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편_ 일상으로(2)
연우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최상급 던전을 만드는 건 하루에 세 시간으로 줄 였고 세계를 구성하는 것도 더 여 유를 가지기로 했다.
브랜드를 런칭하고 이름을 알려 더 비싼 값을 받기 위해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레인의 조언 덕분 이었다.
가장 큰 건 연우의 귀차니즘이 발동됐다는 거였다.
“오늘은 내가 요리를 해 줄게 요. 이건 일본의 나베랑 비슷한 건데, 전골이라고 부릅니다.”
연우의 말에 필리아와 쇼타가 놀람과 궁금증을 표출했다. 둘은 쉬면서 요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 는데 갑자기 연우가 들어와 요릴 하겠다고 하니 좋을 수밖에.
둘은 평생 요리만 하고 산 이들 이다.
새로운 요리를 보는 건 당연히 좋았고 연우라는 사람하고 통하는 것도 요리였기에 더욱 좋았다.
필리아도 그렇고 쇼타도 그렇고 연우를 어려워했던 것도 컸다.
‘이참에 좀 친해져야지.’
연우의 생각이었다.
항상 대접만 받았으니 연우가 대접해 주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이걸 봐요.”
연우는 드래곤 본으로 된 냄비 를 꺼냈다.
큼지막한 게 15인분은 족히 들 어갈 용량이었다.
가장 먼저 넣는 건 역시 물이 다. 팔팔 끓는 물에 버섯과 각종 채소를 넣었다. 버섯은 역시 송이 와 느타리다.
연우는 잠시 기다리며 재료를 살폈다.
잘게 썰린 쌍뿔 멧돼지의 고기, 얇게 저민 블랙 카우의 살과 크라 켄의 다리 조각, lm가 넘어가는 몬스터화된 키조개의 관자가 놓여 있었다.
필리아와 쇼타는 무얼 넣을지 굉장히 기대하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연우는 씨익 웃으며 테 이블 위의 모든 재료를 통째로 넣 어 버렸다.
“어어?”
“그, 그게 전골이에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재료 의 조합은 너무 과했다. 각 재료 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마구 엉켜 버릴 게 너무나 확연히 보였다.
“왜요. 실망했어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지만, 실 망한 모습이다.
“전골이라는 건 전쟁을 겪으면 서 생겨난 음식입니다. 전쟁 중에 쇠로 된 투구를 거꾸로 뒤집어 이 것저것 넣고 끓여 먹었다고 해 요.”
세계엔 전쟁 통에 생겨난 음식 들이 참 많다.
특히, 한국엔 더욱.
가장 많이 알려진 부대찌개, 피 난민이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만 든 함흥냉면, 피난처에서 살아가 기 위해 만든 돼지국밥, 한국 사 람 대부분이 모르는 미숫가루까 지.
필리아와 쇼타는 연우의 말을 들으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전골이라는 건 그 어디에 붙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만 두를 넣으면 만두전골, 버섯이 주 라면 버섯전골, 김치전골, 불고기 전골, 부재찌개전골, 라면전골까 지.”
연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냄비 뚜껑을 열었다.
화악, 풍겨 오는 향은 입맛을 자극했다. 버섯과 고기들이 섞여 만들어 낸 향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필리아와 쇼타도 마찬 가지인지 굉장히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서 먹어 보고 싶네요.”
필리아와 쇼타가 입맛을 다셨 다.
연우는 국물 맛을 봤다.
“역시 좋아.”
국자를 들어 각자 그릇에 담았 다.
필리아와 쇼타가 수저를 들고 국물을 먹었다. 눈을 감고 음미하 며 갸웃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퍼지며 급하게 한 수저 더 뜬다.
“이렇게 먹어 봐요. 국물을 먹 은 후에 채소와 고기 한 수저, 버 섯과 고기, 관자와 고기, 버섯과 채소와 고기. 이런 식으로 조합을 바꿔가면서 먹으면 질리지 않죠.”
연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미 몇 수저가 더 들어갔다.
“이야, 이거 장난 아닌데요?”
“사실 재료가 다 들어갈 때, 기 대는 안 했었는데.”
연우는 웃으며 전골을 끓이기 전부터 퍼 놨던 법을 꺼냈다. 역 시 라면과 더불어 전골엔 식은 밥 이 최고다.
“이거 남겨 둘 테니까 먹고, 이 건 이따 저녁에 다 같이 먹자. 몇 시간이면 저녁이네.”
“네!”
연우는 냄비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배를 채웠으니 일을 해야 한다. 농장은 헤르메스와 리젤이 잘 관 리하고 있으니 연우는 몬스터 상 점을 짓기로 했다. 전에 사용하던 수레를 이용할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만들어야지.”
위치는 대장간과 마법 상점이 있는 곳에 놓기로 했다. 그 옆으 로 나무를 밀고 경사를 깎아 대지 를 만들면 공간은 충분하다.
연우는 농장을 둘러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어두워진 건 진작이었다. 여름 에 비해 해가 짧아져서 시간 가늠 이 잘되지 않았던 거다.
하늘 곳곳엔 상급 마력석으로 만들었던 조명들이 빛났고 반도 나무에서도 신비로운 빛을 뿌린 다. 하얀 눈에 비쳐 더 밝게 빛나 는 게 너무 아름다웠다.
카페는 슬슬 불이 꺼지고 대장 간과 마법 상점의 불도 꺼진다. 동시에 이자젤의 펍에 불이 켜졌 다.
연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몬스 터 상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콘셉트는 블러드 우드. 대 장간, 무기 상점, 마법 상점과 같 은 크기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 만, 농장의 그 정겨운 분위기가 잔뜩 묻어나는 건 포기할 수 없었 다.
건물은 순식간에 지어졌다.
연우는 안으로 들어가 정리를 시작했다. 몬스터가 들어간 투명 공을 꺼내기 시작했다. 진즉에 완 성해 놓은 몬스터들. 그리고 설명 과 간단한 동영상까지.
마법이면 간단하다.
“후, 뭔가 깔끔한데?”
내일 해가 뜨면 인터넷을 연결 하고 카드기도 설치하면 완성이 다.
“슬슬 손님을 더 받아야겠네.”
그래도 여름엔 손님이 자주 왔 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농장이 조용한 것도 좋지만, 가끔은 시끌벅적해 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없는 손님이 생기진 않겠지.”
겨울에 즐길 만한 게 필요했다.
스키장? 보드? 아니면 썰매나 스케이트?
여러 방법이 있었다. 온천을 만 들어도 되고 휴양지로의 여행이 가능한 게이트로 패키지 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다 할까?”
“나쁘지 않지!”
이자젤이 불쑥 튀어나왔다.
“뭔지는 알고 대답한 거야?”
“당연하지. 손님이 없다고 불평 하고 있었지?”
“……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 하네.”
“그래서 이 농장에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거고!”
“…… 소름.”
정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안 거지? 이자젤은 연우처럼 심안도 없고 마법으로 연우의 생각을 읽 는 것도 가능할 리가 없었다.
“바보, 농장 이곳저곳을 보고 그렇게 고심하고 있는데 누가 모 르냐?”
“그걸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 니야?”
“아스가르드에선 매일 했던 거 잖아.”
그게 정답이었다.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할 거면 다 하자. 저기 게이트 모아 놓은 곳에.”
이자젤이 식당 옆에 여러 입구 를 가리켰다. 지하 어장, 북극, 태 평양. 세 개의 입구가 있었다. 그 녀는 그 옆으로 몇 개의 입구를 만들어 온천, 스키장, 휴양지 등 으로 향하게 하자는 거다.
“그걸로 일반 사람을 받으면 좀 그렇지 않을까?”
너무 놀랄 걸 생각하는 거다. 신고하거나 진상 부리는 일이 있 더라도 상관없지만, 필리아처럼 놀라 기절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 까.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많은 사람 받을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 들만 을 텐데. 가끔 그 사람들이 추천한 사람들이랑?”
“그렇긴 하지. 바로 할까?”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던전 형식으로 공간을 만들어 환경을 구축할지, 다른 곳으로 향 하는 입구를 만드는 것인지만 정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울 건 없었다.
“그냥 다 만들지 뭐.”
“하긴, 찾는 것도 귀찮으니까.”
일반 사람들과 이 두 명의 상식 을 비교할 순 없었다.
이 둘은 인터넷 몇 번 검색하는 것보다 던전 만드는 게 훨씬 쉬운 사람들이다. 특히, 최근 던전 설 계를 자주 하면서 실력은 더욱 늘 었다.
“온천, 스키장, 해변까지 세 개 면 되겠지?”
“여름엔 그게 최고지. 아, 그럼 태평양 낚시터랑 북극도 공개하는 건가?”
“음…… 그래도 나쁘진 않겠네.”
둘 다 편할 때 쓰려고 만든 아 지트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손님들이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할 뿐이었다.
연우와 이자젤은 소매를 걷었 다.
“저녁 먹기 전에 끝내자.”
“그래!”
역시 농장에 시설들은 하나씩 늘려 줘야 재미가 있다. 특히 겨 울엔 목장보단 편의 시설이다.
이진철은 악의의 대륙을 나왔 다.
꽤 오랜 시간 연락이 되지 않았 던 김상철 박사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단순한 통신 장비는 대 륙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수십 겹의 보안 시스템이 적용된 통신은 연결할 수 없었다.
“김상철 박사님.”
통신 막사 안에 있던 협회 직원 들이 밖으로 나갔다. 블랙 카드. 즉, 블랙 계급 이상만 들을 수 있 는 보안 통신이라는 걸 모두 아는 거다.
-오랜만이……. 무슨 전쟁하다 오셨습니까?
“아, 네. 악의의 대륙에서 지내 는 중이라서요.”
이진철은 코밑을 쓱 닦으며 대 답했다. 급한 일이라기에 바로 달 려온 건데, 영상에 비치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휴. 항상 야전에만 계시는 군요.
“한참 힘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서죠. 그것보다 박사님은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이진철은 김상철 박사가 이 정 도로 밝은 얼굴을 한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뻐 보 였다.
?그럼요. 제가 드디어 성공했 거든요.
“ 설마???????”
-게이트를 열었습니다. 위원회 랑 백악관의 귀엔 이미 들어갔고 요.
“정말입니까?”
아쉬운 티는 내지 않았다. 김상 철 박사는 협회의 지원을 받고, 협회는 미국의 지분이 가장 크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인 건 그들 다음이 바로 이 진철이라는 거다.
?네, 확실한 겁니다. 통신이 실 시간으로 연결될 정도는 아니지 만, 물건이나 사람이 오갈 수는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많지는 않지만요.
“그게 어디인가요. 엄청난 일이 죠.”
이진철은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선발대는요?”
?제가 이진철 협회장님께 연락 드린 이유가 그겁니다. 선발대로 갈 인원이 필요합니다.
김상철 박사의 밝은 표정이 굳 어졌다. 이런 부탁을 하면서까지 밝게 웃고 있을 순 없다.
“미국이나 협회에선 뭐라 안 그 러나요?”
-아니요. 위험성을 강조했더니 오히려 위원회에서 이진철 협회장 님을 보내려고 하더군요. 미국은 이진철 협회장님을 감싸던데요? 선발대는 너무 위험하다고요.
이진철은 슬쩍 웃었다.
지금까지 한 일이 빛을 보는 거 다. 아직 협회의 머리인 위원회까 지는 닿지 않았지만, 녹튼, 미국 지부, 레드 문 등은 연우의 힘을 직접 목격한 후였기에 저절로 이 진철의 영향력이 커지는 거다.
‘끝까지 아집에 사로잡혀 있군.’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그들이 이렇게 발악한다는 건 이미 이진철의 영향력이 위원회를 넘보고 있다는 증거니까. 협회 내 에 영향력만 제외하면 대외적인 힘은 이진철이 더 강했다.
?어떠십니까?
“저야 감사하죠. 언제나 앞장서 서 후배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렇게 말하니 더 미안해지는 군요. 대신 선발대로 들어가기 전 까지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박사님이 ‘최대한’이라고 하니 기대되는데요?”
-장비나…… 하긴, 장비는 그곳 에서 다 구매했군요. 가장 필요한 건 역시나 돈일까요?
“그러면 좋죠.”
이진철은 연우가 가진 장비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김상철 박사가 만드는 장비만 해 도 사고 싶지만, 팔지 않아 못 사 는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팀도 모아 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정보를 수 집하기 위해선 꽤 큰 규모가 필요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무력 부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진철은 통신을 끝내고 한쪽에 앉았다.
악의의 대륙은 정리가 거의 다 됐다.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한층 성장했고 특별한 장비도 얻었다. 협회의 다른 후배들이 빠르게 적 응할 수 있게 미리 준비도 마쳤 다.
이제 악의의 대륙은 이진철이 필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농장에 한번 들려야 겠군.”
실탄이 두둑해졌으니 전쟁터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