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편_ 독수리 오 형제(2)
연우는 악의의 대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 었다. 헤맨에게 요섭이 만든 던전 을 가져다 설치하라고 한 게 전부 였으니까.
“이야, 역시 쿠션감이 달라.”
하필 경준이 같은 차에 탔다.
동혁이와 상수가 한 차, 경준이 와 정석이 연우의 차였다.
“하필 너회가 왜 내 차냐.”
“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타 보겠어! 진심 기모찌하다.”
“맞습니다. 형님. 쿠션감은 물론 이고 이 혼들림. 앞에 물 컵 올려 두고 달려도 되겠습니다.”
연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랜드로버가 그 정도는 아니다. 파워가 강점이지, 주행 흔들림이 나 쿠션감은 롤스로이스를 못 따 라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이야, 저기 필드 봐! 사용자들 도 있어!”
“와아! 마법! 불덩이! 저걸로 삼겹살 구워 먹으면 맛있으려나.”
역시나 시끄럽다.
하필 다섯 중에 가장 시끄러운 두 명이 타 버렸다.
“연우, 너도 저런 거 막 쏘냐? 몬스터도 잡고?”
“형님! 연우 형님이 얼마나 대 단하신데요. 7단계랍니다. 7단계.”
“7단계면 어느 정돈데?”
“모르십니까? ‘사용자 대전’ 전 국구가 7단계고 월드 리그 예선 까지도 충분한 실력입니다!”
“뭐어? 그럼 네가 마컨 이찬식 이나 철혈의 한소영하고 비슷한 정도란 거야?”
“…… 그게 누군데?”
이름을 듣고 뜨끔하긴 했다.
“몰라요? 이번 전국 리그에서 우승한 마력 컨트롤 천재 이찬식! 그리고 아쉽게 준우승한 어둠의 암살자 한소영!”
낯 뜨거운 별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른다.
하긴, 정석과 경준이라면 이해 가 된다.
“아, 내 소영 누님. 그 검은 단 검으로 내 배를 찔러 줬으면 좋겠 다.”
“형님, 제가 찔러 드릴까요? 그 런 거 잘하는데.”
“남정네한테 찔려서 뭐해! 소영 누님의 그 칼날. 그거 봤냐? 리그 예선에서 팔다리를 0.1 초 만에 12번 찌른 다음 얼굴을 밟고 그 칼을 핥는 모습. 크아. 그 모습에 반했지 내가.”
“아니죠. 미친 화염 마법사 연 지가 최고! 방송 보는데 이번 서 울시장배 리그에 출전하면서 월드
리그를 노린다고 하던데요!”
“연지?”
연우가 둘의 괴상한 대화를 듣 다가 뭔가 익숙한 이름에. 아니, 다 익숙하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이름에 불쑥 끼어들었다.
“네, 연지. 신연지……?”
정석이 더듬거리고 경준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소리친다.
“헐, 설마. 그 꼬맹이었던 연지? 아니지. 키는 좀 컸는데 하여튼! 네 동생이야? 공무원인가? 공사 준비한다며!”
“맞습니다. 형님. 긴가민가했는 데 아, 동생 쌍둥이…… 그럼 맞 네! 형님! 형님! 저 소개 좀!”
“야, 이 새끼야. 찬물도 위아래 가 있는 거다.”
연우는 점점 시끄러워지는 둘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너네 신연지 성격 모르냐? 가 끔은 나도 무섭다.”
“하긴, 연우 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쌍욕이 들리면 연지였지.”
“에이, 설마요? 연지 님이 그런 욕을?”
“정석이 넌 모르는구나? 걔가 부순 키보드랑 모니터가 몇 갠 데.”
“…… 하긴, 방송 보면 가끔 소 름 돋을 때가 있죠.”
연우는 경준과 정석의 대화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 가끔?”
“…… 5시간 방송에 10분에 한 번 꼴이니…… 가끔은 아니네요.”
그렇게 둘은 연지를 포기했다. 연우는 둘을 포기시킨 게 아니라 보호해 준 거라 확신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가자 바 다가 보였다.
“이야, 좋다.”
“크으, 이게 바다죠. 쌀쌀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날씨도 괜찮은 데요?”
연우는 더 들어갔다. 동해시에 서 조금 위로 올라가다 보면 나오 는 한적한 마을.
“여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일본에 갈 때 도와줬던 이시연 에게 연락해 한적한 캠핑장을 구 해 달라고 했다. 원래 이진철에게 부탁했었지만 요즘 무척이나 바쁜 지 이시연 직원을 전담으로 붙여 준 것이다.
“우와, 저것 봐! 저런 게 이런 곳에 있었네.”
경준이 가리키는 건 긴 활주로 와 비행기가 구비된 저택이었다. 낮은 담과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 어서 안쪽이 훤히 보였는데 한쪽 면은 아예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어떤 재벌이겠지? 난 언제 저 런 곳에 놀러가 볼까.”
“그러게요. 어서 갑시다. 형님. 이런 거 보고 있으면 괜히 초라해 지니까요/
연우는 말없이 내비게이션과 저 택을 번갈아 봤다.
“형님?”
“ 도착했다.”
“네? 에이 장난도…… 응? 형, 내비 잘못 친 거 아니에요?”
“그러게. 무섭다. 연우야. 빨리 주소 확인해 봐. 괜히 여기 있다 가 잡혀 가는 거 아닌가 몰라.”
연우는 이시연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네, 연우 님. 소소한 캠핑장입 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규모에 맞 게 세 번째 계좌를 사용하면 되겠 습니까?
연우의 기억으로는 세 번째 계 좌는 잔돈용이었다. 연우는 관심 이 없어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었다.
-음, 생각보다 세 번째 계좌에 돈이 없는데, 다 써도 되겠습니 까?
언제부터 였을까.
이시연의 금전 감각은 연우와 이자젤에 맞게 변하고 있었다. 이 자젤이 쇼핑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럴 거다. 이시연이 아예 팀을 만들어 연우의 계좌를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 잠깐만.”
연우가 전화를 들었을 때, 뒤로 동혁과 상수가 탄 차가 도착했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연우 님.
“이시연 씨. 주소를 보고 왔는 데 여기가 맞는지 확인 좀 하려고 요.”
-A380 닮은 S380있다면 거기 가 맞을 겁니다.
“S380이요? 그건 뭔가요?”
생각나는 게 있긴 했지만, 혹시 나 해서 물었다.
-8단계 마력석을 엔진으로 제 작한 초음속 여객기입니다. 이자 젤 님이 인수한 기업 중에 항공사 가 있어서 하나 가져다 놨습니다.
“…… 그래요? 저 집은요?”
? 저택 말씀이시군요. 전용기와 수퍼 요트를 관리하기 위해선 상 주 인원이 필요해서 통째로 구비 했습니다. 아, 요트도 이자젤 님 이 사신 기업에서 그냥 가져온 겁 니다. 연우 님이 낚시를 좋아하신 다고 해서요.
이게 소소한 캠핑장인 거 죠?”
자꾸 말줄임표가 생긴다. 하고 싶진 않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 이 필요했다. 연우가 가진 돈에 비하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이 런 소비는 해 본 적이 없어서 당 황스러웠다.
?네, 얼마 들지 않았습니다. 땅 값도 싸서 세 번째 계좌에 있던 2 조 3천억 원을 썼습니다. 아, 방 금 1조 원이 더 들어왔네요.
“그래요?”
?혹시 부족하시면 제대로 지어 보겠습니다. 일단, 임시 거처 로…….
“아니요. 충분합니다. 충분해 요.”
연우는 고생한다고 말해 주고 전화를 끊었다.
아까는 보지 못했는데 바다 위 에 떠 있는 거대한 요트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와 연결된 저택의 경계면엔 작은 항구도 있었다.
“연우, 어떻게 된 거야? 여기 맞아?”
“좀 무서운데? 일단 이동한 다 음에 찾아보자.”
옆으로 다가온 동혁과 상수의 말이었다. 아까부터 통화를 들은 경준과 정석은 가만히 서 있을 뿐 이었다.
“여기가 맞대.”
“응? 무슨 소리야. 저쪽인가?”
동혁이 저택과 반대편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을 가리켰다.
“아니, 여기라던데.”
그때였다.
철창으로 이뤄진 거대한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검은 세 단 세 대가 다가오더니 5명이 내 려 이곳으로 다가왔다.
“여, 연우! 도, 도망가자!”
“우리 잡으러 온 거야!?”
“그러니까 내가 빨리 가자고 했 잖……
호들갑 떠는 연우와 일행 앞으 로 다가온 사람은 검은 정장의 여 인 한 명. 그리고 네 명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중앙에 여성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연우 님, 연락받았습니다. 늦어 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연우의 당황은 아까 끝났다. 친 구들이 보고 있어서 머쓱하긴 했 지만, 말만 잘하면 된다.
직원이 입을 더 열기 전에 연우 가 선수를 쳤다.
“그, 협회장님이랑 좀 친한데 그 덕에 좀 쓸 수 있게 해 준 건 가 봐.”
“헐, 진짜? 소름.”
“대박이다. 진짜? 아무리 그래 도 이런 곳을?”
앞에 있던 직원도 눈치가 빠른 지 설명을 덧붙였다.
“협회장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 습니다. 오늘 편하게 쉬시다 가시 면 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연우와 일행은 어색하게 그들의 안내를 받았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돈이야 쓰라고 있는 거고 가진 돈 에 비하면 많이 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보 니, 연우도 기분이 좋았다.
어찌어찌 시작은 창대했다.
하지만 연우의 의견에 따라 적 당한 별관 하나를 사용하는 것으 로 끝냈다. 물론, 그 별관도 평범 하지만은 않았다.
“와! 이것 봐. 이거 몬스터 가 죽 아니야? 내가 듣기론 이 소파 가 1억은 한다는 거 같은데?”
“에이, 설마. 인조겠지!”
“아니야. 이거 내가 알아. 위조 불가능한 제품 증명서! 이것 봐!”
“여기 봐. 한쪽 벽이 다 유리 야.”
“와, 조망이라는 게 이런 거구 나. 끝내준다.”
그건 연우도 인정했다.
밝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훤히 보이는 광경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바다 중앙에 떠 있는 수퍼 요트는 총 5층 구조에 헬기가 두 대는 올라가 있을 정도로 거대했 다.
“좋긴 좋네.”
연우가 한마디 했다.
진심이었다. 조금 당황하긴 했 지만, 이 정도 광경이라면 가끔 놀러 와도 될 것 같았다.
“야, 연우. 넌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곳을 빌려줄 정도로 협회장 님이라는 분하고 친한 거야?”
“뭐, 그렇게 됐어.”
연우의 최대 호갱 VIP라고 어 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진짜 대박이다. 연우가 많이 성공하긴 했네.”
“하긴 7단계면 사용자 대전 전 국구라며? 넌 그런 곳에 안 나 가?”
“그러게요. 형 정도 외모면…… 형, 사실대로 말해 봐요. 얼굴. 했 죠?”
“그거 아닐까? 7단계 정도 되면 마력으로 육체가 젊어진다는데?”
“아, 맞네. 형 마스터급 실력자 였지.”
하긴, 연우는 7단계라는 걸 너 무 낮게 보고 있었다. 친구들이 보는 게 현실적인 눈이다. 한국에 만 해도 드러난 사용자. 즉, TV에 얼굴을 내비치는 사용자 중에 가 장 강하다 해도 7단계에서 8단계 정도다.
‘이해가 되긴 하네. 원 클래스 마스터가 되기엔 TV는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노력해야 하니까.’
정말 가끔 천재 중의 천재는 가 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인 재를 협회, 녹튼, 레드 문 같은 곳에서 내버려 둘 리 만무하다.
연우는 대충 대답해 주고 낚싯 대를 챙겼다.
“잡담은 가서 하자!”
“아자! 가자! 먹자! 이게 몇 년 만이냐. 오늘 우리 고기 못 잡으 면 밥 못 먹는 거 알지?”
이게 독수리 오 형제의 룰이었
처음에 이 룰을 정한 날에는 아 침부터 저녁 7시까지 쫄쫄 굶다 가 작은 송사리 한 마리 잡은 걸 로 라면 10개를 끓어 먹었다.
“제발 이번엔 라면 말고 회를 먹어 보자!”
“요시! 이날을 위해 80만 원짜 리 낚싯대를 샀지. 다들 기대하라 고.”
“형, 항상 궁금했던 건데 일본 으로 유학까지 갔다면서. 유학가 면 그런 거 배워요?”
“에에? 난데스까. 아이 돈 노
데 스까.”
“뭐라는 거야. 닥치고 빨리 와!”
“앙! 기모띠!”
“하지 마! 듣기 싫으니까.”
연우는 저 이상한 일본어를 가 장 싫어한다. 예전에 유행했던 걸 로 기억하는데 그걸 직장인이 된 후에도 계속하고 다닌다.
회사에서도 저럴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묻는 순간 다시 소리칠 테니 말 이다. 특히, 저 이상한 표정은 정 말 진절머리가 난다.
“앙앙!”
“닥치라고!”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 었다.
결국, 연우는 먼저 나갔다.
별관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었다. 나가자마자 적당한 낚시 장소가 몇 군데 보였다.
한쪽은 바위가 잔뜩 쌓여 있었 는데 바위 사이에 철골이 보이는 걸 보니 인위적으로 만든 듯했다. 또 한쪽은 방파제 역할인지 항구 를 감싼 모양의 길이 나 있었다.
‘이거 낚시하라고 만들어 둔 건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았다.
오로지 낚시를 위해 이시연이 지시해 만들어진 ‘별관’과 ‘낚시 포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