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편_ 개미지옥(1)
그 시각, 천계와 전쟁하는 마신 의 군단.
만년 전장의 최전선.
새하얀빛과 완전히 빛이 사라진 어둠이 부딪힌다.
구으으응.
두 힘이 격돌해 소멸한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대기도, 땅도, 마 력도. 그저 드넓은 공간과 그 안에 존재하는 시간만 흐를 뿐.
마신과 그의 휘하가 위로 달려들 고, 위에선 천신의 휘하가 아래로 달려들다.
둘은 다시 격돌한다.
거대한 뿔과 12쌍의 날개를 지닌 마족과 천족. 서로 가진 힘의 색만 다른 두 종족의 격돌이다.
그 중앙.
작은 뿔을 가진 인간 형상의 마 신. 주변에 짙은 어둠을 뿌리고 한 번의 손짓에 수만의 천족이 사라진 다. 그건 반대편의 천신도 마찬가 지였다.
마신이나 천신의 모습은 다른 휘 하 부하에 비해 아주 평범해 보였 다.
그때였다.
마신과 천신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가장 강한 존재만 수천 년의 전 쟁을 통해 오를 수 있다는 마신과 천신의 자리다. 강함을 인정받고 각 세계의 유일한 존재만 신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신’의 자리.
그 둘이 동시에 고통을 호소한 거다.
전장엔 침묵이 흘렀다.
검을 거뒀고 마법을 거뒀다.
서로 경계를 짓고 뒤로 물러난 다.
화악!
파이브 클래스 마스터였던 마신 과 천신.
그 둘은 식스 클래스를 넘어 세 븐 클래스 마스터가 된다. 그와 동 시에 휘하 전사들도 한 단계씩 강 해지기 시작했다.
두 존재는 서로를 바라봤다.
웃음을 지었다.
서로 수만 년 동안 전쟁을 지속 했던 앙숙이었다.
그런데, 그 시각 이후로 둘의 전 쟁은 멈췄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 지만, 서로에겐 더욱 큰 목표가 생 겼기에. 그리고 미처 저항조차 하 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을 쥐게 된 마신과 천신이기에.
휘하 전사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 다.
혜영은 오늘도 마법 물품을 만들 고 있었다.
마법으로 원 클래스 마스터를 찍 은 혜영이다. 웬만한 마법 물품은 어렵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이곳 에 있는 물품은 웬만한 물품이 아 니다.
하나하나가 혜영은 발끝조차 따 라잡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게다 가 이자젤은 혜영을 가르치면서도 전설 등급의 물품을 쉽게 찍어 낸 다.
“아함. 졸려. 오늘은 그만할까.”
이자젤은 팔찌 하나를 쥐고 마법 몇 개를 사용하더니 떡하니 전설급 마법 장신구를 만들어 버렸다. 그 렇게 몇 개를 하곤 지루하다며 그 대로 엎어졌다.
“졸리면 좀 쉬어요. 제가 할게 요.”
“그럴까. 아, 그 마법엔 ‘조화’를 쓰면 안 돼. 재료가 아다만티움에 미스릴이잖아. 게다가 정령석이 있 으니 조화 같은 건 안 쓰는 게 나 아.”
“아, 정령석이 조화를 대신해 주 는군요.”
“그렇지. 오히려 ‘폭발’이나 ‘혼 돈’을 섞어 주면 효율이 세 배는 늘어날 거야.”
“아다만티움과 미스릴이라 그 정 도는 쉽게 버티는 거고요.”
“그래! 그런 건 정말 평범한 재 료를 쓰거나, 정령석이 없을 때 하 는 거고.”
“아, 혹시 이거는요? 이렇게 하 면 되나요?”
“음, 그건 이런 식으로 속성석을 하나 추가하면 되지.”
혜영은 하나씩 배우면서 성장했 고 이자젤은 그런 혜영을 보며 뿌
듯해 했다.
“가르치는 것도 재밌네.”
“저도 배우는 게 정말 재미있네 요.”
“그런데 왜 갑자기 돈이 필요하 단 거야? 너희 집은 꽤 잘산다고 연우가 그러던데.”
“ 연우가요?”
말 그대로 못 사는 건 아니다. 아니, 잘산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 말을 연우가 할 말은 아니었다.
“뭐, 좀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 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요.”
“많이?”
“네, 꽤 많이요. 처음 계획했을 땐 엄청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이 작업을 하니 금방 될 것 같네요.”
혜영은 재단을 만들 생각이었다.
김순자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분, 옆집 이 씨 할아버지처럼 전쟁 에 나갔다가 다쳐서 경제적 활동이 불가능한 분. 아프고 다친 그들에 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힘이 돼 주고 싶었다.
혜영은 한참을 마법 물품 제작에 집중했다.
그러곤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했
어느 정도 돈이 생겼으니, 변호 사를 만나고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다. 사람도 한 명씩 구할 거고 일정 부분 진행이 되면 부모님께도 말할 생각이었다.
그때, 식당 앞에서 연우가 나왔 다.
“여, 연우?”
“오, 혜영. 어디 가게?”
“너…… 진짜 환골탈태했냐?”
“어때, 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원래 나쁘지 않은 얼굴이기는 했 다. 그런데 지금은 헤르메스나 후 름 뺨치는 외모로 변했다. 그래도 본판이 있을 텐데 이렇게 변할 수 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순간 혜영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어디 아프냐? 얼굴이 왜 그래?”
“아니거든!”
“그럼 나한테 설렜냐?”
“미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흐흐. 잘 다녀와라. 난 바쁘다.”
그렇게 연우는 식당으로 들어갔 고 혜영은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 다.
정말 오징어를 탈출해 성공했다. 이 농장에서 평생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던 연우가 말이다.
“에잇, 몰라.”
혜영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식당 안에서 수이니와 이자젤이 있었고 혜영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뭐야! 너 왜 그래!”
“연우, 너 저주에 걸린 것 같아! 내가 치료해 줄게!”
아니, 비슷한 반응이라는 건 취 소다.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충격인 모 양이었다.
“저주라니! 환골탈태한 거거든!”
“아니야. 내가 아는 연우가 아니 야. 이건 저주라고!”
“맞아. 아무래도 므깃도에 들어 갔던 이후로 변한 것 같아. 내 검 을 받아라!”
“뭐, 뭐야!”
연우는 당황했지만, 공격을 쉽게 막았다.
“뭐야. 세븐?”
수이니와 이자젤은 더 당황했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를 넘어 세븐 클래스 마스터가 된 거다.
“미친, 어떻게 된 거야?”
“흐흐. 이번에 하나 더 올렸지 롱.”
“말도 안 돼! 난 800년 동안 아 직 쓰리 클래스 마스터도 안 됐는 데!”
“사기야. 이건 사기라고!”
“이게 너회와 내 재능의 차이랄 까.”
사실 게임 시스템의 차이지만 말 이다.
“그만하고. 나 좀 도와주라.”
연우가 설명했다.
므깃도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야 한다. 예전 므깃도를 받고 지저 세계를 만들 때도 엄청 고생했다. 절대로 혼자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세계라. 어떻게 만들 건데?”
“천공 탑하고 비슷한 거?”
“문제는 여기에 집어넣을 몬스터 가 없다는 거지. 천인종이야 많지 도 않고. 지저 세계의 균형을 유지 해야 하니 빼 올 수도 없는 거고.”
“그렇긴 하네.”
수이니가 간단한 닭튀김을 만들 어 왔고 뒤늦게 온 리젤이 라거를 가져왔다. 후름까지 합류하면서 제 대로 된 회의가 시작됐다.
“아! 좋은 생각이 있다!”
이자젤이 외쳤다.
“네 아공간에 그 좌표 이동 장치 있지 않아?”
“아마 있을걸?”
“그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차원 통로를 잇는 거잖아.”
이자젤의 설명에 연우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흐음. 그게 가능하려나.”
“좌표 이동 장치랑 세계를 만든 다는 그 여명. 그리고 하이엔드급 마력석으로 궤도를 트는 거지. 거 기에 아공간으로 통로를 만들 고……
가끔 멍청한 소릴 하지만, 이렇 게 똑똑할 때도 있다.
그래서 연우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겠네. 가능할 수도 있겠어. 컨셉은?”
“컨셉?”
지저 세계는 고난을 통한 성장과 탈출을 최종 목표로 한 탑이다. 이 번에 만들 새로운 세계는 조금은 다른 콘셉트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 까?
“하긴, 끊임없이 돌아가는 에너 지원으로 만들어야 하고, 가끔 이 런 것도 수확할 수 있는 농장의 일 부가 되기도 해야 하지.”
연우가 깊이 생각하다 씨익 웃었 다.
“개미지옥, 뫼비우스의 띠.”
대략적인 콘셉트다.
몇 시간에 거친 회의 끝에 세세 한 설정이 정해졌고 설계도 시작했 다.
연우는 웃음을 짓곤 치킨 한 조 각을 물었다.
바삭.
튀김옷 사이로 보드라운 닭 허벅 지 살이 씹혔다.
역시 치킨은 언제나 최고다.
동시에 피그미온 라거를 목으로 꿀떡꿀떡 넘겼다.
그날도 그렇게 술과 함께 밤을 보냈다.
리움트 리그너트는 마신의 사랑 을 한몸에 받는 사신 가문의 가주 였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리그너트는 허탈하게 웃었다.
천계와 전쟁에서 죽어 나간 마족 만 몇 백만이 넘는다. 이쪽에서 죽 인 천족? 그것도 수백만은 넘는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전쟁의 종결 이었다.
마신의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따 르기는 하지만, 의문이 생기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차원으로 출정이 내려진 것이다.
“에르메스가 연락이 끊겼다는 곳 인가.”
후방을 맡았던 에르메스다. 군단 장인 만큼 당연히 강한 무력을 가 졌고 하위 차원인 지구 정도는 쉽 게 점령하고 연락이 올 거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없었다.
그거까지는 괜찮다. 넓은 땅인 만큼 시간이 걸릴 테니까.
리그너트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 었다.
‘전쟁이 끝났는데, 그곳은 왜?’
전쟁의 보급을 위해 점령하려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야 리그너트를 보내 는 이유가 궁금했다.
‘게다가 굳이 나를?’
리그너트는 그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던 영웅이다. 그렇기에 마신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동시에 강화된 마신의 가호 덕분에 리그너 트도 한층 강해질 수 있었다.
파이브 클래스 마스터.
마신의 예전 경지였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경지였다.
그런 그를 하위 차원인 지구에?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지구인가?”
아무것도 없는 넓은 땅이었다. 아니, 작은 언덕과 초원이 보인다. 나무도 몇 그루 있고 돌들도 존재 했다. 곳곳에 마력석이 보이고 하 늘이 있는 걸 보니 지구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리그너트는 수백의 최상급 마족 을 이끌고 이동했다. 중간에 보이 는 마력석을 수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하아. 여긴 도대체 뭐지?”
며칠을 걷고 또 걸었는데, 똑같 은 초원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걷자 작은 문 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인가.”
평소 같았으면 의심하고 들어가 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 었다.
[13계층 입구].
“응? 13계층?”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13계층으로 들어간 리그너트와 수하들은 수많은 몬스터를 만났다. 다들 약한 몬스터라 어렵지 않게 해치웠다.
“지구라는 곳은 이렇게 구성이 돼 있는 건가.”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12계 충으로 돌입 했고 전에 있던 곳보다 많은 마력석과 희귀한 자원이 널려 있는 걸 발견했다.
리그너트와 수하는 파죽지세처럼 밀고 올라갔다. 한 계층 올라갈 때 마다 더 강하고 더 많은 몬스터가 공격했고 그들은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며 이겨 냈다.
한 계층 올라갈 때마다 더 강한 몬스터 나왔고 어마어마한 자원이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1계층에 도달했을 때, 천 족을 발견했다.
‘왜 이곳에 천족이?’
천족은 원래 지구로 올 수가 없 었다. 천족이 지구로 오기 위해선 마계를 통해 그라니아로 와야 하고 그라니아에서 지구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천족과 싸우는 적 들이었다.
지금까지는 만났던 몬스터는 상 대도 되지 않을 엄청난 적들이었고 천족이 거의 몰살당하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또 새로운 적이군! 천족과 마족 인가?”
“클클, 우릴 다시 뭉치게 하다니. 역시 센느인 건가.”
“또 온다.”
쿠으으응.
거대한 전쟁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리그너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 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앞에서 아 군을 공격하는 적이기에 싸우는 거 다.
“크윽.”
적에게 달려든 리그너트는 강력 한 반발력에 속이 뒤집혔다.
왜 리젤이 돌아오지 못했고 리그 너트를 직접 보낸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엔 어마어마하게 강한 존재 들이 널려 있었다.
이건 상상 이상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여긴 마계보다 거친 곳이 분명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