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8편_ 일상으로(3) (123/207)

제138편_ 일상으로(3)

연우와 이자젤의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 개의 던전을 만들고 하나는 해변, 하나는 스키장, 하나는 온 천으로 만들었다.

“인공 해변이 가장 어려웠네.”

“보여야 하는 배경이 가장 크니 까. 그래도 다 괜찮은데?”

연우는 더 기다릴 것 없이 농장 사람들을 불렀다.

“놀러 갈 사람!”

“저요! 저요!”

“저도 갑니다!”

“저도요!”

가장 빠른 이는 삼미호였다. 요 즘 부쩍 바빴던 연우가 반가웠던 탓인지 항상 근처에 있었기 때문 이다.

“다 가자! 해변부터!”

간판이 흔들거리며 연우, 이자 젤, 후름, 필리아, 쇼타, 삼미호, 댕댕이, 검둥이, 리젤, 헤르메스, 천인종, 아이델이 들어갔다.

꽤 많은 인원이 작은 문으로 들 어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하지 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예 새로 운 공간이었다.

[해변으로 가는 입구].

간판이 작게 흔들렸다.

“와……. 예쁘다.”

연우와 이자젤은 이 해변에 가 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건 백금빛 의 모래사장이었다. 곳곳에 높이 솟은 야자수가 그늘을 만들고 있 었고 안락의자와 천막도 존재했 다.

피날레는 역시나 바다와 하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가 진 마린 블루의 바다색. 바로 해 변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 명했다. 지평선과 이어지는 하늘 은 하얀색에서 짙은 회색으로 가 는 파스텔, 마치 밤과 낮이 동시 에 있는 느낌이었다. 또, 알알이 박힌 별과 달의 빛무리는 하나의 은하를 가져다 놓은 착각을 일으 킨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세계였다.

“와, 대박. 진짜 쩐다.”

누군가 했더니 삼미호였다. 어 디서 저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 겠다.

“와아아아!”

이자젤이 가장 먼저 바다로 뛰 어들었다. 만들면서도 몇 번이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

뒤를 이은 건 삼미호였고 댕댕 이와 검둥이였다.

나머지는 쭈뼛거리고 있었다. 눈치를 보는 거였다.

“자, 다 들어간다! 이건 명령이 야!”

식구라고 하지만 사실 이자젤과 후름을 제외하곤 연우가 상사나 마찬가지였다.

몇몇은 움찔거리고 몇몇은 슬슬 발을 뗀다.

연우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나보다 늦게 들어가면 두고 보 라고!”

연우는 빠르게 뛰었다. 그러자 필리아와 천인종은 기겁하며 날았 고 나머지는 재미있다는 듯 뛰었 다.

첨벙!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처음엔 그저 물을 조금씩 흩뿌리는 거였 는데 점점 오기가 생긴 모양인지 마력이 꿈틀거렸고 천인종은 신력 까지 끌어모았다.

차으}! 촤아아악!

작은 파도가 되고 소용돌이가 생성되더니 먹구름이 낀다.

콰아아앙!

번개가 몰아치고 토네이도가 생 성 된다.

“야야! 그만해!”

연우가 말리고 나서야 다시 화 창한 기후를 되찾았다. 이후엔 마 력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뿌리거 나 각자 수영을 하면서 놀았다.

스윽.

그때 몰래 아공간에서 목을 내 민 헤맨이 카메라를 들었다.

짙은 눈썹 밑으로 반짝이는 헤 맨의 눈동자엔 렌즈를 통해 농장 식구들이 노는 모습이 그대로 보 였다.

연우는 이자젤과 리젤을 상대로 물을 뿌렸고, 후름은 헤르메스와 수영 시합을 했다. 삼미호는 두 강아지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선 귀를 잡아당기고, 필리아와 쇼타 는 물에서 잡은 ‘게’를 들어 올렸 다.

찰칵.

그 순간이 헤맨의 카메라에 담 겼다.

도대체 왜 오는 거야?”

이진철은 뒤를 따라오는 녹튼 문양이 그려진 차량을 바라봤다. 녹튼의 해서웨이가 탄 차였다. 항 상 헬기로 다니더니 전에 한 번 연우가 헬기는 시끄럽다고 한마디 했다고 차량으로 바꾼 거다.

그뿐인가.

레드 문, 미국 지부, 일본 지부 까지 줄줄이 따라오고 있다.

다행히 연지연호는 악의의 대륙 에서 열심히 던전 클리어 중이었 다.

“저건 또 뭐야?”

“암살자 한소영의 팀입니다.”

옆에 있던 최민아가 툭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이번 전국 리그 준우승자입니 다. 저 차는 암살자 한소영팀의 전용 차량이고요.”

“아, 그래?”

이진철은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 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프리카, 악의의 대륙 등. 모든 야전을 찾 아다니고 있는데, 그런 신사적인 ‘스포츠’에 신경 쓸 이유가 없으니 까.

“좀 알아 두시면 좋을 겁니다.”

최민아의 말투는 차가웠다.

악의의 대륙까지는 이해했다. 그건 적응해야 하는 거고 막아야 했던 거니까. 그렇지 않으면 지구 전체를 삼킬 정도로 위험한 암 덩 어리 였다.

이번엔 달랐다.

그라니아 대륙이라는 곳으로 간 단다.

그것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대륙의 선발대로 말이다.

“이해해. 어쩔 수 없잖아.”

“다른 나라에서 해도 됩니다.”

“우린 뺏기는 거야.”

생각이 달랐다.

최민아는 위험성만 본 거고 이 진철은 그곳에 가서 얻을 걸 생각 했다.

“그까짓거 뺏기면 어때요? 만약 선발대가 모두 죽으면? 우리나라 협회는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협 회를 다른 놈들한테 맡길 순 없잖 아요?”

민아는 기다렸다는 듯 쏘아붙였 다.

그렇긴 하다. 지금처럼 한국의 세계사용자협회가 일을 잘하고 욕 을 먹지 않는 이유는 이진철과 최 민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안에서만 영향력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먹어 주는 사 용자이기에 정부에서 아무 말 못 하는 거다.

“그럼 네가 남으라고 했잖아. 그건 또 싫다며?”

“어떻게 그럽니까? 제가 없으면 협회장님이 죽을 확률이 더 높아 지지 않습니까. 그럼 저보고 협회 장 하란 소린데, 일은 또 얼마나 시킬려고. 죽어도 그렇게 못합니 다.”

“에이, 나 때문에 따라가는 거 라고?”

솔직하게 말하라는 듯 흘겨봤 다.

“아, 몰라요! 하여튼 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이번에 장비 제대 로 맞추지 않으면 절대 반대할 거 니까 그렇게 알고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게다가 우리만 가는 게 아니잖아.”

“녹튼, 레드 문, 다른 나라 지 부. 거기에 몇 군데 대길드까지 가겠죠.”

“그래, 다 가는 거야. 안 가면 뒤처지는 건 우리고. 우리가 뒤처 지면 우리나라가 뒤처지는 거다. 후배들한테 자랑스럽게 떠들 이야 깃거리 주면 좋잖아.”

최민아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또 두 대의 차량이 보였다. 가 는 길을 봐서는 농장으로 가는 건 데, 처음 보는 차였다.

“저긴 어디죠?”

“네가 모르는 것도 다 있네. 저 기 로열 나이츠 길드잖아.”

“네? 저쪽에서 여길 어떻게 알 았죠?”

사실 이 농장에 대한 정보는 대 외비나 마찬가지다. 따로 비밀이 라며 숨기진 않지만, 누구도 나서 서 말하지 않는다.

“저 로열 나이츠 길드장이 누군 지는 알지?”

“네, 이지훈…… 아, 게이트 폭 발 사건 때 이쪽 담당이었나요?”

“응, 그때 인연이 있던 모양이 야. 그리고 이번 선발대에 포함될 것 같기도 하더라고. 자기 아들이 먼저 나선다고 했던데……

“그 이번 전국 리그 우승자 말 이군요. 기사 길드장 아들이 마법

사를 택했다고 유명해진.”

“그렇지.”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농장까지는 금방 도착했고 하얗 게 눈이 내린 농장은 또 달라져 있었다.

이진철이 문을 열고 내릴 때였 다. 녹튼의 해서웨이가 언제 내렸 는지 멀리 연우가 보이는 식당으 로 뛰어가고 있었다.

“이이! 내가 질 줄 알고!”

이진철은 해서웨이를 향해 소리 쳤고 해서웨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뒤로 한 채 중지를 세웠다.

“야! 거기 안 서!”

“닥쳐!”

최민아는 그 모습을 보다가 손 으로 얼굴을 쓸었다. 정말 볼 때 마다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 었다.

이후로 검은 세단들이 줄줄이 도착했고 안에서 각 나라에서. 아 니,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나라를 가도 대접 을 받는 사람들이다.

대통령과 만나도 긴장하는 쪽은 이쪽이 아니라 대통령과 그의 측 근들이라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이찬식은 전국 리그 결승전에서 도표정의 변화가 없다고 해서 ‘철면’이라는 또 다른 별칭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방금 도착한 이 곳에선 그조차도 안면 근육이 푸 들푸들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

“아버지, 이곳이 정말 소문의 그곳이 맞습니까?”

이찬식은 하얀 눈이 쌓인 작은 농장을 그 어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려봤다.

외제차가 가지런히 주차된 간이 주차장, 위로 펼쳐진 울타리와 그 안에서 몸을 부대끼는 블랙 카우 와 블랙 쿡들. 식당, 펍, 집, 펜션, 카페, 대장간. 그리고 몇 개의 상 점들까지.

아무리 봐도 특별한 건 없었다.

“맞아. 뭐, 네가 사고 치는 아들 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놀라는 것도 자제 하고 묻는 것도 자제해. 조용하게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이곳은 전설이었다.

고위급 사용자, 대길드 간부, 한국 정부에서도 쉬쉬하는 곳. 당 연히 이찬식 정도의 사용자는 로 열 나이츠 길드장인 이지훈의 아 들이 아니었으면 듣지도 못했을 곳이었다.

어떤 소문이냐고?

몬스터를 키우는 괴물 농장 주 인, 개당 조 단위가 넘어가는 장 비와 몬스터를 판매하는 곳, 협회, 미국, 녹튼과 같은 세계적인 단체 에서 장비 하나 사려고 고개를 숙 이고 대기한다는 곳, 게이트 폭발 사건, 몬스터 웨이브, 아프리카에 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는 것. 게 다가 이번에 등장한 일본 검은 땅 과 악의의 대륙까지 그의 손이 미 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까지.

이미 아무도 모르는 음지에서 지구를 몇 번이나 구했다는 히어 로 영화 같은 전설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 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었 다.

‘그런데……

게다가 저걸 봐라.

대한민국 5대 길드인 로열 나 이츠 길드장까지 한마디로 오라 가라 하는 한국 지부 협회장. 그 리고 옆엔 말로만 듣던 음지의 여 왕인 녹튼의 해서웨이.

둘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열을 올리고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둘이 도착하자 식당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손을 뻗어 멈추게 한 다.

‘저게 가능해?’

끝이 아니었다. 해서웨이가 그 남성의 품에 안긴다. 협회장도 안 기려……?

“저게 무슨 짓이야?”

다행히 남성은 해서웨이와 함께 협회장을 밀어냈다.

뒤로 레드 문의 데이비드와 미 국 지부의 스미스, 일본 지부의 시누자키 아이까지 도착해 공손하 게 인사한다.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 야.’

이런 광경을 살면서 볼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해 봤다.

저들이 고개를 숙일 존재?

결단코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잘 찾아봐야 셰이크라는 중동 석유 부자와 협회의 위원회라는 사람들? 그들도 단순히 돈만 있다 고 그런 영향력을 갖춘 건 아니 다. 레드 문, 협회와 같은 곳을 소유하다시피 한 이들이기에 가능 한 것이다.

“후…… 이게 도대체 현실인 건 지.”

이번에 자신이 대한민국 사용자 대전 전국 리그에서 우승한 것으 로 콧대가 높아져 있던 것 자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이지훈이 아들 이찬식을 이끌고 식당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 님! 보고 싶었어요! 이번 에 제가 악의의 대륙에 지사 세 개나 만들고 왔답니다.”

“지사만 만들면 단가? 일반 사 용자들까지 지원해서 북적거리게 만들어야지!”

해서웨이와 이진철의 다툼이었 다. 뒤에 있던 시누자키 아이와 스미스도 웃으며 말했다.

“저회도 지부를 만들고 일반 사 용자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 했습니다. 굉장한 속도로 늘고 있 어요.”

“우리 미국에선 항공모함을 이 용해 사용자를 수송하고 있어요. 던전 입구에선 대기표를 뽑고 며 칠을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벌써 그 정도가 됐어요?”

이찬식은 대답한 남성을 바라봤 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어?”

이찬식이 검지로 삿대질하며 입 을 열었다. 급격히 당황한 이찬식 의 얼굴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뭐, 뭐하는 거야?”

가장 당황한 건 이지훈이었다.

항상 진중한 아들이 이런 사고 를 치다니.

이곳에서 이지훈과 이찬식은 대 리와 인턴이다. 이 앞은? 회장, 사장, 이사, 전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감히 인턴이 회장과 간부들의 대화를 끊고 삿대질까지 하고 있다.

이찬식은 빠르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디서 본 얼 굴하고 너무 비슷해서.”

“아아, 사용자 라이선스 시험에 서 보지 않았습니까? 그때 인상 깊었습니다.”

연우도 기억이 났다.

이찬식은 연우의 말에 입을 떼 지 못했다.

“혹시 아는 사이십니까?”

이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이지훈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도움받았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달 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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