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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편_ 차원 상인, 레인(3) (113/207)

제128편_ 차원 상인, 레인(3)

준비는 차근차근 됐다.

요섭은 기본적인 실력을 쌓고, 이자젤은 던전 관련 마법을 연구 한다고 마법 상점 제작실에 틀어 박혀 있었다. 혜영은 오랜만에 돌 아와서 돈을 번다고 이자젤 옆에 서 장비를 만들고 있었다.

연우도 오랜만에 지금껏 만들었 던 던전의 설계도를 훑어 보다가 농장을 관리하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자주 봐 줘야 한 다.

완전 자동 관리가 안 돼 있으니 아스가르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 다. 게다가 헤르메스와 리젤도 가 르쳐야 했다.

“양들은 이 정도 추위는 좋아 해. 굳이 축사에 넣을 필요는 없 어.”

“알겠습니다. 그럼 털 깎는 건 좀 미루는 건가요?”

“그렇지. 봄이 되면 잘라 주면 돼.”

헤르메스와 리젤은 연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블랙 카우는 추위에 꽤 약해. 반도 나무 아래에 있는 보온 마법 진은 항상 확인하고. 그렇다고 다 른 곳까지 다 따듯하게 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추위를 겪는 것도 필요한 거군요.”

“그래. 그래야 육질이 좋아지거 든.”

블랙 카우들이 그 말을 들은 건 지 벌벌 떨면서 반도 나무 뒤로 숨었다.

이번엔 블랙 쿡이었다.

추운지 서로 몸을 꼭 붙여 닭장 안에 있었다. 이때가 되면 유정란 을 낳는 것도 뜸해진다. 병아리가 쉽게 살아남을 환경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거다.

어차피 80마리 정도 됐을 때부 터 개체 수는 조절하고 있었다.

“몬스터 상점도 만들어야 하는 데, 블랙 쿡도 넣을까.”

블랙 카우랑 메리쉽도 생각해 봐야겠다.

언제까지나 먹어서 개체 수를 조절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다 고 교배까지 막아 버리면 스트레 스를 많이 받는다.

“지하 어장의 관리 모듈도 고장 나는지 잘 보고. 리젤은 게헨나르 돌보면서 시든 건 바로바로 잘라 주고.”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마릴이 들어가 맑아진 강줄기는 잘 얼지도 않았다.

연우는 마릴을 므깃도로 넣어 보관했다. 그러자 강줄기가 슬슬 얼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도 꼭 필요해. 지금 은 내가 마릴을 보관하지만, 나중 에 너희가 해야 해.”

“알겠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스텀프도 마 찬가지야. 알아서 잘하는 것 같은 데 잘 성장한 스텀프가 기분이 너 무 좋으면 겨울에 새싹이 나기도 하니까. 너무 화가 나도 안 돼. 봄에 나무들이 다 죽기도 하거 드 ”

“조심해야겠네요.”

“그렇지.”

연우는 헤르메스와 리젤을 봤 다.

둘 다 마계의 인물이다.

요정의 집을 관리할 사람이 필 요했다.

“아이델을 시켜 볼까.”

오염된 신선이긴 하지만, 기본 적으로 선술을 익혀 요정과 친하 기도 하다. 마땅히 생각나는 존재 도 없었기에 아이델과 삼미호에게 시켜 보기로 했다.

“그리고…… 펍은.”

이자젤이 한창 던전 관련 마법 에 빠져 있어서 펍을 관리할 사람 이 없다. 겨울이라 손님이 거의 없지만, 단골들이 가끔 오기도 한 다.

“펍은 쇼타나 필리아에게 부탁 해 봐야겠네.”

그래도 요리하는 직업이니 술에 대해서도 알 거다. 모르면 알려 주면 되니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 헤르메스 마법 스킬 있었 나?”

“네, 높진 않지만요.”

“태평양으로 통하는 워프 게이 트로 가끔 들어가서 낚시 나룻배 가 잘 있나 확인도 부탁해.”

“알겠습니다.

식당은 필리아와 쇼타. 카페는 후름. 대장간은 요섭과 바벨이 있 다. 므깃도야 요르문간드가 잘해 줄 거고 말이다.

“북극 지역. 붉은 귀 북극여우 랑 파란 코코넛 크랩도 한 번씩 봐 주고.”

연우가 둘을 세워 놓고 말했다.

“내가 너희 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농장 관리에 대해 잘 배워. 나중엔 아예 분점을 하나씩 차려 줄 테니까. 리젤, 넌 던전 마스터 였지?”

네.”

“던전도 하나의 농장이야. 여기 서 배운 게 몬스터 관리할 때 도 움이 될 거고. 아예 던전 농장을 만들어도 돼.”

“알겠습니다.”

연우는 뿌듯했다.

자신이 제임스에게 배웠던 것들 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있다.

“주인님.”

헤맨이다. 원래도 갑자기 등장 하는 게 취미지만, 요즘은 더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손님이 왔습니다. 천공 세계 입구입니 다.”

연우는 미간을 좁혔다. 레인이 올 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렀 다.

“레인은 아니지?”

“네, 아닙니다.”

“가 보자.”

고민할 시간에 가서 확인하는 게 빠르다.

순식간에 천공 세계에 도착한 연우는 멀리 보이는, 5명 정도 되 는 이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레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차원상인협회에 서 나온 홀렌드라고 합니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이었다. 레인을 볼 때 느꼈지만, 정말 인간하고 흡사한 외모다. 조 금 다른 게 있다면 눈동자랄까.

흰색과 푸른색이 조화를 이룬 게 특이했다.

“네,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죠?”

“주문하신 대행 판매와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왜 그쪽이 가져오는 거죠?”

연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 레인 말씀이시군요. 연우 님이 파신 던전. 그리고 앞으로 파실 물건들은 레인처럼 힘이 없 는 아이가 맡을 만한 물건이 아닙 니다. 하하하. 협회는 레인과 같 은 가난한 개인 상인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구할 수 있고 수수료 혜택을……

“그만. 말이 많군요.”

연우의 경멸 어린 눈에 홀렌드 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돈이 목적인 상인이라지만, 자존심이 없을 순 없었다.

판도라 대륙의 차원 상인은 지 구보다 몇 단계는 위의 상위 차원 이다. 홀렌드의 입장에서 연우는 그저 하위 차원의 하위 생명체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클래스 마스터? 이런 하위 차원 에 이 정도의 무력을 가진 이가 있다는 건 대단하다. 하지만 상위 차원에 이 정도는 흔하고 홀렌드 는 상위 차원에서도 함부로 대하 지 않는 협회 간부다.

‘참자. 아리움과 거래를 생각하 자.’

그 정도 이득이라면 이 정도 자 존심 정도는 버릴 수 있다. 그걸 못했으면 이 간부 자리까지 올라 오지도 못했을 거다.

“하하. 죄송합니다. 간단하게 설 명해 드리겠습니다.”

“레인은 12살입니다. 그는 다른 일을 맡았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 다.”

연우는 기가 찼다.

8살부터 거래를 하러 다니는 차원 상인이다. 게다가 원래 하위 차원이라는 이곳은 오지도 않았던 곳 아닌가.

“역겹네요.”

“네?”

홀렌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 다.

하지만 연우는 그의 이해를 기 다려 줄 마음이 없었다.

“레인보고 다시 오라고 하세요. 아, 그리고 이 세계(世界) 보이 죠?”

연우는 양팔을 살짝 벌리며 말 했다.

동시에 하늘과 땅에서 끝이 보 이지 않는 세계를 구현하는 마법 진이 옅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흘렌드. 그리고 옆에 있던 4명의 직원의 얼굴은 경악 으로 물들었다.

“이런 게 몇 개는 더 있어요. 사고 싶으면 레인을 내세우고. 싫 으면 오질 말아요. 이런 거 안 팔 아도 상관없으니까. 아시겠어요?”

연우의 건조한 말에 홀렌드의 두 눈이 떨렸다.

이런 걸 보고 동공 지진이라고 하는 거다.

“아, 알겠습니다.

홀렌드는 등에 쭉 흐르는 식은 땀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 여명으로 만든 세계 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혼 적은 분명하다.

그리고 저 정교함.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다. 아리움의 해루스가 말했던 건 그저 던전 몇 개였다. 하급 던전이었지만, 웬만 한 던전 장인의 솜씨보다 좋았다.

그래서 꽤 짭짤할 거라 생각한 게 전부다.

하지만 이건 규모 자체가 다르 다.

“헤헤.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레 인도 저회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일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홀렌드는 급하게 표정을 바꿔 웃음을 채웠다. 약간 과장을 하자 면 얼굴에 나는 땀까지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급했다.

그는 많은 돈과 판도라에서 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고. 웬만한 상위 차원에서도 대접을 받는 고 위급 상인이다. 하지만 결국은 상 인이다.

돈이 된다면.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간이고 쓸개고 모조리 빼 줄 수 있다.

양손을 싹싹 비비며 고개를 숙 였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죠?”

“최대한 빠르게 보내겠습니다. 아니, 한 시간 안으로 바로 오겠 습니다.”

“앞으로 모든 대화는 레인을 통 해서 할 겁니다. 어떤 핑계를 대 도 상관없어요. 그럼 거래는 바로 끊길 거니까요.”

“헤헤. 알겠습니다. 앞으로 레인 의 신상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 다!”

연우는 그렇게까지 말하고 몸을 돌렸다.

홀렌드는 그런 그가 사라질 때 까지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홀렌드 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아까 못 봤어? 여명이야. 여 명! 게다가 저 세계를 만든 솜씨 를 봐. 에잇 클래스 마스터에 던 전 만드는 기술까지……

더 중요한 건 아리움의 해루스 가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세닌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 다.

“아무리 그래도......

“세닌.”

“네, 홀렌드 님.”

“우리는 차원 상인이다.”

“…… 네, 맞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돈입니다.”

“어허. 목소리가 작다. 우리 행 복의 조건은?”

“돈입니다!”

“더 크게! 우리 삶의 의미는?”

“돈입니다아!”

“그래, 우리는 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 권력? 그딴 게 무슨 소용 이지? 명예? 자존심? 돈이면 돼. 우리는 돈이다. 그게 우리 종족의 숙명이고 우리 종족이 살아가는 목적! 돈! 돈! 돈!”

“돈! 돈! 돈!”

홀렌드를 따라온 직원 네 명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판도라 대륙엔 협회가 5개. 대 길드 12개. 중소 길드 수백 개. 이런 여명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하나 있다면 중소 길드가 협회급 으로 커질 수 있다.

다 먹지 못하면 발이라도 담근 다.

발도 담글 수 없다면? 부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야 한다. 부스러기라도 모조리 흡입에 지위 를 지킨다. 그게 홀렌드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아리움? 엿이나 먹으라지.’

어차피 그들은 차원 관리 종족 이다.

차원 상인은 리셋할 수 없는 종 족 중 하나고, 차원 간의 계층 이 동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잃 을 것도, 얻을 것도…… 훨씬 적 다.

“돌아간다. 당장 레인 신변 확 보하고 이사급으로 스카웃해. 최 대한 예우를 갖춰서.”

“알겠습니다.”

“그 어떤 다른 길드에 흔들리지 못할 만한 대우를 해 줘. 연우 님 같은 분은 어떻게든 자기 사람을 챙긴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그가 챙기는 사람을 챙기는 것뿐 이야.”

“알겠습니다!”

하위 차원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연우는.

‘연우 님’과 ‘그분’이라는 칭호 를 얻었다.

연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 었다.

“참 단순한 놈들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연기하는 건 아니겠지?”

연우가 지켜보는 걸 예상했는지 도 모른다.

“그거야 레인이 와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자 정말 레인이 멀끔해진 모습으로 등장했 다. 옆에는 홀렌드가 직접 수행을 하기 위해 서 있는 모습이었는데, 오우거도 없었다.

아예 대용량 아공간을 지급한 모양이다.

연우는 그들 앞으로 도착해 말 했다.

“마음에 드는군.”

“감사합니다. 연우 님.”

레인과 홀렌드가 동시에 인사했 다.

“자, 말 길게 할 거 없이 거래 를 시작해 볼까?”

“가, 감사합니다. 연우 님.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내가 뭘 줬다고? 난 너랑 거래 하는 게 편할 뿐이야.”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 니다.”

레인이 또 울려고 했다.

연우는 머쓱하게 말했다.

“빨리 거래나 하자. 울지 말고. 남자가 그렇게 울면 쓰나?”

“죄, 죄송합니다.”

레인은 붉어진 눈을 소매로 쓱 훔치더니 아공간을 열었다. 전에 던전을 팔았던 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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