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1편_ 악의(惡意)(1) (96/207)

제111편_ 악의(惡意)(1)

“길드장님! 여기에 무언가 있습 니다!”

다이센오키 국립공원의 가장 깊 은 곳이다.

이곳은 미지의 지역이다. 터무 니없이 넓은 면적도 한몫했지만,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면서 웬만 한 사용자가 아니면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뭐야. 이런 곳에 무슨……

말은 끊겼다. 얇은 마력의 장벽 이 느껴졌고 절벽들 틈 사이에 미 묘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이 근방은 8단계 몬스터 필드 와 7단계 던전의 사이다. 겹친 줄 알았는데 살짝 어긋난 곳에 틈이 생긴 것.

“다이스케 불러! 결계 확인하라 고 하고 이쪽에 베이스캠프 지어.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위험한 곳이다. 당연히 캠핑이 라는 건 더욱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히로시 길드’의 길드장 ‘요혜이 히로시’다. 그는 일본 사 용자계의 전설이었고 그를 따르지 않는 이상 이 다이센오키 국립공 원 가장 깊은 이곳까지 온다는 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모두가 확신할 정도로 능력 있는 리더였다.

히로시 길드의 최정예 21명.

5단계 필드 수십 개는 기본이 고 7단계 던전과 8단계 게이트까 지 뚫고 온 일당백의 전사들.

그들이 이곳까지 온 건 한 가지 소문 때문이었다.

‘국립공원 가장 깊은 곳에 황금 도시가 존재한다.’

‘터무니없는 괴물들, 하지만 새

로운 세상이 있다.’

‘그곳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포션이 존재한다.’

별의별 소문이 도는 곳이었다. 이곳까지 도착한 사람은 거의 없 다. 하지만 그게 아예 없다는 말 은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가장 깊은 곳 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용자들이 생겼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 다.

하지만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질풍의 렌’이라는 속도 관련 특수 직업을 가진 사용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땐, 의심이 시작됐다.

‘질풍의 렌, 그가 다이센오키 국립공원 가장 깊은 곳에 다녀왔 다.’

‘모든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모두 사실이다.’

‘진짜인가? 질풍의 렌이라면 믿 을 수 있다.’

‘아니다. 질풍의 렌은 예전의 렌이 아니다. 그는 미쳐 버렸다.’

온갖 소문들이 무성했다.

그는 9단계에 든 사용자였지만, 가진 업적은 일본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철의 비가 내렸던 오사카의 영웅이었고 트롤 웨이브가 닥친 나고야의 트롤 학살자였다. 그런 업적을 세운 소수 최정예 길드 ‘질풍단’은 웬만한 대길드 못지않 은 영향력을 갖는다.

그런 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아무리 그곳에 다녀온 이후로 미쳤다고 하지만, 영웅은 영웅이었다. 오히려 그가 진실을 봤기에 미쳤다는 소문까지 돌 정 도였다.

그래서 히로시 길드가 여기까지 왔다.

“여기 막사 세우고, 여기 경계 마법진 세워! 하이드 결계랑 두 명씩 경계를 돌아. 약간이라도 이 상이 있으면 보고부터 한다.”

둘이 경계를 서다 한 명이 죽더 라도 공격을 해선 안 된다. 한 마 리도 감당하기 힘든데, 무리를 이 끌고 오면 이곳은 몰살이다.

“다이스케, 어때?”

마력의 흐름을 살피던 민머리의 다이스케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 다.

“들어가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오는 건 모르 겠어요. 안에서 이상한 느낌이 가 득합니다.”

“느낌?”

“네…… 마치, 악의 같습니다.”

살갗이 쓰라릴 정도로 강렬한 악의다. 살기를 뛰어넘는 기세. 척추가 뒤틀리고 식은땀이 싸늘하 게 말라 버릴 정도였다.

다이스케는 오금이 덜덜 떨렸 다.

그때, 작은 검은 기운이 히로시 의 머리를 휘감았다.

“아……

히로시가 다이스케의 어깨에 손 을 얹었다. 마력으로 따듯하게 감 싸 줬다. 히로시의 정신 계열 마 법 ‘안정’이다.

“안심해. 우린 성공할 거고. 안 은 광명이 가득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야.”

씨익 웃는 히로시의 얼굴을 본 다이스케는 그제야 진정돼 결계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크우우웅.

연하게. 아주 연하게 닫혀 있던 결계가 열린다.

히로시가 고개를 넣었다. 왜 그 랬는지는 히로시조차 알 수 없었 다. 하지만 그 순간.

퓨슉.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로 넘어가는 히로시의 몸엔 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발 을 들이밀 뿐이었다.

쿠득, 쿠득.

섬뜩한 소리가 숲에 조용히 울 려 퍼졌다. 살점과 뼈를 씹어 먹 는 소리였다.

푸르르.

그때, 무언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 은 악의.

그 자체였다.

아쉽게도 아멕스나 블랙 카드를 꺼낼 타이밍은 없었다. 이시연이 알아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연우와 일행은 협회 경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협회 간부들의 인사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 니다.”

“ 반갑네요.”

연우는 가볍게 손을 잡고 경매 장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 다. 그의 태도는 상당히 깍듯했는 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 다.

한국 지부 이진철 협회장, 미국 지부 스미스 협회장, 녹튼의 해서 웨이, 레드 문의 데이비드, 미국 안보부의 소피아까지.

그사이에서도 한 끗발 부족한 게 일본 협회장이었고 그 아래가 연우 옆에 서 있는 리쿠 간부였 다.

“물품을 팔아 주신다고 들었습 니다.”

“네, 돈도 필요하기도 하고…… 저건 뭐죠?”

협회 경매장 안쪽. 복도 구석의 검은 문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 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정 실인데 질풍의 렌이라고 탐사를 갔다가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회 복 중입니다.”

사실은 회복이 불가능해 보여서 감금 중이라고 말을 할 순 없었 다. 어찌 됐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보는 중이었으니까.

굳이 경매장인 건, 협회 소속이 고 가장 단단한 창고가 있기 때문 이었다.

“그렇군요.”

연우는 방문 주변으로 검은 기 운이 보였다. 마기도 아니었고 그 렇다고 어둠의 마력도 아니었다.

악의가 가득 들어찬 집념이랄까.

“뭐, 신경 쓸 건 없겠지.”

이자젤과 리젤은 경매에 올릴 아이템과 장비를 고르는 것에 집 중하고 있었다.

아무거나 올릴 순 없다. 파급력 이 너무 강하지 않으며 비싼 값을 받을 만한 것을 올려야 한다.

“연우야. 몬스터를 팔아 볼까?”

“몬스터? 왜?”

“재미있으니까? 독점할 수 있 고, 언제든지 연우 네가 제어할 수 있으면서 인류에 힘을 보태는 것도 되고.”

나쁠 건 없다.

장비 상점과 마법 상점. 그리고 이번엔 몬스터 상점을 여는 거니 까. 특히, 연우나 헤맨. 잘해야 이 자젤 정도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번식 기능이야 없애면 되고 구 울이나 뱀파이어처럼 다른 종속을 만들거나 질병 몬스터처럼 감염이 되는 건 안 팔면 된다.

슬라임도 종류별로 팔면 돈이 꽤 될 거다.

게다가 블랙 카우나 블랙 쿡도 몇 마리 지배할 수 있는 아이템과 함께 판다면 목장을 만드는 이들 도 생기지 않을까?

“돈이 잘될 거 같진 않은데.”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자잘한 것 들은 큰돈이 안 된다. 연호나 연 지에게 줬던 작두 같은 것이라면 또 다르다. 하지만 그런 건 풀어 봤자 좋을 게 없다.

“우리가 언제 돈 보고 했나? 네 가 그랬잖아. 쇼핑은 하다 보면 질리고 몬스터 수집하게 된다고. 굉장한 사치 아이템이 되기도 하 고 누군가 사 줘야 수집하는 재미 도 늘지 않을까?”

“웬일로 옳은 말만 하냐?”

연우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기업 쇼핑을 한다더니 정말로 재 벌 회장이라도 될 모양인가.

“어때, 재미있겠지?”

저 표정은 정말 재미있겠다는 마음인 거다.

하긴, 연우가 생각해도 재미있 을 거 같았다.

“나쁘지 않네. 일본에서 첫 판 매를 시작해 볼까.”

좋게 말하면 최초라는 타이틀을 딸 수 있는 거고 안 좋게 말하면 실험 대상이 되는 거다. 어떤 방 향이든, 연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WIP 대기실에 들어가면서 리 쿠라는 간부는 돌아갔다.

“어떤 걸 팔아야 잘 팔았다고 소문이 날까.”

이자젤, 후름, 리젤까지 머리를 한데 모아 회의를 시작했다. 대충 보기엔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 고 놀고먹는 줄 알지만, 꼭 그렇 지는 않다.

그래도 한 달에 하루 이틀은 이 런 일에 집중한다.

“슬라임을 종류별로? 물리, 마 법, 사대 속성, 금속?”

“왜. 괜찮지 않아?”

“괜찮긴. 이건 진짜 쓸 곳이 없 잖아?”

“없긴 왜 없어. 물리 속성은 탱 커로 쓸 거고 마법은 딜러로 쓰겠 지. 물론, 그렇게까지 길들이려면 정성 좀 들여야겠지만.”

길들인 것처럼 지배할 순 있어 도 다루는 건 다른 문제다.

“사대 속성은?”

“소장용?”

“아마 실험용으로 쓰지 않을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웬일로 이 자젤이 좀 진지하다. 리젤이나 후 름도 그 모습을 보고 놀랄 정도였 다.

“아예 소수로 갈까? 수집할 가 치가 있게. 실험용으론 엄두도 못 내게.”

몬스터를 잡아다 실험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길 들이는 마법의 매커니즘을 위해 연구하는 건 여기서 구매한 몬스 터만 가능하다.

물론 연구한다고 알아낼 수 있 는 건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게 10단계 마스터 가 되고 길들이기와 비슷한 스킬 이 5단계 이상 되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것도 좋지. 이런 자잘한 건 농장에 몬스터 상점을 따로 만들 면 되니까. 오늘은 홍보용으로 하 자.”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회의를 거쳐 몇 마리의 몬스터를 정했다.

[작두(9단계)]

설명 : 육체 특화 몬스터 작두.

9단계에 달하는 마력이 육체 깊 숙한 곳에 고정돼 강력한 힘을 발 휘한다. 단단한 가죽과 날카로운 네 개의 칼날은 웬만한 9단계 몬 스터를 쉽게 이길 수 있다. 아쉬 운 건, 마력 응용의 한계가 명확 해 성장이 힘들다는 것이다.

(지배자의 목걸이를 착용했습니 다.)

-주인의 경호에만 집중합니다.

연우가 이종교배를 하지 않은 기본 작두였다. 그래도 전투력 하 나는 끝내준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없을 거 고. 이용하기도 쉽지 않겠지.”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이걸로 9단계 무력에게 24시간 밀착 경호를 받을 수 있 다. 거의 목숨 하나 값 아닌가? 돈 많은 거부가 본인의 목숨값을 얼마로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폰]

설명 : 네 발 달린 독수리형 몬 스터. 탑승 가능한 형태로 개조됐 기에 쉽게 라이딩이 가능하다. 하 지만 전투에 쓰이기 위해선 깊은 교감이 필요하다.

“이걸 타고 사냥하는 것도 보고 싶네.”

그리폰은 꽤 희귀한 고급 몬스 터다. 단계로 따지면 7단계 정도 되는 무력을 가졌고 풍성한 털은 방수는 기본이고 물리, 마법 방어 력도 갖추고 있다.

이미 길들여진 상태지만, 지배 자의 목걸이가 없더라도 충분히 사육 가능할 정도로 사람을 잘 따 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탑승형 물소과 몬스 터 [켄타로스], 갈기가 푸른 불로 이뤄진 말과 몬스터 [블루 홀스], 편의를 위한 3단계 이하의 마법 을 부릴 수 있는 요정 몬스터 [두 비], 주변 아군에게 마력을 회복 해 주는 나비과 몬스터 [버플]까 지.

공격성이 적으면서 희귀한 몬스 터를 판매하기로 했다.

처음엔 당연히 반대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100% 안정 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겁니다. 만약, 사고가 터진 다고 해도 협회에서 책임져야 하 니까요.”

“그건 안심하셔도 됩니다.”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진철 협회장에게 전화하는 게 빠르다. 잠시 통화를 마친 리쿠 간부는 굳 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확실하게 안정이 보장됐다 하더라 도 두려워할 겁니다.”

“당연히 평소에 데리고 다니는 건 지양해야죠.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사용자에게만 입찰할 수 있도록 해야죠.”

사실 어려울 건 없었다.

누가 길거리에서 몬스터를 꺼내 들겠는가.

대형은 필드에서만, 소형은 집 안에서만 쓰게 될 거다.

그때였다.

화악!

지독하리만큼 더러운 악의가 검 은 연기로 유형화되며 뿜어졌다.

주변을 모조리 삼키려 꿈틀대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