는 아, 하며 얼굴을 쓸어내 렸다.
천공 세계와 연우가 만든 비상 탈출 킷이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 닐 거다.
“어찌 됐든 다행이네요.”
연우는 재가 돼 사라지는 마족들 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진철도 마찬가지였다. 한 줌의 재가 된 마 족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 긴 어디죠? 지구는 아닌 것 같은 데.”
“천공 세계라고 제가 만든 세계 예요. 그라니아에서 일정 수준 이 상의 무력 사용자가 넘어오면 이곳 으로 향하게 했죠.”
“……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아무래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이 넘어오면 제가 직접 나서야 하 니까요.”
“그, 그건 그렇죠. 그럼 저 마족 이 쓰리 클래스……?”
“아닌데, 오류가 있었나 봐요. 탈 출 킷이니 뒤늦게 쫓아오다가 좌표 가 흐트러진 거겠죠.”
연우의 진단은 정확했다.
“그럼 그라니아 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직 할 일이 많아 서……
“음, 그건 좀 힘든데.”
“ 네?”
“이쪽으로 내려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무지하게 힘들거든요. 개미지옥이라고 들어 보셨죠?”
“네네.”
“그런 구조예요. 발만 살짝 잘못 디뎌도 들어오게 되지만, 나가는 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죠.”
연우와 헤맨이 동시에 작업한다 면 안 될 것도 없지만, 그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 박사가 만들었다던 게이트를 타고 가면 되겠네요.”
“그래야겠네요.”
이진철은 문득 웃음이 났다. 김 상철 박사가 그들을 보면 얼마나 놀랄지. 그리고 위원회에게 간단한 영상 보고를 하면서 그들의 표정도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우는 그들을 밖으로 꺼내 주고 다시 3계층으로 돌아갔다.
헤르메스는 머리가 아팠다.
“아스피린 없지?”
“네? 없습니다. 아마 본성에 가 면 있을 겁니다.”
가끔 머리가 아플 땐 연우가 준 아스피린을 먹었더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린을 만나면 아 스피린부터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왔습니다.”
세 뱀파이어가 안내한 곳은 생각
지도 못한 곳이었다. 서울의 지하. 지하철을 통해 이상한 벽을 통해 들어가더니 깊숙한 땅속으로 들어 왔다.
완벽한 언더 월드다.
그곳엔 하나의 도시가 들어서 있 었다. 높은 천장에 달린 거대한 조 명들, 아래론 꽤 높은 건물들과 도 로. 그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뱀파 이어와 늑대 인간. 그리고 몇몇 인 외 종족까지.
“잘살고 있네. 인기척 지우는 마 법진도 꽤 수준이 높네. 이거 아이 린 작품이지?”
“네, 맞습니다.”
나이아르. 고위 귀족이라며 연우 에게 아량을 베풀겠다던 뱀파이어 는 헤르메스에게 굽신거리기 바빴 다. 고위 귀족이라는 건 어디까지 나 상대적인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