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편_ 현실판 대륙급 전쟁 이벤트(3)
사라진 몬스터의 대부분은 적이 었다.
연우와 함께 싸웠던 므깃도의 몬스터. 그리고 이자젤과 후름은 저런 싸움엔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악의 (惡意).
이곳에 존재하는 더러운 기운을 통틀어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쓰리 클래스 이 하의 약한 무력 수준에서나 당할 법한 힘이다. 연우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지배자인 화염룡, 백호, 요르문간드까지는 너무나 당연하 게 파훼했다.
사실 게임인 아스가르드에 비하 면 그렇게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최상급 버프지만, 더 지독한 건 많았으니까.
“어째, 좀 압도적이지 않냐?”
연우는 사자를 도발했다.
하지만 사자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네가 세 명의 사자를 죽였던 놈인가?”
“오, 잘 알고 있네. 신분증은 잘 모아 놨어. 너도 신분증은 있겠 지?”
“잘됐네, 네가 가지고 있는 신 분증은 내가 잘 써 주지.”
“그럴 수 있다면.”
연우는 달려들었다. 아직 힘을 숨겨야 할 때다. 요드나 데르드가 는 꺼내지 않았다.
적은 강한 신격과 악의를 지니 고 있다.
연우도 조금 떨어지는 신격과 왕관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거기 에 정령의 힘과 특수 직업인 염력 의 힘까지.
핑.
수킬로미터의 거리.
하지만 그들에겐 초 단위도 되 지 못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쿠으으응.
한 번 부딪힐 때마다 사방으로 퍼지는 충격은 수백의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슬슬 적응할 만도 한 데, 연우의 몬스터와 두 엘프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일부러 범위 밖에서 공격해 적 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절묘할 정도로 그 범위 산정을 잘하는 이들에게 당할 재간이 없 었다.
“그거 알아?”
연우가 부딪히는 순간에 물었 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김새를 한 사자의 얼굴엔 궁금증이 떠올 랐다.
“내가 여명을 먹은 거.”
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우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거 다.
“기대해. 이번에도 네 신분증으 로 이 ‘여명’을 먹을 거니까.”
“여명을 그딴 곳에 쓰다니!”
연우는 한 번 찔러 본 거다. 이 많은 몬스터. 악의의 근원지가 어 딘지. 이 사자의 특성일 수도 있 고 여명일 수도 있는 거다.
찔러봐서 아니었으면 본전.
그런데 사자의 반응은 긍정이었
“재미있네. 네 신분증은 몇 등 급일지.”
그제야 도발이 통한 건지 진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연우에게 달 려들었다. 얼굴에 힘줄이 선 건 느낌뿐만이 아닐 거다.
두 명의 에잇 클래스 마스터가 부딪힌다.
다시 한 번 거대한 충격이 주변 을 휩쓸었다.
“야! 신연우!”
“어? 수이니?”
수이니의 등장이었다.
동시에 10m가 넘는 검강으로 사자를 패대기쳤다. 간혹 발현되 는 잠재 폭발이었다. 수이니는 주 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그런 힘이 발휘된다.
물론, 사자가 다친 건 아니다.
방심한 사이에 몸이 멀리 튕긴 것일 뿐.
“어어. 어떻게 왔어?”
“지금 나 빼고 대륙급 이벤트 하는 거야?!”
“이벤트?”
“이게 이벤트지 뭐야. 완전 초 대륙급인데?”
“여긴 아스가드르가 아니야. 이 벤트가 뭐냐.”
“그거나 그거나.”
“하긴, 현실판 이벤트지. 나 먼 저 간다. 저거 또 오네.”
연우는 잔뜩 화가 난 채 날아오 는 사자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쿠으으응.
둘이 격돌했다.
수이니는 웃으며 이자젤과 후름 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좋아. 이런 거 오랜만이네.”
기분이 반전돼 흥분이 머리끝까 지 찬 모양이었다.
“잘 왔네.”
“그러게, 오랜만에 셋이 모이는 건가?”
셋은 항상 같이 다녔다. 그래서 므깃도에서 연우가 이 셋을 뽑은 이유도 있었다.
앞에 수백, 수천의 적이 있다.
그냥 잡몬스터도 아니고 중간 보스급부터 한 지역의 지배자 정 도 되는 보스급 몬스터들이다. 게 다가 악의로 가득 차 더욱 강한 힘을 낸다.
생김새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도 많았다.
거대한 산을 등에 이고 다니는 파충류, 양손에 자신의 몸보다 큰 검을 하나씩 들고 있는 오우거, 드래곤은 드래곤인데 이미 뼈만 남은 드래곤.
그것 이외에도 수백 종의 처음 보는 몬스터가 즐비했다.
그그극! 서걱.
수이니가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오우거를 단칼에 썰며 말했다.
“난 이런 새로운 것들이 좋더 라. 써는 맛이 있어.”
이자젤은 옆에서 헬파이어 비를 내려 수백 마리를 녹이며 말했다.
“난 새로운 것들을 한 번에 쓸 어버릴 때 쾌감을 느껴!”
“변태들. 난 정령들에게 밥을 줄 때!”
후름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최상급 정령들. 거기에 ‘테밋의 혼’이라는 [GOD] 등급 장비. 연 우가 쓴 후에 후름에게 돌려줬다.
황금빛 금속 괴물이 수백 미터 를 뒤덮으며 적들을 잘라내고 꿰 뚫는다. 후름의 눈빛, 손짓 하나 에 수백 전의 움직임이 조종되는 것이다.
이 전장에서 마스터 스킬이 가 장 적은 셋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과는 전장에서 최고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은 투 클래스 마스터 최상급. 후름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 최상 급. 단순하게 보이겠지만, 그들이 이룬 스킬을 보면 이해할 수밖에 없을 거다.
- 수이니
: 검사(10단계), 요리(9단계), 육체 강화(9단계), 고속 이동(8단 계), 마력 지배(8단계), 체술(8단 계), 검의 지배자(10단계), 아공 간(7단계).
검사라는 검술 메인 스킬 마스 터. 검의 지배자라는 얼티밋급 스 킬 마스터다. 이 외에도 8단계, 9 단계 스킬이 5개.
이 정도는 돼야 최상급이라고 불리는 거다.
이자젤
: 마법사(10단계), 인챈트(9단 계), 전투 센스(9단계), 마력의 지배자(10단계), 아공간(7단계), 마도사의 혼(8단계), 붉은 숲의 일족(9단계).
이자젤도 마찬가지다.
마력의 지배자라는 얼티밋급 스 킬 마스터. 태생적인 축복인 ‘붉은 숲의 일족’이 9단계고 얼티밋급 ‘마도사의 혼’이 9단계.
그런데도 아직 쓰리 클래스를 이루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해야 맞 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어떤 스 킬로 이루느냐는 선택은 차후 포 클래스를 마스터할 수 있느냐, 또 는 쓰리 클래스에 머물렀을 때의 한계를 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후름도 마찬가지다.
- 후름
: 정령사(10단계), 전투 센스(9 단계), 어둠의 정령(10단계), 번 개의 정령(6단계), 정령의 친구(8 단계), 아공간(5단계), 그림(8단 계), 테밋의 혼(10단계).
‘전투 센스’나 ‘정령의 친구’ 같 은 경우는 일부러 10단계를 찍지 않았다. 저런 스킬을 마스터해도 보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기는 이 런 대륙급 이벤트 수십 개를 거치 면서 [GOD] 등급과 [얼티밋]으 로 도배돼 있다. 그것뿐인가. ‘검 신의 가호’, ‘천상계의 축복’, ‘전 장의 신’ 등등의 칭호들.
문제는 그들의 힘이 사기라고 불릴 정도고 게임 내에서도 랭킹 에 드는 플레이어들을 찜 쪄 먹을 실력이지만, 연우에 비해서는 아 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게임에서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 이상은 극악의 난이도다. 다른 플 레이어들도 그랬고 NPC들도 그랬 다. 드래곤이나 마왕이 절대로 약 한 게 아니었던 거다.
“저 사기꾼.”
수이니가 멀리서 초대륙급 전투 를 벌이고 있는 연우를 보며 중얼 거렸다.
“우리도 할 수 있어.
후름이 중얼거렸다.
이 셋이 세 번째 마스터 스킬로 오랜 시간 고민했던 건, 많은 엘 프들의 한계가 쓰리 클래스 마스 터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스터 스킬을 잘 고 른 덕인지, 연우 곁에서 전투를 오래한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포 클래스 마스터 길이 그리 어렵진 않은 것 같아.”
전에도 이 말을 했었다.
그래서 수이니도 수련 여행을 가겠다고 한 거고.
“나도 빨리 마스터하고 싶다.”
이자젤은 태생적으로 타고난 스 킬 ‘붉은 숲의 일족’을 떠올렸다. 고귀한 혈통의 힘. 수이니와 후름 도 얻지 못했던 스킬이다.
피잉.
쿠아아아!
얼굴에 아무것도 없는 인간형 몬스터가 이자젤의 품을 파고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주먹이 긴 드릴이 됐다.
푸확!
이자젤은 한껏 밀렸다.
완전한 육체 강화형이 이자젤의
마법을 뚫고 공격을 성공한 거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거리를 벌리지 못하면 약점을 보일 수밖 에 없다.
“이런 젠장 할.”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자젤은 항상 밝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천재라는 재능을 가진 후름과 수이니의 둥 을 봐야 했고. 연우라는 미친 사 기꾼의 발끝을 겨우 따라갔다.
고귀한 혈통. 붉은 숲의 일족.
엄청난 기회를 가슴에 품고 있 으면서도 발현하지 못했다. 9단계 에 막혀 있고 그 이상의 벽을 뚫 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인챈트? 그걸 잘 해봐야 전투엔 소용이 없 다.
쿠아아아!
쿠으으응!
주변에서 이자젤이 가장 약했 다.
연우와 사자라는 놈은 말할 것 도 없었다. 수이니와 후름도 각자 의 스킬로 수백의 보스급 몬스터 를 쓸어버린다.
거대한 므깃도의 문에서 고개만 내밀고 싸우는 요르문간드, 수백 미터의 반경을 용암지대로 만들어 적을 녹여 버리는 화염룡 이그니 스, 외침 한 번에 수십 마리의 보 스 몬스터를 뒤집고 발톱으로 적 을 갈기갈기 찢는 이름 모를 백 호.
‘부족하다. 너무 부족해.’
9단계인 ‘인챈트’와 ‘전투 센스’ 는 너무 보조 격 스킬이다. 그렇 다고 ‘마도사의 혼’은 얼티밋급이 지만 ‘붉은 숲의 일족’보다는 약하 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붉은 숲의 일족’은 수백 년 동안 요지부동이 다. 비슷한 등급의 다른 스킬을 찾을 수도 없었다.
엄청난 힘을 코앞에 두고도 재 능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못 미치 는 거다.
“커억.”
방심한 순간 복부를 뚫렸다.
동시에 방어선이 무너지며 둑이 터진 것처럼 적들이 쏟아진다. 각 자 엄청난 범위를 맡고 있었던 덕 분에 진형 전체가 흔들리며 수이 니와 후름까지 다쳐 버린 거다.
‘젠장 할!’
울컥.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억울함과 미안함. 그리고 분노.
그때 이자젤의 두 눈이 붉게 변 했다.
붉은 숲의 일족. 그 고귀한 혈 통이 터무니없이 작은 이유로 눈 을 뜨는 순간이었다.
꽈악.
이자젤 앞으로 얼굴을 들이민 몬스터가 이자젤의 손에 잡혔다.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완전 육체 계열 몬스터를 맨손으로 잡은 거 다.
파삭.
전신이 비쩍 쪼그라들며 가루로 변했다.
구어어어어.
그와 동시에 파괴의 에이션트 드래곤, 트리니티가 이자젤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이리로 오라.”
이자젤은 손을 뻗었다. 붉은 눈 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 손끝을 타 고 트리니티로 향했다. 그러자 트 리니티가 길게 울었다.
구어어어어.
분명 순수한 힘은 트리니티가 더 강하다. 하지만 트리니티는 확 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보다 확실하게 위라는 걸.
자신의 악의인 ‘파괴’. 그보다 순수하고 깊은 권능.
그건 붉은 숲의 일족의 진정한 힘.
“파괴.”
나지막한 한마디에 수백의 몬스 터가 불타 사라졌고 트리니티가 고개를 깊게 숙여 다가왔다.
이자젤은 트리니티의 목을 밟고 올라탔다.
그녀에게 ‘파괴의 여신’이라는 이명이 붙는 순간이었다.
“결국, 마스터했네.”
연우는 곁눈질로 트리니티 위에 서 적을 파괴하기 시작한 이자젤 을 바라봤다.
만약 예전의 이자젤이었다면 결 코 각성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까 지 쌓인 경험, 칭호와 장비들, 시 련과 고통.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의 이자젤을 만든 거다.
“나도 슬슬 끝내야겠네.”
이미 아군은 승리 직전이었다.
원래 압도적이었지만, 이자젤의 각성으로 한층 더 압도적으로 변 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살 벌하게 파괴한다.
“허억, 허억. 말도 안 돼!”
사자가 소리쳤다.
무서워졌다. 아니, 원래 무서웠 다. 셋의 사자를 죽인 자다. 일대 일로는 힘들 것 같아서 물량으로 승부하려 했다.
‘실수였어, 미친! 나보다 더 많 은 물량일 줄이야.’
게다가 질도 남달랐다. 하나하 나가 옅은 어둠의 사자급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걸까. 상 위 차원에서 온 사자이며 빛을 받 은 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사자 신분을 박 탈당하더라도 밝은 빛을 해금해야 겠어.’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푸욱.
“어허, 어디서 딴생각이야.”
연우는 바보가 아니다. 순간의 틈. 그리고 ‘나쁜 놈’들이 변신하 기 직전의 타이밍을 모를 리 없었 다.
그래서 지금껏 숨겨 왔던 신살 검에 요드의 힘을 더해 사자의 심 장을 찔렀다.
“커헉, 이, 이런 미친!”
“난 적이 빤히 보고 있는데 아 무 방비 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놈 들이 가장 이해가 안 돼. 그걸 보 고 있는 주인공도 말이야.”
당연히 봐줄 생각은 없었다.
즐기는 것과는 별개로 위험에 빠지는 건 딱 질색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