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편_ 최강 삼 종족(4)
농장의 아침은 여전히 부산스럽 다.
새로운 식구가 온 날은 더욱 그 렇다.
“쯧쯧, 변신을 못해? 이 새대가 리야?”
“안 된다! 우린 인세의 존재가 아닌 천인종. 당연히 인간처럼 변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새 대가리라 니, 우릴 새와 비교하지 말라!”
이자젤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짜 증을 냈다.
천인종은 변신하는 능력은 없다. 당연히 필요도 없고 연구해 본 적 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자젤 이 마법으로 바꿔 주려고 하는데 천인종이 거부하는 것이다.
무력으로 따졌을 때도 천인종이 이자젤보단 강할 거다.
하지만 친인종에게 마법을 거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다.
“인종이. 너 계속 그러면 다시 보내 버린다.”
연우가 부르는 애칭이다.
“그, 그건.”
“아니면, 그냥 죽든지.”
“그, 그것도 싫다!”
“그럼 변신해.”
“…… 그, 그것도 싫은……
연우는 손을 저었다.
천인종의 몸이 굳으며 정지해 버 렸다.
“뭐, 생각이 변할 때까지 그러고 있어.”
대답이나 움직임이 있을 수 없었 다.
인세의 규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마법, 검술, 물리적 규칙 등등. 모든 일반적인 힘이 통하지 않는다 는 거다. 물론, 자신이 받아들이는 건 가능하다.
딱, 하나 통하는 게 있다면 정령 의 힘.
그리고 연우는 예외였다.
이유? 정령은 특이 케이스였고 연우는 식스 클래스 마스터이면서 [절대자] 스킬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이다.
옆에 있던 이자젤이 물었다.
“생각 변하면 어떻게 대답해?”
“당연히 못하지.”
“…… 역시 연우! 나 진짜 폭발 할 뻔!”
연우와 이자젤은 신경을 껐다.
그러곤 삼미호를 어깨에 올려 대 화하는 용마족 아이델을 불렀다.
“아이 델.”
“네, 주인님.”
“여기선 연우 님이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아이델은 용마 족의 여아였다.
용마 족은 3계층에서 주로 서식 하는데, 피부에 얇게 올라온 드래 곤의 비늘과 마족에게 받은 검은 피부가 눈에 띈다. 키는 160cm 정 도로 아직 태어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새끼’였다.
10년이 되면 아성체가 되고 100 년이 되면 성체가 된 후로 수백 년 을 살아가는 종족이다.
마력 감응력과 타고난 마법 실력 이 훌륭하며 육체적 능력까지 지니 고 태어나는 종족이라, 사기 종족 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거기에 선술이라니.”
선술은 마법이나 검술과는 전혀 다른 힘이고 사용자들의 특수 능력 과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마법은 몸속의 마력 으로 대기의 마력을 움직이며 힘을 발현한다면, 선술은 그 과정 없이 대기의 마력을 움직이는 거다.
상당히 다른 구현 방식.
하지만 연우가 누구인가. 최강의 사기 캐릭터를 가진 농장 주인이며, 스킬 북이라는 게임 시스템을 이용 하는 사람이다.
“선술을 배우겠다.”
헤맨이 아이델에게 복제한 스킬 북이다.
아무리 용마 족이라지만, 꽤 재 능이 좋았는지 한 살임에도 불구하 고 마법 9단계, 마력 지배 10단계 마스터, 선술 7단계였다.
-스킬 북 [선술]을 사용합니다.
-[선술]을 배웠습니다.
-여섯 개의 마스터 스킬에 영향 을 받습니다.
-난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농장 주인’과 상성을 대조합니 다.
-상성 87%로 일치합니다.
-난이도가 하향됩니다.
“나쁘지 않네.”
역시 농장 주인이라는 직업은 사 기였다. 어떻게 맞지 않는 스킬이 하나도 없을까.
당연히 천인종의 스킬은 제외다. 아예 신계의 존재가 아니면 배울 수조차 없으니까.
“아이델, 이 선술은 어떻게 수련 하지?”
“선술의 9할은 깨달음입니다. 아 마 마법이나 다른 스킬이 경지에 오른 연우 님은 쉽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대신, 마법의 구동 원리는 완벽하게 잊고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델은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원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친절했고 설명도 잘했다. 덕분에 연우가 알아듣기 쉬웠다.
“뭐, 어렵진 않네.”
연우는 아이델과 삼미호와 함께 선술을 훈련했다.
아이델과 삼미호는 서로 아는 선 술을 비교하며 지식을 교환하고 배 웠다. 그리고 연우는 그사이에서 듣고 있었다.
“‘공간 전이술’이라는 건, 공간과 공간의 경계를 뚫는 거예요.”
“우린 다른데, 공간을 접어 거리 를 0으로 만드는 거야. 구동 원리 는 마력으로 4차원 시공간을 떠밀 어 시간을 뒤로 돌리는 거지, 시간 으로 공간을 끌어온달까?”
“아, 그래요? 우린 시간을 건드 리지 않아요. 아니, 해 본 적이 없 다고 해야 하나. 그저 공간을 이렇 게, 마력으로 벌리는 거죠. 좌표를 지정해서요.”
연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 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배웠지만, 그것과는 상 당히 괴리가 있었다. 특히, 아스가 르드에서 나온 아이델. 그러니까, 게임 속의 선술이 이렇게나 완전한 설정일 줄 몰랐다.
“일단, 실습해 보자.”
연우는 직접 움직이는 타입이었 다.
“이게 공간 전이술!”
“이건 분신술!”
“이거는 결계술!”
“성질 변환! 속성 공격! 전기!
불! 얼음! 물!”
연우는 익히기 어렵지만, 마법보 단 간단해 사용하기 편한 선술을 다양하게 배우며 오전 시간을 보냈 다.
역시 게임 시스템이랄까. 머리로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어찌어 찌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고, 숙련 도를 올리자 이해도 어렵지 않게 됐다.
한 시간 후, 연우는 선술 3단계 가 돼 있었다.
“쉽네.”
연우는 기지개를 켰다.
염력이라는 걸 4단계까지 올렸고 선술은 3단계까지 올렸다. 아마 빠 르게 올리고 능력치에 부담되지 않 는 경지는 7단계에서 8단계 정도.
그 정도 되면 이렇게 쉽고 편하 게 올릴 수는 없다.
그때부턴 새로 마스터할 스킬을 정해서 그곳에만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9단계를 넘어 10단계 마스 터를 찍을 수 있으니까.
‘어떤 걸 마스터해야 할까.’
세븐 클래스 마스터.
게임 속에서도 전무했던 경지.
그걸 연우는 현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꼬르륵.
“앗, 그 전에 밥부터 먹어야겠 어.”
연우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수이 니가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연우 는 따 놓은 홍시 몇 개를 집었다.
“디저트 만들게?”
“응, 밥 먹고 샤베트랑 퓨레를 좀 만들어 놓을게.”
다 만들고 냉동고에 살짝 둬야 하기에, 식사 전에 만드는 게 맞다.
연우는 주먹 두 개를 합한 홍시 세 개를 도마 위에 올렸다. 그러곤 조금 부족하다 싶었는지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총 다섯 개.
식구는 벌써 10명이 넘어갔고 다 섯 개면 두 명에 하나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우선, 홍시를 살짝 얼린다. 미리 냉동고에 넣지 않았기에 연우는 손 에서 냉기를 뿜었다. 마법이 아닌, 선술의 묘리를 이용해 봤다.
그극.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에 너무 꽝 꽝 얼어 버렸다.
하지만 홍시는 금방 녹는다.
살짝 녹았을 때 손으로 껍질을 살살 벗겼다.
간단히 말하자면, 샤베트는 아이 스크림이고 퓨레는 음료와 비슷 한…… 그러니까 슬러시라고 보면 된다.
“일단, 샤베트엔 로열젤리를 넣 어야겠어. 레몬도 살짝.”
먼저 퓨레를 먼저 만든다.
반쯤 얼린 홍시를 껍질과 씨를 발라 내고 레몬과 꿀을 조금 넣어 믹서기로 간다. 그럼 거의 녹는데, 그걸 작은 컵에 따로 담아 냉동실 에 10분 정도만 넣어 놓으면 된다.
그리고 샤베트.
이건 조금 더 얼려서 꿀과 요거 트를 첨가한 후 얼린다. 그리고 다 얼면 잘게 부수어 먹기 좋게 원형 으로 만들어 그릇에 올려 둔다.
위로 견과류와 블루베리를 살짝 올려 주면 최고다.
“블루베리도 어서 키워야 하는 데.”
사과나무와 포도나무. 그리고 무 화과나무까지 있다. 요즘 할 일이 많아 바빴지만, 연우는 빼먹지 않 고 리젤과 함께 관리했다.
나중엔 리젤에게 맡기려는 연우 의 계획이었다.
연우는 홍시 디저트를 냉동고에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응? 이자젤은 또 어디 갔어?”
“심심하다고 나갔는데?”
이젠 적응이 됐다고 알아서 나갔 다 오는 모양이다.
뭐, 상관없었다.
“오늘 메뉴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랄까.”
연우는 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하단 표정으로 그릇 안을 쳐다 봤다.
“악! 이게 뭐야!”
“응? 왜? 맛있을 것 같지 않아?”
그 안엔 파란 코코넛 크랩과 아 이스 크랩이 간장과 양념에 범벅돼 담겨 있었다.
“…… 상상 초월이다. 로브스터 로 게장을 해 먹다니.”
“추가로 새우장도 만들었지롱!”
“분홍 새우? 이건 뭐, 괜찮지.”
오늘은 짭짤한 밥상이 될 것 같 았다.
수이니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 기에 연우가 식구들을 불렀다.
“다들 밥 먹자아!”
두 강아지가 헥헥거리며 달려오 고 아이델 어깨에 있는 삼미호는 빙글빙글 돌며 좋아한다. 혜영도 ‘공간’ 수련으로 지친 얼굴로 걸어 왔고 어느새 살이 찐 요섭과 뼈만 남은 바벨도 걸어왔다.
오늘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아, 맞다. 인종이.”
아직 굳은 채로 있을 거다.
이대로 밥까지 주지 않는 건 너 무 가혹하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
끝이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에너 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꿈틀.
그 중앙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원래는 빛이 떠오르며 빛이 지는 곳이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연결 점이었으며 변혁의 특이점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세계를 움직이는 변화가 그곳을 휩쓸었을 때, 온갖 ‘오류’, ‘바이러스’, ‘변질’이 탄생했 다. 계획된 운명이 아니었고 거대 한 변화는 오류를 불러 냈다. 희망 이 돼야 했을 ‘끝’은 끝이 되는 ‘시 발점’이 됐다.
그런데.
누군가 그 모든 걸 비워 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자연스럽 게 무언가 채울 것을 찾기 시작했 다.
꿈틀.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세상에 동화돼 갔 다.
어느 세계의 여명이며 황혼이었 고 그것은 새로운 탄생.
‘창조’를 뜻했다.
“32D? 4114번 구역에 이상 징 후가 발생했습니다. 코드명 ‘창조’, 라스트 시그널 ‘소멸’. 새로운 여명 이 눈을 떴습니다.”
“그쪽 관리자는?”
“센드루스가 맡고 있습니다. 현 재 5천 개의 구역을 맡고 있으며, 그 차원에서만 두 번째 여명이 발 동됐습니다.”
“센드루스 불러오고, ‘창조’ 시그 널 잡히는 대로 수집한다. 그쪽 사 자들은 몇이나 가 있지?”
“32D? 4114번 구역엔 총 셋입 니다.”
“셋이면, 차고 넘치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이번 타임에 세계 ‘리셋’이 발동했 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명 때문인 지, 오류 때문인지 ‘리셋’이 더뎌지 고 있습니다.”
“흠. 그래?”
리셋이 더뎌지는 것까지는 크게 상관없다. 어차피 수만 개의 차원 에 존재하는 수억 개의 구역 중 하 나일 뿐이다.
문제는 더뎌지는 이유다.
한 번 미뤄졌다는 것은 사자들의 임무가 실패했다는 뜻이고 그것은 실패를 유도할 만한 변수가 존재한 다는 말이다.
한 번의 여명은 우연이다.
두 번이 여명은 실수고.
하지만 세 번의 여명은 실패다.
“사자 둘을 더 급파하고 조정에 들어간다.”
“조…… 조정입니까?”
“그래, 지금이 ‘소실된 어둠’급이 었지?”
“네, 맞습니다.”
“‘옅은 어둠’으로 맞춘다. 그 정 도면 충분하겠지?”
“네, 사실 너무 과한 것 같습니 다. 총 다섯의 사자가 ‘소실된 어 둠’에서 벗어난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안 그래도 사자가 너무 부족 합니다. ‘옅은 어둠’이라면 셋으로 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변수는 완벽하게 제거하는 게 낫다. 어차피 ‘리셋’돼야 할 구 역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냥 하라면 해. 센드루스 오면 들여보내고.”
“알겠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디나 직장 인의 삶은 고달프다는 것.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