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편_ 주인공에게 엑스트라 일 뿐(3)
북극 중앙의 널찍한 땅엔 수많 은 나라의 전진 기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원래의 북극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북극이라는 곳은 대륙이 아닌 빙하로 이뤄진 곳. 당연히 기지를 세우거나 많은 인원이 안정적으로 지내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50년 전, 북극에 빙(氷) 속성 원 클래스 마스터급 몬스터 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빙하가 몇 배는 두꺼워졌고, 대륙이라고 해 도 상관없을 정도로 단단한 대지 가 됐다.
문제는 그 몬스터 때문에 온도 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갔고 사람 은커녕, 어떠한 동물도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돼 버렸다는 거다.
하지만 겨우 몇 개월 전.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기적을 펼치고 갔다.
“제이미. 저게 그거라는 거지?
‘필드 유지 장치’.”
“그래, 우리가 저기에 생산되는 마력석의 90%를 넣고 있어. 1년 사용료가 1조고.”
“엄청나구나.”
“또, 우리의 생명줄이기도 하 고.”
한국과 미국인의 혼혈인 북극 환경 몬스터 전문가 제이미는 그 때의 만남을 잊을 수 없었다.
눈 폭풍을 만나 조난됐을 때, 배가 뚫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 올 때 자신을 구해 줬던 신연우라 는 한국인. 북극이라는 곳에 따듯 한 공간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으 로 북극 연구소 인원들을 대접했 다.
[필드 유지 장치].
크지는 않다. 작은 물탱크처럼 생긴 기계랄까.
아니, 기계도 아니다. 이것저것 철과 나무로 이뤄져 있고 곳곳에 선명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한 쪽 입구에 마력석을 넣으면 에너 지 게이지가 차올라 이 근방 필드 를 최적의 환경으로 유지해 준다.
게다가 일정 수준 이상의 강력 한 몬스터도 막아 주는 것인지, 저 장치에서 가까울수록 몬스터의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도 벌어졌 다.
“멋지네. 정말 멋져. 어떻게 저 게 가능한 거지?”
“그거 알아? 우리 해리언 연구 소장님도 전혀 모르겠더래.”
“해리언 님이? 마법으로 원 클 래스 마스터를 이룬 사람이잖아. 이진철 협회장이라는 한국 사람 다음으로!”
“그러니까. 저 장치에 깃든 비 밀을 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 지.”
제이미가 만든 것도 아니고 제 이미의 소유도 아니지만, 뿌듯함 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인연의 끈이 있다는 것만으로 소속감이 든 모양이다.
예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 이 땅 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십 개국의 나라가 연구소를 짓고 있었고 미국은 그 프로젝트 의 머리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미는 그 프로젝트를 이끄는 책임자 중 하나.
일개 연구원에 불과했던 제이미 에겐 엄청난 승진이었다.
“헤이! 제이미!”
“무슨 일이야, 스미스.”
신연우 님을 만났을 때 같이 있 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퍼렇게 뜬 얼굴을 하고 달려 왔다.
“비, 비상 신호가……!”
“비상 신호?”
더 듣지도 않고 달리기 시작했 다.
필드 유지 장치와 가장 가깝고 이 필드에서 가장 크게 지어진 북 극 연구소 미국 본청. 그 안에 통 제실로 향하는 거다.
“무슨 일입니까!”
“이곳에서 불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투 클래스 마스터 이상의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보고 입니다. 바로 위성으로 추적했습 니다.”
연구원 한 명이 한 화면을 가리 켰다.
그곳엔 사람 형상의 희한한 몬 스터 한 마리가 빙하를 때려 부수 고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쿠우웅.
문제는 빙하 몇 개만 부서지는 게 아니라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 진 이곳까지 충격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쿠우우웅.
그 충격은 점점 커졌고, 북극 곳곳에 잠들었던 원 클래스 마스 터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깨우는 형국이 됐다.
“이 상황이 지속되다간…… 필드 유지 장치 안과 밖의 모든 몬스터 가 이성을 잃고 날뛸 겁니다. 그 것보다 더 큰 위험은 빙하의 소실 입니다.”
타닥.
화면이 바뀌었다.
“지층. 빙하 지층은 원래 수십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가 겨우 몇 년 전에 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면서……
“간단하게. 간단하게 설명해요.”
“다시 산산조각이 난다는 겁니 다. 그럼 이 필드가 무너집니다. 그 말은 이 주변의 모든 연구소가 박살 나고……
쿠우우웅.
그그극.
이번 진동은 더 컸다.
연구소 천장에 쩌적 금이 가고, 사방에서 경고음과 사람들의 비명 이 들렸다. 이 통제실만 유일하게 조용한 상태였다.
“빙하 총 5% 손실!”
“북서쪽 원 클래스 마스터급 몬 스터 발견!”
“동쪽 12번 8단계 필드 폭파! 몬스터가 사방으로 도망칩니다.”
“45번 필드도 폭파! 필드가 사 라지면서 빙하 0.02% 손실이 진 행됩니다.”
제이미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도망? 어차피 그 짧은 시간에 북극을 벗어날 순 없다. 게다가 이곳을 포기한다는 건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걸 포기한다는 거 다.
“어떡하지?”
“젠장! 쓰나미로 40번부터 50 번 필드까지 잠깁니다!”
“저게 뭔데 이런 재해를 부르는 거지?”
빙하를 두드리고 무언가를 찾는 다. 그러다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렇게 빙하를 부수는 걸 반복한 다.
“저 미친놈은 도대체 뭐야?”
제이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연구소에 대기하고 있는 사 용자들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가 없다. 그저 연구소로 접근하는 원 클래스 마스터급 이하의 몬스터를 저지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였다.
퍼억.
쿠우우응!
뭔가가 등장해서 빙하를 때려 부수는 중장갑의 몬스터의 뒤통수 를 쳤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튕 긴 몬스터는 빙하 깊숙이 박혀 버 린 것 같았다.
“뭐, 뭐야?”
새로 등장한 인영은 어깨에 작 은 동물을 얹었는데 꼬리가 세 개 에 털이 수북한 동물이었다.
쿠응. 화악!
빙하 깊숙이 박힌 무언가 튀어 올랐다. 동시에 그 둘은 싸움이 붙었고 일반인. 아니, 그래도 7단 계 정도의 사용자인 통제실 안의 모든 인원은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전투가 시작됐 다.
“저, 저건 도대체 뭐지?”
왜 갑자기 이런 곳에 도착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든다 는 것인가.
제이미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쿠으응.
그때 누군가가 또 등장했다.
빠르게 등장한 누군가는 처음 이곳에 난리를 치기 시작한 중장 갑의 뒷목을 잡았다.
그러자 중장갑의 주인이 추욱 쳐졌다.
마치 나쁜 일을 하다 주인에게 걸린 강아지처럼 말이다. 처음 등 장에 중장갑을 때리던 하얀 소복 의 인영도 얌전히 옆에 서 있을 뿐이다.
그제야 다른 지역에 있던 고화 질의 위성의 카메라가 그곳을 향 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얼굴이다.
‘혹시 신연우 님?’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똑같은 이름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필드 유지 장치의 사용료를 입 금하는 곳이 한국 지부 이진철의 관리 계좌 앞이었고, 그는 신연우 라는 어마어마한 존재를 보조한다 고. 정말 아무도 믿지 않는 이상 한 이야기였지만, 제이미는 믿을 수 있었다.
그가 전에 봤던 그 남자라면 충 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어? 싸움이 멈췄습니다.”
제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 보고 있는 사실을 왜 보고하는지 모르겠다.
신연우. 그가 맞았다.
그가 난리치던 중장갑을 제압하 고 손을 뻗는다.
쿠으으으응.
북극의 빙하 전체가 진동했다.
“빙하가 복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이었다.
제이미의 얼굴엔 웃음이 드리워 져 있었다.
문제는 이 사태의 끝이 저게 아 니라는 것이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왜 그러냐!”
“여기서 왜 난리야. 몬스터들이 다 난리 났잖아. 빙하는 왜 부수 는 거고?”
“아이스 드래곤을 찾고 있었다.”
“그거랑 빙하를 부수는 거랑 무 슨 상관이야?”
“‘아이스 드래곤 잡는 방법론’이 라는 책에 나온 방법이다!”
“…… 너 책도 읽을 줄 아냐. 아 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책 은 누가 쓴 거야?”
“이 아이델 놈의 스승이다.”
천인종은 자신을 방해한 아이델 이 미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삼미호 와 놀아 주고 있었다.
“그 오염된 신선?”
지저 세계 최강 삼종 중 한 종 족.
최초의 오염된 신선이자, 모든 오염된 신선을 만든 몬스터. 그가 아이델의 스승이었고 최강 삼 종 족이 입을 모아 인정하는 지저 세 계 최고 미친놈이었다.
“그 말을 왜 믿어! 아니, 매일 싸우면서 책은 어디서 난 거야?”
“1계층 되찾았을 때 발견했다!”
“후, 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 라, 빨리 이거 복구하고 돌아가 자.”
연우는 손을 뻗어서 빙하를 복 구하기 시작했다. 한기를 채우고 조각난 빙하를 끌어올려 맞춰 얼 린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였던 연우라 면 못했을 작업. 하지만 지금은 에잇 클래스 마스터였고, 이 정도 는 마법 클래스를 마스터하지 않 아도 염력과 마법을 조합하며 충 분히 복구할 수 있었다.
“안 된다! 아직 아이스 드래곤 을 잡지 못했다!”
천인종은 그게 한탄스러운 모양 이다.
“필요 없어! 그리고 이곳엔 아 이스 드래곤 같은 건 없다??????
라고 연우가 외칠 때였다.
쿠으으응.
빙하 전체가 흔들렸다.
콰직. 콰지직.
저 앞. 정말 멀지 않은 곳에서 빙하를 뚫고 나오는 발톱이 보였 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바로.
“아이스 드래곤! 내가 있을 줄 알았다!”
천인종이 신이 나 만세를 불렀 다.
연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곳 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없는 줄 알았다. 이미 북국엔 와 봤었 고 아무런 징조도 없었으니까.
“너 어떻게 알았냐?”
“후훗, 이 몸이 바로 천공 탑의 천인종! 얼음이 많은 곳에 아이스 드래곤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닌 가?”
천인종의 콧대가 하늘을 찔렀 다.
그저 운이었다.
아스가르드에서야 얼음이 많은 곳. 즉 빙하 지대의 모든 최종 보 스는 아이스 드래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것까지 게임과 비슷할 줄은 몰랐다.
물론, 생긴 모습은 달랐다.
그냥 드래곤에서 비늘 대신 얼 음이 있는 아스가르드와는 다르게 평범한 비늘이었다. 물론, 하얗게 서리가 낀 비늘이긴 했지만 말이 다.
그으으응.
- 누구냐.
아이스 드래곤이 마력이 담긴 그라니아 대륙의 언어로 소리쳤 다.
?누가 감히 이 위대한 존재의 수면을 깨우는 것이냐!
잠을 자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연우는 간지러운 귀를 후볐다. 귀지를 판 지 오래돼서 그런 모양 이었다. 아이델은 겁을 잔뜩 먹은 삼미호를 안고 달래 주는 상태였 고 천인종은 좋다고 웃고 있었다.
“내가 잡겠다! 내가 생포한다!”
u...... 그러든지.”
저 아이스 드래곤은 투 클래스 마스터 최상급이다.
필리아와 비슷한 경지였는데 필 리아보다는 강해 보였다. 힘은 비 슷한데 필리아는 뭉툭한 방망이의 느낌이라면 저 아이스 드래곤은 날카로운 창의 느낌이다.
이런 건 전투 경험의 차이에서 온다.
“보나마나 꽤 많은 전투를 겪은 베테랑이겠네.”
그렇다고 저 전투의 결과가 바 뀔까?
아니다. 천인종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에 신격을 지닌 존재다. 당연히 저 아이스 드래곤은 천인 종이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을 거 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나왔다.
“으하하하! 잡았다. 내가 해냈 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천인종이 거대한 아이스 드래곤 의 꼬리를 잡고 이리저리 휘두르 고 있었다. 비교하자면 개미 한 마리가 사람 한 명을 물고 휘휘 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북극 연구소 의 위성에 찍히고 있었다.
“제, 제이미?”
“제 이미?”
“어? 어. 스미스.”
제이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 다.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위에 서 만들어 낸 헛소리라고 치부했 다.
“방금 저거…… 무슨 상황인 거 지?”
“소리. 음성은 녹음됐어?”
“아니, 소리는 없어. 위성에서 찍은 거니까.”
“…… 이거 일단 보고하자. 협회 미국 지부 스미스에게. 너랑 이름 똑같은.”
“진짜 흔한 이름이네. 협회장 정도나 돼서.”
“너도 마찬가지면서.”
“근데 지금 미국 지부 협회장은 출장 중이야. 이번에 그라니아 대 륙이라는 곳에 선발대로 갔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부협회 장 제임스 최랑 안보부 소피아에 게 보고하는 게 최선이겠어.”
다른 이들은 그냥 듣고 넘어갔 을지 몰라도 제이미는 기억했다. 그 둘이 한 번 신연우 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고. 이왕이면 그의 존 재를 아는 이들에게 보고하는 게 좋아 보였다.
제이미에게 그 정도 선택권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