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편_ 독수리 오 형제(3)
첨벙.
차가운 바닷바람과 함께 투명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거품 으로 사라졌다.
연우는 작은 의자를 펴고 앉아 낚싯대를 던졌다.
쓱 멀리 날아간 루어 미끼와 찌 가 퐁당 빠진다. 다른 친구들도 질세라 강하게 던졌다. 하지만, 연우보다 멀리 나갈 순 없었다.
“너 마법사 아니었어? 근데 무 슨 힘이 그렇게 좋아?”
“원래 그런 거란다.”
이런 걸 물어볼 때가 가장 난감 하다.
“마법? 그럼 물고기도 그냥 잡 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거 있잖 아. 윙 가디움 레비오사! 하면 물 고기 떠오르는 거 아니냐?”
“그건 눈에 보이는 물체를 들어 올리는 거지…… 아니, 여기가 무 슨 호그와트냐? 내가 그런 걸 어 떻게 알아?”
사실 정확한 메커니즘은 몰라도 영화를 봤으니 그 마법의 용도를 예상할 순 있다.
첨벙.
다시 한 번 파도가 친다.
“근데 이거 이상한데?”
동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파도를 바라봤다.
“뭐가?”
“플로어. 그러니까 파도가 비선 형 파인 코니이드잖아?”
“코니이드? 유체역학?”
하긴 과가 토목공학과였고 동혁 의 직종은 항만 설계였다. 다른 친구들은 배우긴 했어도 다른 전 공에 종사하고 있고 오래전에 배 웠던 거라 대략적인 것만 기억한 다.
“얕은 물, 중간물에서 발생하는 비선형적 파동.”
“뭔지 모르니까 간단히.”
“이런 바위가 있을 곳이 아니 고. 저런 방파제가 필요 없는 곳 이라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이 파형이 상당히 비상식적이면서 뭔 가 어디서 많이 봤던 거라는 거 지.”
“그게 중요한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동혁이 언제 챙겨 왔는지 모를 노트북을 꺼냈다. 꽤 두꺼운 게 설계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 쓰는 업무용인 듯했다.
안경까지 꺼내 쓴 동혁이 자판 을 두드리며 말했다.
“물성이 일정하지 않은 자연적 인 바다의 상태는 불규칙한 진폭 과 주파수를 가진다. 그리고 임의 의 위상 변이를 갖는 많은 성형 성분 파의 중첩은……
“못 알아듣는다니까!”
“플루이드 3D. 시뮬레이션을 사
용하면
탁.
동혁이 엔터를 쳤다.
경준, 정석, 상수, 연우까지 모 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일하는 직종의 전공 은 지반, 구조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 정도 시뮬레이션은 이해할 수 있다.
“쓰나민데?”
“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
연우는 길게 묻지 않고 심안으 로 파도의 상태를 바라봤다. 그리 고 먼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맞는 거 같은데?”
“아니, 무슨 동해에 쓰나미야?”
“맞아. 일본이라는 거대한 방파 제가 있는데?”
“내가 말했잖아. 메시 블록. 아 니다. 전에 인도네시아로 파견 간 거 기억나지? 그때 한창 공부했던 파형이라고 이게. 태평양 중앙에 서처럼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근 거리 파형이야. 이런 경우는 딱 하나지.”
“해양 몬스터?”
“응, 그리고 이렇게 눈으로 보 일 정도면 바로 코앞까지 왔다는 거지.”
그 정도까지 말했는데 모르면 같은 계열 직종에 종사했다고 할 수 없다.
그때 였다.
진짜 저 멀리서 진동과 함께 물 의 벽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야, 동혁이 전문가 다 됐는 데?”
연우가 가볍게 칭찬했지만, 친 구들에게 들릴 리 없었다.
“야, 지금 그 말이 나오냐? 당 장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 거 아니 야?”
연우의 눈엔 저 파도 넘어서 있 는 몬스터가 뭔지까지 보였다. 8 단계 정도의 작고 약한 몬스터였 다. 물론, 연우의 기준에서였다.
“동혁아. 파도 높이랑 범위까지 나오냐?”
“응. 높이 7.5m에서 8.3m 정도 고 그 높이면…… 범위는 해안에 서 1km 정도는 다 잠겨. 지형마 다 변수가 다 다르지만, 평균은 그래.”
“낚시 한 번 하기 힘드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동 혁과 연우는 침착했다. 동혁은 반 쯤 포기한 상태고 연우는 걱정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달랐지만 말 이다.
?위이이이잉!
그때 저택에서 비상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파도는 이미 두 눈에 선 명하게 보일 정도로 다가온 상태 였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내가
막을 수 있으니까.”
연우는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하다가 7단계 마법사면 충분하다 고 말했다. 사실은 원 클래스 마 스터 정도 돼야 하지만, 친구들이 그것까지 알 리는 없었다.
“진짜? 이게 가능해?”
“아니면 어쩔 건데. 일단, 믿어 봐야지.”
“맞아. 1km를 20초 안에 주파 할 수 있으면 뛰어 봐도 되고.”
그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파 도는 점점 커졌다. 요트에 올려져 있던 헬기를 끈으로 묶고 모든 창 문이 닫혔다. 요트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인 것 같았다.
저택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버 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연우와 일행을 맞이했던 5 명의 직원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연우 님! 바로 대피하셔야 합 니다!”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8단계 몬스터까지 있습니다. 지하 대피 소가 있으니……
하지만 그들은 늦었다.
거대한 파도는 이미 눈앞까지 닥쳤기 때문이다.
그 파도에 가장 먼저 닿은 요트 엔 푸른빛이 뿜어졌다. 안에 마법 사나 방어술사가 있는 모양인지 물리형 고정 실드를 펼치는 게 보 였다.
곧 요트는 파도에 가려져 보이 지 않았다.
요트가 버텼는지는 이 파도가 모두 가라앉고서야 보일 거다.
지이이잉.
5명의 직원 중 두 명이 7단계 마법사였는지 연우와 주변으로 실 드를 생성했다. 하지만 이걸론 역 부족이라는 것을 저들은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연우 님.”
대표자인 여자 직원이 삶을 포 기한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죠?”
“이지연입니다.”
“이시연 씨와 자매인가요?”
“네, 제 언니입니다.”
“어쩐지.”
조금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 다. 아마 이지연이라는 직원은 이 시연에게 연우가 가진 무력을 듣 지 못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연우가 손을 뻗었다.
동시에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그극.
세상이 흑백으로 변했다.
그 세상 안에서 움직이는 건 연 우. 그리고 옆에는 공간을 뚫고 나온 헤맨뿐이었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이 파도 완전히 막고 저 안에 요트에 실드 하나 더 걸어 줘. 아 마 저걸론 못 버틸 거야.”
“그럴 것 같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마법을 마스터 해야 할까 봐.”
“마법을 마스터하면 편리하긴 합니다. 하지만 굳이 그러실 필요 는 없습니다.”
“헤맨이 있으니까?”
“그럼요. 안 그래도 요즘 불러 주시는 게 뜸해졌는데 마법까지 배우셨다간, 전 나와 보지도 못하 겠습니다.”
“하하. 알았어. 일단 저거 진정 시켜 주고. 8단계 몬스터 등장했 다는데 대충 처리해서 태평양에 던져 버려.”
“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 니다.”
헤맨은 분신을 만들어 워프를 진행했고 쓰나미를 실드로 감싸 버렸다. 동시에 헤맨의 타임 스톱 이 풀렸다.
“아악!”
“꺄아악!”
“앙! 기모띠이이!”
비명들 사이에 이상한 소리가 있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 떻게 이런 상황에도 저런 소리가 나올까.
철퍼덕! 쏴아아아.
파도가 실드에 막혀 다시 바다 로 되돌아갔다.
눈을 질끈 감았던 사람들이 슬 쩍 눈을 떴다.
“어? 살았다!”
“살았네? 살았어!”
“어어? 말이 안 되는데.”
이지연이 그러면서 연우를 슬쩍 바라봤는데 연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거 뭔가 불안불안했는데…… 이게 끝이겠지?’
요즘 이상한 일이 연달아 생긴 다.
설마 했더니 여기까지 와서도 이상한 일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 까지 있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 도 아니긴 했다.
쏴아아아!
멀리서 몇 개 더 오던 쓰나미도 하나씩 바스러졌다. 그러면서 요 트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는 데 헬기 하나가 날아간 거 말고는 멀쩡한 상태였다.
“다, 다행이네요……
이지연은 넋을 잃고 이곳의 모 든 걸 집어삼킬 뻔한 바다를 바라 보고 있었다.
“자, 우린 낚시나 하자.”
“뭐? 8단계 몬스터 온다며! 지 금이라도 도망쳐야지!”
“아, 그거 아까 반대편으로 도 망가던 것 같은데?”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을!”
친구들이 이지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경보를 울렸고 쓰나미와 함께 몬스터의 존재도 파악했으니 말이다. 이지연은 잠시 당황하더 니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다, 다 해결된 것 같습니다. 방 금 협회에서 연락이 왔네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이 순간 에 그 모든 걸 파악할 정도는 안 된다. 하지만 신연우의 눈빛에 그 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 됐지? 낚시마저 하자. 오늘 고기 못 잡으면 밥도 없다!”
“아이씨! 다리에 힘 풀리는데?”
“거기에 밥도 못 먹으면 집도 못 걸어간다.”
연우는 웃으면서 장난을 쳤고 이지연과 직원들. 그리고 친구들 은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연우는 몰랐다.
방금 한 번 더 지구를 구했다는 걸.
몇 달 전에 지상을 침략하려던 수인 족의 은밀하고도 정교한 작 전을 단번에 박살 내 버렸다. 물 론, 수만 마리의 수인 족과 전 세 계 곳곳에서 일어나려던 음모는 헤맨의 분신이 나서서 정리해 버 린 거지만 말이다.
밤엔 바비큐 파티가 이어졌다.
별관 앞에 설치된 바비큐 장비 는 유리벽으로 막힌 곳이라 그리 춥지도 않았다. 거기에 불까지 켜 니 훈훈할 정도였다.
“크아! 이거 보이냐. 정갈한 줄 무늬 이런 곳에서 돌돔을 잡았다 니. 얏바리! 경준데쓰네!”
“손바닥만 한 걸로 자랑은. 감 성돔이지만, 이 정도는 돼야지!”
“형님들. 작지만 단단한 자리돔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걸 보십 쇼. 이건 일반 물고기가 아닌 몬 스터입니다! 1단계 식용이지만, 이것만큼은 안 될걸요?”
연우는 자신의 어망에 담긴 흑 돔과 5단계 몬스터를 바라봤다. 조금 힘이 좋다 싶었는데 5단계 가 나와 버려서 잡자마자 머리를 쳐 기절시켜 버렸다.
괜히 난리를 쳐서 바위를 부수 거나 독침을 뿌려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일반 낚싯대를 달라니까 사용 자용 낚싯대를 줬어!’
사용자 낚싯대는 가장 싼 게 1 억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진 철 협회장에게 뭘 구해 달라는 건 삼가야겠다.
“어서 밥이나 먹자. 각자 요리 하나씩. 알지?”
“오케이! 자취 경력 6개월의 실 력을 보여 주지! 히사시부리!”
“형, 그거 오랜만이라는 일본어 아닙니까?”
“헷. 맞아. 내 요리 실력이 오랜 만이라는 거지.”
“역시! 일본 유학파는 뭐가 달 라도 다릅니다.”
연우는 저 둘에게 기대하진 않 았다.
괜히 물고기를 버리는 건 아닌 가 싶었지만, 저 둘을 빼고도 먹 을 건 많았으니 희생하기로 했다. 이것도 다 추억이지 않은가.
“난 구이다!”
“난 조림.”
“에헤! 그건 너무 쉽지 않은가. 닝 겐들아.”
“넌 뭐할 건데?”
“나? 돌돔 라면! 역시 요리의 끝판왕은 라면이지.”
“야! 설마 회 썰고 머리만 넣는 다는 거겠지? 그 귀한 돌돔을?”
“노노! 그러면 맛이 없지. 요리 의 완성을 위해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다!”
“미친놈아! 쟤 잡아!”
“미친, 아무리 네가 잡았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형님, 죄송합니다!”
동혁과 상수가 경준의 팔다리를 잡았고 정석이 경준의 돌돔을 빼 앗았다.
“하, 요리에서 질 것 같으니까? 재료에 손을 대는 거군. 얏바리 닝 겐데쓰.”
“제발 좀 닥쳐!”
“정석아 저놈 좀 묶어 놔. 돌돔 못 건들게!”
네 명이 난리 치는 모습을 보면 서 피식 웃은 연우는 흑돔을 짚었 다. 회는 역시 숙성 회지만, 이런 곳에서 숙성까지 시킬 순 없었다.
연우는 반쪽은 회를 뜨고 반은 조림을. 그리고 머리와 뼈는 바싹 구워 머리 구이를 만들기로 했다.
친구들이 요리하는 걸 보니, 제 대로 먹을 수 있는 건 이 흑돔 하 나뿐인 것 같았다.
연우의 시야엔 칼 등으로 돌돔 의 머리가 아닌 허리를 치는 상 수. 구이를 만들겠다며 비늘도 안 벗기고 머리를 자르는 동혁의 모 습이 보였다.
그리고 정석은 경준에게 몰래 다가가 같이 라면을 끓이자는 음 모를 꾸미는 중이었다.
‘뭔가 엉망이지만…… 재미있네.’
평화로운 밤바다 위에 수많은 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