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편_ 노점 수레(1)
연우가 누른 번호는 한국 지부 협회장 이진철, 미국 지부 협회장 스미스, 녹튼의 해서웨이, 레드 문의 데이비드였다. 그리고 그들 에게 일본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위험할 수 있으니 당장 오라고 한 거다.
그러니 리쿠와 직원들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 수밖에.
방금 연우가 통화한 이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도 손댈 수 없는 힘 을 가졌다. 금력, 권력, 무력까지.
“자, 이제 다 모일 때까지만 결 계로 막아 놓을까?”
“모일 때까지?”
이자젤이 물었다.
“당연하지. 이후에는 결계 설치 료랑 사용료도 받아야지. 물론, 일본이 가장 많이 내야 할 거고. 그들도 모두 이득을 보는 상황이 니까 다 받아야지.”
“이야. 역시 연우네. 독하다 독 해.”
“독하긴. 받을 건 받고 도와줄 건 도와주는 거지.”
“돕는 게 아니라 거래지!”
“야, 다 네 쇼핑 때문에 그런 거거든!”
“어차피 내가 사도 다 연우 네 가 가질 텐데.”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연우는 크게 관심은 없 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면 그게 당 연한 줄 안다.
무료라면 허투루 대하는 게 사 람이 다.
돈은 조금 더 벌든 덜 벌든 상 관없다. 그저 책임을 더 갖고 고 마움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뜻에 서 돈을 받는 것.
“아, 일본 지부 협회장은 어디 있죠?”
“지금 곧 올 겁니다.”
“그럼 저 앞으로 오라고 해 줘 요. 일단 확산하는 건 막아 볼게 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연우는 일행과 먼저 이동했다.
아무래도 힘을 되찾은 후라 워 프가 훨씬 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센오키 국립공원은 이미 지 옥이었다.
원래 필드와 던전. 게이트나 떠 돌이 몬스터가 많은 곳이다.
숲이 너무 우거지고 식물형 몬 스터나 벌레형 몬스터도 많아 도 시 밖으로 밀려 나오는 몬스터를 막기도 벅찼으니 토벌은 생각도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이상한 기운이 들어 차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다양했다.
[영혼마저 삼키는 식욕(食慾)].
그 기운에 닿은 오우거는 가죽 이 녹아내리며 두 눈이 사라졌다. 대신 점액으로 변한 가죽은 물리, 마법 방어력이 족히 세 배는 올랐 다.
끔찍한 외형에 맞게 뭐든지 먹 어치우는 아귀(饌鬼)가 됐다.
[고통에서 시작하는 성욕(性 慾)].
독수리의 날개, 사자의 발톱, 사람의 얼굴을 한 하피는 검은 연 기에 닿자마자 깃털이 단단한 가 시로 변했고 등에서 척추가 가죽 을 뚫고 날카롭게 솟았다.
비명을 지르며 하얀 점액을 뿜 기도 했다.
[무저갱의 늪, 수면욕(粧眠
WL
곧게 선 식물형 몬스터인 스탬 프가 검게 변하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누런 점액을 질질 흘리 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말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욕구, 쾌락, 환락, 고통, 질병의 기운들이 숲 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에 닿은 모든 생명체는 전 염됐고 변태(變態)했다.
진짜 지옥보다 지옥 같은 곳.
‘악의의 대륙’의 입구가 될 다이 센오키 ‘검은 땅’의 시작이었다.
도착한 일행은 지독한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숲 밖이었다. 그사이에 벌써 숲 80% 이상의 면적을 집어삼켜 버 린 것이었다.
대략 320제곱킬로미터의 넓이 다. 그 넓은 땅을 삼켰다. 닿자마 자 오염시켜 변태하는 건 경악할 정도의 강력한 감염력이었다.
“더러워.”
이자젤과 후름. 거기에 마계에 서 온 리젤까지 미간을 찌푸렸다.
“마계는 깨끗한 곳이었네요.”
“생각보다 순수한 힘이니까. 마 기라는 건.”
“그렇죠. 사실 신성력이라고 깨 끗한 건 아니니까요.”
천계와 싸웠던 마계의 인물이 하는 소리다.
“일단 결계부터 펼칠까?”
숲은 얼마든지 점령해도 상관없 다. 하지만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 이 죽어 갈 게 뻔한데 그대로 보 고 있을 순 없었다.
연우는 헤맨을 불러 아이템을 하나 받았다.
마법 10단계, 아공간 10단계, 방어술사 10단계의 명인들이 모 여 만든 얼티밋급 결계 스크롤이 다. 이 정도의 결계라면 연우도 온 힘을 다해야 뚫을 정도의 방어 력을 지녔다.
아무리 악의라는 게 일반적인 마력, 물리력 등이 통하지 않는다 고 해도 이건 절대로 뚫을 수 없 다.
찌지직.
스크롤을 찢었다.
환한 빛이 퍼지며 숲 전체를 감 싸 안았다. 연우의 앞에서부터 일 정 높이까지 두껍고 단단한 결계 가 형성됐다.
동시에 검은 악의가 결계에 부 딪 혔다.
이 결계와 도시까지 오염시키려 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도대로 뚫 리지 않았는지 악의가 발악했다. 달려들고 튕겨 나가고 달려들고 또 튕겨 나갔다.
하지만 결국 뚫을 순 없었다.
“음, 여기가 적당하겠네.”
앞으로는 결계가, 뒤로는 도시 에 연결된 도로가 있다. 원래의 입구도 이곳이었으니 연우가 부른 사람들도 모두 이곳으로 올 거다.
“여기서 판 깔자.”
연우의 말에 이자젤과 후름이 웃었다. 리젤은 무슨 말인지 모르 겠다는 표정이었다.
“도와줘야지. 사람들.”
“난 마법 상점. 아니, 노점상인 가?”
이자젤이 소리치며 아공간에서 바퀴가 달린 노점상을 꺼냈다. 이 동 가능한 최신식 블러드 우드 노 점상 수레다.
“난 정령석을 이용한 정신 저항 아이템하고 감염 저항 아이템을 만들지. 너무 비싸거나 싸지 않게. 정신 계열 전용 상점이다.”
후름도 마찬가지로 수레를 꺼냈 는데 안엔 하급부터 중상급의 정 령석이 가득 차 있었다.
“리젤은 저 둘 좀 돕고.”
“네, 연우 님은요?”
“난 홍정 좀 하고 몬스터 수집 할 준비도 해야지.”
“수집이요?”
“응, 그림 수집.”
농장에 작은 그림 갤러리를 열 어도 될 것 같았다. 언제든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악의의 몬스터가 갇힌 그림이 가득한 갤러리 말이 다.
준비는 조금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가운데 일본 지부 협회 사람들이 몰려왔 고, 일본 정부에서 나온 사람도 줄줄이 차를 타고 도착했다.
연우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리쿠가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거의 비슷하게 헬리콥터 몇 대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해서웨 이였다. 녹튼은 이곳에서 가장 먼 줄 알았는데 마침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연우 님!”
“으, 응?”
뭔가 절로 반말이 나오는 분위 기였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 그런……. 그건 그렇고 어 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녹튼 아시아. 아태 지역 지부 를 만들어 책임자로 내려왔습니 다. 아무래도 연우 님이 부르면 빠르게 와야 하니까요.”
언제 이렇게 친해졌는지 연우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꽤 많은 매출을 올려 주 는 고객이기에 연우는 부담스럽지 않게 인사를 받았다. 뒤로 이진철 협회장과 최민아가 도착했고 스미 스까지 늦지 않게 왔다.
“여기 계셨군요.”
“네, 아프리카에 있던 거 아니 었습니까?”
연우는 검게 탄 이진철 협회장 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아프리카 본부엔 공 간 이동 전문가가 있으니까요. 물 론, 헤맨 님에 비하면 상당히 불 편하지만요.”
하긴, 들은 적이 있긴 하다. 협 회나 셰이크의 프로젝트나 그렇게 작은 곳이 아니니까 한 명쯤은 있 을 만했다. 스미스도 워프로 왔다 고 했는데 토하기 직전이었다.
뒤로 일본 협회장인 시누자키 아이가 도착했고, 레드 문의 데이 비드까지 왔다. 역시 이름과 세력 이 있는 사람들이라 워프 능력자 한 사람씩은 있는 모양이었다.
“데이비드까지 왔네요. 이제 다 모였나요?”
이자젤, 후름, 리젤은한참장 사 준비 중이었고 일본 지부에서 나온 사용자들과 정부에서 나온 자위대는 연우가 설치한 결계 뒤 쪽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 다.
굉장히 빠르게 움직였는데 트레 일러를 실은 트럭 수백 대가 와서 무언가 내려놓더니 순식간에 장벽 을 세우고 있었다.
연우는 고개를 돌려 앞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제가 대충 조사를 해 봤습니 다.”
헤맨과 나눴던 대화를 설명했 다. 시누자키 아이나 데이비드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머지가 100% 신뢰하자 둘이 반박할 순 없었다.
“그래서 결계 설치료를 받을 거 고 유지하는 대가로 매년 사용료 를 받을 겁니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 분?”
손을 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협회는 각 지부 따지지 말고 공평하게 냅니다. 당연히 세계 평 화를 위한 게 세계사용자협회니까 요.”
“아, 알겠습니다.”
이진철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어차피 자기 돈 아니라는 거다. 그런 생각을 안 연우는 더 편해졌 다.
“당연히 가장 많은 돈을 부담해 야 하는 건 일본 정부이기도 하고 요.”
“그건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사 실 반쯤 협박이겠지만요.”
시누자키 아이다.
어떤 연예인과 이름이 상당히 비슷했는데 외모도 비슷했다. 귀 여운 얼굴에 볼륨감 넘치는 몸까 지. 하지만 탱커형 직업인 건지 중장갑에 가까운 장비를 걸치고 있었다.
“네, 그래 줬으면 좋겠네요. 만 약 제대로 된 설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하루 정도면 이 결계 는 사라지거든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영구 유지 가 가능한 결계다.
하지만 연우의 말을 듣는 입장 에서는 얼굴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너지면 저기 검은 악의들이 퍼지는 시간은 순간일 테니까.
“자, 가격이야 조금 협의를 거 쳐야 하고. 어차피 이걸로 언제까 지나 막을 수 없으니까 안으로 들 어가 탐사를 해야겠죠?”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들도 한자리하는 능력자들이 고 이미 그럴 계획으로 보였다.
들어가서 맞서고 싸우며 강해진 다. 적에 적응하고 원인을 찾아 파괴한다. 만약 저들이 인류의 자 원에 도움이 된다면 유지는 할 거 다.
그건 이제 그들의 선택.
연우는 조금만 더 도와주면 된
마침 장사 준비가 끝났다.
“다 됐네요. 탐사 준비가 끝나 면 저기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 는 게 좋을 겁니다. 아직 적응이 안 된 사용자들에겐 상당히 당혹 스러운 적이니까요.”
연우는 뒤에 큼지막한 두 대의 수레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며 허 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을 당황해 했 지만, 금방 돌아왔다.
가장 정리가 빠른 건 역시 이진 철과 해서웨이였다.
“좋은 건 제가 먼저 구매하겠습 니다!”
“흥, 내 자금 운용력이 더 좋 지! 우리 녹튼은 돈을 갈퀴로 끌 어모으거든!”
“그거 다 불법이잖아!”
“미친! 연우 님 앞에서 쓸데없 는 소리 하지 마!”
둘이 쓸데없는 경쟁을 한다. 하 지만 연우에겐 나쁠 것 없었다. 나머지도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수레로 이동했다.
그곳으로 가지 않은 사람은 굳 이 직접 구매할 필요가 없는 최민 아뿐이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정말 돈을 갈퀴로 끌어모으는 걸 보고 말한 거다.
“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건데요.”
“네?”
“저 많은 사람이 위험해 처했는 데 도와주지 않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약간 핀트가 어긋난 대화였지 만, 서로 만족했으니 상관없었다. 연우는 푼돈을 받으며 저들을 적 극적으로 도운 거고, 저들은 저 푼돈으로 사람들 구하고 안정적인 탐사가 가능했으니까.
“나도 장사를 해 볼까.”
아예 이곳에서 몬스터를 파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연히 보통 몬스터는 안 된다. 저 안에 악의로 오염된 몬스터를 길들이면? 주인이 된 사용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번 실험이 필요하다.
꼬르륵.
마침 배가 고파졌다.
“아, 나 여기 요리사 구하러 왔 지.”
그제야 본 목적이 생각났다. 연 우는 주변을 둘러보곤 이곳에 있 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우는 몰래 워프했다.
이자젤이 보면 치사하다고 소리 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