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9편_ 악의의 대륙(4) (104/207)

제119편_ 악의의 대륙(4)

연우가 한참 엘프를 때리고 있 을 때였다.

무엇으로 때릴까 하다가 아공간 에 손을 넣고 잡은 게 신살검이었 다. 물론, 그대로 때리면 순식간 에 소멸하기 때문에 검집에 넣은 채로 때렸다.

퍼억! 퍽! 퍼버버벅!

꿰에에에 엑!

엘프인 줄 알았는데 돼지 멱따 는 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악의에 오염돼 이성이 사라진 몬스터는 이런 것도 필요 가 없다. 하지만 이상한 목소리지 만 말을 할 줄 알기에 이러는 거 다.

“어때. 대화할 생각이 좀 드나?”

_ 감히……!

한마디를 끝내지도 않았다. 하 지만 연우는 그새 신살검을 들고 엘프를 패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엑!

때리는 것도 기술이다. 뼈가 부 러지거나 급소를 때리면 안 된다. 철저하게 잘 다치지 않고 고통만 주는 곳을 집중적으로 노려야 한 다.

그래야 더 아프고 오래 때릴 수 있으니까.

?제, 제발 사, 살려…… 끄아아 으}! 주세요!

“어후.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었네.”

-흑흑. 제발. 제발 그만해 주세 요.

아수라처럼 기세 좋게 네 팔을 벌리고 있던 모습은 없었다. 쪼그 려 앉아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자, 대화를 해 보자.”

-흐윽. 흐윽. 알겠습니다.

“여긴 원래부터 이랬던 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된 거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작은 대륙이었고 수많은 몬스터와 다양한 종족들이 사는 자연스러운 생태계였습니다. 그라니아 동쪽에 존재하는 가장 큰 던전 중…….

“잠깐. 그라니아 대륙이라고?”

?네, 맞습니다만……?

“여기 온 지. 아니, 이렇게 된 지는?”

여길 그라니아 대륙이라고 알고 있다. 언제 온 건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 기. 어느 순간 저 중앙에서부터 흘러나온 검은 연기들이 하나씩 점령한 거죠. 저는 그나마 이 지 역의 지배자였고 영혼이 단단해서 버티고 있지만, 대부분은 버티지 못하고 변해 버린 겁니다.

대충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 다.

이 대륙은 그라니아에 붙어 있 던 것이었고 이곳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 검은 악의들로 가득 차 버 린 것이다.

‘그럼 이게 지구로 온 게 먼저 야, 아니면 오염된 게 먼저야?’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곳에 들 어오자마자 계속 울어 대는 이 [사자의 신분증]이다.

“찜찜해. 왠지 불안해. 일 보고 안 닦은 기분인데.”

사자의 신분증이 우는 이유는 뭘까.

뭔가 상성이 맞거나 아예 다른 게 근처에 있다는 게 아닐까? 맞 는다고 하면 사자이거나 여명이 다. 사자는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그런데 악의까지 덧씌워진 사 자.

만약 여명이라면?

연우는 한층 더 강해질 거다.

연우는 고개를 털며 아공간에서 그림 하나를 빼 들었다. 그리고 엘프를 가리켰다.

번쩍!

끼야아아아!

비명이 들리며 엘프가 그림 속 으로 빨려 들어갔다.

백지였던 종이엔 거칠게 그려진 네 팔의 엘프가 들어가 있었다. 역시 꽤 강한 놈이라 그런지 주변 에 효과도 많아 멋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 어 봤네.”

하지만 연우는 심안이 있었고 설명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쾌락의 하이엘프 헬리언(명 작)]

설명 : 1,000년 이상 산 0.1% 의 혈통인 하이엘프가 쾌락이라는 악의에 오염된 상태. 하이엘프 특 유의 적응력과 순수함으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 역시 강하군.”

악의뿐만이 아니라 원래 강했었 다. 수준으로 따지면 투 클래스 최상급 정도랄까. 그러니 겨우 이 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거다.

“리젤.”

“네, 연우 님.”

“이제 빠르게 움직인다. 여길 접수해야겠어.”

어찌 됐든 이곳에 뭔가 있다는 건 확실하다.

적이든 먹이든, 아니면 둘 다 든.

연우는 옛 생각이 났다.

마치 붉은 숲의 일족과 처음 같 이하던 날 같았다. 이자젤, 수이 니, 후름, 족장인 호르드란까지.

처음엔 그들도 약했다. 원 클래 스 마스터가 겨우 넘었던 시절이 었고 이후로 연우와 함께 싸우면 서 강해졌다. 물론, 죽는 엘프도 있었고 도망치는 엘프도 있었다.

마계의 마족과 마물에 맞서 싸 웠고.

바다에서 몰려오는 수인 족과 싸웠다.

물론, 연우 혼자와 엘프 몇이서 싸운 게 아니다. 연우는 몬스터를 길들였고 강화했다. 이종교배로 더 강한 개체를 만들었고 업그레 이드된 추가 심장을 달아 출력을 높였다.

므깃도의 지배자들은 그렇게 완 성됐고 항상 연우와 함께 싸웠다.

“여기서 그 신화를 다시 써야겠

어.”

연우는 리젤을 데리고 출발했 다.

이 악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싸 우기 위해선 이자젤이 했던 것처 럼 악의에 오염된 몬스터를 길들 일 필요가 있었다.

넓은 평야, 숲, 절벽 등.

많은 지형이 존재했다. 당연히 그사이에 수많은 몬스터가 있었지 만, 대부분 넘어갔다. 그저 그런 정도의 몬스터는 연우의 전력이 될 수 없다.

철갑으로 이뤄진 잭 오 랜턴. 몸통이 거대한 금속 호박이고 눈 과 코로 보이는 구멍에서 시뻘건 불이 솟는다. 팔과 다리는 거대한 창과 검으로 이뤄져 있었다.

“투 클래스 마스터 정도. 이 지 역의 지배자 정도는 되겠네.”

회망을 잡아먹는 절망이라는 악 의다. 연우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인데도 절망 그 자체가 저릿저 릿 느껴진다.

“이런 특성은 꽤 쓸 만하지.”

연우는 백지의 그림 하나를 꺼 내 잭 오 랜턴을 담았다. 배경이 활활 타오르는 불이었는데 식당에 걸어 놓기 괜찮은 작품이었다.

또 날았다.

머리 세 개가 달린 케로베로스 였는데 두 다리로 서 있었고 살갗 은 거칠게 돋아난 가시로 뒤덮여 있었다. 가슴엔 붉게 뛰는 세 개 의 심장이 투영돼 보였다.

“이것도 투 클래스 마스터. 악 의는 종류는…… 배제, 배척인가.”

철면의 문지기에 잘 어울리는 특성이었다.

무엇이든 배제하고 배척한다. 그런 기운 자체를 가지고 있기에 적이 다수일 때 분열을 일으키기 좋다.

“이것도 겟(Get)이다.”

또 하나를 수집했다.

다음은 사람의 얼굴을 한 하피 였는데 가죽이 터질 정도로 살이 쪄 부르튼 상태였다. 날개에도 살 이 찌고 꼬리도 어떻게 움직일까 싶을 정도로 통통했는데 역시 날 지 못하는 육체형 하피였다.

그래도 탱커로 쓸 만해서 수집 했다.

생긴 게 워낙 별로라 전시할 만 한 그림은 아니었다.

“어? 협회장님이네.”

한창 전투 중인 듯했다.

적은 괴상한 듀라한과 발이 달 린 크라켄이었다. 엄청난 수였다.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누구 한 명은 죽을 것 같았다.

“리젤, 가서 좀 도와줘.”

“알겠습니다.”

피잉.

그 순간 리젤이 허공을 박차고 내리꽂혔다.

시야가 달라진 것만으로 꽤 많 은 발전을 했다. 연우는 그 모습 을 뿌듯하게 보면서 워프를 했다.

이진철의 바로 뒤였다.

“버텨! 어떻게든 버텨! 민아, 번 개 출력 좀 높여 봐!”

“젠장! 더는 안 됩니다. 이게 한계예요!”

연우는 끼어들기 민망했지만, 앞에서 리젤이 움직이는 걸 보고 말을 걸 수 있었다.

파사사삭.

스적. 스거적.

투두둑.

리젤의 낫이 수십 개의 머리를 분리했다. 절반 이상은 재생했고 더 강해졌지만, 리젤도 가만히 보 고만 있지는 않고 달려들었다. 전 세가 한결 나아졌다.

“이, 이게?”

“협회장님.”

“어? 연우 님!”

이진철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 어진다. 마치 애인에게 보내는 눈 빛 같아서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안 돼요. 이, 이러지 마세요.”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에 돌입했 다.

“네? 그게 무슨

“어후. 아닙니다. 그보다 좀 어 떠세요. 버틸 만한가요?”

“방금 연우 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밖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놈들이 많네 요.”

“그렇긴 하죠? 그보다 부산물을 꽤 얻었나 봐요.”

연우의 눈에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을 가진 사용자들이 보였다. 큰 아공간이 없어서 직접 챙긴 것이다.

“네, 정확한 가치는 모르겠지만, 있는 대로 다 쓸어 모으고 있습니 다. 지출이 큰 만큼 얻는 것도 있 어야죠.”

“잘됐네요. 무거우면 소모품이 나 몬스터로 바꿔 드리죠. 최저 가격만 받고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안 그래도 필요한 참이었다. 소 모품은 급속히 사라지고 몬스터는 거의 죽었다. 불사조는 멀쩡해서 버티고 있었지만, 방금과 같은 적 을 몇 번 만나면 그마저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전혀 쓸 곳이 없는 부산물과 바꿔 준다고 했다. 가지 고 나가 연구를 하고 사용처를 찾 는다면 꽤 큰 가치를 지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짐일 뿐이 었다.

“네, VIP 호갱. 아, 아니. 고객 이니까 싸게 쳐 드릴게요.”

연우도 마침 이곳에서 나는 부 산물이 필요했다. 하나씩 따로 구 하려면 시간도 시간이고 너무나 귀찮았다.

갑작스레 시작된 거래였지만,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연우가 곁에 있는 덕분에 조금 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고 말이 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연우는 불사조 한 마리를 더 팔 았고 아공간에 있던 적당한 장비 와 소모품을 건넸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더 가져오 면 잘 쳐 드릴게요. 마침 필요할 때라서 요.”

“감사합니다. 저희는 금방 출발 하겠습니다.”

“그래요. 안전하게 움직이세요.”

이진철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만한 방파제와 고객을 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 감사합니다.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요.”

“당연하죠. 절대로 죽으면 안 됩니다.”

연우는 다시 한 번 신신당부하 고 이동했다.

몇 마리만 더 수집하면 돌아갈 시간이다. 가서 밥부터 먹고 수집 한 몬스터를 강화해야겠다.

“어? 연우 님…… 저기에 뭔가!”

리젤이 당황했다.

점점 커지는 기운 때문이다. 아 주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 평선 밖이었다.

연우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강력한 악의를 지닌 존재였다. 기본적인 무력도 강했다. 목표가 연우와 리 젤인지 이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점점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으으으.

눌린 듯 넓게 퍼지는 울음소리.

그 소리에서 느껴지는 ‘파괴’의 악의.

연우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

“헤맨, 대작 하나 꺼내라.”

“벌써 대작인 겁니까? 알겠습니 다.”

대작 등급의 그림은 연우도 아 공간에 두 개뿐이 없다. 후름이 대작을 그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더 구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도 연우는 대작을 꺼냈 다.

그 정도로 상대가 강하다는 거 다.

멀리 큰 몸집이 보이기 시작했 다.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몸집.

검게 변한 에이션트급 이상의 드 래곤이었다.

“ 좋구나.”

연우는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짜릿한 강함. 전력으로 붙을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 느껴진다.

쿠아아아!

악의로 물든 파괴의 브레스가 뿜어진다.

주변의 검은 대기는 물론이고 아래 땅까지 먼지로 변하며 연우 에게 쏟아진다. 하늘이 갈라지는 듯 공간이 뒤틀렸다.

연우는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힘을 느끼고 싶었고 포 클래스 마스터 에 든 드래곤이 악의에 오염되면 어느 정도의 힘을 낼까 궁금했다.

신살검을 꺼냈다.

물론, 검집을 분리하진 않았다.

“ 와라.”

연우의 휘두름. 파괴의 드래곤 의 브레스.

두 힘이 부딪히며 허리케인이 생겨났다. 신격과 염력이라는 연 우의 힘. 그리고 악의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 다.

구으으응.

지축이 혼들린다. 강하다. 정말 이 드래곤이 마음을 먹는다면. 지 구로 나온다면 대륙 몇 개를 쓸어 버리는 건 어렵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연우와 동료들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쯧. 아무래도 사자에 비하면 보잘것없긴 하네.”

연우는 약간 허탈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꿔 들었다. 아직 대작까 지는 필요가 없었다. 명작이면 충 분했다.

화악!

밝은 빛이 드래곤을 감쌌다.

발버둥 쳤지만, 연우의 신살검 이 뒷목을 때리며 반항은 끝이 났 다.

“리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살벌한 기세에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리젤은 연우의 목소리 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 고 그녀의 눈엔 존경이 담겨 있었 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