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편_ 노점 수레(2)
다이센오키 국립공원의 입구는 많은 사용자로 붐볐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곳은 두 개의 수레가 있 는 곳이었다.
“자자, 물량이 별로 없습니다. 빨리 사 가세요. 카드는 아직 안 돼서 계좌 이체로 받습니다.”
“현금 영수증 발행 가능합니다. 아, 이거요? 이건 120억 엔입니 다. 이건 1억 엔. 무슨 차이냐고 요? 이건 영구 효과고 이건 5시
간입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저 검은 연기에 오염되지 않게 지켜 주는 아이템들이었다. 소모품도 있었고 장신구나 장비도 있었다.
리젤이 옆에서 도왔고 이자젤과 후름은 판매에 열중했다. 물량이 계속 별로 없다고 소리쳤지만, 거 의 무한할 정도의 물량이 존재한 다.
“이건 1조 엔입니다. 환율은 현 시간 환율이고요.”
10조짜리는 이곳에서 가장 높 은 등급인 ‘전설’급 장신구였다. 악의라는 검은 기운을 차단하고 마법 스킬이 한 단계 오르며 마력 량이 세 배까지 늘어난다.
체력 회복과 정신을 맑게 유지 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건 내 거다!”
해서웨이가 눈이 하얗게 돌아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진철은 가 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마법으 로 뺏어 버린 것이다.
“내가 먼저 골랐거든!”
“짚은 사람이 임자지!”
화가 난 해서웨이가 이자젤을 보며 소리쳤다.
“제가 1,000억 엔 더 낼게요!”
“흥, 난 2,000억 엔 더 낼 수 있다.”
“그만들 좀 해요!”
그걸 보던 시누자키 아이가 소 리쳤다. 이 물건들로 싸우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그 둘이 온몸에 장비와 장신구를 주 렁주렁 달고 있으면서 욕심내는 게 어이가 없어서다.
“아니, 애들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아, 아니
이진철 협회장이 쩔쩔맨다. 원 래 그런 사이인 듯 시누자키가 잔 소릴 했다.
그때, 해서웨이는 빠르게 결제 를 끝마쳤다.
“아자! 이건 내 거다!”
“어후, 얄미워.”
이진철이 해서웨이를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시누자키는 그런 이 진철을 다시 쏘아봤고 이진철은 시선을 피했다.
“하하, 둘은 언제나 변하지 않 는군.”
미국 지부 협회장 스미스가 이 진철과 시누자키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제가 뭘요? 스미스 씨,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이게 뭐하는 거예 요?”
스미스도 목에 다섯 개의 목걸 이를 차고 있었고, 양손에는 반지 만 15개가 넘어갔다. 벨트는 왜 세 개나 찼는지 모르겠다.
“그, 그게…… 일단 내가 사고 나누는 거지. 팀원들한테.”
“정말 내가 못살아.”
시누자키는 몸을 홱 돌려 터벅 터벅 걸어갔다.
이진철과 스미스는 어색하게 서 로를 바라봤다.
“역시 무서워.”
“그러니까. 귀여운 얼굴만큼 성 격도 귀여웠으면……
“응? 귀여웠으면 뭐?”
“아, 아니. 잘못 말한 거야. 아 무것도 아니야.”
“에이, 내가 들었는데? 역시 그 냥 투닥거리는 게 아니라니까. 한 국에선 이렇게 하나?”
뭘?”
“얼레리 꼴레리!”
모두 유치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진철은 한국의 칩룡과 특수팀 이 도착하자 장비를 나눠 주면서 작전을 설명했다. 방금과는 완전 히 다른, 프로의 모습이었다.
그건 녹튼의 해서웨이.
미국 지부의 스미스.
일본 지부의 시누자키.
레드 문의 데이비드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극도의 긴장이 그들을 삼켰고, 높게 올라가는 장벽들 사이로 검 고 지독하게 변해 버린 숲이 보였 다. 어두웠기에 강한 조명을 사용 하고 있었고 그 빛에 꿈틀거리는 검은 연기도 보였다.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지독한 놈들이다. 닿는 모든 건 오염시킨 다.
다 비슷한 모양이지만, 분석한 바에 의하면 수십 가지의 서로 다 른 힘이 존재한다.
생명과 마력을 빨아들이는 ‘식 욕’, 번식 본능의 폭발로 미쳐 버 리게 하는 ‘성욕’, 그 어떤 것이든 잠에 빠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 는 ‘수면욕’.
인간의 3대 욕구다.
그뿐이 아니다.
어떤 연기는 끝없는 살의를 일 으키고, 어떤 연기는 희망을 모두 삼켜 절망에 빠지게 한다. 또 각 종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하고 여 러 힘이 섞여 돌연변이를 만들기 도 한다.
다이센오키 국립공원은 그런 곳 이다.
평범한 몬스터 필드, 던전, 게 이트는 모두 오염돼 버렸다. 단순 히 그 지역에 있는 것만으로 죽을 수 있고 감염돼 인간이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우린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된 다. 이 결계는 유지되겠지만, 우 린 이것들을 상대하는 법을 익히
고 약점을 찾아야 한다. 일본. 이 곳에서 생겨난 거지만, 우리나라 나 다른 나라에서 생기지 말란 법 은 없다.”
이진철 협회장은 간부 3명, 특
수팀 20명, 십룡 10명을 향해 말
하고 있었다. 굳은 얼굴이었고 그
얼굴엔 확고한 신념이 보였다.
“왜 일본까지 와서 위험한 곳에 들어가느냐. 필요 없고 두렵다고 생각하면 빠져도 된다. 당연한 선 택이고 불이익도 절대로 없다.”
이진철은 잠시 숨을 골랐다.
“없습니다!”
최민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뒤에 십룡과 특수팀도 마찬가지 였다.
칩룡은 평균 8단계 사용자, 특 수팀은 7단계에서 9단계까지 분 포한다. 그리고 간부 2명은 원 클 래스 마스터, 최민아는 투 클래스 마스터다.
그리고 협회장 이진철도 투 클 래스 마스터.
굉장한 전력이다.
“후, 알겠다. 또 하나.”
이진철은 다른 곳에 모인 녹튼, 미국 지부, 일본 지부, 레드 문까 지. 한국 지부에 전혀 떨어지지 않는 전력이 모인 곳을 바라봤다.
“저런 잡것. 아니, 저런 애들한 테 절대로 지면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최고였고 앞으로도 최 고여야 한다.”
“예, 맞습니다!”
“자, 가자. 저것들의 콧대를 단 단히 눌러 주자고!”
“으아아아!”
역시 머리가 유치하면 아래도 유치해지는 법이다.
일본 지부와 미국 지부는 딱딱 히 굳은 분위기였고, 녹튼은 이진 철보다 더했다. 레드 문은 아무 말도 없이 준비할 뿐이었다.
그리고 진입이 시작됐다.
“아씨,연우는 어딜 간 거야?”
이자젤이 신경질을 냈다. 슬슬 사용자들이 결계로 진입하고 손님 이 뜸해지면서 연우가 사라진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게 슬슬 배고픈데.”
“우리 장사시켜 놓고 도망간 것 봐! 진짜 오기만 하면……!”
우웅. 팟!
그때 마침 연우가 워프로 등장
했다.
옆엔 앞치마를 맨 한 중년 남성 이 서 있었다.
“연우! 어딜 다녀온 거야! 그 사람은 또 누구고?”
“자, 내가 때마침 우리 요리사 를 구해 왔습니다.”
연우는 그렇게 말하곤 아공간에 서 수레 하나를 꺼냈다. 큼지막한 마차에 한쪽 면이 뚫린 모양이었 는데, 요리를 하기엔 좁아 보였다.
“여기서 요리 좀 부탁할게요.”
“여, 여기가 제 직장입니까?”
“임시입니다. 며칠만 여기 있다 가 농장으로 갈 거예요. 거긴 제 대로 된 식당이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둘의 대화에 이자젤이 눈을 빛 냈다. 이미 짜증은 날아간 상태였 다.
“요리사 구해 왔구나!”
이자젤은 ‘Close’ 간판을 걸었 다. 잠시 쉰다는 거다. 후름도 마 찬가지로 간판을 올리며 푸드 마 차 앞으로 모였다.
연우는 테이블과 의자를 꺼냈 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밤 이다. 이렇게 야외에서 먹는 것도 꽤 신선하다.
“헉! 이게……!”
푸드 마차 안으로 들어간 남성. 세키구치 쇼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차치고는 크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 위해선 너무 작았다. 하지만 들어와서 보니 밖에서 본 것보다 세 배는 컸다. 오븐도 있 었고 가스레인지도 다섯 개나 있 었다.
각종 조리 기구와 접시들도 많 았다.
“여, 여기는 어떻게……
“안에 있는 건 마음껏 써도 됩 니다. 실력을 보여 주세요.”
쇼타는 주방을 둘러보기 시작했 다. 큰 냉장고도 있었는데 안엔 없는 재료가 없었다. 게다가 냉장 고 옆엔 그림이......?
그림이 아니었다.
벽에 액자처럼 걸린 곳엔 수많 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아, 그건 손으로 꺼내면 돼요. 이렇게 하면 확대가 되거든요.”
연우가 만든 소형 어장이었다. 언제든 의지로 꺼낼 수 있는 해산 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참고로 전 숙성 회가 더 좋습 니다. 오늘은 회 말고 다른 요리 로 부탁할게요.”
“네, 네! 물론입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 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정 도의 재료를 이렇게 쉽게 구해 본 적은 없을 거다. 그것도 보통 물 고기가 아닌 희귀한 몬스터도 많 았으니까.
연우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자젤과 후름. 리젤까지 조금 은 지친 모양이다.
“역시 장사는 나랑 안 맞아.”
“그럼 뭐가 맞는데?”
“쇼핑. 난 사는 쪽이지 파는 쪽 이 아니니까.”
“덕분에 돈 벌었잖아. 몬스터를 수집하는 것도 人} 주는 사람이 있 어야 가치가 있다고 했지? 쇼핑도 그래. 돈을 버는 고생이 있어야 쓰는 것도 더 가치가 있는 법.”
“오오, 개소리하고 있네. 그냥 쓰기만 하면 얼마나 좋냐?”
소소한 대화를 하고 있자 요리 가 금방 나왔다.
가지 속에 각종 고기 속을 넣어 튀긴 하사미아게다. 한쪽엔 양배 추를 잘게 썰어 하얀 소스를 얹었 다. 옆엔 오키나와풍 창고나베가 있었다.
돼지 사골을 푹 끓여 육수를 내 고 숙주와 각종 고기가 가득한 전 골이다.
연우는 말없이 수저로 육수를 떠먹었다.
입안에 들어간 사골은 진했다. 깊은 향, 고기의 기름, 숙주의 시 원함. 거기에 칼칼한 목 넘김.
“캬아. 좋다.”
맛있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국물이 절대 아니었다. 역시 명인 이다. 확실하게 깊이가 느껴졌다.
다음엔 가지튀김이었다.
입에 넣고 씹자 바삭한 튀김이 갈라지며 고기 속의 다채로운 맛 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적당한 기 름과 가지의 담백한 향까지.
“크으. 이거 장난 아닌데? 어디 서 구해 온 거야?”
“그러게, 이 정도 요리 실력이 면 요리 스킬이 따로 필요도 없겠 는데?”
“꽤 많은 연봉. 그리고 희귀한 몬스터 재료까지 무한하게 구해 준다는 조건으로 영입했지. 역시 명인은 돈보단 재룐가 봐.”
이 사람이 요리 스킬을 익히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아마 7단계나 8단계까지는 순식간에 오르지 않을까?
요리사 쇼타가 접시 하나를 더 내왔다.
이번엔 방어머리조림이었다. 머 리와 뼈까지 한 번에 졸인 듯했 다. 두툼한 살덩이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따로 숙성한 것 같았다.
연우는 젓가락으로 머리 아가미 살을 툭 떼서 입에 넣었다.
진한 간장 소스가 달고 짭짤하 며 매콤하게 느껴졌다. 이런 방어 머리조림은 살과 소스가 따로 놀 기 좋은데 이건 완전히 스며든 상 태였다.
연우는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해 살을 떼서 소스에 푹 담가 먹었 다.
“와우. 이건 소주 안주다.”
100% 확신했다. 이건 사케도 아니고 맥주는 더더욱 아니다. 이 거야말로 소주와 찰떡궁합이 아닐 까.
“연우, 소주 한잔?”
역시 이자젤이 눈치가 좋다.
까드득.
하지만 리젤은 행동력까지 좋 다. 어느새 차갑게 성에 낀 소주 를 따르고 있었다.
“좋다. 날씨도 선선하고.”
머리 위엔 수십 개의 조명이 사 방을 비추고 있어 어둡지도 않았 다.
끄 0}<아?으}!
살려 줘!
그때 결계 안쪽에서 비명이 들 렸다. 하지만 곧 끊겼다. 전부가 아닌 한 팀 정도가 당한 모양이 다.
“뭐야? 왜 벌써 저래?”
연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자젤과 후름이 만든 아이템을 가져갔으면서 벌써 저렇게 당하면 안 된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모 은 정예 아닌가.
“불안하네.”
“그러게, 좀 강한 놈들이긴 했 지만, 그 장비가 있으면 꽤 버틸 텐데.”
“여기에 몬스터도 조금 팔아야 겠어.”
“그런 건 오염되지 않을까? 다 른 몬스터처럼 변형되고.”
“생각해 둔 게 있지. 어떤 것에 도 오염되지 않는 몬스터. 나도 한 마리 데리고 있고.”
어차피 연우도 안쪽에 들어가려 했다.
아공간에 여백의 그림들은 많았 고 후름도 이런 건 만들 줄 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희귀한 몬스터 수집. 거기에 그림으로 수 집한다는 프리미엄까지 얹혔다. 그걸 연우가 모른 척 지나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