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편_ 일상으로(4)
연우가 좋게 넘어가면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참 묘했 는데, 마치 연우와의 거리가 권력 의 서열인 것처럼 치열한 신경전 이 오갔다.
연우 바로 앞은 이진철과 해서 웨이다. 조금 뒤에 시누자키 아이, 데이비드, 스미스가 있었고 그 뒤 엔 이지훈과 이찬식이 서 있었다.
“연우 님!”
“어? 소영 씨도 왔네요. 이번에 전국 리그 준우승했다면서요?”
“앗! 들으셨어요? 부끄럽네요. 우승을 못해서……
한소영의 시선이 이찬식에게 잠 깐 머물렀다. 마치 ‘네가 여기는 왜?’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연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그 정도면 충분하죠. 무슨 일로 왔어요?”
“아아, 오랜만에 장비를 새로 구할까 해서요! 그리고 몬스터도 판매한다는 곳이 여기 맞죠?”
한소영의 말에 모든 시선이 연 우에게 쏠렸다. 연우가 가볍게 끄 덕이자 한소영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확 펴졌다.
“정말이었군요!”
“다들 그거 사러 온 거예요?”
“네, 장비도 함께요.”
이진철이 블랙 카드를 꺼냈다. 이번엔 절대로 결제가 막히는 일 이 없을 거라는 시위였다. 해서웨 이도 마찬가지로 카드를 꺼내 들 었다.
“흥, 협회는 또 돈이 부족하겠 네요. 이번엔 절대로 부족할 일 없을 겁니다. 저회는!”
“그렇게 확신할 순 없을걸? 이 번에 김상철 박사님에게 약속을 받았거든. 그게 무슨 말인 줄은 알지?”
“흥, 나도 마찬가지다. 셰이크와 미국? 우리는 유럽과 러시아야!”
“풉. 지금 나 웃기려는 거지? 유럽? 러시아? 이토석 파동의 최 대 피해자면서.”
연우의 ‘이토석을 주면 비싸게 살게요’라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말로 이토석은 8단계 마력석 보다, 아다만티움보다 높은 가치 를 부여받으며 세계 곳곳에서 수 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토석이 어떻게 쓰이는지 도 모르면서 말이다.
“흥, 그런 거야 얼마든지 되팔 수 있다는 거 모르나?”
녹튼은 하나의 단체일 뿐이다. 이토석 수요는 얼마든지 있었고 당장 팔아도 사 줄 사람이…….
“뒤를 보고 말하시지. 사 줄 사 람이 다 여기 있는 거 같은데?”
해서웨이는 아차, 했다. 그의 말이 맞다.
이곳에 모인 사람만 해도 세계 주요 돈줄을 움켜쥔 사람들이다. 소요와 공급의 기준치를 바꾸고 시세를 움직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자자, 싸우지들 마요. 이번에도 이토석과 교환이 되니까요.”
“정말입니까?”
이진철이 확인차 되물었다. 연 우의 이토석 구매는 악의의 대륙 에 있을 때 끝냈으니까. 그때 많 은 물량을 구매했고 더 이상은 필 요 없을 줄 알았다.
“네, 해서웨이입니다. 이토석 있 죠? 네네, 다 끌어모아 배달해 주 세요. 당장이요! 러시아? 안 내놓 으면 폭격한다고 해요. 지금 어디 서 감히 반항한단 말입니까?”
“시누자키 아이입니다. 당장 이 토석을 구해 주세요. 네, 가능한 물량은 공간 이동을 시켜 주시고. 더 많은 건 전투기 사용하세요. 네, 바로 필요합니다.”
“스미스입니다. 항공모함이 필 요합니다. 공간 이동 사용 가능자 최대한 모으고 각 항공모함에 실 려 있는 모든 이토석 랩터로 배달 부탁합니다. 네, 당장요! 북태평 양, 태평양, 지중해. 모든 항공모 함에서 당장 빼 주세요!”
가장 강한 무력, 가장 안전한 실험실, 가장 격리가 쉬운 실험실. 이러한 여러 이유에서 미국은 각 항공모함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 다.
“데이비드입니다. 셰이크 님. 당 장 이토석이 필요합니다. 아, 그 리고 그 계좌에 자금 확인도 부탁 합니다. 네, 맞습니다.”
데이비드까지 통화가 끝났다.
이진철은 벙찐 상태로 그들을 바라봤다.
“훗,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어? 빨리 전화해야지 이진철 협회장.”
해서웨이가 비웃었다.
하지만 이진철은 그런 해서웨이 를 더 비웃어 줬다.
“미안하지만, 난 미리 챙겨 왔 지.”
양쪽 벨트에 묶인 주머니 몇 개 를 가리켰다.
승자는 이진철이었다.
연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 절레 젓고는 이동했다.
오랜만에 사람이 북적거린다. 이럴 때, 휴양지 홍보를 하고 매 출 좀 올려야 한다. 온 김에 며칠 쉬고 가라고도 해야겠다.
“다들 모이세요. 왔으니까 관광 부터 하자고요.”
모두 쇼핑부터 하고 싶었지만, 연우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스키장이 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하얀 눈 과 산들이었다.
그들이 선 곳은 여러 산 중 가 장 높은 산의 정상.
한쪽엔 산 밑에서 이곳으로 통 하는 워프 게이트가 있었고 그 게 이트 옆으론 뜨거운 수증기를 뿜 는 오뎅, 진열된 라면, 시원하고 따듯한 음료들까지 비치돼 있었 다.
딱
연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이진 철, 최민아, 해서웨이, 시누자키 아이, 스미스, 데이비드, 이지훈, 이찬식, 한소영과 그의 팀원들까 지 스키복이 입혀졌고 스키와 스 노우보드가 생겨났다.
“이걸 타면 되나요?”
한소영이 발랄하게 물었고 연우 는 끄덕였다.
모두 머뭇거리는 게 보였다. 당 연하게도 이런 걸 할 생각이 없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우가 뒤 에서 뿌듯한 얼굴을 한 채 서 있 었다.
이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그, 그럼 저부터 타 보겠습니 다!”
“저는 못 타는데……
이진철이 타 보겠다며 나섰고 시누자키 아이는 못 탄다고 울상 을 하곤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알려 드릴게요.
“저도요! 저도! 저도 못 탑니 다!”
눈치 하난 정말 빠른 해서웨이 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억울한 이진철이 소리쳤다.
“아닙니다. 해서웨이는 제가 알 려 주겠습니다! 어떻게 연우 님 즐기지도 못하게 방해한단 말입니 까!”
“그, 그건……
해서웨이가 당황했다. 당연히 연우와 함께 있고 싶어서 소리쳤 던 건데 이렇게 이진철이 적극적 으로 방해할 줄은 몰랐다.
웬만한 소리였으면 무시하고 떼 를 썼겠지만, 연우를 방해한다는 말에 머뭇거린 거다.
“자, 넌 일로 와!”
“아 씨! 넌 왜 방해야!”
연우는 둘이 싸우는 걸 보며 고 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누자키 아이에게 다가가 알려 주기 시작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키장은 실 패였다.
연우는 빠르게 장소를 바꿨다.
이번엔 전에 식구들과 들렀던 해변.
역시나 풍경을 보고 감탄하는 이들이 보였다. 이 장면을 두 눈 으로 본다면 본능처럼 당연한 반 웅이 었다.
거기서 한 시간을 논 다음에 간 곳은 식당이었다. 필리아와 쇼타 가 그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했 다.
진수성찬이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온천까지 즐긴 후에 펜션에 들어가야 했다.
“쇼핑은 내일 아침부터 할게요.”
연우가 그걸 정해 줬다.
아무도 반발하지 못하곤 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특별히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몸이 나른 하고 기분까지 붕 뜬 느낌이었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스 키장의 눈은 만년설산으로 육체를 튼튼하게 해 주고 냉기에 저항을 급속도로 올려 줬다. 해변은 정령 석과 마력석으로 가득해 마력의 친화력과 회복률을 상승시켜 줬 고, 온천은 육체의 불순물을 제거 해 주고 피부를 맑게 만드는 효능 이 있는 만년온천수였다.
아침이 밝았다.
깊은 잠에 피로를 싹 푼 이들은 모두 이른 시간에 식당으로 모였 다.
“일찍 나왔네요. 다들.”
“설레서 더 잘 수가 없었습니 다. 오늘 쇼핑의 날이잖아요!”
해서웨이는 처음 봤을 때와 너 무 다른 이미지였지만, 이것도 나 쁘지 않았다.
“그리고 몸도 왠지 더 날아갈 듯합니다. 역시 농장은 기운이 달 라요.”
참고로 농장 자체에 마력 농도 는 밖보다 수십 배가 높고 요정의 가호, 게헨나르의 보호, 반도나무 의 가호 등등 여러 버프가 갖춰진 상태였다.
연우는 어제 다녔던 세 곳의 효 능을 말해 줬고 저녁으로 먹었던 음식의 재료, 담금주까지 설명했 다.
“아, 참고로 각 재력에 맞게 청 구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 다.”
“…… 아, 무료가 아니었군요.”
“그럼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별다 른 느낌이 없겠지만, 밖으로 나가 면 확연히 다를 겁니다. 아마 게 다가 그 버프도 꽤 오래가니, 선 발대로 간다는 것에 도움도 될 거 고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 농장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갈 곳은 무기 상점 입니다.”
그곳엔 요섭이 대기하고 있었고 바벨은 제작 중인지 망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손님이 많네요.”
다들 신이 나서 돌아다니기 시 작했다. 한소영, 이찬식, 이지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기를 봤고 실탄이 두둑한 이들은 전설급 위 주로 봤다.
“이건 이번에 나온 신상입니다. 전설 등급으로 표기돼 있지만, 가 히 얼티밋. 전설 위 등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성능을 지녔죠.”
요섭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 다.
포 클래스 마스터가 되면서 강 철만으로도 전설급을 만드는 경지 에 이르렀고, 바벨까지 마음대로 시켜 먹으니 파는 족족 남기는 지 경이었다.
“와, 가격이 많이 내렸네요?”
비율로는 크지 않았지만, 전체 가격이 워낙 높았기에 체감도 컸 다.
그 덕에 모두 한가득 쇼핑했고 입구에선 언제 왔는지 모를 리젤 이 카드기를 들고 있었다. 카드도 가능하고 계좌 이체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흥, 이번엔 절대 지지 않겠어!”
“조심하는 게 좋을걸? 마법 상 점이랑 몬스터 상점도 있거든.”
해서웨이와 이진철은 또 쓸데없 이 다퉜다.
“음, 꽤 많이 사셨네요. 내구도 가 좋은 무기 위주로요.”
“네, 그라니아 대륙으로 들어가 면 돌아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그게 낫겠죠.
어느덧 계산을 마쳤고 마법 상 점으로 이동해 쇼핑했다. 마지막 으로는 몬스터 상점이었는데, 모 두 이것만을 기다렸다는 듯 악귀 처럼 달려들었다.
“여기! 드래곤이다! 대박, 드래 곤이라니. 이성이 없는 아룡? 육 체 능력이 극대화돼 있고 간단한 마법 사용 가능. 마법 저항력이 좋아서 탱커로도 쓰기 좋다. 와, 이건 가격이……
누군지는 놀라도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이건! 와이번? 하피도 있네요.
이것도 가격이
또 한 명이 조용해졌다.
사실 연우가 몬스터를 파는 건 어려울 것도 없고 가격이 높을 필 요도 없었다. 많고 많은, 셀 수도 없는 몬스터를 하나 가져와서 세 뇌만 시키고 다룰 수 있는 팔찌 하나만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물건이 가격에 의해 평 가절하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이건 할부도 됩니다. 이자가 살짝 있긴 하지만요.”
그 한마디가 절묘했다.
이곳에 모인 호갱. 아니, 고객 들은 노예를 자청했다. 그것도 서 로 먼저 되고 싶다며 손을 번쩍번 쩍 들면서 말이다.
수이니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 다. 검사였으며 굳이 숨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외모를 드러내고 다녀 서 시선을 끌기도 했다.
“여긴 또 어디야?”
완연한 탐험가의 옷차림을 한 수이니는 아마존 깊은 곳에 들어 와 있었다.
나무와 흙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인공적인 건축물 사이로 이상한 기운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온 것이었다.
수이니가 마력의 운용으로 그 기운을 건들자 파직, 전기가 튀며 수이니의 몸을 밀쳤다.
“오호, 이것 봐라?”
수이니는 소매를 걷었다.
꽤 반항적이다. 수이니는 마력 을 끌어올려 강하게 팔을 밀어 넣 었다. 짙은 초록색 에너지. 마력 과는 또 다른 힘이었다.
파지직!
수이니를 밀어냈지만, 그녀가 어디 보통 엘프던가.
“이 자식이.”
순간, 조용했던 아마존 중앙에 서 강렬한 빛과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