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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편_ 악역이란 것은(1) (125/207)

제140편_ 악역이란 것은(1)

연우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매일은 싫지만, 가끔이라면 좋 다. 게다가 설거지나 정리는 마법 으로 끝나기에 귀찮을 것도 없었 다.

치이익.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먹기 좋게 썰린 목살이 올라갔다. 살짝 볶다가 얇게 썬 마늘과 대파가 올 라간다. 매콤한 냄새가 주방 전체 에 풍긴다.

요리할 때의 이 냄새는 입맛을 돋워 준다.

다다다다닥.

칼이 도마를 때리는 소리도 마 음을 편하게 한다.

당근, 피망, 양파가 추가로 올 라가고 미리 만들었던 양념이 올 라간다. 기름과 함께 재료 구석구 석으로 스며든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타지 않게 팬을 움직이 며 팬과 재료, 팬과 불의 위치를 조절하는 거다.

“흐음. 좋아.

냄 새 하나는 깡패다.

연우는 적당한 그릇에 제육볶음 을 옮겨 담았다.

“흰밥하고 마늘, 고추, 쌈장까 지.”

상추도 필수다.

저녁이 아니라 점심으로 간단히 해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이었다. 당연히 3인분 같은 1인분이었고, 로비에 수저를 들고 기다리는 이 자젤을 생각하지 못했다.

“우와! 제육이다!”

“…… 내 건데.”

“뭐야! 양 많잖아! 나도 줘!”

“딱 1인분인데.”

그릇에 산처럼 쌓인 제육이다. 누가 봐도 3인분. 아니, 거의 5인 분에 달하는 양이었다. 하지만 그 건 일반 사람들의 시선에서였다.

“치사해! 왜 혼자 먹냐!”

“너희 없었잖아! 언제 끝내고 온 거야?”

이자젤과 혜영은 마법 상점의 재고를 채우기 위해 움직였고, 요 섭과 바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델과 천인종은 몬스터 상점을 채 우기 위해 사냥을 나갔으며, 필리 아와 쇼타는 낮잠을 자러 간 상태 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며 혼자 먹고 싶었던 거다.

가끔은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술을 먹는 것도 좋다. 바쁜 일상 에 치이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동 안 하지 못했던 깊은 생각을 하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음식에 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알아서 해 드세요.”

연우는 자연스럽게 이자젤과 다 른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으로 제 육 하나를 들었다.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쏙, 입으로 들어 간 제육은 입안에 고소한 기름과 매콤 달달한 양념의 향연을 보여 준다.

이거다.

요즘 필리아의 양식, 쇼타의 일 식만 먹으면서 잊고 있었던 맛. 정겨우며 자극적인 요리!

연우는 상추를 하나 들어서 횐 밥과 제육의 고기와 채소를 올렸 다. 마늘 하나를 쌈장에 찍어 올 리고 고추도 하나 올렸다.

양손으로 살포시 감싼 쌈을 입 에 넣는다.

생각보다 커서 입이 많이 벌려 졌지만, 보는 사람도 없다.

원래 이렇게 먹어야 더 맛있는 거다.

아삭.

상추, 마늘, 고기가 동시에 씹 혔다. 다시 움직였을 때 고추와 고기가 씹혔다. 매운맛이 올라올 때 흰밥이 그걸 진정시켰다.

“이게 환상적인 조합이지.”

이자젤이 빠르게 옆으로 다가와 젓가락으로 제육을 휘젓는다.

“악! 밥 퍼 와! 줄 테니까!”

“흐흐. 진작에 그럴 것이지.”

둘이 먹기엔 조금 적었다. 하지 만 부족하면 또 해 먹으면 된다.

“수이니는 잘 있을까?”

“그러게……. 뭔가 간 지 오래된 거 같은데, 그건 또 아니네.”

“한 달 정도 지난 건가.”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제대로 만들면 돌아오겠지?”

“그러겠지. 너도 됐고 후름도 됐으니 같이 있기 좀 그러겠지.”

둘은 다시 술을 들었다.

식당 밖으로 하얗게 변한 세상 이 보였다.

블랙 카우 울타리 안에서는 헤 르메스가 열심히 눈을 녹이고 흙 이 젖어 쓸려 내려가지 않게 말리 기도 했다. 리젤은 게헨나르 위에 쌓이는 눈을 치웠고, 삼미호는 붉 은 귀 북극여우랑 노느라 바빴다.

“에이, 뭔가 불안한데?”

연우가 중얼거리자 이자젤이 갸 웃했다.

“ 왜?”

“꼭 이런 조용한 날은 얼마 가 지 않더라고.”

“…… 그랬나?”

“아스가르드 안에 있을 때도 그 랬잖아. 조용해질 만하면 꼭 이벤 트 터져서 천계나 마계에서 넘어 오고, 동방 대륙이 뒤집히거나 수 인 족이 몰려왔지.”

“그거야 운영자들의 농간이었 고.”

“그래, 그러니까 더 걱정이라는 거야.”

한 번씩 넘어오는 레인을 만나 서 물건을 팔고 사는 것. 던전을 만들고 세계를 설계하는 것. 거기 에 악의의 대륙이 더 활성화되도 록 던전을 심는 것.

겨울이 온 농장에서 연우가 할 일은 그게 전부였다.

‘찝찝하단 말이야.’

그것도 상당히.

수이니는 정신을 잃었다.

비명이 들렸다. 수이니의 목소 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니까.

눈을 떴을 때 알았다.

“…… 네가 비명을 질렀던 거 니?”

꿈뻑.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만 감았다 뜰 뿐이었다. 형체가 불분명한 반투명한 몸,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수한 힘, 진한 속성력. 이건 분명 정령이었다.

“말을 못하는 거야?”

수이니는 검사였지만 엘프였고, 숲이나 정령과의 친화력은 상당했 다.

“왜 여긴……

수이니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 었다.

분명 정령의 힘이었고 순수하 다. 하지만 이 공간 자체는 전혀 순수하지 않았다. 인위적이고 어 색한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거다.

“여기는 도대체 뭐지?”

꾸욱.

여성의 몸인가? Im 남짓의 사 람 형상을 한 정령이 수이니의 소 매를 끌었다. 물리력이 완전하지 않아 정령의 행동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힘이 느껴졌다.

“같이 가자는 거지? 알았어.”

수이니는 주변을 보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아마존 중앙이었다. 나무 와 동물, 몬스터가 전부인 곳. 일 견에선 죽음의 땅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프리카보다 위험한 곳이 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평야가 많아 개발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지구 의 허파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기에 폭격도 불가능했고, 원주민조차 길을 잃을 정도로 험 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 숨어 있는 강한 몬 스터들. 당연히 위험하디 위험한 곳이었고 지구상에서 바닷속을 제 외하고 가장 인적이 없는 곳이었 다.

그런 곳이기에 이런 정령의 공 간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수이 니의 상식에서 자연이 발달한 곳 에선 정령이 있는 건 당연했으니 까.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했다.

이 정도 크기의 정령이 말을 못 하는 것도 이상했고, 주변에 보이 는 정령들도 뭔가 잘못된 건지 움 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어느 정도 걷자 듬성듬성한 숲 조차 사라지고 평야가 등장했다.

아마존 안의 또 다른 공간이었 으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저 평야 끝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성’ 건축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감각.

어디선가 느껴 본 힘이었다.

“뭐지.”

찌릿.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허공에 거대한 눈이 내려다보는 섬뜩함. 수이니는 웬만한 쓰리 클래스 마 스터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강자 다.

“지금의 나는 이길 수 없다.”

수이니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접근을 못하겠다고?”

해루스는 작금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차원 상인을 내려 주고 협회까지 연결했다. 그 런데 그걸 거절하고 레인만 보겠 다고?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그 연우라는 인간이 해 루스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것 인가?

모두 말이 되지 않았다.

해루스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전에 무시하고 폈다가 벌금을 낸 기억이 있기에 불은 붙이지 못했

다.

그깟 공무원 월급 받으면서 담 배 하나 마음대로 피우지 못한다 는 게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 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직장인 의 비애였으니까.

‘이렇게는 못 산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 위에서 움 직이면 해루스는 책임을 안고 떠 나야 하는 총알받이에 불과하다.

‘먼저…… 먼저 움직여야 해.’

친분이라도 쌓는다는 게 이번 계획의 목표였다. 하지만 완벽하 게 실패했다. 협회를 통해 차원을 건너가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협회를 배척하는 사람한 테 협회를 등에 업고 간다면 호감 을 살 수 있을까?

“해루스 님.”

“ 왜.”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서 말 해. 안 그래도 답답해 죽을 것 같 으니까. 너까지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말했는데 더 답답하면 죽일 줄 알아.”

분노가 뚝뚝 떨어진다.

센드루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 을 열었다.

“그 사자 한 명 남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 명령권은 저희가 가 지고 있고요.”

해루스는 그제야 관심이 있다는 표정으로 센드루스를 돌아봤다.

“예비 여명도 하나 내릴 수 있 을 것 같은데……

“여명?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거 우리 담당 차원에 딱 하 나 남은 여명이야. 게다가 사자도 마찬가지고. 리셋되기 전까지는 사자 투입도 안 되는 거 몰라?”

“그, 그게 어차피 리셋 불가능 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불가능하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리셋 타이밍은 놓쳤지만, 그 연 우라는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경 합에 나온다면 리셋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사자 한 명과 여명 하나는 리셋을 위해 필요했다.

“경합…… 경합이라.”

경합이라 하면 최상위 차원의 세 종족이 선택한 영웅을 뽑기 위 한 시험이었다.

차원 관리의 아리움.

창조 관리의 케티움.

소멸 관리의 세리움

이 세 종족은 이 우주를 관리하 는 관리자였다. 다행인 건지 불행 인 건지, 각 세 종족이 가진 힘은 너무 치우쳐 있었고 서로 힘을 합 하지 않으면 큰 힘을 내기 힘들었 다.

그래서 영웅을 뽑는 거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이쪽 차원 을 노리는 적을 상대하기 위함이 다.

문제는 영웅이라는 존재는 항상 70번대 이상의 중상위 차원에서 뽑았고, 아주 가끔 50번대 차원에 서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래도 굳이 32번처럼 하위 차 원에서…… 그것도 몰래 뽑는 이 유는 뭐지?’

아무리 봐도 수상한 상황 아닌 가.

‘이걸 누구한테 가서 신고할 수 도 없고.’

위의 권력 구도나 정치 관련 사 항은 해루스 정도의 공무원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괜히 신고 했는데 그 신고를 받은 책임자가 차원관리국 국장과 한패라면?

‘난 뭣 되는 거지.’

그래서 결정한 게 어딘가로 갈 대표자랑 친해지는 거였다. 아니, 말은 친해진다는 거지만, 사실 상 위 차원의 존재로서 의지하고 기 대게 할 작정이었다.

“이걸 내가 확 가로채?”

“해, 해루스 님?”

해루스는 센드루스를 보고 입을 가렸다. 옆에 있는 줄 모르고 중 얼거린 게 화근이었다.

“어쩔 수 없다. 여명을 사자로 전달해.”

“네, 맞습니다.”

“빛을 거둬서 무력 수준을 낮추 고 불법적인 건 싹 빼. 제대로 예 의 갖춰서 전달하는 거야……. 지 구를 노리는 적이 있고 그걸 막기 위해 움직인 거라는 걸 반드시 말 해야 하고……

어쩔 수 없었다.

리셋을 포기하더라도 미래의 영 웅이 될 연우라는 인간과 친분을 쌓는 게 더 좋았다.

어차피 리셋하지 않을 거면 여 명은 없어도 된다.

사자만 죽지 않으면 차원 관리 는 어렵지 않으니…….

“티, 팀장님?”

“왜, 무슨 일이야?”

“여, 여명이…… 탈취됐습니다.”

“뭐라고? 왜? 무슨 일인데?”

“정령의 숲에 대기하고 있던 사 자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사자 도…… 사자도 죽었습니다.”

“이런 미친!”

사자가 죽었다.

그렇다는 건 이제 32번 차원은 해루스 팀의 손을 떠났다는 걸 말 한다. 어떠한 제제나 지원이 불가 능하고 사자의 추가 투입은 시간 이 한참 걸린다.

여명도 탈취됐다. 그건 연우라 는 인간에게 생색은커녕 접근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는 거다.

해루스는 사자의 위치를 추적해 영상을 띄웠다.

“이런 미친…… 저 인간은 도대 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 거지?”

믿을 수 없었다.

해루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 잠깐 그럼 저 차원은 어떻 게 되는 거지?”

“네? 바로 사자 투입하겠습니 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차원 관리 권한은 찾을 겁니다.”

센드루스는 왜 당연한 걸 묻느 냐는 표정이었다.

“아니, 저 정령의 숲이라는 계 (界). 저기 소유권 누구한테 있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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