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편_ 개미지옥(2)
연우는 차원의 거울을 통해 1계 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 생각대로 됐는데?”
“괜찮은 거 같습니다.”
옆에 헤맨도 뿌듯해 보였다.
지저 세계를 복제하듯 만들었다. 지저 세계는 13계층부터 내려가는 거고 천공 세계는 13계층부터 올라 가는 거다. 그리고 서로 1계층에서 만나게 했다.
얼핏 듣는다면 이상하게 들릴 거 다.
반대돼야 만나는 게 아닌가 싶으 니까. 하지만 그건 의도한 바였다. 천공은 위로 지저는 아래로 그리고 그 중심은 므깃도였고 두 세계의 목표가 므깃도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한 전투 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발 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진다는 ‘개 미지옥’을 연상케 한다.
지금은 1계층에서 힘을 합해 싸 우고 있지만, 금방 균형이 맞춰지 며 1계층에 한 종족, 각 2계층에 두 종족씩 자리를 잡을 거다.
“시작부터 저런 놈들이 올 줄은 몰랐지만.”
원래는 다른 차원에서 지구를 공 격하는 투 클래스 이상의 강력한 존재들만 천공 세계로 들어오게 한 거였다. 그리고 그 기간은 꽤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만들자마자 꽉 차 버렸 다.
만약 연우가 이걸 만들기 전에 저 천족과 마족들이 들어왔다면 지 구는 다시 한 번 멸망 플래그를 꼽 을 뻔했다.
타이밍 하나는 끝내준다. 위에서 누군가 의도한 게 아닌가 할 정도 로 말이다. 하지만 이젠 적응돼 이 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저 세계와 천공 세계의 시너 지가 아주 대박입니다. 므깃도 전 체에 자원이 두 배 이상 생산되고 지저의 수준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천공 세계에 몬스터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추세입니다.”
“역시 이건 신의 한 수였어.”
한동안 므깃도나 두 세계의 자원 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것도 예전에 제임스가 알려 줬 던 농장 운영 방법이었다.
스케일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부연 세계. 그러니까 농장을 제외 하고 므깃도와 같은 땅은 어디까지 나 자원과 마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거대한 배터리랄까.
연우의 농장을 유지하기 위한 창 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은 내 농장을 조금 더 꾸며 봐야겠어.”
변호사와 중개업자를 통해 농장 뒤쪽의 땅을 더 샀다.
그곳엔 숲과 평야가 골고루 있었 는데, 나무를 옮겨 심어서 넓은 평 야를 만들기로 했다.
아메리쉽’하고 ‘푸른 털의 양’을 이종교배해서 양 떼 목장을 만들어 야지.”
양치기 견은 댕댕이와 검둥이가 하면 된다. 또, 리 젤과 함께 아이 델 의 일을 만들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연우는 뒷산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정령사 10단계를 찍기 위해 계약했던 정령왕을 소환했다.
푸확!
구으응.
땅이 진동하며 정령계와의 문이 열리며 정령왕이 등장했다. 하체는 유령처럼 나풀거렸고 상체는 인간 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땅의 정령왕 데르드가는 남성체 였다.
“여기가 지구라는 곳인가.”
주변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지른 다. 데르드가는 아스가르드의 정령 이 아니라 현실에서 연결된 정령계 의 정령왕인 것 같았다.
“맞아. 이것 좀 부탁할게요.”
연우는 부탁할 일을 설명했다.
“…… 하하. 이런 일에 나를 부 르다니. 도대체 마력의 한계가 있 긴 한 건가?”
“딱히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네 요.”
데르드가는 연우의 말대로 산 중 턱부터 아래 평야까지 모든 나무를 옮기고 잔디를 깔았다. 동시에 굴 곡진 부분도 평평하게 만들었다.
“나도 새로운 세상에서 지내고 싶은데 괜찮다면 소환을 유지해 줄 수 있겠는가?”
“어렵지 않죠. 대신 이곳은 안 되고 다른 세계로 보내 줄게요.”
연우는 므깃도를 열어 그곳으로 데르드가를 안내했다. 이곳에선 어 렵지 않게 마력을 수급하고 재미있 게 살아갈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연우가 재소환하기도 쉽 고 성장을 꾀할 수도 있다.
‘내가 처음에 소환했던 정령도 아스가르드의 정령이 아닌 건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처음 계약했던 정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령 왕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 다.
하지만 지금 그걸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단, 이종교배를 하자.”
연우는 바로 메리쉽을 한 마리 데려왔고 므깃도에 있던 푸른 털의 양을 꺼냈다.
메리쉽의 털은 마력 전도율이 높 다. 보온성은 물론이고 질기기도 최고급이라 장비를 만들 때 유용하 게 쓰인다.
한편 ‘푸른 털의 양’은 푸른 털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주공격 방법이 전기이며 5단계 정도로 꽤 강한 편에 속한 다.
이 두 몬스터를 이종교배하면 어 떻게 될까.
-‘메리쉽’과 ‘푸른 털의 양’을 이 종교배합니다.
-DNA 교합률 25%.
-세븐 클래스 마스터 스킬이 보 정합니다.
-DNA 교합률 108%.
-100%를 초과합니다.
- 이종교배가 시작됩니다.
이번에 결합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종교배로 들어갔다.
메리쉽 몇 마리와 푸른 털이 양 수십 마리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 기 시작했다. 연우는 그 몬스터를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 놓고 울타리 를 만들기 시작했다.
평야의 크기는 대략 학교 운동장 두 개는 붙여 놓은 정도였다.
양 떼라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기 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울타리 밑으론 비를 피할 수 있 는 별관을 따로 지었다. 기둥에 천 장과 벽만 있는 간이 건물이었다. 물과 먹이를 주는 곳도 만들고 중 앙에 반도 나무를 하나 심었다.
그리고 한쪽엔 작은 바위산도 만 들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연우는 그 안에 40마리 정도 되 는 양들을 넣었다.
이종교배를 시작했으니 며칠 내 로 새끼를 출산하게 될 거다. 자연 교배가 아닌 흑마법에 가까운 교배 였으니까.
“사과나무랑 포도나무. 그리고 무화과나무도 확인해야겠다. ”
며칠 이것저것 일이 많았더니 농 장 일이 쌓여 있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평범한 나무는 아니었다.
사과는 황금 사과나무로 제우스 가 있던 천공 탑 꼭대기인 올림푸 스 근처에서 몇 개 훔쳐 온 묘목을 심은 거였다. 생명의 나무이며 말 만 ‘신’인 올림푸스의 신들의 노화 를 방지하는 귀중한 열매였다.
“말이 신이지, 늙어 죽기 싫어서 이런 거나 먹고 말이야.”
게다가 무력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다.
‘신격’이라는 것 때문에 포 클래 스 마스터임에도 신으로 군림했고 연우가 식스 클래스 마스터가 돼서 야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
무화과나무도 평범한 건 아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선악과.
맞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 혹에 넘어가 먹고 말았다는 선악과 다.
물론, 아스가르드의 선악과가 가 지는 효능은 신격 저항을 높여 주 는 것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신에게 개길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다.
신격을 얻는 방법은 없으려나.”
신격 저항력이라고 하지만, 경험 상 그다지 큰 효능은 없었다.
다행인 건 연우가 세븐 클래스 마스터를 찍으면서 얻은 호칭으로 약간의 신격을 얻었다는 거다.
[플레이어 상태 창]
이름 : 신연우
닉네임 : 센느
직업 : 농장 주인
칭호 :
-므깃도의 주인(모든 능력치 + 10, 지배력 +10)
-차원 농장의 주인(지능 +10, 지 배력 +10)
?대륙의 절대자(모든 능력치 +5, 힘 +5)
-세븐 클래스 마스터(미미한 신 격 저항)
능력치 :
힘 105, 민첩 105, 체력 110, 지 능 105, 마력 101, 지배력 120
잠재 능력치 : (646/647)
특이 사항 :
-동화 진행률 : 100%
-아주 약간의 신격을 얻었습니 다.
스킬 :
길들이기(10단계), 보이지 않는 손(10단계), 은신(10단계), 사냥(10 단계), 절대자(10단계), 요리(8단 계), 건설(8단계), 정령사(10단계), 목축(10단계), 므깃도(9단계), 심안 (9단계), 마력 지배(9단계), 중재자 (9단계), 마법(8단계), 검술(8단계), 아공간(9단계), 지배자(9단계), 연금 술(9단계), 흑마법(9단계), 염력(4단 계), 대장장이(8단계), 선술(3단계).
상태 창에 변한 건 별로 없었다.
염력과 선술 그리고 대장장이가 생겼고 세븐 클래스 마스터에 오르 면서 미미한 신격 저항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사자라는 존재를 죽이 면서 잠재 능력치를 얻은 것까지.
무화과로 얻은 신격 저항은 한정 된 시간 유지되는 버프의 종류일 뿐이었으니, 영구적인 신격 저항은 꽤 괜찮은 소득이었다.
“탐스럽게 익었네.”
황금 사과와 무화과가 어느 정도 열매를 맺어 익어 있었다.
연우는 한 아름 따다가 식당에 가져다 놨다. 먹을 사람은 먹으라 는 것이었다. 연우도 사과를 하나 들어 옷으로 뽀득뽀득 닦았다.
아삭.
“역시 황금 사과.”
과즙이 가득하다. 보통 사과처 럼 신맛은 없고 달콤함뿐이다.
무화과도 마찬가지였다.
초록빛 껍질을 제거하자 하얀 씨 앗이 우수수 박힌 붉은 과실이 나 온다. 연우는 가볍게 한입 물었다.
이때, 자른 줄기 부분에서 흐르 는 흰 물을 조심해야 한다.
이게 입술에 닿으면 갈라지고 피 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 통의 무화과일 때다. 이 선악과는 전신이 파랗게 물들며 죽을 수 있 다.
다행인 건 이 농장에 이 정도 독 에 당할 존재는 없다는 거다.
?생명력이 차오릅니다.
?신격 저항 버프가 생성됩니다.
아스가르드에서 올림푸스의 신들 은 수명이 늘어난다는데 플레이어 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효과가 없었 다.
최상급 체력 포션의 효과 정도랄 까.
현실에서 먹으면 어떨까 해서 심 어 봤던 거다.
“역시나 별 효과가 없네.”
“연우, 밥 먹자.”
“오오, 게장이야?”
전에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이스 크랩과 파란 코코넛 크랩 으로 만든 게장.
처음 봤을 땐 어색했지만, 먹었 을 땐 환상이었다.
게장을 먹을 때 항상 아쉬웠던 게 뭐였을까. 당연히 먹어도 먹어 도 부족한 속살이었다. 몸통 절반 을 빨아도 입안을 가득 채우지 못 하는 양!
하지만 이건 달랐다.
다리를 하나 빨아도 입안이 가득 찬다.
게다가 이 느낌을 알고 만든 건 지는 몰라도 짜지도 않고 너무 달 지도 않게 간을 조절했으며, 양념 게장도 너무 맵지 않게 만들었다.
“리젤! 소주!”
“네! 갑니다!”
리젤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왠지 모르겠지만, 소주를 먹을 땐 리젤이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게 바로 습관이라는 건가.
의외로 리젤이 똑똑한 걸지도 모 르겠다.
연우는 양념게장의 다리를 하나 툭, 부러뜨렸다.
성 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이 스 크랩의 다리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압착했다. 그러자 속살이 쭉 빠져 나와 앞 접시에 담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에도 양념 이 묻는다.
연우는 이번엔 염력을 이용했다.
쭈욱.
또 속살이 빠져나온다.
역시 염력은 양념이 따로 묻지 않았다.
벌써 속살이 그릇에 꽉 찼다. 하 지만 이것만으론 만족스럽지 못하 다.
연우는 사람 머리만 한 몸통을 붙잡고 쫙 벌렸다. 그러자 노란 내 장과 꽉 찬 알이 보였다. 수저로 살짝 떠 맛을 본다.
“ 크으.”
특유의 고소함과 쌉싸래함이 하 나가 돼 중독성 있는 맛을 선사한 다.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 새 그릇을 가져와 따로 담는다.
“게장엔 흰밥이지.”
따다닥.
리젤이 소주를 따는 소리가 들렸 다. 연우는 자연스럽게 잔을 들었 고 리젤이 소주를 따랐다. 연우도 리젤의 잔을 채웠고 수이니의 잔도 채워줬다.
이게 오고 가는 정이다.
연우는 수저로 흰밥을 푹 뜬 다 음 내장과 알이 담긴 그릇에 담갔 다가 뺐다.
그리고 그 위에 속살을 큼지막하 게 올린다.
수이니와 리젤도 한 수저씩 뜨는 게 보인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땐 말이 필요 없는 거다.
짠.
잔이 부딪치고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차가운 알코올.
연우는 바로 수저를 입에 넣어 버렸다.
“으으음.”
감탄을 넘어 신음이 나온다.
이건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식구들이 한 명씩 모이기 시작한 다. 이자젤, 후름, 아이델, 인종. 오 랜만에 헤르메스와 요섭까지 왔고 바벨이 뒤를 따랐다.
삼미호는 댕댕이 머리 위에 있었 고 검둥이도 따라왔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모양이다.
“다들 맛있는 건 알아서.”
서울에 갔던 혜영도 방금 도착했 는지 외출복으로 바로 들어왔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은 하루였다.
오늘도 평화로운 농장은 맛있는 냄새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 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