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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편. 삼미호의 하루 (87/207)

제97편. 삼미호의 하루

아이 델은 일찍 일어나 수련을 시 작했다.

선술은 안개가 뿌옇게 오를 때부 터 수련해 줘야 한다.

“아이델! 아이델!”

“삼미호구나. 오늘은 늦지 않았 네.”

여성체지만 굉장히 진중한 성격 을 가진 아이델이다. 삼미호는 어 린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 태어 난 지 1년도 되지 않았으니 아이가 맞긴 하다.

멀리 혜영이라는 연우의 친구분 이 ‘공간’이라는 이상한 힘을 수련 하는 게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고 개를 푹 숙여 인사한다.

“삼미호, 수련을 시작하자.”

작은 몸을 가진 아이 델이 가부좌 를 틀고 눈을 감았다.

처음은 명상이다.

삼미호도 아이델을 따라 하려고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하지만 다리가 제대로 꼬아지지 않는다. 대신 꼬리를 이용해 몸을 감싸 본

얼핏 비슷해진 모습을 보곤 만족 스러운 듯 눈을 감는다.

끼잉.

하지만 삼미호에게 이렇게 가만 히 눈 감고 앉아 있는 건 꽤 고통 스러운 일이다.

삼미호는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 폈다.

멀리 헤르메스라는 뱀파이어와 신격을 지닌 인종이가 보였다.

헤르메스가 배설물 푸는 걸 가르 치는 게 보였는데, 인종은 그것도 힘든지 삽을 부러뜨려 먹는다. 헤

르메스가 화가 나 인종의 뒤통수를 쳤는데, 인종은 꿈쩍도 하지 않았 고 헤르메스만 손바닥을 부여잡았 다.

인종의 무력 수준이 더 높고 신 격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푸홉. 흐흐.”

삼미호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두 손으로 막으면서 아이 델의 눈 치를 봤다. 다행히 명상에 깊이 빠 진 모양이었다.

저 둘이 모이면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삼미호는 3분도 참지 못하고 자 리를 이탈했다.

풀쩍 뛰어 식당 지붕으로 올라갔 다. 그거 조금 했다고 뻐근해진 허 리와 다리를 쭉 편다. 기지개를 켜 는 거다.

낑.

관절을 펴는 시원함에 입에서 이 상한 소리가 나왔다.

삼미호는 아이델의 눈치를 보곤 어제 새로 생긴 양 목장으로 이동 했다. 원래 댕댕이와 검둥이와 함 께 놀아야 재미있는데 둘이 목장으 로 이동하게 됐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직접 찾 아가는 수밖에.

컹컹!

삼미호가 가는 걸 눈치챘는지 댕 댕이가 짖었다. 처음엔 굉장히 무 서운 기세를 가지고 있어서 무서웠 는데 금방 익숙해졌다.

생각보다 착하기도 했고 같이 노 는 게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꺄! 좋아요! 더 빨리요!”

어느새 댕댕이 등에 탄 삼미호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외쳤다. 댕댕이 도 신이 난 건지 양 목장 주변을 빠르게 돌았다.

“헥헥. 힘들다.

삼미호는 한참 놀다가 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해가 벌써 중천까지 떠 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아이델이 있는 곳까지 달 려가 봤지만, 아이델은 이미 수련 을 마치고 들어간 후였다.

너무 정신없이 놀아 버렸다.

아이델에게 말도 없이 나왔으니 분명 실망했을 거라 확신했다. 시 무룩해진 삼미호는 다시 걷기 시작 했다.

멀리 대장간이 보인다.

다운된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이곳이 그곳이다.

“우오오! 힘이 넘칩니다!”

“좋아! 더 두드려! 엔트 족의 껍 질은 단순한 망치질로는 가공할 수 없다! 생명을 쏟아부으라고!”

“조호오오습니다! 으아아아!”

삼미호는 그 모습을 보고 꺄르르 웃었다. 역시 언제나 힘이 넘치는 곳이다.

삼미호의 눈에는 정말 무기에 생 명을 쏟아붓는 것도 보였다. 식당 에서 먹는 음식으로 생명력을 채우 긴 하지만, 저러다 진짜 죽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엔트 족 껍질은 모든 저항력이 최상급이야. 당연히 화(火) 저항도 거의 100%에 달하지. 우린 그걸 뚫어야 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불을 더 올리겠습 니다!”

“그래, 상급 마력석 하나 다 쓴 다고 생각해! 뒤는 생각도 하지 마 라.”

“알겠습니다! 요섭 님을 믿습니 다! 제가 죽거든 꼭 데이비드에게 좋은 삶이었다고 전해 주십시오!”

“좋아! 그런 마음가짐으로 내려 치는 거야! 내가 유언은 꼭 전해 주지!”

“으아아아! 힘이 납니다!”

삼미호는 꺄르르 웃다가 점점 섬 뜩해지는 말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 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있으면 같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삼미호는 카페로 이동했다.

가장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은 이 카페였다.

식당도 나쁘지 않지만, 수이니가 검강으로 재료를 손질하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기도 했으니까.

“삼미호 왔구나.

“네! 커피 하나 주세요!”

삼미호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 문했다.

하지만 후름은 쉬운 상대가 아니 었다.

“아직 안 된단다. 딱 한 살이 되 면 그때 줄게.”

“히 잉.”

삼미호는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곧 힘을 냈다. 벌써 몇 개월을 살았다. 앞으로도 몇 개월 만 더 살면 된다.

“그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 더

살아야 하는 거지요?”

“그렇지. 6개월이랬나? 그 정도 는 더 살아야 하는 거지.”

삼미호는 참을 수 있을 거라 자 신하면서 카페를 나왔다. 어차피 못 먹을 거면 계속 있을 필요가 없 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마법 상점이 었다.

이자젤은 한쪽에서 벌러덩 누워 자고 있었고 혜영은 수련을 끝내고 샤워를 한 것인지 머리가 축축했다. 마법으로 말리면 되는데 그럼 머릿 결 상한다고 자연 바람으로 말리는 모양이었다.

“뭐해요오?”

심심함에 일부러 혜영 시야에 들 어가 물었다.

“삼미호구나. 마법 물품 만든단 다.”

“마법 물품이요?”

삼미호의 눈에는 마법 물품에 마 력으로 새겨진 마법진이 선명하게 보였다. 선술이랑은 너무 달랐다. 수십 가지의 마법진이 서로 방해되 지 않고 시너지를 발휘하며 엉켜 있다.

“우와. 신기해요!”

“그래? 마법하고 선술은 많이 다 른가 보구나.”

“네! 선술은 이렇게 안 되는데. 저도 만들어 봐도 돼요?”

혜영은 웃으며 한쪽에 놓인 은으 로 만들 반지를 몇 개 줬다. 삼미 호는 그걸 빤히 보더니 선술을 몇 개 써 본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려나.”

작은 폭발과 동시에 연기가 올라 왔다.

“콜록콜록. 윽, 실패했어요.”

“괜찮아. 처음은 그런 법이지.”

은제 반지야 많이 있고 저가의 재료라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았 다.

삼미호는 꽤 재미가 있었는지 몇 개를 더 터뜨리곤 하나를 완성했다.

“꺄! 성공이다! 성공이야! 이 정 도면 밥값 한 거겠죠?”

삼미호는 뿌듯하다는 듯 코를 위 로 세우고 혜영에게 물었다. 혜영 은 그게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 다듬었다. 그러자 삼미호가 ‘그르 릉’ 소리를 내며 눈을 감는다.

“그럼 충분하지.”

혜영은 그렇게 말하곤 이자젤이 준 ‘설명하는 펜’을 사용했다. 그러 자 물품의 설명이 종이에 써졌다.

[선술의 반지(희귀)]

설명 : 마법을 흉내 낸 고난이도 선술이 새겨진 반지다. 한 번 작동 하면 ‘은신’, ‘분신’, ‘결합’, ‘회복’, ‘이동’의 선술이 자동으로 사용된 다. 도무지 어디에 쓸지 감이 잡히 지 않는 기능들이다.

혜영은 그 설명을 보고 웃었다.

기술은 좋았으니 쓸모가 없었다. 한 번 사용하면, 은신이 되고 분신 이 만들어지는 것까진 좋다. 그런 데 바로 분신들이 결합하며 회복까 지 된다.

마지막 회복 하나만 보고 써야 하는 반지였다.

“재능은 있네.”

그래도 센스가 없으면 이런 걸 만들기 힘들다.

삼미호는 혜영이 놀라는 모습 때 문인지 코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 태로 마법 상점을 나왔다.

이젠 갈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향하는 삼미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지 만 갑자기 풍기는 좋은 냄새에 삼 미호는 날 듯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오늘도 맛있는 음식이 삼 미호를 기다렸다. 이자젤은 삼미호 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었다. 항상 두 강아지와 삼미호에 게 요리를 챙겨 주기 때문이다.

“우와! 우와! 오늘은 회네요. 회!”

“그래, 오랜만에 참치랑 살몬테 르를 먹어 보자고.”

삼미호는 접시에 덜어 준 회를 할짝할짝 핥아 먹었다.

부르르.

이곳에서 먹는 음식은 언제나 쾌 감을 선사한다.

“맛있다! 너무 맛있다.”

본능적으로 꼬리가 세차게 흔들 린다. 우울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 갔다. 고개를 들었더니 모두 하얗 게 서리가 낀 잔을 들고 짠 하는 게 보인다.

저게 술이라는 거란다.

한 번 먹어 봤는데 너무 써서 바 로 뱉었다. 게다가 그걸 들켜서 땅 콩 한 대를 맞아 버렸다. 맛이 있 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저건 평생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삼미호는 눈앞에 놓인 회에 집중 했다. 중간에 이자젤이 샐러드를 조금 덜어 줬다.

이자젤은 언제나 최고다!

이진철은 맑아진 하늘을 바라봤 다.

며칠 동안 지옥 같은 전투를 지 속했다. 무너진 장벽으로 쏟아져 오는 몬스터는 끝이 없었고 사용자 의 피해도 계속 늘어만 갔다.

그래도 이번에 구매한 마법 물품 덕분에 이진철이 이끄는 사용자 부 대는 혁혁한 공을 세우며 최전선을 사수하고 있었다.

“슬슬 끝이 보이는구나.”

“그러게요. 이제 마무리 같네요.”

위성이 복구되고 바로 확인한 건 남은 7개의 둥지였다. 다행히 이상 은 없었다. 만약 그게 터졌거나 충 격에 무언가 튀어나왔으면 이 정도 로 막을 수 없었을 거다.

“이제 둥지만 아니면 크게 위험 할 건 없겠지.”

이진철과 최민아는 거지 수준의 몰골이었다.

눈을 붙일 시간조차 부족한데 씻 는 건 사치였다. 전장에서 싸우고 쪽잠을 자며 버티고 버텼다.

그 덕에 이제 이진철과 최민아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버틸 정도로 정리된 거다.

이진철은 손목에 찬 기어로 화상 통화를 연결했다.

홀로그램 영상이 올라오더니 신 호음이 갔다. 그리고 금방 감시국 국장 주종범의 얼굴이 나왔다.

?네, 협회장님.

“얼굴이 좋다?”

?네? 아…… 하하. 아닙니다. 협 회장님 역시 고생하시는군요.

“쯧, 하여튼 신호는 어때.”

옆으로 화면 하나가 떴다.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몬스터 디펜스 레이더(MDR)’다. 웨이브, 게이트, 던전, 필드. 몬스터 가 존재하는 모든 곳을 감시하고 분석하며 예측한다.

-어제 순간 투 클래스 마스터급 이상의 게이트 신호가 잡혔는데,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후로 투 클래스 마스터급 이상의 신호는 흔 적조차 사라졌습니다.

이진철도 느꼈다.

섬뜩한 감각이 등줄기를 훑었었 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지구를 한 번 휩쓸면서 그 감각은 사라졌다.

“그럼 다행이군. 이 아프리카 상 황은?”

-둥지도 안정적이고 주변 몬스터 도 상당수 줄었습니다. 복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기다렸다.

너무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 다. 조금 쉬면서 농장에 들러 연우 에게도 인사를 해야 한다.

“민아, 철수한다.”

“알겠습니다.”

이진철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곳에서 처절한 전투를 통해 투 클래스 마스터를 이뤘기 때문이다. 조금 배가 아픈 건, 최민아도 투 클래스 마스터를 이뤘다는 것이었 다.

물론, 연우에게 구매한 마법 물 품 덕이 컸고 최민아보단 이진철이 ‘아직’ 더 강하긴 했다. 마법 클래 스 마스터라는 큰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뒤집힐 거다.

최민아는 이진철조차 혀를 내두 르는 재능을 가진 천재였으니까.

둘은 전장을 떠났다.

그와 함께했던 사용자는 남아 있 었고 셰이크의 부름에 이끌려 온 실력 좋은 사용자는 많았다.

주변으로 무너졌던 장벽이 올라 오는 모습이 보였다. 셰이크의 추 진력은 대단했다. 사용자를 모아 몬스터를 막기 시작했고 바로 장벽 의 건설을 추진했다.

백지화될 뻔했던 셰이크의 정화 작업은 다시 궤도에 오르는 중이었 다.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정을 되찾을 거다.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아프리 카.

이제는 달라질 때가 됐다.

그 중심엔 연우가 판 상급 마력 석과 셰이크의 자금력. 그리고 이 진철과 최민아의 공이 있었다.

이젠 정말로 위원회라는 이름에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 다. 그저 그들에게 반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 농장이 인류에게 거 대한 해일이 될 것을 방지하기 위 함이었다.

이진철은 이게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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