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편. 마법 상점(1)
요섭은 뿌듯한 얼굴로 바벨을 바 라봤다.
안 그래도 삭아 보이는 얼굴이 더 삭아져 버렸지만, 실력만큼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만든 장비도 많아져 장비 상점 진 열대에 공간 확장을 해야 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우아아아! 좋아! 이제 100개 중 하나는 전설급이 나옵니다! 역시! 나의 요섭 님! 존경합니다!”
저 성격이 망치 때문인 줄 알았 다. 생명을 열정으로 쏟아 내게 하 니까.
그래서 바꿔 줬다.
생명이 불타는 것도 불쌍했고 너 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았다.
“흥, 그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한쪽에 멀뚱히 서 있던 천인종이 말했다.
쟤는 왜 자꾸 여기에 있는지 모 르겠다. 그래도 연우에게 몇 대 얻 어맞더니 헤르메스와 비슷한 모습 으로 바꾼 후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내 영혼이 불탄다! 우아아아!”
“이리 줘 봐라, 내가 보여 주겠 다.”
요섭은 놀랐다.
천인종이 어떤 종족인지 요섭도 잘 안다. 이런 걸 할 위인도 되지 못하고 할 줄 아는지도 몰랐다.
“하하하. 한번 해 봐라. 이거 어 디 쉬운 줄 아느냐!”
“흥, 이까짓……
탕. 콰직.
붉게 달궈진 아다만티움이 부서 졌다.
“하하핫. 이 바보. 그렇게 강하게 치면 안 된단다. 이렇게 적당하게 휘둘러야지. 결을 보고 밀어내듯 이!”
“쳇, 이건 실수였다.”
쾅! 콰지직.
이번엔 박살이다.
요섭은 고개를 흔들었다.
벌써 10개나 깨 먹었다.
“괜찮다. 힘내라, 다시 녹여서 사 용하면 된다.”
“체, 쳇! 이게! 왜 안 되지?”
“열정을 불태워라! 하지만 너무 과하면 안 된다. 열정을 태우는 건, 그래! 마치 생명을 연료 삼아 약초 를 달이듯! 영혼을 단련한다고 생 각해야 하는 거다.”
“큭. 그런 심오한…… 미안하다. 내가 얕봤다. 겨우 아종들의 놀이 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번 신력을 불태워 보지!”
“좋아! 그런 마음가짐이다! 밀어 내듯이, 이번엔 당기듯이!”
타앙. 타앙. 타앙.
이번엔 몇 번은 성공했다.
하지만 결국 부서졌다.
요섭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하면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요섭은 피식 웃었다.
‘다 이해하지.’
처음엔 천인종. 애칭인 인종이가 뭘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농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 하는 거다. 연우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라는 이상하지만 정 확한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당에 갔다가 설거지를 하면서 드래곤 비늘로 만든 그릇을 깨 먹고 마왕의 뿔로 만든 식칼로 부러뜨려 버렸다. 용의 이빨로 만 든 도마나 세계수로 만든 테이블까 지 부쉈으니 쫓겨날 만했다.
그것뿐인가.
카페에선 후름이 아끼는 잔을 부 수고 상급 마력석으로 만들었던 조 명까지 깼다. 어떻게 커피를 타면 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몰랐지 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대장간 안쪽에 ‘절대 실드’가 없었으면 수천 도의 아다 만티움 파편에 누구 한 명은 다쳤 을 거다.
“후,난 안 되는 건가.”
인종이가 고개를 숙였다.
요섭은 천인종이라는 콧대 높은 종족이 저런 모습을 한 것은 처음 봤다. 지저 세계가 그렇게도 싫은 걸까.
“이자젤에게는 가 봤어요?”
“아, 아니! 그곳은 안 된다.”
이유를 물어보려다 말았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력으론 천인종이 앞서지만, 이자 젤에겐 연우가 있다.
“그럼 헤르메스에게 7} 봐요.”
“그곳은 뭐하는 곳인가!”
“거긴 여러 일을 하죠. 아마 이 농장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죠.”
요섭의 말이 이어질수록 인종이 의 얼굴은 밝게 펴지기 시작했다.
“좋다! 내가 한 번 가 주겠다. 이 농장의 핵심이 돼 주지!”
언제 기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신감에 찬 인종이었다.
“우아아아! 꼭 성공하길 바란다!”
“훗, 고맙다.”
그 도도한 천인종이 감동한 표정 을 지었다.
“다시 오겠어.”
뒤를 돌아 문을 나섰다. 그 와중 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뻗어서 관 자놀이에 살짝 붙였다가 하늘로 올 린다.
“크으. 생각보다 멋진 사나이였 군! 응원한다! 인종이!”
요섭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 무래도 저 둘을 자주 만나게 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았다.
“이 자젤.”
“ 응?”
“인종이는 왜 저기서 배설물을 푸고 있어?”
“나도 몰라. 헤르메스랑 친해졌 나.”
“그래도 일을 하니 다행이네.”
“저게 일이라면.”
배설물이 하늘을 나르고 울타리 몇 개가 깨졌으며, 블랙 카우 다리 하나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헤르메스가 옆에서 잘 도 와주는 덕분에 적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우는 이자젤과 펍 루프 탑에 누워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조 금은 쌀쌀하지만, 둘에게는 시원한 정도다.
노랗게 익은 낙엽이 나비처럼 펄 럭이며 코끝에 안착하려다 옆으로 비켜 간다.
“아, 그걸론 뭘 할 거야?”
이자젤이 연우가 옆에 쌓아 둔 아공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엔 마력충, 만드라고, 엔트 족의 껍질, 천인종의 장비, 신선초, 절명석과 벼락석, 그리고 초전도 성질을 가 진 금속인 ‘판타시스늄’이라는 게 있다.
‘작명 센스 하곤.’
신선에게 받은 장비는 삼미호와 아이델이 사용했고 연우는 장신구 몇 개만 꼈다. 아직 스킬 등급을 올리는 중이니, 좋은 장비는 필요 없었다.
“일단, 엔트 족의 껍질은 요섭 이나 줘야지. 내가 제련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력충하고 신선초는 술 담그 자!”
“오, 좋은 생각이네.”
마력충만으로 담근 적은 많지만, 신선초를 섞은 적은 없었다.
신선초라는 건, 선술의 힘이 담 긴 영약이라고 보면 된다. 주로 신 선이 모여 지내는 곳에서 생성되며 ‘정화’의 힘과 ‘행운’의 축복을 준 다.
“거기에 요정의 눈물도 섞으면 좋겠는데.”
“꺄! 좋다! 마력 농도가 높은 물 에 녹으니 술에도 녹겠지? 특히 마 력이 가득한 술이라면!”
이자젤은 벌써 신이 난 표정이었 다.
역시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담 금주는 꽃이다.
“만드라고는 헤맨한테 잘 말려서 보관하라고 하고. 벼락석도 요섭한 테 줘야겠다. 그리고 절명석은
그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서 굉장히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고 기적의 아이템이 될 수도 있 었다.
“엘릭서 제조나 해야겠다.”
“그것도 재미있겠다. 다음 마스 터를 마법으로 하게?”
“그건 아니고.”
하긴, 마법 스킬을 올릴 때 가장 효율적인 게 마법 관련 아이템을 만드는 거다.
“흐음. 이참에 마법 장비 상점을 만들어 볼까.”
“오오, 좋다. 그것도 내가 운영할 래!”
“넌 펍 운영도 바쁘잖아. 뭐, 술 먹느라 바쁜 거지만.”
“혜영이랑 같이하면 되지 않을 까? 걔도 일단은 마법 마스터이기 도 하고.”
“나쁘지 않네.”
그리고 남은 건 초전도 특성을 가진 금속.
“이건 협회장한테나 줘 봐야겠 다.”
아스가르드에서도 딱히 쓸 곳이 없던 금속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마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래도 효율을 늘리기 위해 하늘 섬에서 부양하는 집을 짓기 위해 재료로 쓰는 경우가 있긴 하다.
현실에선 없는 금속이라 가져오 긴 했는데, 쓸 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되겠네.”
찬찬히 생각해 보면 현실에 없는 물질이나 터무니없는 것들이 므깃 도와 아공간엔 넘쳐나는 것 같았다.
혜영은 연우가 빌려준 차를 몰고 서울로 들어왔다.
오늘은 주말. 혜영이 20대 때부 터 꾸준히 하던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다.
“김순자 할머니는 잘 계시려나.”
혜영은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20분 정도를 걸었다. 구불구불하고 꽤 긴 길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쌀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통조 림을 샀다.
21살 때였을 거다.
대학에서 연우를 만나고 학점을 위해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일 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봉사 동아리에 들었다.
이번에 들르는 할머니는 그 와중 에 알게 돼 꾸준히 봉사를 다니며 친해지게 된 인연이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이곳을 먼저 들르게 됐다.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주말에도 출근하게 됐고 당연히 봉사는 힘들 어 졌다.
그렇게 쉰 지 3년 정도가 됐을 거다.
“후우. 예전에 여기 올라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이야 원 클래스 마스터다. 마법으로 마스터한 거지만, 마력 지배도 최상급이었고 육체가 지칠 리 없었다.
작은 스테인리스 문들이 다닥다 닥 붙어 있는 골목에 들어섰고 익 숙한 문이 보였다.
똑똑똑.
“할머니? 김순자 할머니?”
끼이익.
문을 열고 허리가 반쯤 굽은 할 머니가 나왔다. 불과 3년 만에 보 는 얼굴인데 볼이 푹 패여 안쓰러 워 보였다.
“뭐여! 이게 누구여! 우리 큰 애 기 아니여?”
키가 크다고 할머니가 붙여 준 애칭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왔죠. 일 때문에 못 왔어요.”
“아이고, 뭐 어때. 어서 들어와. 쌀쌀하다 쌀쌀혀.”
혜영은 할머니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 밖보다 안이 더 추 운 것 같았다.
“할머니! 전기장판은 좀 틀고 살 아요! 춥게 이게 뭐야. 아이 밥은 또 이게 뭐예요? 윽, 쉰내. 밥 쉬었 잖아요. 안 되겠어. 잠깐만 앉아 있 어 봐요.”
혜영은 사 온 쌀을 쌀통에 넣었 다. 이참에 밥도 해 놓고 반찬도 몇 개 해 놔야겠다.
“아이고, 그러지 말어. 우리 큰 애기 얼굴 볼 시간도 없는데.”
“저 시간 많아요.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뭐시, 그게 정말이여?”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에 웃 음이 가득 찬다. 저 표정을 보는 낙에 봉사했었다.
“그래요. 오늘 작정하고 온 거니 까. 그렇게 알아요. 옆집 이종배 할 아버님이랑은 잘 지내고요?”
“이 씨? 됐어. 요즘 허리가 아파 서 잘 돌아다니지도 못해. 그 6.25 때 총알 맞았던 곳이 계속 쑤신다 네.”
“후……, 왜 병원을 안 가요. 그 게 몇 년 전부터 아팠던 건데! 답 답해라!”
“됐어. 다 그런 거지. 늙으면 병 원 가는 것도 눈치 보여. 비싸기도
하고.”
“그게 뭐가 눈치가 보여요! 병원 이 왜 있는 건데. 아니, 누가 뭐라 그래요?”
“그게 아니라. 귀가 잘 안 들리 니까. 또 물어보고 그러면 귀찮을 거 아니여. 얼마나 짜증나겠어.”
“할머니!”
혜영이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답답할 수 가 있는 거지? 할머니에게 화가 난 게 아니다. 그걸 짜증내는 사람에 게 화가 난 거고, 이런 할머니를 옆에서 계속 도울 수 없다는 게 화
가 난 거다.
“자식들은 연락 안 왔어요?”
“바쁘지. 추석에 쉬는 사람이 어 디 있다고……
주방 한쪽에 차갑게 식어 버린 전이 바구니에 잔뜩 담겨 있었다. 이 쌀쌀한 날씨에도 파리 몇 마리 가 앉아 있었다. 옆엔 노랗게 뜬 반찬통에 대충 담긴 잡채도 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이 올 거라는 기대에 평생 먹지도 않던 음식들을 잔뜩 해 놓 고 정작 자신은 쉰밥과 김치. 거기 에 마른 멸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 던 거다.
“이 씨. 진짜!”
혜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자식들만 미워할 게 못 됐다.
자신도 바쁘다는 핑계로 3년 정 도를 오지 않았다. 다를 바가 없는 거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왜 그려! 어디 아파?”
“아니거든요!”
혜영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거의 6년 동안 했던 봉사활동? 그게 무슨 소용인가. 변하는 건 아 무것도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흥, 나 갈 거예요.”
“아니, 어딜 가! 자고 간다며. 바 쁜 거야?”
“네, 좀 바쁠 거 같네요.”
“그, 그려. 바쁘면 가야지. 어서 가 봐.”
“아니, 그걸 또 그냥 보내요? 안 가! 오늘은 자고 갈 거야.”
혜영은 그러면서 김순자 할머니 를 꽉 끌어안았다. 딱딱하게 굳은 등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없이 착하고 남만 생각하며 자 신을 위해 이기적일 줄 모르는 사 람. 그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혜영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분들을 도울 방법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