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편_ 역시 식칼은 마왕의
뿔이지 (3)
케루빔은 그날 이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에 다른 마왕부터 마계 중 앙의 마신의 신전까지 다 돌았다. 연우라는 인간이 언제 닥칠지 모 르는 상황에서 그는 잠자는 것까 지 줄여야 했다.
증거는 따로 필요할 것도 없었 다.
머리에 잘린 뿔.
무시할 수 없는 완벽한 증거였 다. 마신이 그걸 보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했다.
“반대쪽 좀 줘 봐. 나도 한번 해 봐야겠어.”
당연히 기겁하며 거부했다. 마 신도 그게 장난이었는지 피식 웃 으며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정리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왕국 자체를 가져간다고?”
케루빔의 왕국은 케루빔의 것이 었지만, 모든 마왕의 소유권은 마 신에게 있다.
게다가.
“악의라는 게 있다고? 그런 세 상이 존재한다면 침략해도 되겠 군.”
역시 마족은 마족이다.
마계 전체의 왕이 되면서 마신 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태생은 마족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 칠 수 없듯이 마족이 새로운 세상 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천계와의 전쟁은 진 즉에 끝난 상태였기에 호전적인 마족과 마물은 참지 못하고 자기
들끼리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이었 다.
“잘됐네. 기다릴 거 있나? 바로 전투 준비를 하자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
마족은 태생이 단순 무식하다. 그래서 마신이나 마왕 곁에 참모 라고 특출 나게 똑똑한 이들이 붙 어 있긴 하다.
“마신님. 적의 힘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케루빔의 뿔이 잘린 걸 본다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냥 두고 보자고? 왕국을 가져가? 그게 가 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만약 그 럴 수 있다 해도 보고만 있는 건 마신 체면이 안 살지.”
“그래도……
“닥쳐.”
이런 식이다.
이러면 참모가 왜 있냐고?
“그렇다면 작전을 짜야겠습니 다. 더 압도적으로 밟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지 않겠습니 까? 게다가 다른 마왕들도 모두 싸우고 싶을 테니 마신님이 모두 처리하면 다들 서운해 할 겁니 다.”
“하하하하! 그렇지 그래. 내가 다 쓸어버리면 재미가 없겠지. 그 럼 전략 수립을 부탁하지. 난 몸 좀 풀어야겠다.”
그렇다.
이런 식인 거다.
“저도 전쟁 준비를 하겠습니다.”
케루빔은 그렇게 왕국으로 돌아 왔다. 하지만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냥 뒤에 숨어 있을까?’
‘만약 그러다 우리가 이기면 어 쩌지?’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인간이 이길 것 같은데?’
‘설마, 인간은 인간일 뿐인데. 그럴 리가 없어.’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연우의 힘은 금세 잊혔다.
그리고 며칠 후 연우와 두 엘프 가 마계로 들어온 거고, 케루빔은 당당하게 전장에 발을 디뎠다.
므깃도가 활짝 열렸다.
연우의 부름을 받은 몬스터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천 단 위가 됐고 각 지역의 지배자들까 지 나왔다.
이곳의 마족과 마물은 강하다.
하지만 므깃도와 비교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므깃도가 압도적으로 이길 거다.
“크와아아아! 주인님!”
-제가 왔습니다.
“다 태워 버리겠다!”
백호, 요르문간드, 화염룡 등등.
므깃도에 존재하는 각 지역의 지배자는 이 마계의 군단장급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할 마족은 그 이하 마족들이었다.
“가서 놀아라. 대신 저 중앙은 내 거다.”
군단장급 이상은 연우가 직접 상대한다.
연우가 힘을 폭발시켰을 때.
푸확!
연우가 선 자리를 중심으로 진 공상태가 됐다. 찰나의 순간, 이 자젤과 수이니가 뒤로 훌쩍 물러 난다. 그의 옆에 있으면 안 된다 는 걸 경험으로 아는 거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마족과 마 물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기이이잉.
퐉!
투명한 힘의 파동이 흔들리다 폭발한다.
파삭. 파사사삭.
그 파동의 경계에 닿은 마족과 마물. 땅과 나무들은 한 줌의 재 로 화한다. 극도로 정제된 기운에 갈려 나가는 것이다.
연우는 정면에 보이는 군단장급 마족과 중앙의 마신을 바라봤다.
“아쉽네.”
마신의 수준은 고작해야 식스 클래스 마스터.
“뭐, 그래도 놀 만은 하겠네.”
핑.
연우의 형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생겨났다.
눈동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 의 움직임이다. 마족들과 마신도 눈 하나 깜빡하지 못한 시간이었
스윽.
연우가 주먹을 뻗었다.
퍼억.
마신의 얼굴에 연우의 손이 닿 았을 때까지 마신은 아무것도 하 지 못했다.
“위게 므으야아.”
번역한다면 “이게 뭐야.” 정도가 될 거다.
하지만 이미 마신의 목은 길쭉 하게 늘어났고 몸도 머리를 따라 서 밑으로 떨어졌다.
핑.
콰아아앙!
마신이 그대로 땅 깊숙한 곳에 박혔다.
“손맛은 있는 정도네.”
그 모습을 그대로 보던 군단장 급 마족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움찔거렸다.
“덤벼라.”
연우의 한마디. 통역 마법을 거 쳐 마족들의 귀에 들어갔고 순간 화가 나는 것인지 덤벼들기 시작 했다. 이미 이성을 잃었다.
이럴 때야 말로 연우가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상황.
휙.
피하고.
퍼억.
때린다.
그러면 어딘가로 날아가 박혀 움직이지 못한다.
“이게 다야? 조금 더 덤벼 봐.”
연우의 말에 다른 마족들까지 달려들었다.
퍼억. 퍼버버버벅.
하나, 둘, 열, 백, 천까지.
주먹 하나에 최소 둘씩 날아가 사라진다. 그래도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제야 아래서 뭐가 날아온다.
그건 마신이었다.
“왜 이제 와. 오래 기다렸잖아.”
“으아아아아!”
마신의 몰골은 장난이 아니었 다. 멋스러웠던 세 개의 뿔은 금 이 쩌적 가 있고 장비는 찢어졌으 며 한쪽 팔과 다리는 부러진 건지 덜렁거렸다.
“자, 공격해 봐.”
연우는 심심한데 한 대 맞아 보 기로 했다.
“후, 후회하지 마라!”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 네.”
연우가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전신의 힘을 폭발 시켰다.
콰아아아아!
마신의 기세는 하늘을 갈랐고 땅을 밀어냈다. 대륙 전체를 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의 파동이 주변 을 덮쳤다.
‘내가 예전에 이 정도였다는 거 네.’
하긴, 식스 클래스 마스터라는 건 강한 거다. 아스가르드라는 게 임에서도 최강이었을 만큼 말이 다. 하지만 연우는 이미 에잇 클 래스 마스터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인 마신은 그저 조금 하는 동네 건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쿠우우웅.
그때 마신이 소환한 듯 보이는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길이만 1km는 넘어 보이는 마검! 그건 마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 의 기술과 무기였다.
“오오, 좀 하는데?”
연우는 그 힘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살갗이 찌릿찌릿할 정도 로 강력하고 패도적인 힘이다.
그게 연우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좋아, 이것도 쓸 만하겠어.”
연우는 빠르게 날아오던 칼끝을 잡았다.
부르르르.
거대한 마검은 연우의 힘을 거 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연우의 손아귀 힘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게로 오라!”
연우의 외침이었다.
절대자의 위엄, 길들이기 마스 터, 중재자의 영향, 지배자의 지 배력, 염력과 정령의 힘까지. 연 우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비정상적인 힘의 소유자였다.
부르르 떨던 마검이 멈췄다.
“뭐, 뭐야! 이게 무슨……!”
마신이 양손을 내려다보며 벌벌 떨었다.
마검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이 기술은 단순히 마력을 이용 한 마법이 아니다. 마계에서 수천 년을 살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얻 은 전설의 마검이었다.
그 마검은 아공간에 넣어 놓고 소환해 공격하는 방식이다.
다른 말로 하면, 힘만 되면 빼 앗을 수 있다는 거다.
말도 안 돼 !”
“고마워, 잘 쓸게.”
연우의 손엔 이미 lm 정도로 작아진 마검이 쥐어져 있었다. 얼 티밋급 정도 되는 전설 등급의 마 검이었다. 연우가 딱히 쓸 일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주는 걸 마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잘 간직하기로 했다.
“고마워.”
“무, 무슨! 난 준 적이……
마신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대로 준 거라고 하는 게 나 은 건가?’
‘아니라고 하면 죽일 건가?’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하지?’
찰나의 순간, 수많은 생각이 뇌 리를 스쳤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이미 마신을 제외하고는 전투 불능의 상태.
군단장급은 이미 연우에 의해 서. 휘하 고위급 마족들은 므깃도 의 지배자들, 수이니, 이자젤에 의해 쓰러졌고 그 이하의 마족이 나 마물은 지배자들 휘하의 몬스 터에 의해 쓸려 나갔다.
“드리겠습니다! 다 가지십시오.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위엄 가득했던 마신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연우는 그런 마신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지금까지 힘들었지?”
“네? 아, 아닙니다. 제가 뭘
“원래 그런 거야. 지배자라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그래서 말 인데.”
“네네, 말씀하시죠.”
“내가 선물을 줄게.”
“…… 네?”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아서 되 물었다.
연우는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 다.
“아직 네 힘이 너무 약하니까 도와주겠다는 거야. 대신, 해 줄 일이 있어. 이 차원. 그러니까 이 대륙에도 중간계랑 천계가 있을 거 아니야?”
“네, 맞습니다만……
“좋아, 일단 천족이 좀 필요해. 가는 길도 알려 주면 좋겠고……
“네, 그거야 얼마든지 알려 드 리겠습니다.”
연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신의 머리로 시선을 돌렸다. 마신은 연 우의 이상하게 섬뜩한 웃음에 소 름이 돋았다.
“이런, 네 뿔이 금이 가 있네. 좀 아프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뭔지를 모르겠지만 거부해야 할 것 같은 생존 본능이 비상 신호를 터뜨렸다.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거 아프 잖아. 내가 아예 부러뜨려 줄게.”
“네? 그게 무슨......
대답을 다 하기도 전이었다.
스적.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갑자기 무언가 슥 지나가더니 머리가 허 전해졌다. 그러곤 전신이 힘이 쭈 욱 빠져나갔다.
손을 들어 더듬었다.
뿔은 있다. 하나…… 둘……?
세 번째 뿔이 사라져 있었다.
“으어어어?”
“이건 내가 가질게. 아아, 그냥 가져간다는 건 아니고. 내가 줄 선물의 보답이랄까?”
마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 다.
뭐랄까. 이 인간은…… 그래, 사 이코패스였다. 미쳐도 단단히 미 친놈이라는 거다.
하지만 마신은 계속 말을 이어 가는 연우라는 인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말이었 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지? 도대
체 왜?’
확실히.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더 많았 다.
마신의 신전이라는 최상층에 올 라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령 했다. 깊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 기 때문이다.
‘장비 몇 개를 줄게. 이런 마검 을 쓰니까 천계도 못 이기는 거 야.’
그 말을 했을 땐, 별 감흥도 없 었다.
천계의 침략은 막았다. 치명적 인 상처를 주고 수백 년의 평화를 찾았다. 물론, 그게 좋다는 건 아 니다. 마족에게 평화는 그리 반가 운 것만은 아니니까.
‘이것 봐.’
보랏빛 오라가 은은하게 주변을 밝힌다.
얼티밋 등급의 무기와 장비들이 었다. 마신을 그걸 쥐었을 때 신 세계를 맛봤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최상급 마력석 몇 개, 얼티밋 등급 장신구와 몇 개의 소모품. 하나하나가 마신조차 상상도 못했 던 장비였다. 이런 게 세상에 존 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장비들.
‘이런 걸 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그냥 줄 인간으로는 안 보 였기 때문이다.
‘이 차원의 절대자가 돼 줘야겠 어.’
천계와 중간계를 상대로 최고가 되라는 뜻이다.
인간. 아니, 연우 님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만 들었다면 비웃었을 거 다. 천계의 세력은 마계 못지않고 천계의 뒤엔 항상 신계가 있다. 절대자?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장비들을 보니 자신감이 가득 차 올랐다. 안 될 것도 없겠다는 생 각이다.
그런데 왜?
연우 님은 이렇게 말했다.
‘상부상조라는 거지, 너회는 이 물건을 계속 사 주고 절대자가 되 면서 우리 차원으로 다른 놈들이 못 넘어오게 막는다. 어때? 완전 공평하지?’
‘네? 그, 그럼 이게 주는 게 아 니라 파는 거였습니까?’
‘당연충}지. 공짜가 어디 있어?’
공평한 건가? 마신이 연우에게 장비를 사고 지구라는 대륙으로 넘어가는 것들을 막아 주고…… 대신, 마신은 큰 힘을 얻는다?
그래서 물었다.
‘제, 제가 사서 제가 싸우는 건 데 공평한 겁니까?’
‘그럼, 넌 목숨을 건졌잖아.’
마신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뭐 어쩌겠어. 강해지고 많이 싸울 수 있으면 좋은 거지.”
마신은 좋게 생각했다.
그래서 케루빔과 그의 왕국까지 그대로 바쳤다.
그게 첫 번째 거래의 조건이었 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