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0편_ 블랙 엘레멘탈(1) (90/207)

제100편_ 블랙 엘레멘탈(1)

호르드란은 꿈을 꿨다.

뭐, 자세히 말할 것도 없었다.

일전에 세상을 멸망시켰던 두 존 재는 므깃도에 들어오기도 전에 천 공 세계에 발을 디딘 순간 연우에 잡혔다.

뭐라고 하더라.

그래, 그럴 땐 “처발렸다”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렇다. 둘은 발악도 제대로 못 해 보고 사라진 것이었다.

연우에 게 큰 선물을 남기고 말이 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르드란에 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꿈을 꿨고 잘 해결됐다는 거다.

홀짝.

역시 아침엔 커피인 것 같다.

어제는 레몬에이드를 먹었더니 입이 좀 셨다.

“상쾌하네.”

안락의자에 앉아 나른함을 즐기 는 중이었다. 선선한 바람에 큰일 을 치렀다는 뿌듯함. 그리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안정감까지.

완벽한 휴일의 아침이었다.

저 멀리 블랙 카우 울타리에선 헤르메스와 인종이가 투덕거리며 배설물을 푸고 있었다. 인종이는 아직도 삽질을 배우는 중인지, 요 섭이 새로 만든 삽만 10개가 넘어 가는 중이었다.

“아휴. 재는 전투에는 천잰데 다 른 건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어.”

후름이 옆에서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커피 타다가 드래곤 본으로 만든 잔을 부수는 존재는 처음 본 다.”

“그래도 그렇지 배설물 푸는 걸 힘들어 하는 게 말이 되나.”

“수이니 식칼하고 도마까지 썰어 먹은 놈인데.”

“그냥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하 나.”

그럴까 하다가 내버려 뒀다. 헤 르메스도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건 지, 천인종이랑 잘 지냈으니까.

헤르메스는 멍청한 건지 겁이 없 는 건지. 자기보다 강한 마왕 둘을 잘 데리고 놀기도 하고 천인종의 뒤통수를 때리기까지 한다.

“요즘은 좀 바빴어. 그렇지?”

한 일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 다.

레드 문이 바벨을 두고 가고 헤 르메스의 동생인 에르메스가 그라 니아 대륙을 타고 넘어오기도 했다. 지저 세계로 캠핑 간 건 논 거니 할 말은 없지만, 마법 상점을 열고 지구를 한 번 구해 낸 것까지.

계속 쉴 날이 없었다.

원래 일주일에 5일은 쉬어야 하 는데 한 달을 쏟았으니 앞으로 삼 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고 생각하는 연우였다.

“이 기분 뭔가 이상해.”

“응? 뭐가?”

“왠지 일이 계속 생길 것만 같은 이 더러운 기분.”

“에이, 설마.”

“아스가르드에 있을 때처럼 운영 자가 있는 기분이야.”

“에이, 여긴 그런 거 없다며.”

“그런 거 있잖아. 운영자가 모니 터하면 모니터 중이라고 빨간불 뜨 는 거.”

“플레이어들은 그렇다며?”

“응. 지금 딱 그 기분이야.”

“흐음.”

하지만 역시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연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협회장과 최민아가 오늘 방문한 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직접 요리하는 것도 괜찮다.

그라니아 대륙은 침략당했다.

거대한 중앙 대륙에 ‘삼 강’이라 는 세 개의 제국. ‘오 중’이라는 다 섯 개의 왕국. 그리고 수십 개의 약소국과 공국이 존재하는 그라니 아 대륙.

마계에서 그라니아 대륙을 공격 한 지 100년이 지났고 삼 강이 이 강으로 변하고 오 중이 삼 중으로 변하기까지 50년이라는 시간이 걸 렸다.

마계는 대륙 남서쪽 큼지막한 땅 덩어리를 점령했다.

‘헬스 아이즈(Hell’s eyes)’라는 거대한 눈들이 마계 지대를 형성하 고 마물과 마족을 양성하며 인류 연합군과 전쟁 중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천족의 진영 까지 생겼다.

천족은 마계를 통하지 않으면 대 륙으로 올라올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북서쪽 이군산맥 안쪽 천족 진 영에서 온 보고는?”

“네, 여기 있습니다. 다섯 곳에서 같은 정보를 받았고 두 곳에서 왜 곡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둘은?”

“이중 첩보가 의심돼 바로 처리 했습니다.”

이곳은 인류 연합군 비밀정보국 이다. 인류 연합군은 마계와의 전 쟁에서 가장 깊은 정보를 다루며 이 강으로 변한 두 제국의 지시를 받는다.

“천계랑 마계는 전쟁은?”

천족이 넘어왔다는 건 마신이 허 락했다는 걸 뜻한다. 그렇지 않고 선 절대로 몰래 들어올 수 없으니 까.

“그게…… 갑자기 전투가 끝났다 고 합니다. 믿기진 않지만, 마계 게 이트로 가는 마력석의 흐름과 인류 연합군의 국지전의 흐름도 너무나 딱 맞아떨어집니다. 최근 에르메스 군단장이 사라진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족이 향한 곳은?”

“좌표 스캔 중입니다. 50년 전부 터 마계가 점령하려던 ‘지구’로 추 정됩니다. 분석실의 보고서엔 94% 이상의 확률이랍니다.”

“음…… 지구로 간 정보원은?”

“역시나 통신 두절입니다. 가는 건 가능한데, 돌아오는 게 불가능 합니다. 마계 진영도 귀환 게이트 까지 만들지 못한 모양입니다.”

상황이 너무 변했다.

마계와 천계의 전쟁은 그라니아 대륙을 침략하게 된 큰 이유였지만, 지금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대로 마족과 천족이 손을 잡는 다면?

‘인류는 멸망……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휴전은 몰라도 둘이 동맹을 맺는 일은 없을 거다. 그 두 종족의 골 은 너무도 깊어져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왜?

‘더 큰 적이 나타났거나 마신과 천신이 미쳐 버린 거지.’

사실상 마신과 천신이 어떤 합의 를 하지 않는 이상 전쟁을 막을 수 는 없다. 만약 둘이 그렇게 합의를 한 이유는?

“지구에 뭔가 일이 있다.”

에르메스가 지구로 가는 게이트 를 뚫다가 실종된 것. 마계와 천계 의 정예가 지구로 가는 게이트로 향한 것. 마력석의 흐름과 모든 정 황이 맞아떨어진다.

“게이트를 넘어간 전력은 파악했 나?”

“네, 그림자의 지배자 리움트 리 그너트와 그 정예 휘하. 그리고 천 족은 셀드가의 가주와 휘하 병력이 들어갔습니다. 자세한 전력 파악은 불가능했습니다.”

“엄청난 전력이 갔군.”

도대체 지구에 뭐가 있길래 마계 에서 수십 년을 쏟아부었을까. 리 그너트가 직접 넘어갈 정도의 이유 는? 또, 천족 특수부 작전사령관인 셀드가까지?

그걸 알아보는 방법은 지구로 정 보 요원을 보내는 거다. 하지만 돌 아올 수 없다.

“가서 모든 걸 해결할 만한 인재 를 보내는 수밖에.”

“……그들을 보내는 겁니까?”

블랙 엘레멘터.

검은 정령사라고 불리는 그들. 인간의 몸으로 마족들의 시선을 피 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는 ‘정령 의 힘’을 가졌으며 정령사의 단점 인 나약한 육체마저 개조해 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그들.

두 제국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만든 특수부대였다.

“그래야지. 2명이면 될 거야.”

2명. 어떻게 보면 적은 수.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력이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뛰어넘는다는 걸 안다면 절대로 적다고 할 수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겠습니 다.”

“확실하게 끝내라고 해.”

“네…… 귀환 프로젝트까지 가동 합니까?”

“그들이 성공한다면……

국장실에서의 대화는 그게 끝이 었다.

블랙 엘레멘터.

넘버 12(Twelve), 피의 그림자 헬렌.

넘버 10(Ten), 검은 강철 소룬.

둘은 마계 진영을 통과해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에 닿았다. 정령사이 기에, 정령의 힘으로 마족들의 눈 을 피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게이트를 통한 차 원 이동에 성공했다.

“지구 좌표 확인, 장소 한국의 수도 서울시.”

“정보 다운로드 완료. 32년 전부 터 지구로 도달한 정보원 350명의 위치 및 활동 로그 확인.”

“사망 322명. 활동 중인 정보원 28명.”

“한국 서울에 3명, 외곽 5명 확 인.”

둘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수십 초를 사용하고 반경 300km 안에 가장 강력한 위험 요소를 찾기 시 작했다.

“천족 반응 무(無).”

“마족 반응…… 무(無). 이외 가 장 강한 무력을 지닌 인간 투 클래 스 마스터급 2명 존재. 원 클래스 마스터급 20여 명 존재.”

마족 반응이 잠깐 있었던 것 같 았는데 사라졌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 스캔 아티팩트를 속일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봐도 된다. 포 클래스 마스 터라고 알려진 리그너트와 셀드가 도 속일 수 없을 테니까.

둘은 빠르게 이동했다.

“목표 확인.”

“첫 번째, 한국을 점령하고 그라 니아 대륙에서 지원군을 불러온다. 마계에서 이은 게이트가 필요하며 정보원이 이룩한 자원을 활용한다.”

“두 번째.”

“지원군과 함께 리그너트와 셀드 가의 목표를 알아내 선점한다.”

“세 번째.”

“지구의 식민지화를 시작한다.”

대륙. 아니, 두 제국의 운명이 걸 린 대단위 프로젝트다.

아무리 블랙 엘레멘터라는 특수 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그너 트와 셀드가를 동시에 맞상대할 정 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투 클래스 마스터 정도의 무력? 어 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게다가 블랙 엘레멘터다.

수십 년이나 지속된 마계와의 전 쟁에서 요인 암살과 후방 교란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병기. 둘이 힘 을 합하면 리그너트 한 명 정도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빠르게 한국을 점령한 다.”

첫 번째 목표는 투 클래스 마스 터 두 명이다.

“장소. 서울로부터 80km 떨어진 외곽.”

블랙 엘레멘터는 모든 차원과 연 결된 정령계를 이용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기술이 있다. 이 걸로 마계 진영으로 들어간 거고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던 거다.

“멀리 목표가 보인

팟.

간발의 차이로 뒤통수에 싸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공격?’

극도로 단련된 감각이 아니었다 면 절대로 몰랐을 정도로 은밀하고 빠른 타격이…… 아니라, 살기였다.

“적이다!”

“스캔…… 적의 무력, 산정 불 가!”

그들 앞에 있던 건 한 명의 남성 이었다.

“뭐, 뭐야!”

“뭐긴 뭡니까 농장 주인이지. 우 리 농장에선 손님끼리 싸울 수 없 습니다.”

“흥, 헬렌! 뒤를!”

두 블랙 엘레멘터는 눈앞에 남성 을 공격하려 힘을 끌어올렸다.

피의 정령을 이용하는 헬렌, 마 계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블랙 미리 윰의 정령을 이용하는 소룬이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 공격 은……!

“커헉.

그 순간 둘은 동시에 정신을 잃 고 쓰러졌다.

“에휴. 이래서 진상이 싫다니까.”

제국의 운명을 짊어진 두 블랙 엘레멘터는 너무나도 어이없이 제 압당해 버린 후였다.

연우는 오늘 직접 요리하기로 했 다.

팔뚝만 한 쌍뿔 멧돼지의 삼겹살 을 꺼냈다.

삼겹살을 적당하게 썬다.

너무 크지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 지도 않을 정도로 넉넉하게. 고기 는 역시 씹는 맛이 중요하니까.

치이익.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고기를 살살 볶아 준다. 적당히 고기 기름 이 배어 나오면서 색이 변하기 시 작할 때, 빻은 마늘과 소금 후추를 뿌려 준다.

조금만 더 있다가 대파와 청양고 추도 추가한다.

고소하며 매콤한 냄새가 올라온 다. 코를 찡긋할 정도가 적당하다.

연우는 거기에 미리 만들어 둔 양념을 뿌렸다.

고춧가루, 고추장, 참기름, 간장, 후춧가루, 말벌 몬스터의 꿀 약간. 거기에 레몬즙을 아주 살짝만 넣으 면 잡내 제거에 효과적이다.

다 익어 갈 때쯤, 버섯을 조금 넣으며 3분쯤 더 익힌다.

“자, 제육볶음 완성이다.”

역시 냄새 하나는 치명적이다.

연우는 그릇에 옮겨 담으며 식탁 에 앉아 있는 손님을 봤다. 한 명 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로 보였는데 상당히 비정상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보였 다.

‘뭐,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긴 하 지.’

연우에겐 원 클래스 마스터나 쓰 리 클래스 마스터나 마찬가지긴 했 다.

“여기, 드세요.”

연우는 제육볶음과 흰밥.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을 내줬다.

가, 감사합니다.”

“혹시 술 드세요?”

“아…… 아, 주시면 감사히 먹겠 습니다.”

연우는 웃으며 냉장고에서 소주 를 하나 꺼냈다.

그냥 진상인 줄 알았는데, 그라 니아 대륙의 손님이었다. 협회장 이진철과 최민아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기류가 상당히 묘했다.

그래도 이 농장에서 싸움은 안 된다는 게 연우의 규칙이었다.

제1()1편_ 블랙 엘레멘탈(2)

연우는 옆에 앉아서 붉은 양념 이 된 삼겹살 하나에 잘 익은 대 파를 올려 입에 넣었다. 이런 양 념엔 역시나 흰밥이다. 거기에 소 주 한 잔.

“크으. 맛 좋다.”

지금 여기서 태평한 이는 연우 와 이자젤뿐이었다.

“그래서 지구엔 무슨 일로 왔다 고요?”

“그, 그게……

협회장 이진철은 질문하고 두 손님은 말을 아낀다. 분명 두 손 님이 더 강한데 이진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이제 연우가 뒤 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적응해 버 린 것이다.

“연우, 굳이 말로 물어볼 필요 있어? 그냥 기억 읽으면 되는데.”

이자젤이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말했다. 연우가 어이없다는 듯 이 자젤을 바라본다.

“그거 하다가 백치되면 책임질 거야?”

“아니, 그걸 왜 책임져? 말 안 한 게 잘못이지.”

“ 그런가?”

뭔가 이상하지만, 묘하게 맞는 말이기도 했다.

연우와 이자젤이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두 손님은 움찔거렸다. 광 역 번역 마법 덕분에 모든 게 들 리는 탓이다.

“저회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자젤이 그 말에 눈을 게슴츠 레하게 떴다. 안광이 푸르게 변하 는 걸 보니 몇 가지 스캔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다.

“자백, 금제, 능력, 자결? 참 이 상한 마법들이 엉켜 있구나.”

“자결까지?”

w응. 거기에 정령...... 을 강제

로?”

이자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 다.

하지만 그보다 두 손님이 더 놀 란 모습이었다.

“궁금해서 안 되겠다. 일단 금 제들부터 풀어야겠다.”

그 말에 두 손님이 기겁하며 물 러 났다.

“아, 안 돼요! 강제로 풀었다가

하지만 이미 이자젤이 손을 흔 들고 난 후였다.

“ 죽는……?”

“안 죽네?”

소룬과 헬렌이 번갈아 말했다.

“겨우 9단계 마법 가지고 엄살 은. 거기에 8단계 마력석까지 때 려 박았네. 도대체 얼마나 공을 들인 거야?”

이자젤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 라는 듯 해치워 버렸다.

“자, 이제 말해 봐.”

두 손님은 안 그래도 무서웠던 이곳이 더 무서워졌다.

자그마치 블랙 엘레멘탈. 그것 도 두 제국에서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부으며 수십 년 동안 공들인 결과물이다.

억지로 만들어진 거지만,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의 무력을 지녔고 육체엔 온갖 강화 마법과 결계가 덧씌워진 상태다. 비정상 인공 정 령을 몸에 심기 위함이었고 모든 차원에 간섭하는 정령계를 잠시라 도 오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

강제이기 때문에 성 몇 채는 될 법한 영약으로 버티면서 살아가는 위태위태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런 힘을 얻 었는데!’

그런데 이곳에선 너무나 터무니 없이 제압당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 인데!’

아무것도 못하고 기절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분명 투 클래스 마 스터로 보이는 엘프도 전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투 클래스와 쓰리 클래스의 차 이?

당연히 엄청나다. 게다가 블랙 엘레멘탈은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 도 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없었다.

저 마법. 단순한 10단계 마스터 가 아니다. 천재가 수백 년은 단 련해도 가능할지 모르는 위력과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듣 도 보도 못하던 마법을 말 한마 디, 손짓 하나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신에 무장된 금제들?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클래스 마스터들이 몰려들어도 금제를 건 들지 못하고 육체가 폭발할 거다. 드래곤이 와도 마찬가지일 정도로 강력한 금제인 거다.

그런데 그걸 한 번의 손짓으로?

헬렌과 소룬은 자신들이 이 앞 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다. 눈빛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기에.

“됐으니까. 한번 말해 봐.”

“그, 그게……

“안 돼. 소룬.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간절한 눈빛이다.

제국과의 서약과 계약? 그들이 이 몸에 금제를 걸었을 때부터 의 리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 목적을 말했을 때, 과 연 저들이 헬렌과 소룬을 살려 둘 까? 이쪽과 친해 보이는 두 투 클 래스 마스터를 죽이려 했고 이 나 라를 집어삼키고 지구를 식민지화 하려고 했다.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이자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 다.

“야, 그새 기억 읽었냐?”

“응. 그래도 금제로 단련된 뇌 라서 잘 버티는데?”

헬렌과 소룬은 아무 말도 할 수 가 없었다.

“정령은 강제로 넣은 거지?”

둘은 입을 막았다. 하지만 저절 로 떠오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 다.

“아하, 역시나. 어떻게 한 거지? 어떤 마법으로?”

“오호. 그럼 정령의 종류는?”

이자젤은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을 듣고 있었다.

당황한 소룬과 헬렌은 이럴 때 를 대비한 자결 마법을 발동하려 했다.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라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안 돼. 내 허락 없인 죽을 수 도 없다.”

이자젤의 섬뜩한 눈빛에 소룬과 헬렌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말 한마디로 자결할 방법도 사라진 것이다.

이곳은 ‘저항’이라는 단어 자체 가 없는 세상이었다.

“자, 생각을 더 읽었다간 정말 백치가 될 수 있으니까 알아서 대 답해 볼래?”

“아, 알겠습니다.”

대답하지 않아도 소용없고, 죽 을 수도 없으며 도망칠 수도 없 다. 이런 곳에서 할 수 있는 선 택?

그저 순응할 뿐이었다.

연우는 그 얘기를 듣다가 밖으 로 나왔다.

이자젤이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날이 새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 다.

한국 점령? 여명의 탈취와 지구 의 식민지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럴 수 있으면 그래 보라지. 연우는 그런 허황된 꿈을 꾸는 잡 것들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슬슬 농장을 늘려야지.”

블랙 카우, 블랙 쿡, 슬라임, 메 리쉽, 붉은 귀 북극여우와 파란 코코넛 크랩, 쌍뿔 멧돼지까지. 일단 보이는 건 그 정도다.

연우는 천천히 걸어 산 뒤쪽에 있는 메리쉽 농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말벌 몬스터 양봉장이 있어 잠시 들렀다.

“이건 뭐야. 왜 바다 몬스터가 여기 있어?”

예전에 봤던 수인 족 같았다. 원 클래스 마스턴데 전신에 말벌 몬스터에게 쏘인 자국이 보였다.

“하긴, 원 클래스라도 8단계 수

천 마리가 달려들면

생각해 보니 이 녀석들은 크기 가 클 때보다 작을 때가 더 위협 적인 것 같았다. 크면 때리기 편 하기라도 하지, 이렇게 작으면 다 가오는 것도 모르고 찔려 죽을 거 다.

다행인 건 여왕 말벌을 길들였 기 때문에 사고 칠 일이 없단 것 일까.

“꿀은 모아 놨나.”

원래 말벌은 꿀을 모으지 않지 만, 이 녀석들은 몬스터라 일벌이 따로 있다. 밖으로 보이는 말벌은 전투형 개체인 거다.

연우는 뚜껑을 하나 열었다.

“와……

하얀 팔각형 벌집에 진한 황금 색 꿀이 가득 차 있었다. 귀퉁이 를 살짝 떼 들었더니 꿀이 뚝뚝 떨어진다.

연우는 입에 쏙 넣었다.

손가락에 붙은 게 잘 떨어지지 않아서 마력까지 사용해 쪽 빨았 다. 그제야 깔끔하게 삼켜졌다.

“ 크으.”

달짝지근하다. 너무 달기만 하 지 않고 깊은 향과 약간의 씁쓸함 이 동시에 입안을 점령했다.

뭔가 아쉬워 조금 더 떼먹는다.

역시나. 질리지 않는다.

“안 되겠다. 오늘은 꿀에 위스 키다.”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꿀과 위스키의 상성은 굉장히 좋다. 특 히 아이스크림과 함께라면 더욱.

연우는 아쉬움을 떨쳐 버리고 메리쉽이 있는 목장으로 이동했 다.

컹컹!

멀리 댕댕이와 검둥이가 삼미호 와 함께 뛰어놀고 있다. 한쪽에 트롤의 목이 떨어져 있었는데 외 부에서 공격한 몬스터를 잡아 온 것 같았다.

“참 잘 놀아. 지치지도 않나.”

흑마법에 의해 메리쉽이 꽤 늘 었기에 양 떼를 모는 일이 많았 다. 먹이를 줄 때, 비가 올 때, 물 을 줄 때. 그리고 운동을 시킬 때.

그걸 다 하고도 힘이 남아도는 지 저렇게 종일 뛰어논다.

“하긴, 투 클래스 이상이면 체 력이 고갈될 일은 없지.”

“어머, 연우 님!”

마침 근처에 리젤이 있었는데 털을 깎기 직전이었다. 시퍼런 낫 을 들고 있었는데 메리쉽이 겁에 질려 탈진 직전까지 간 상태였다.

연우는 살짝 상태 창을 봤다.

[푸른 털의 메리쉽]

설명 : 메리쉽과 푸른 털의 양 의 이종교배종. 메리쉽의 풍성한 털과 푸른 털의 전기 생성의 시너 지가 생각보다 좋았다. 질기며 부 드러운 털에서 5단계에 이르는 전기가 생성된다.

“나쁘지 않네.”

특별한 개체가 나온 건 아니지 만, 쓸 만한 정도는 나왔다.

“한번 깎아 봐.”

연우가 한 번 가르쳐 주긴 했 다.

리젤은 연우의 진지한 눈빛에 낫을 돌리기 시작했다.

음메에에에!

“조용히 해!” 뚝.

리젤의 살기에 푸른 털의 메리 쉽이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감았다. 다행히도 리젤의 낫질은 빠르고 정확했기에 순식간에 끝났다.

이래서 직원이 최소 원 클래스 마스터 이상은 돼야 한다는 거다.

“잘하네.”

연우는 리젤을 칭찬했다. 중간 에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깔끔하 게 제거했기 때문이다.

양의 털을 가공해 장비를 만들 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래 털을 깎지 않으면 냄새가 심해지고 움 직임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이 자 라기도 해서 반드시 깎아 줘야 한 다.

연우는 뿌듯하게 목장을 둘러보 며 말했다.

“리젤. 그것보다 천공 세계에 사신이 온 것 같은데 아는 분일 까?”

“그, 그라니아 대륙에서요?”

“웅. 너한테 말한다는 게 잊고 있었네.”

“혹시 볼 수 있을까요?”

연우는 어려운 게 아니라면서 차원 거울을 꺼냈다.

그곳엔 천공 세계 2계층에서 천족과 싸우는 마족들이 보였다. 1계충엔 오염된 신선이 있었고 각 2계층으로 다른 종족들이 물 러난 것으로 보아 균형이 잡힌 모 양이었다.

역시 신선의 11단계는 사기에 가깝긴 했다.

“아, 아버지?”

“아버지야?”

“네, 네! 어떻게 저기에……?”

연우는 오해하지 않게 설명해 줬다. 그리고 리젤에게 가고 싶으 면 보내 준다고도 했다.

“아니에요. 저기보다는 여기가 좋죠.”

처음엔 당황해 했지만, 금방 진 정된 듯했다.

“파이브 클래스 마스터라고요?”

“응. 생각보다 강하시던데.”

뭔가 묘한 관계가 된 느낌이다. 리젤이 연우의 부하이긴 하지만, 리젤의 아버지라면 왠지 존대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청 올랐네요. 제가 나왔을 땐 막 쓰리 클래스를 마스터한 상 태였는데.”

“걱정은 안 돼?”

“별로요. 파이브 클래스면 거의 마신하고 비슷한데, 걱정될 리가 요.”

부녀 사이가 좋을 수도 있고 좋 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리젤의 문제였고 연우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만약, 아버지를 꺼내 달라고 하면 꺼내 줄 순 있어.”

“아마 아버지가 싫어할걸요?”

리젤은 싱긋 웃고 있었다.

하긴, 차원의 거울 속 리젤의 아버지가 짓는 표정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럼 계속 수고해 주고.”

연우는 목장을 둘러보곤 농장을 돌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산 중 턱에 게이트가 하나 보였다. 그러 고 보니 전에 블랙 와이번이 나왔 던 게이트가 아직도 있었다.

“흠. 원래 게이트는 클리어하면 없어지는 게 아니었나?”

연우는 멈칫 서서 생각하더니 그쪽으로 걸어갔다.

게이트를 이용하면 꽤 괜찮은 추가 영역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블랙 와이번이 서 식하던 곳이라면 좋은 ‘새 장’이 될 거다.

게이트의 입구는 아직도 열려 있었다.

안쪽으로 가서 보스까지 잡아 버렸는데 그대로인 걸 보면 없어 지진 않을 것 같다.

“헤맨.”

역시 마법에 관해서는 헤맨과 이자젤이다. 특히 헤맨은 아공간 에 대해서 최고의 능력자.

“네, 주인님.”

“이것 좀 봐.”

게이트를 가리켰다.

“쓸 만하겠어?”

“흐음.”

헤맨이 게이트를 둘러보기 시작 했다. 만져도 보고 스캔 마법도 사용하며 꼼꼼히 살폈다.

“없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튼튼하기도 하고 억지로 없애지 않는 한 부서지는 일도 없겠네 요.”

“없앨 순 있고?”

“네, 마력으로 몇 개 건들면 기 능을 잃고 사라질 겁니다. 물론, 마법 10단계에 아공간 관련 전문 지식은 필수입니다.”

“여기 지구에는 없겠네.”

“물론이죠.”

이 정도면 된다. 연우는 게이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이제 환경을 살필 차례다.

제102편_ 주인공. 그리고 타이

밍 (1)

블랙 와이번이라는 건 마기에 감염된 와이번이라 보면 된다. 서 식지도 굉장히 특이한데 90도가 넘어가는 경사의 절벽에 붙어산 다.

게이트 안도 그런 환경이었다.

수천 개의 섬이 허공에 떠 있 다. 아래와 위는 끝이 보이지 않 았는데 마력의 흐름을 보니 무언 가에 막힌 느낌이었다. 그래도 상 당히 큰 공간이라 부족할 일은 없 을 것 같았다.

“공간이군요. 막은 게 아니라 공간 크기가 저 정도인 것 같습니 다.”

헤맨의 말이라면 다 믿어도 된 다.

특히 공간에 관해서는.

“마기도 가득하네. 이러니 블랙 와이번들이 많았지.”

블랙 와이번들에게 딱 알맞은 환경이다.

여기에 뭘 키울 수 있을지 생각 해 봤다.

“블랙 와이번은 맛있긴 한데, 마기가 너무 짙어.”

마기가 짙으면 다른 생물까지 오염시켜 버릴 여지가 있다.

“마기를 제거하고 하피를 넣을 까?”

하피도 절벽을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이 안엔 다른 먹이가 없어 서 조금 난감하긴 했다.

“그럼 불사조는 어떻습니까? 피 닉스는 따로 먹이를 먹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긴 마력석하고 자연환경만 만들어 주면 좋아하긴 하지. 가끔

간식만 줘도 되고.”

때마침 크기도 적당하다.

불사조는 기분이 좋을 때 적당 한 환경에서만 알을 낳는다. 하지 만 그 알은 평범하지 않았다.

알에 다른 무언가를 흡수시킬 때 이종교배처럼 다른 종류의 불 사조가 나온다. 그건 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전혀 다 른 상성을 흡수시킬 땐 더욱.

“전에 주인님이 불사조 알에 얼 피밋급 조합식으로 만든 만년 설 빙을 넣었다가 어미 불사조를 물 어뜯어 죽이지 않았습니까.”

불사조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보스 몬스 터인 만년 설인의 심장을 수십 배 강화한 설빙을 넣었으니 그걸 감 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그건 실수였고.”

더 웃긴 건, 자식이 어미 불사 조를 죽이면 자식도 죽는다. 그런 데 어미 불사조는 재에서 다시 태 어나니, 거의 신종 자살 방법이었 다.

“전에는 한 번 지옥의 불인 염 화석(炎火石)을 조합해 먹였다가 새 장을 다 태워서 불사조가 죽기 도 했고요.”

이름은 불사조인데 죽는 건 거 의 개복치급이다.

마력하고 정력석 몇 개면 살아 나긴 하지만, 그만큼 공들였던 시 간이 사라지는 거라 아깝지 않을 수 없었다.

불사조의 알을 키우는 건 재미 있다. 하지만 상당히 신중해야 하 는 문제였다. 불사조가 아끼는 자 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불사조의 상성과 너무 반대되는 것도 안 된 다.

대신, 제대로 뽑아낸다면 이 새 장이 므깃도 못지않게 좋은 환경 이 될 수도 있으며 불사조 컬렉션 을 모으는 재미도 있다. 부산물도 꽤 쓸 만한 것들이 나오니 마법 상점 운영에도 좋다.

“오랜만에 집중 좀 해 봐야겠 다.”

연우는 작업을 시작하려다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일단 밥부터.”

역시 당장 할 일을 미루는 것만 큼 즐거운 일은 없다.

식당으로 가니 두 명의 블랙 엘 레멘탈. 소룬과 헬렌이 한쪽에 앉 아 있었다. 그 앞은 두 강아지와 삼미호가 지키고 있었다.

주방에 마침 수이니가 있어서 물었다.

“ 이자젤은?”

“이것저것 묻더니 마법 상점으 로 갔는데? 뭔가 괜찮은 아이템이 생각났다네.”

“협회장하고 최민아는?”

“따라갔어.”

“그래? 나 밥. 아니, 라면 하나 만 부탁할게.”

오랜만에 얼큰한 국물과 탱글탱 글한 면발이 생각났다.

연우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블 랙 엘레멘탈이라는 두 손님을 바 라봤다. 아니, 이제 손님이 아닌 건가?

“ 헬렌?”

“네, 넵!”

“피를 사용한다고?”

“네, 피의 정령입니다.”

피의 정령이라. 아스가르드에도 그런 건 없다. 들어 보니 피의 정 령이라는 건 인공적으로 만들고 육체에 집어넣은 것이라 했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라. 뭐, 원 래 수준은 그것보다 낮은 것 같지 만.”

“네! 맞습니다. 투 클래스 마스 터 정도인데, 정령의 힘과 육체 강화로 그 정도 힘을 억지로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을 먹지 않으면 죽는 거고.”

“네……. 맞습니다.”

헬렌과 소룬은 풀이 죽었다. 약 은 품에 가지고 있었지만, 이자젤 이 잠깐 본다고 들고 갔기 때문이 다.

“ 소룬?”

“네!”

“블랙 키리윰을 다루고?”

“네, 맞습니다. 마계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입니다.”

“오호, 한번 보자.”

소룬이 손에서 블랙 키리윰을 뽑아냈다. 연우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리젤이 원래 사용하던 낫 의 재료였다.

주먹만 한 금속이 연우 손에 떨 어 졌다.

연우는 마력을 넣어 보기도 하 고 툭툭 쳐 보기도 했다. 생각보 다 단단하고 집어넣은 마력이 마 기로 변하기도 했다. 힘을 줘 투 둑, 깨 본다.

“흐억!”

그 모습에 소룬이 기겁한다.

연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깬 블랙 키리윰을 뜨겁게 달궈 녹인 다.

“으음. 생각보다 단단하네. 아다 만티움? 그것보다 조금 더 단단하 고 제련 방법도 까다로운 게 재미 있겠는데?”

“그, 그걸 어떻게......

헬렌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블랙 키리윰이라는 게 그냥 마 계 최강의 금속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의 힘 으로도 쉽게 깰 수 없는 강도와 경도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마력을 집어넣어 녹인 다?

그런 것 듣도 보도 못했다.

연우라는 사람에게 쉽게 제압당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 랐다. 저건 최소로 봐도 포 클래 스 마스터를 확연히 넘는 수준 같 았다.

“연우, 라면.”

매콤한 향이 코끝을 찌른다.

“와, 맛있겠다.”

작은 종지에 단무지와 작게 썬 김치도 보였다.

라면은 냄새로 시작한다. 연우 는 강렬한 MSG의 향을 참지 못 하고 국물을 살짝 떠 넣는다.

“크으. 좋다.”

곧바로 단무지 하나를 씹고 수 저까지 든 다음 면을 집는다. 빨 간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잠시 보다가 후루룩, 흡입했다. 동시에 국물을 떠 입에 넣는다.

면만 먹는 것보단 국물이 함께 해야 제 맛이 나온다.

“후우. 맛있다.”

이런 말은 의도한 게 아니다. 저절로 나오는 거지.

연우는 이마에 땀까지 흘리며 열심히 먹었다. 슬슬 배가 차오르 자 두 손님. 아니, 헬렌과 소룬에 게 시선이 갔다.

“너희 이제 뭐할 거니?”

“저, 저회는 아무래도 한국 정 복을……

“음, 그래?”

연우는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 피 못 이룰 꿈이니까.

“연우, 밥 줄까?”

“식은 밥 있어?”

“그럼. 뜨거운 라면 국물엔 찬 밥이어야지.”

그렇다고 냉장고에 있던 밥은 안 된다. 자연스럽게 식어야 가장 좋은 맛을 내니까.

연우는 수이니가 준 밥을 비볐 다. 국물이 조금 많은 것 같아서, 섞다 말고 국물을 조금 마셨다.

딱 좋다.

이대로 섞어서 김치 하나 올려 먹으면 최고다.

후릅.

아직 따듯한 국물과 밥의 조화. 중간에 썰어 놓은 대파와 자잘한 달걀 조각들이 함께 들어오며 더 깊은 맛을 낸다.

“크아. 좋다.”

연우는 국물까지 다 먹고 나서 야 고개를 들었다.

“ 연우우;”

이자젤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 어 왔다.

“무슨 일이야?”

“나 할 수 있게 됐어.”

“뭘?”

“인공 정령! 그리고 정령계 이 동!”

“정말? 어렵지 않은가 봐?”

“에이! 나니까 이 정도 하지. 너는 못할걸?”

연우는 그 말에 이자젤이 들고 있는 아이템을 봤다. 겉모습만 봐 서는 정령석이다. 거기에 마법진 몇 개가 보였고 속성 저장을 위한 불사조 알의 껍질도 있었다.

“오호.”

연우의 눈빛에 이자젤이 아이템 을 뒤로 감췄다.

“그건 반칙이지! 보고 하는 게 어딨냐?”

“그러니까 누가 보여 주래?”

“흥! 됐어. 안 해!”

이자젤은 그렇게 말했지만, 전 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좋았어.”

이자젤은 수이니한테도 가서 자 랑하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온 협 회장 이진철과 최민아만 애매하게 서 있었다.

“이자젤.”

“ 응?”

“이놈들 내 마음대로 해도 되 지?”

“응? 아, 그래그래. 난 이제 상 관없어.”

좋아.

마침 쓸 곳이 생각났다.

이진철이나 최민아는 이 둘을 적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 같았다.

“연우 님.”

“네, 협회장님.”

“저기 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 십니까?”

“제가 농장에 데리고 있겠습니 다. 사고 못 치게.”

“아, 그렇군요.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요.”

이진철은 더 설명은 필요가 없 는지 벌써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주머니 를 뒤적거렸다.

“연우 님. 이거.”

검은 무광의 카드였다.

“이건 신분증입니다. 정부 공공 기관이나 1등급 보안 시설까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겁니다. 한국은 청와대 말고 는 모든 곳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해외 웬만한 사기업 연구소 도 제지 없이 출입 가능합니다. 백악관은 미리 신고 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뜻 대단해 보였지만, 연우가 쓸 일은 없어 보였다.

“이걸 왜......?”

“혹시 모르니까요. 어디 가실 곳 있으면 제시하면 됩니다. 괜히 그쪽 사람들이 연우 님에게 실수 할지도 모르고……

“아아, 그런 이유였군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챘다.

괜히 막는다고 사고 치지 말아 달라는 거다.

“그 위에 계급은 언터쳐블이라 고 딱 하나 있는데, 아직 제가 발 급할 자격이 안 돼서요. 나중엔 그걸로 업그레이드해 드리겠습니 다.”

“네, 감사하죠.”

굳이 거절할 필요 없었다.

언젠간 쓰게 될지 모르니까.

“이 자젤.”

“ 응?”

“나 그거 몇 개만 줘라. 속성 입혀서 정령 만드는 거지?”

“그렇지? 근데 왜?”

“불사조 키우게.”

이자젤은 주머니에서 몇 개를 꺼내 줬다. 지구에서 판다면 엄청 난 가격이 책정되는 재료지만, 이 농장에선 발에 치일 정도로 널린 재료를 이용한 아이템이었다.

연우는 헬렌과 소룬을 데리고 블랙 와이번이 있던 게이트로 이 동했다.

“헤르메스!”

“네, 연우 님!”

가는 길에 헤르메스도 합류시켰 다.

헤르메스와 헬렌은 서로 바라보 며 이상한 눈을 했다.

헬렌이 아무리 피의 정령을 사 용하고 헤르메스보다 강하다고 하 지만, 피를 사용하는 것만큼은 헤 르메스를 따라갈 수 없을 거다.

진혈에 귀족이라는 타이틀은 절 대로 그냥 생긴 게 아니니까.

“헤르메스는 이곳을 새로 관리 할 거야. 이 둘에게 농장 관리하 는 것 좀 알려 주고.”

“네, 알겠습니다.”

“우리 블랙 카우랑 농장 관리하 는 것도 잊지 말고 신경 써 주 고.”

“네, 다 가르친 후에는 어떻게 합니까?”

“둘 여기에 두고 나와서 활동하 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

헤르메스도 이제 다 컸다.

농장 분점 하나를 내줘도 잘 운 영할 만큼 말이다.

연우는 게이트로 들어서자 마기 제거를 시작했다. 불사조는 기본 적으로 정령의 기운과 순수한 불 속성을 띤 마력을 먹고살기 때문 이다.

모은 마기는 작은 속성 저장석 에 담았다.

최상급으로 몇 개는 나왔는데 가지고 있으면 꽤 쓸 만할 것 같 았다.

“헤맨.”

“네, 주인님.”

“키울 만한 불사조 몇 개만 데 려와 줄래?”

“알겠습니다. 불 속성 정령석하 고 최상급 마력석도 가져오겠습니 다.”

역시 일 하나는 센스 있게 잘한 다.

말하지 않아도 척이다.

이자젤은 협회장 이진철과 최민 아와 대화 중이었다.

“그래서, 그 게이트 안의 공간 을 검토해 달라는 거죠?”

“네, 당연히 페이라면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몇 개만 검토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흠, 그래요? 혜영도 하나 쓴다 고요?”

“네, 고아원과 독거노인.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 용사분들을 모집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 인 거 같네요.”

“그렇죠.”

“좋아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한번 봐 주죠. 대신 돈보다는 쇼 핑하는 데 도움을 주세요.”

이자젤의 말에 협회장 이진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돈이야 문제될 게 없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런 데 쇼핑을 도와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제103편_ 주인공. 그리고 타이

밍 (2)

마기 제거는 완료됐다.

이제 헤맨이 불사조를 데려오기 전까지 이곳을 꾸미기만 하면 된 다.

“일단 너희 둘이 지낼 곳을 만 들 거야.”

연우는 헤르메스까지 셋을 데리 고 중간쯤에 떠 있는 큼지막한 바 위 위에 안착했다. 밑은 바위였지 만, 위는 흙과 풀들도 있었다.

물론 마기가 제거돼 시들어 버 렸지만.

이 공간 전체를 관리하기 위한 장소로 적당했다.

“괜히 불사조들한테 죽기 싫으 면 튼튼하게 만들어야 할 거야. 소룬? 그것 좀 뽑아내 봐.”

블랙 키리윰을 말하는 거다.

소룬은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한쪽에 쌓기 시작 했다. 얼굴이 창백해질 때까지 뽑 아내고 나서야 연우가 끄덕였다.

“힘들어?”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연우는 아공간에서 최상급 회복 포션을 꺼내 던졌다.

“가, 감사합니다.”

소룬은 ‘겨우 이런 것으로 회복 될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게 제국에서도 블랙 엘 레멘탈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성 몇 채는 되는 영약을 퍼다 먹인 다.

그런데 겨우 포션 하나로…….

“으으윽!”

소룬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 었다.

이 상태는 몇 달을 요양해야 한 다. 그런데 이 포션 하나로 완벽 하게 회복됐다. 아니, 항상 먹는 약보다 몇 배는 강력한 효과였다.

“이게 도대체……

소룬은 발끝부터 척추를 타고 오르는 고양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기서 일 잘하면 그 정도는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육체가 불안정한데 꾸준히 잘하면 엘릭서도 줄 거야. 그거면 완벽하 게 회복될 거고.”

그러니까 괜히 사고 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거였다.

소룬과 헬렌은 침을 꿀꺽 삼켰 다.

약은 한정돼 있다. 한국을 점령 해서 게이트를 연결하는 게 늦어 지면 그대로 죽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 탈출해서 다른 나라라도 점령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제국에 대한 애국? 그딴 게 있 었다면 그들이 먼저 금제를 걸지 않았을 거다.

“자, 잘하겠습니다. 무조건! 반 드시!”

둘의 의욕이 상승했다.

엘릭서라는 게 육체를 치료한다 고? 분명 몇 시간 전만 했어도 믿 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헬렌과 소룬을 한 번에 제압하고 생각을 읽으며 수십 겹 의 금제를 손짓 하나로 풀어 버렸 다. 게다가 두 제국이 몇 십 년을 공들여 개발한 정령 만드는 것, 불완전한 육체를 한시적으로 처리 하는 것. 게다가 말도 안 되게 강 했던 두 강아지와 몇 엘프들.

이런 곳인데 믿지 않고 배길 수 가 있을까?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한 다!’

연우라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자, 집부터 설계한다.”

연우는 건설 스킬을 사용했다.

몇 가지 문구가 떠오르고 적당 한 설계도를 올렸다. 블러드 우드 로 겉을 꾸몄다. 그래도 같은 농 장이니 콘셉트는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쪽은 소룬이 뽑아낸 블랙 키

리윰을 사용하기로 했다.

-건설(8단계) 스킬을 사용했습 니다.

-재료 ‘블랙 키리윰’을 사용했 습니다.

순식간에 건물이 올라왔다.

거실 하나에 방 두 개. 화장실 도 두 개를 놨고 마루 위를 덮는 지붕까지 만들었다.

“둘이 이 안 좀 정리하고. 헤르 메스도 좀 도와줘.”

연우는 가구나 생필품을 한쪽에 꺼내 뒀다.

“아, 알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소룬과 헬렌을 노려 봤다.

안 그래도 요즘 멍청한 천인종 을 가르치느라 짜증이 나 있던 차 였다. 이번에도 일을 못하는 놈들 이면 단단히 혼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자, 빠릿빠릿 움직인다. 어 이, 발이 보…… 이지 않네.”

헤르메스보다 한 단계나 강한 둘이다. 당연히 보이지 않게 움직 이는 것 정도야 쉬웠다. 게다가 평생 군인처럼 훈련받은 이들. 빠 릿한 움직임은 어렵지 않다.

연우는 피식 웃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불사조가 좋아하는 환경은 뜨거 운 열 속성 마력이 곳곳에 존재하 는 푸른 자연이다.

“일단 정령석을 모은 바위는 불 사조가 휴식을 취하는 곳. 불의 바위라고 하자.”

지치거나 힘들 때, 순수한 불 속성을 흡수하며 피로를 푼다. 그 렇다고 불 속성만 있으면 안 된 다. 깨끗한 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물 속성 정령석도 곳곳에 모아 둬 야 한다.

“참 까다로워.”

게다가 마력도 풍부해야 잘 자 란다.

대략 한눈에 보이는 바위는 1,000개 정도.

100개 중 하나에 불 속성 정령 석을 이용해 쉴 곳을 만든다. 총 10개가 된다. 그리고 물 속성도 10개 정도가 적당하다.

이외에 최상급 마력석을 모은 ‘마력의 바위’는 30개 정도로 더 많이 설치한다.

불사조에게 필요한 것도 있지 만, 이곳에 심은 식물들과 대기 마력 농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 할도 하기 때문이다.

작업은 어렵지 않다.

연우가 마법을 이용해 멀리 퍼 뜨려 마법진을 몇 개 그려 주면 된다.

우우웅.

수천 개의 마력석이 동시에 날 아간다.

-‘마력의 바위’를 만들었습니 다.

-마력 농도가 올랐습니다.

-‘불의 바위’를 만들었습니다.

-불 속성 마력이 대기에 추가 됩니다.

-‘물의 바위’를 만들었습니다.

-물 속성이 ‘바위’에 머뭅니다.

?정령의 기운이 깃든 우물이 생겨났습니다.

연우는 쉬지 않고 므깃도에서 나무와 풀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작은 바위엔 작은 나무 하나와 풀 들. 큰 곳엔 거의 섬처럼 만들고 꽃 바위나 풀 바위를 만들기도 했 다.

이게 은근히 꾸미는 재미가 있 다.

한참을 그렇게 한 연우는 소룬 과 헬렌이 지낼 바위 옆으로 떠다 니는 바위 몇 개를 모아 큼지막한 장소를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기는 알 부화장.”

설계도 필요했다.

작은 분화구 모양의 부화장을 다섯 개 정도 만들고 새끼를 잠시 가둬 기를 곳도 필요했다. 여차해 서 이상한 놈이 나와 이곳을 오염 시켜면 안 되니까.

연우는 하나씩 차근차근 완성해 나갔다.

예전에 해 봤던 일이기에 막히 는 부분은 없었다.

“주인님, 불사조 데려왔습니다.”

헤맨은 작은 공 다섯 개를 가지 고 있었다. 길들인 몬스터를 보관 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좋아, 여기다 풀어.”

헤맨이 다섯 개의 공을 공중에 뿌렸다.

화악!

붉은빛이 터지며 날개 끝 길이 가 2m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의 불 사조가 등장했다.

끼야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날아다녔 다. 처음엔 두려움 가득한 비명이 었지만, 점차 이곳이 마음에 드는 지 불의 바위에 고개를 처박고 휴 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빨리 적응하네.”

아마 불사조에겐 이곳이 므깃도 보단 훨씬 좋은 환경일 거다.

그곳은 지독한 약육강식의 세계 다. 큰 영역을 가진 지배자들은 연우의 명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 지만, 그 아래 생태계는 서로 먹 고 먹히는 지독한 관계를 유지한 다.

-‘불사조 부화장’을 완성했습니 다.

-‘불사조 사육장’을 완성했습니 다.

-불사조의 적응이 완료됐습니 다.

-불사조가 기뻐합니다.

“따로 올라가는 건 없네.”

있을 리가 없었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일 때도 불가능에 가까웠는 데 세븐 클래스 마스터인 지금 뭔 가 오를 거란 기대 자체가 욕심인 거다.

“오늘 내로 하나는 낳겠지?”

“네, 환경이 급격히 바뀌어서 그렇지. 좋은 환경이니 금방일 겁 니다.”

연우는 이자젤이 준 아이템을 들었다.

기본 속성을 담아 인공 정령을 만드는 아이템이다.

[인공 정령 제작석]

설명 : 최상급 마력석과 최상급 정력석을 통째로 조합해 만든 인 공 정령 제작석. 원 클래스 마스 터급의 강렬한 속성 기운이 필요 하다.

연우는 소룬을 불렀다. 심안으 로 살피니 블랙 키리윰의 정령이 라는 기이한 힘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제작.”

제작석을 소룬의 정령을 향해 뻗었다.

-‘인공 정령 제작석’을 사용합 니다.

-타깃을 지정합니다.

-블랙 키리윰의 속성을 발견했 습니다.

화악.

밝은 빛이 터지며 소룬을 덮쳤 다. 동시에 소룬의 몸에서 무언가 뭉텅이로 빠지는 게 보였다.

“허억. 허억.”

연우는 굉장히 지쳐 보이는 소 룬에게 최상급 회복 포션을 던졌 다. 이번에도 한 입 마시더니 순 식간에 회복했다.

-인공 정령석(블랙 키리윰)이 완성됐습니다.

연우는 그 아이템을 집었다.

역시, 소룬이 가지고 있던 정령 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이게 바로 게임 시스템의 힘이 다.

원래 정령이라는 에너지체를 인 공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완벽할 순 없었다.

만약 소룬이나 헬렌이 사용하는 정령에게 설명이 있었다면 ‘불완 전한 인공 정령’으로 나왔을 거다.

하지만 재료가 최상급 마력석과 최상급 정령석이다. 발로 만들어 도 ‘완벽한’, ‘극한의’, ‘최상의’라 는 수식어가 붙는 값비싼 재료들. 당연히 불완전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스킬 북으로도 만 들 수 있겠는데?”

하지만 그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불사조의 알에 심을 정제된 속성 덩어리일 뿐. 이건 거기에 ‘정령’이라는 추가 타 이틀까지 붙었다.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알을 보기 위해선 인내도 필요 한 법이다.

연우는 잠시 서 있다가 헤르메 스에게 갔다. 이곳을 관리할 기본 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중요한 건 불사조가 낳는 알을 부화장에 옮기는 것. 헤멘이 데려온 불사조의 기본 무력 수준 은 원 클래스 마스터에서 투 클래 스 마스터 정도 된다.

불사조 다섯 마리니까 소룬이 세 마리, 헬렌이 두 마리를 맡고 있을 때, 헤르메스가 빠르게 훔쳐 오면 될 거다.

“…… 그, 그러다가 다치는 건 아니겠죠?”

“아, 참고로 불사조 불에 당하 면 마법 치료도 안 된다.”

헤르메스는 왜 소룬과 헬렌까지 데려왔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 다.

“그뿐이 아니야. 불사조끼리 싸 우는 일도 있는데 잘 말려야 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거든. 보기 보다 사나운 녀석들이라.”

“불사조들이 저회를 많이 싫어 하겠네요.”

헤르메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 었다.

“대신 간식을 주기 시작하면 호 감도가 올라가고 나중엔 싸움을 말리기도 편할 거야. 호감도가 최 상까지 올라가면 알도 알아서 갖 다 줄 거고.”

“간식 이요?”

“응. 저기 마력의 바위나 불의 바위에 있는 건 딱 생존과 휴식에 필요한 거고. 쟤네들도 간식을 먹 거든.”

연우는 헤맨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헤맨이 아공간에 들어갔 다가 검은 점액질의 몬스터를 꺼 내 왔다.

끼야아아아!

그 몬스터를 허공에 던지자 쉬 고 있던 다섯 마리의 불사조가 눈 이 돌아가며 달려들었다.

몸 전체가 불로 이뤄진 불사조 다. 당연히 대기에 불을 퍼뜨리고 주변 바위를 홀라당 태워 먹었다.

쿠적. 쿠적.

불사조는 그 몬스터를 갈기갈기 찢어 먹더니 전신에서 타오르는 불이 한층 더 커졌다.

“오일 슬라임이라고 오일과 정 령의 에너지를 가진 반정령 슬라 임인데 8단계에서 9단계 정도 하 지. 불사조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좋아하기도 하고. 한쪽에다가 오 일 슬라임 사육장도 만들어 줄 게.”

“알겠습니다. 저기 태워 버린 바위 복구도 하고, 오일 슬라임도 키우고,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겠 군요.”

“오일 슬라임 사육장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

“항상 경계하겠습니다.”

불사조라는 영물 몬스터를 키우 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이제 키우는 건 이 셋에게 맡기 고 연우는 알을 낳을 때까지 기다 리면 된다.

설렜다.

오랜만에 하는 ‘불사조 알 조합’ 에서 무엇이 나올지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 지루해.”

“인내의 과실은 언제나 달콤합 니다.”

“허탈할 때도 있지.”

헤맨이 연우를 달랜다.

벌써 오일 슬라임 사육장을 만 들었고 불사조들에게 슬라임 3마 리를 더 먹였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금방 될 겁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을 때였다.

한참 불의 바위에 고개를 박고 있던 불사조 하나가 비명과 함께 불을 뿜어 댔다.

“저기다.”

곧 불사조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날아올랐다. 순간 헤멘이 사라졌 다 나타났는데 손엔 큼지막한 불 사조의 알이 있었다. 원래 이대로 두면 사라지거나 불의 기운을 잔 뜩 받아서 불사조가 태어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연우의 손에 있 었다.

“시작해 볼까.”

어떤 개체가 나올까.

블랙 키리윰의 정령석. 거기에 또 무언가를 섞을까, 아니면 그것 만 넣을까? 불 속성을 추가할지 물리력이나 마법력 중에 무얼 추 가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속성을 담 아 볼까?

제104편_ 주인공. 그리고 타이

밍 (3)

연우가 불사조를 처음 발견한 곳은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난잡한 맵이라고 욕먹은 ‘영물의 숲’이었 다.

잘나가던 아스가르드라는 게임 이 퇴물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이 기도 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판타지 배경이 주가 되는 게임에 동양풍의 영물과 신화들을 껴 넣 기 시작할, 그때였을 거다.

이미 99% 밝혀진 대륙에 생성 할 수 없으니 바다 건너 작은 대 륙을 만들었다.

수십 개의 산맥으로 이뤄진 그 대륙은 동양의 전설이 가득한 곳 이었다. 손오공이 먹었다는 반도 (播桃), 만년설삼, 만년한철, 드래 곤이 아닌 용, 각종 영물과 신수 를 만든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업데이트.

돈은 돈대로 쓰고 버그도 수십 개나 발견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 는 이후에 생겨났다.

“둘의 조화로 생겨난 오버 파워 개체들이었지.”

연우는 수십 개의 속성석을 살 피며 헤맨을 시켜 부른 혜영과 대 화하는 중이었다.

“게임에서. 그래, 게임에서.”

혜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 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타당한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게 다가 조금씩 들었던 것도 있고 말 이다.

“뭐, 전에도 지나가다가 말한 것 같은데.”

“난 뻥인 줄 알았지. 그리고 나 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이자젤한 테 했던 말이었거든.”

“다 들은 줄 알았지.”

사실 일부러 피하긴 했다. 이대 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제대로 말 하려고 부른 거다.

“하여튼. 무슨 말하려다 말았 지?”

“파워 밸런스가 망가졌다고?”

“아아 맞아. 그것도 상당히.”

어쩌다 보니 얘기가 여기까지 왔다.

불사조 알에 어떤 걸 섞을지 고 민하고 있을 때 혜영이 왔고, 이 것저것 설명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불사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동양의 신비를 표현하려 했지. 플레이어들이 열광할 거라고 예상 한 거야.”

연우는 대답 대신 직접 보여 주 기로 했다.

“이걸 봐.”

[불사조의 알(신수)]

설명 : 불사조의 알이다. 불사 의 특성과 모든 걸 흡수해 적응하 는 특성을 가졌다. 간혹 돌연변이 개체가 등장하기도 한다.

원래 설명은 이게 다였다.

속성석을 흡수하는 건 플레이어 가 찾아낸 방법이다. 에너지 비율 이 80% 이상인 마법체 속성 관 련 아이템만 가능했고 하나의 아 이템을 넣으면 닫힌다.

“그래서 처음엔 강화하지 않은 염화석이나 설빙 같은 걸 찾아 넣 으려고 난리를 쳤지.”

알의 하얀 껍질 위로 붉은 불 속성 마력이 일렁인다. 이대로 시 간만 지나도 원 클래스 마스터에 가까운 새끼 불사조가 태어날 거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이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 야 한 번의 흡수에 더 많은 걸 넣 을 수 있을지 고민했고 시스템을 이용했다.

“조합 상자.”

당연히 조합한 속성석을 넣어 봤고 불가능했다. 어떤 방식으로 든 조합과 업그레이드된 아이템은 먹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그 렇듯 틈새를 찾아냈다.

“조합 레시피라는 게 등장했지.”

연우는 조합 상자에 최상급 마 력석 10개. 그리고 메인인 블랙 키리윰 정령석과 ‘일회용 디스펠 스크롤’을 넣었다.

연우의 말에 작은 조합 상자가 진동했다.

완료된 조합 상자는 진한 오라 를 뿜고 있었다.

원래 오라는 조합 상자에서 아 이템을 꺼내야 보인다. 하지만 디 스펠 스크롤이 조합 상자의 봉인 관련 마법을 해제하면서 생긴 버 그였다.

“ 엥?”

“이렇게 되면 조합 상자 자체를 알에 흡수시킬 수 있는 거지. 사 실 현실에서도 될지는 몰랐는데 되네.”

이렇게 만들어진 조합 상자는 ‘조합’이나 ‘업그레이드’라는 제한 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에너지 비율 80% 이상까지 만족하는 알 맞은 개체가 됐으니 충분히 흡수 될 수 있었다.

“물론, 상점에서 파는 건 안 되 고 직접 만든 조합 상자만 가능했 지.”

“응? 그게 그렇게 대단한가?”

연우는 한 번 보라며 알을 가리 켰다.

1분 정도가 흐르자 알에서 어 마어마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하이엔드급 마력석 하나나 하이엔드급 정령석 하나가 들어간 다. 가끔 연우가 넣었던 것처럼 염화의 정수나 만년설인의 심장 정도가 들어가는 게 한계라고 생 각했던 거다.

게다가 그것만 해도 균형이 무 너져 어미 불사조가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이 힘은 최상급 마력석 10개와 최상급 정령석 10개가 온 전히 블랙 키리윰이라는 정력석에 흡수된 것.

당연히 웬만한 플레이어는 감당 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저 셋이 관리하면 충분 하겠지.”

쓰리 클래스 마스터 둘과 투 클 래스 마스터 하나가 상주하며 지 켜 본다.

“버그잖아?”

“그런데 고치기엔 이미 늦어 버 렸지. 버그가 발견된 건 영물의 숲이 나오고 꽤 흘러 버린 후였으 니까. 게다가……

“ 게다가?”

그 비정상적이고 무지막지한 불 사조의 주인이 깽판 치려 대륙에 나왔다가 처음 만난 게 센느라는 더 비상식적인 캐릭터였던 거다.

“운도 없이 날 만나서 죽었지. 그리고 별 심각한 버그가 아닌 것 처럼 알려진 거지. 게다가 이런 버그가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 씩 계속 나타나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플레이어는 떠나가고, 기업 규 모는 축소되고, 버그를 붙잡고 있 을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진 거다.

“뭐, 어쩌면 그것 덕분에 내가 이렇게 오버 밸런스처럼 강해진 걸 수도 있고.”

연우는 눈앞에 강렬한 마력을 뿜어 대는 알을 집어 들었다.

연우가 기억하는 것도 꽤 됐지 만, 이런 다양한 조합식은 공략집 을 뒤지는 게 더 빨랐다.

“오랜만에 커뮤니티를 들어가 볼까.”

연우는 알을 부화장에 옮겨 놓 고 혜영과 함께 핸드폰으로 커뮤 니티를 접속했다. 게이트 안인데 전파가 터지긴 하는 모양이다.

“입구가 열려 있어서 그런가?”

하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얼음 새 만들기, 가스 폭탄 새 만들기, 악취 새 만들기, 1분 포 클래스 만들기, 슬라임 새 만들기, 번식왕 만들…… 이건 뭐야.”

별의별 조합들이 나와 있었다.

새는 불사조의 줄임말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걸 왜 만드는 거지?”

혜영이 중얼거렸다.

연우는 조용히 있었다. 드레이 크에 바퀴벌레를 섞은 전력이 있 었으니까.

“희귀한 개체를 찾다 보면 간혹 이런 게 나오는 거지.”

혹은 반대일 수도 있다. 이상한 걸 만들다가 엄청난 개체가 튀어 나오기도 하니까.

연우는 더 검색했다.

“최근에 업데이트 한 번 했네.”

업데이트할 때마다 심각한 버그 가 한두 개씩 없어지긴 했다.

“이야, 이 게임 거의 퇴물이라 면서 꽤 활발한데?”

“당연하지 마니아가 꽤 있으니 까. 나도 캐릭터 사라지는 거 아 니었으면 몇 번씩 들어가서 했 을......

대화하다 보니 혜영의 숨이 느 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뭐, 뭐야. 왜 말을 멈춰?”

눈이 마주친 혜영이 말을 더듬 으며 소리쳤다.

연우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혜영은 더 당황했는지 얼굴까지 붉어졌다.

“너, 너 왜 그래?”

연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 아까 밥 먹고 양치했냐?”

“너 나한테. 아니, 뭐라고 이 새 끼야?”

“어우 냄새.”

“야!”

혜영이 발길질이 날아왔지만, 연우는 슬쩍 피해 냈다.

맞지 않아서 더 화가 난 건지 혜영이 ‘공간’을 사용했다. 연우도 ‘염력’을 이용해 막고 빗겨 낸다.

“오호. 벌써 5단계 정도에 든 건가?”

“흥, 네가 쉬는 사이에 올렸지!”

“어쩐지. 너 그렇게 번 돈으로 정령석 사서 마법 장신구 만들었 지? 이자젤한테 열심히 배우더 니!”

“아니거든! 내 큰 뜻을 네가 어 떻게 알겠니.”

콰직.

바닥이 파이며 공간이 사라졌다 가 돌멩이가 날아들기를 몇 번이 나 교환한 연우와 혜영은 그제야 멈춰 섰다.

“후우. 말조심해라.”

혜영은 그러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바람을 불어 냄새를 맡는 거다. 향긋한 치약 냄새가 올라왔 다.

“야! 나 양치했잖아!”

“어 그래? 그런가 보지.”

사실 이상한 냄새는 난 적 없었 다.

연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액정을 들여다보며 앉았다.

“ 찾았다.”

“뭐? 좋은 거 있어?”

“보물 피닉스. 보물 고블린의

‘새’ 버전이네.”

어떤 게임에서 이 보물 고블린 을 잡으면 어마어마한 돈과 아이 템을 뿌리는 설정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 설정으로 이 피닉스가 머 무는 곳에 마법 장비나 속성 관련 아이템을 뿌리는 것이다.

“꽤 쓸 만하겠어.”

“와, 이런 거 하나 나오면 대박 이겠는데?”

“대신 레시피 그대로 해도 나올 확률이 1% 남짓이네.”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연우는 시간과 자원이 넘쳤다.

그리고 또 괜찮은 걸 찾았다.

“크으, 이거다!”

연우가 소리쳤다.

드디어 원하던 걸 찾았다.

“오염된 불사조. 요드.”

크툴루 신화에서 등장하는 그레 이트 올드 원 중 하나라는 요드라 는 캐릭터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름이 비슷한 것처럼 가진 능 력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시스템 설명처럼 ‘즉사’와 ‘완벽한 방어 무시’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것.

연우가 찾고 있던 것 중 하나였

“후, 이건 0.1% 미만이네?”

아무래도 꽤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1%나 0.1%를 그대로 기다릴 생각은 없 었다.

아공간에는 이런 확률 정도를 올려 줄 행운 아이템이 충분했으 니까.

“요정의 집으로 가서 눈물도 좀 얻어 와야겠다.”

그래도 그것만큼 큰 행운을 가 져다주는 건 없다.

연우는 혜영을 바라봤다.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협회장에게 들 었다. 이번 작업에 도움을 받고 연우도 도움을 조금 주기로 했다.

노는 걸 좋아하는 연우지만, 하 나에 꽂히면 미칠 듯 집중한다. 아스가르드라는 게임에 그랬었고 최근엔 신살검을 만들 때 그랬었 다.

이번엔 불사조 알의 조합.

많은 방식이 있었고 그것엔 확 률이 있다.

1%라도 100번 한다고 1번 나 오는 게 아니다. 확률이란 그렇게 알 수 없는 거다. 하지만 게임 시 스템이라는 건 연우에게 그 확률 까지 손댈 권한을 줬다.

“요정의 눈물.”

행운이 대폭 오른다. 정확한 수 치로 나오지 않지만, 게임 내에서 치명타 확률이나 회피율을 기준으 로 분석한 영상엔 30%까지 올릴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건 1%의 30%. 즉, 1.3%가 되는 것. 0.1%면 0.13% 가 되는 거다.

“그 전에 절대적 행운 수치를 올릴 수 있는 것들을……

게임들이 다 그렇듯 오픈 초반 엔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아이템들 도 끝물에 가면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해진다.

“행운의 검, 행운의 왕관, 포튜 나의 손톱, 오색의 반지.”

말한 순서대로 행운 절대 수치 1%, 3%, 5%, 1%를 올려 줘서 총 10%가 늘어 총 10.1%가 된

“우중추의 반지, 검은 사제의 팬티, 호룰의 치마, 게나의 안경.”

이건 비율로 10%, 20%, 20%, 200%까지. 10.1%의 절대 수치를 31.9968%까지 늘려 준다. 거기에 요정의 눈물을 사용하면 41.59584%가 된다.

문제는 연우의 옷차림이 점점 쓰레기가 돼 간다는 거다.

“푸훕

“웃지 마라.”

“푸웁. 푸하하하하. 미친. 이게 뭐야. 끄으윽. 나 눈물 나.”

“야! 진짜 조용해라!”

아직 장비 몇 개가 더 남았다.

천사의 양말, 엘프의 목걸이, 크리스마스 이벤트 아이템이었던 산타의 장갑, 화이트데이 이벤트 아이템이었던 행운의 사탕 2개를 물고 레시피대로 조합하면 된다.

혜영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 다.

“확률 몇 퍼센트?”

“총 80%가 한계다.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되나 봐.”

아예 막혀 있다.

눈앞에 놓인 알을 바라볼 뿐이 었다. 확률은 올릴 수 있는 한계 까지 올렸다. 이제 레시피 재료를 모아 조합만 하면 됐다.

물론, 이것도 쉬운 건 아니었 다.

제105편_ 주인공. 그리고 타이

밍 (4)

후름은 요섭과 바벨을 데리고 낚시를 나왔다.

이렇게 셋이 모인 건 처음이었 다. 하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서 열은 정해져 있고, 후름은 둘을 편하게 대했으며, 요섭은 말을 잘 들었으니까.

“오오오! 이건 강체 슬라임의 정수로 만든 낚싯대군요!”

“실은 인면지주의 실을 이용했 지. 아마 투 클래스 마스터까지는 마력 강화 없이 견딜 거야. 게다 가 아래로 500m는 들어갈 거고.”

전에 태평양 중앙에 만들었던 목재 뗏목 위였다. 꽤 오랜 시간 이 지난 것 같은데 마법 처리가 돼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여기서 잡힐 것 같아?”

후름이 요섭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귀한 놈이니까요.”

요섭은 그렇게 말하며 낚싯바늘 에 손톱만 한 만년한철을 꽂았다. 만년한철은 귀하다. 강력한 냉기 를 뿜고 깊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 다.

강도나 경도는 말할 것도 없으 며 회귀하기도 최상급에 든다.

이걸 낚싯바늘에 꽂는 이유는 바다에 사는 ‘메탈테빗’을 잡기 위 해서였다. 온갖 금속과 광석을 먹 고 자라며 희귀하면서 강한 금속 에 환장하는 녀석이다.

바다 밑바닥에서 주로 서식하긴 하는데 만년한철처럼 독보적인 존 재감을 뿜는 금속이라면 무조건 올라올 거다.

“메탈테빗은 물고긴가?”

“음…… 물고기라기보다 금속 해 파리? 같은 겁니다. 모든 금속을 체내에서 조합하고 불순물을 버리 면서 성장하는데, 꽤 오래된 개체 는 몰트랑 비슷할 정도의 금속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그 정도야?”

후름이 놀라 물었다. 몰트를 모 를 리 없다. 신의 금속이자 연우 의 아공간에도 단 한 덩이밖에 없 던 금속.

“몰트가 신력에 특화돼 있다면 이 ‘테빗의 심장’은 강도와 순수한

마력 전도율에 특화돼 있죠. 이것 과 엔트 족의 껍질을 이용해 장비 를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네 번째 마스터에 도전하는 거 구나.”

후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 덕이며 요섭을 바라봤다.

직업마다, 스킬마다 마스터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검술이나 마법 같은 경우는 공 부, 훈련, 깨달음 등이 가장 큰 요인이었고 정령은 어떤 정령과 계약하느냐가 가장 큰 요인이었 다. 대장장이는 어떤 등급의 무기 를 만드느냐가 깨달음과 결정적인 경험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네,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난 언제 쓰리 클래스를 마스터 하냐.”

후름은 ‘정령사’가 메인 스킬이 고 두 번째 마스터는 ‘전투 센스’ 라는 감각 스킬이다. 두 개의 중 상급 스킬을 추가로 가지고 있긴 했는데 모두 만족스럽지 않아서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미룬 큰 이 유였다.

똑같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라도 스킬의 희귀성과 잠재력에 따라 마스터 후의 힘이 달라질 테니까.

“아, 이번에 이자젤 님이 만든 인공 정령 같은 걸 받아들이면 어 떨까요?”

“그럴 거면 원래 가지고 있던 중상급 스킬을 마스터하고 말지.”

그 둘은 정령 중에서도 회귀하 고 강하다는 얼티밋급 속성인 ‘번 개의 정령’하고 ‘어둠의 정령’이었 다. 몇 백 년이나 찾아다닌 결과 인데 이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거다.

당연한 게 후름은 연우처럼 사 기 캐릭터가 아니었다. 포 클래스 마스터부터는 운과 깨달음의 산물 이었고 이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도 없는 경지였다.

어떻게든 쓰리 클래스 마스터로 최고의 힘을 끌어내야 했다.

“이거 어떻습니까.”

요섭은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 를 말했다.

여기서 얻은 메탈테빗의 정수와 엔트 족의 껍질로 만든 요섭의 장 비. 최소 [GOD] 등급 장비에 인 공 정령을 넣어 그것과 계약하는 거다.

그럼 희귀성, 잠재력, 특수성까 지 잡을 수 있는 스킬이 나오지 않을까?

“장비에 담긴 정령과 계약한다. 그리고 그 무기를 이용.”

이런 스킬을 들은 적이 있었다.

메인급의 넓은 범위 스킬은 ‘정 령 인챈트’, 조금 좁은 건 ‘정령 무기술’이나 ‘정령 장비 관리’ 정 도가 있었다.

아예 한길만 파는 특수성을 볼 때는 스킬명이 ‘테빗의 심장의 정 령’인 고유명사 스킬이 될 수 있 다. 당연히 그런 고유명이 있는 정령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 고 그게 잠재력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가능은 하대?”

“네, 이자젤 님의 말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후름은 결심했다.

요섭과 바벨은 메탈테빗을 기다 렸고 후름은 일단 심부름이었던 ‘도미’를 먼저 잡았다.

언제까지 투 클래스 마스터에 머물 수는 없었다. 특히, 요즘 이 자젤과 수이니도 쓰리 클래스 마 스터에 집중하는 게 보였다.

후름도 마음이 급해졌다.

농장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물론, 조금 시끄럽긴 했다.

“꺄하하, 재밌어요! 더 해 주세 요!”

“홍, 어떻게 내 신격을 뚫는 거 지?”

“신격? 그게 뭐예요? 꺄하하하.”

삼미호는 배설물을 푸고 있는 천인종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배설물을 푼다는 게 얼마나 격렬 한지, 쓰리 클래스 마스터인 천인 종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그렇게 내 신체에 닿아 있 는…… 너 정령도 가지고 있었냐?”

“네!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예 요! 우와! 더 빨리요! 대단해요! 어떻게 이렇게 삽질을 잘하는 거 죠?”

흥, 조용히 좀 해라.”

천인종은 투덜거리면서도 슬쩍 웃었다. 농장에 온 이후로 칭찬이 라는 걸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빠르지?”

“꺄아아아! 너무 빨라요! 대단 해요!”

삼미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천인종은 신력까지 사용하며 삽질 을 했다.

멀리서 그걸 지켜보던 이자젤과 수이니가 입을 열었다.

“연우는 언제 오지.”

“보고 싶으면 들어가면 되지.”

게이트로 들어가서 작업을 시작 한 지 보름이 지났다. 간간이 나 와서 무언가 가지고 다시 들어가 는 건 보였지만, 말을 걸기 무서 울 정도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서 대화는 하지 못했다.

“연우는 뭐 집중할 때 건드는 거 안 좋아하잖아.”

이자젤의 말에 수이니가 놀라며 물었다.

“네가 그런 것도 신경 썼었나?”

“연우, 화나면 무서우니까.”

쿠우웅.

그때, 둔중한 파동이 그들을 쓸 고 지나갔다.

이자젤과 수이니는 슬쩍 웃었 다.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네.”

수이니는 식당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나오자마자 맛있는 음식 으로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이자 젤은 시원한 맥주를 준비하기 위 해 펍으로 들어갔다.

“도미라……

정확히 말하면 8단계 도미과 몬스터이긴 했다. 며칠 전 후름과 요섭이 낚시를 간다기에 주문했던 거였다.

‘그러고 보니 후름도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네.’

하지만 금방 신경을 껐다.

“도미 조림이 다.”

수이니의 요리 스킬도 상당히 높다. 마스터에 가까울 정도로. 게다가 검술은 마스터니 레시피만 알면 뭐든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 다.

파닥파닥 살아 움직이는 도미의 머리를 쳐 기절시키고 살점을 발 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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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림 없는 칼질이다.

한쪽에선 물을 끓였다. 다시다, 가쓰오부시, 청주, 순무를 이용해 육수를 만들고 간장, 설탕 등을 넣는다. 거기에 발라 낸 살과 머 리까지 넣어 조리는 거다.

능숙한 손길에 요리는 순식간에 완성돼 갔다.

수이니는 작은 수저로 맛을 봤 다.

달며 짭조름한 맛이 매혹적으로 조합돼 있다. 도미의 담백함과 향 긋한 바다 냄새까지.

살점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조림은 조금만 잘못하면 살이 부서지고 퍽퍽하다. 하지만 수이 니의 도미는 살이 탱탱하게 부드 러우며 식감이 전혀 죽지 않았다.

“좋네.”

딱 소주 안주다.

여기에 흰밥을 말아 먹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거 하나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쌍뿔 멧돼지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탕수육을 만들고, 이번에 한 마리 잡은 메리쉽의 살로 티본스 테이크도 하나 준비하기로 했다.

메리쉽은 평범한 양고기처럼 누 린내가 심하지 않고 훨씬 육즙이 풍부했다.

“꽤 괜찮은 요리가 나오겠는 데?”

수이니는 웃으며 요리를 시작했 다.

그 요리가 끝날 때쯤, 식당 문 이 열리며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 졌다.

“수이니이! 밥 좀!”

우렁찬 연우의 음성이었다.

음식을 가지고 나간 수이니의 얼굴에 보인 건 거지꼴을 한 연우 와 혜영이었다. 그래도 결과가 만 족스러웠는지 얼굴은 밝았다.

“성공했어?”

“응, 생각보다 더.”

타이밍이라는 게 그렇다. 언제 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뜬금없 는 운명이 머릴 들이민다.

천공 세계로 통하는 차원 통로 로 신호가 왔다. 동시에 천공 세 계에 풀어 놨던 길들인 몬스터에 게도 신호가 왔다.

연우는 식사를 마친 후였고 [신 살검(神殺劍, Kill the GOD)]을 들고 요섭이 온 힘을 다해 만든 [테밋의 혼 (GOD)] 이라는 전신 갑옷을 입었다.

그리고 어깨 위엔 [포식자 요드 (GOD)]가 작은 새로 변해 앉아 있었고 뒤엔 땅의 정령왕 데르드 가가 함께했다.

땅과 대기가 울리며 두 인영이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신력을 가지고 있군.”

한 명은 어둠, 한 명은 빛이다.

가진 힘은 세븐 클래스 마스터. 하지만 호르드란의 예언엔 싸우다 가 에잇 클래스 마스터로 변한다 고 했었다. 연우는 중간 과정에 천공 세계가 사라질 것을 대비하 기 위해 여명을 사용했다.

-여명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자의 신분증이 확인됐습니

-마스터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 요.

연우는 별생각 없이 ‘염력’을 찍 었다. 지구의 특수 스킬 중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응용 가능성이 넓은 능력.

푸확!

연우를 중심으로 대기가 터져 나가며 어마어마한 기세가 뿜어지 기 시작했다.

-염력(10단계)를 마스터했습니 다.

-최초로 에잇 클래스 마스터를 이뤘습니다.

-잠재 능력치가 3 올랐습니다.

-현 사용자의 능력치가 부족합 니다.

연우는 육체가 붕괴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가장 부족한 게 마 력이라는 것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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