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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편_ 지저 세계(3) (75/207)

제85편_ 지저 세계(3)

거대한 산 앞에 섰다.

중심엔 육중한 철문이 있었다.

“여기가 지저 세계야?”

처음 와 본 혜영이 물었고 리젤 도 궁금한 표정이었다.

“ 입구지.”

“이건 입구고, 저 산이 지저 세 계?”

“아니, 이 산. 아니, 산맥 전체가

입구야.”

“?????? 뭐?”

혜영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 었다. 연우는 웃으며 손을 뻗을 뿐 이었다.

“열려라, 지저여.”

우우웅.

그으으웅.

지저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렇게 쉽게 열리는 게 아니지 만, 연우는 이곳의 소유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안으로 이자젤과 후름이 훌쩍 뛰어 들었다. 연우는 혜영와 리젤. 그리 고 헤르메스까지 밀어 넣고 들어갔 다.

쓰윽.

차가운 늪에 몸이 잠기는 느낌이 다.

끼야아아아.

꾸우우웅.

비명과 신음이 들린다. 고통과 괴로움이 공존하며 어둠이 삼킨 영 혼들이 떠도는 곳.

지저의 입구.

명계 (臭界) 였다.

혜영과 리젤, 헤르메스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면 이자젤이나 후름은 편한 얼굴이었 다.

“와, 오랜만이다. 여기.”

“그러니까. 이 습한 곰팡이 냄새. 너무 중독성 있어.”

그때,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 렸다.

조금 먼 곳이었는데, 조용한 곳 이라 선명하게 들렸다.

“안 된다니까. 돌아가.”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기어 왔 는데요! 제발 한 번만 보내 주세 요! 네? 제바알.”

“안 돼. 여기론 못 나가.”

“아니, 왜 안 돼요! 들어올 순 있 는데, 나가진 못한다니요. 내가 이 런 곳인 줄 알고 들어왔나요? 제 발, 한 번만 봐주세요!”

“이런 미련한! 자네가 이곳에 들 어올 때, 내가 경고했지. 한 번 들 어가면 다시 나갈 수 없다고.”

“아니, 그때는 몰랐죠. 이런 곳인 줄. 저, 저기 봐요. 또 누구 들어왔 네. 방금 들어왔으면 다시 나갈 수 있는……

“어? 센느 님? 센느 님!”

해골에 긴 후드 망토를 입고, 한 손엔 노를 지닌 명계의 수문장 ‘저 주받은 사신 족’인 케르멜.

“오랜만이야, 케르멜.”

“꺄아! 케르멜이다. 잘 있었어?”

“아니, 이자젤 님! 후름 님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오랜만에 놀러 왔지.”

연우와 케르멜은 며칠 전 봤었 다. 에르메스를 데리고 이곳을 통 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자젤 과 후름은 정말 오랜만.

“여기 사신도 있으니까, 인사도 하고.”

“아이코, 사신? 서큐버스와 혼혈 이군요. 앗, 그리고 일반적인 사신 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하긴, 케르멜은 아스가르드 세상 의 사신이었고 리젤은 그라니아 대 륙의 사신이니까 다를 수밖에.

“바, 반갑습니다.”

리젤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여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 니고. 우리 좀 건너갈게.”

“예, 알겠습니다. 타시죠.” 케르멜은 작은 뗏목 위에 있었는 데, 저 뗏목을 타야만 명계를 벗어 날 수 있다. 고작 폭이 5m뿐이 되 질 않는 강인데, 그 어떤 힘으로도 오갈 수 없게 설계돼 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명계를 집 어넣은 거지.’

이 지저 세계라는 곳도 연우가 다 설계한 거다. 특히, 이 입구 부 분은 하데스와 싸워 얻은 것으로, 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연우니까 명계 최하층으로 와서 바로 이렇게 갈 수 있는 거지, 다 른 존재가 들어왔다면 산맥 정도의 명계를 몇 년이고 돌아야 했을 거 다.

“자, 잠깐! 나는? 저놈들은 되고 난 왜 안 된다는 거야?”

강 반대쪽에 있던 사람 형상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니, 저놈이! 내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호구로 보이지?”

“아악!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 니, 저쪽이랑 저랑 다를 게 뭔가 요!”

케르멜은 손을 저었다.

그의 입이 꽉 막혀 몸이 굳었다.

“정말 시끄럽네. 죄송합니다. 센 느 님. 요즘 므깃도 안이 시끄러워 서,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체가 꽤 늘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므깃도가 어지간 히 큰 것도 아니고. 근데 저건 드 래곤인가?”

“네, 남쪽 끝에 있던 레드 드래 곤 해츨링인데 쓰리 클래스 마스터 를 위해 수련을 왔었습니다. 그게 벌써 1년이 됐는데 이젠 못 버티겠 다고 제발 내보내 달랍니다.”

“여기서 못 나간다고 경고는 했 고?”

“네, 했습니다.”

레드 드래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벌써 쓰리 클래스 마스터라니, 재능이 있는 드래곤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연 우가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잘 타일러 다시 들여보내, 근데 용케 혼자서 살아남았네?”

“안쪽에 드래곤 몇 마리가 더 있 긴 합니다. 서로 힘을 합하라고 조 언을 했는데도 개인주의적인 성향 이 너무 강해서 따로 다니죠.”

“용마 족은. 걔들은 같이 안 다 니고?”

“네, 드래곤 콧대가 너무 높아서 용마 족하고 어울릴 생각을 안 합 니다.”

“하긴, 도마뱀들이 다 그렇지.”

연우는 뗏목을 타면서 지저 상황 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입 니다. 최강 삼 종은 2계층까지 올 라와선 난리를 치고……

“2계층? 1계층 놈들이 왜 2계층 까지 올라왔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2계층 놈들까지 올라오기 시작하 니, 바로 아래인 13계층까지 모두 혼란스럽습니다. 주인님께서 한번 정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에 에르메스를 데려왔을 때, 어쩐지 시끄럽다 했다.

“홈, 일단 알았어. 고맙고, 계속 수고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연우와 식구들은 강 반대쪽으로 넘어왔다.

“일단, 계획을 설명할게.”

일단은 놀러 온 거다.

오늘은 10계층까지 내려가서 에 르메스가 있는 구역에 하루를 묵을

거다.

근처에 만드라고 밭이 있고 마력 충이라는 벌레과 영물이 서식하는 데, 그것도 몇 마리 채집할 생각이 다.

“앗, 그럼 우리 거기서 장어구이 먹는 거야?”

그 근처에 ‘빅 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어과 몬스터가 있다. 밤에 강렬한 빛을 뿜으며 먹이를 유인하 는 7단계급 몬스터. 조금 질기긴 한데 맛은 기가 막힌다.

“그렇지, 거기서 캠핑하면서 장 어구이를 먹고 하루를 보낸다.”

이 일정은 헤르메스에게 에르메 스를 볼 시간을 주기 위함도 있고 10계층의 밤 천장의 아름다운 장관 을 볼 목적도 있었다.

“그다음 날은 3계층까지 내려가 면서 사냥도 하고 농장에 데려올 몇 가지 몬스터도 채집한다.”

“총 3일 계획인가요!”

이자젤이 손을 번쩍 들며 물었고 연우는 끄덕였다.

“그렇지, 3일 째는 1계층까지 내 려가서 지저 세계에 뭐가 혼란을 줬는지 찾고 해결한다. 그리고 천 인종하고 신선 한 마리씩 잡아 와 야겠어.”

“이런, 오랜만에 몸 제대로 풀겠 는데?”

후름이 재미있겠다는 듯 말했다.

3계층부터 서식하는 몬스터는 이 자젤이나 후름도 꽤 버거워하는 무 력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1계층의 신선 우두머리는 연우가 식스 클래 스를 가지고도 힘들었던 이상한 비 대칭 무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으니 까.

“그럼 가 볼까?”

“네! 가자!”

지저 세계 10계층.

에르메스는 마계보다 더한 지옥 을 맛봤다.

구역을 부여받았지만, 그 구역이 안전하다는 건 아니었다. 적당한 공간과 입구 몇 개, 회복할 수 있 는 마력의 샘 정도가 전부였다.

10계층이다.

첫 시작에서 겨우 4계층 내려온 곳.

그런데 그곳의 무력이 보통 원 클래스 마스터를 뛰어넘는다.

무슨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득 실댄단 말인가.

그 정도면 말을 안 한다. 에르메 스의 무력은 훨씬 강력하니까. 하 지만 그런 놈들이 수만 마리다. 게 다가 마법이나 검술처럼 단일화된 힘도 아니었다.

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몬스터 투성이였다.

그들은 에르메스의 구역을 빼앗 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벌써 300의 종속 중 100이 죽었 다.

심장은 빼놨기에 다시 살릴 순 있겠지만, 이대로면 희망이 없다. 에르메스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 고 나머지 종속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욱, 후욱. 3번 입구 정리됐다. 다음은‘?”

“5번 입구에서 오염된 슬라임들 이 몰려듭니다!”

“미친! 무슨 슬라임이 9단계에 원 클래스 마스터냐고!”

“지원 갈까요?”

“안 되겠어. 5번, 4번 입구까지 포기한다.”

“하지만 거긴……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닌 작은 생물체가 넘치지. 우리의 자원.”

“네! 그게 없으면 저흰 못 버팁 니다.”

“어쩔 수 없어. 구역을 줄이고 최대한 버틴다. 마력의 샘만 지키 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다른 종족들이 왜 이렇 게 구역에 목을 매는지 깨닫는 건 금방이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닌 벌레, 과일, 마력석, 마력의 샘 등등. 엄 청난 영약이 널려 있다.

이곳의 몬스터가 왜 이렇게 강하 고, 왜 이렇게 구역에 집착하는지.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구역이 곧 힘이며 생명줄이었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곳은 신비의 땅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성장하고 강해 진다. 버티고 살아남으면 또 강해 지고, 다른 이들의 구역을 차지하 면 더 강해진다.

“1번 입구 뚫렸습니다!”

“2번 입구에 조인 족들이 몰려옵 니다! 까마귀 계열입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에르메스가 소리쳤다. 마력의 샘 에 몸 절반을 담그고 마법을 계속 쏟아붓고 있었다. 적을 죽이고 또 죽여도 멈추질 않는다.

“에르메스 님!”

“또 무슨 일이냐!”

“4번 5번 입구에서 거대한 폭발 이! 3번 입구까지 뚫렸습니다.”

에르메스는 마력의 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선 안 된다.

어제 받은 구역을 벌써 이렇게까 지 밀려 버리다니, 헤르메스를 볼 낯짝도 없었고 그 연우라는 사람이 무섭기도 했다.

“젠장,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때 였다.

3번 입구가 있는 골목에서 익숙 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왜 조인 족이 있어? 걔네 9계층 놈들인데.”

“이상하긴 하네. 와, 여기 마력충 있어. 오랜만에 마력충 구이나 먹 을까. 맛있는데.”

“윽, 난 그건 못 먹겠더라.”

에르메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그것 도…….

“연우 님! 그리고 헤르메스?”

모습이 드러났고,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연우는 쓱 둘러보곤 손을 뻗었 다.

1, 2, 3번 출구로 몰려오던 몬스 터가 한순간에 터져 나간다. 그리 고 어떤 마법을 사용한 모양인지, 반투명한 막이 씌워졌다.

“시끄러워 죽겠네. 여긴 입구를 열어 놓으면 안 된다니까.”

“여, 연우 님! 헤르메스!’’

에르메스가 울음 가득한 얼굴로 그들에게 달려갔다.

헤르메스가 감동적인 얼굴로 양 팔을 벌렸지만, 에르메스는 헤르메 스를 지나쳐 연우에게 달렸다. 미 처 안지는 못하고 바로 앞에 풀썩 주저앉아 버릴 뿐이었다.

“흐윽. 가, 감사합니다. 진짜 죽 을 뻔했어요.”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에르메스를 일으켰다.

“벌써 이렇게 밀리면 어떡해?”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강 하고 많을 줄은……

“여튼, 하루 정도만 쉬어.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갈 거니까.”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 다!”

연우는 식구들을 데리고 캠핑을 위해 적당한 자리를 찾아 나섰다.

헤르메스는 에르메스를 데리고 부상당한 마족과 죽어서 심장으로 남아 있는 마족을 정리하기 시작했 다.

에르메스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이후에 진혈의 뱀파이어의 권능으 로 마족들을 되살릴 수 있으니까.

타닥타닥.

모닥불을 피웠다.

5번 입구가 있는 거대한 동공이 었는데, 높은 천장에 수만 마리의 마력충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광경은 상당히 장관인데, 이 정도 규모의 마력충이 모인 곳은 지저 세계를 다 뒤져도 찾기 힘들 었다.

“자, 오늘은 ‘빅 일’이다.”

이자젤이 사냥을 했고 연우가 손 질했다.

뼈와 내장. 머리까지 제거한다. 비린내가 거의 없지만, 만드라고 잔뿌리를 이용하면 더 깔끔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치이이익.

모닥불로 만든 숯을 이용해 장어 과 몬스터 ‘빅 일’을 굽는다.

겉이 노릇하게 익기 시작하면 자 주 뒤집어 줘야 한다.

“우와, 냄새 좋다.”

이자젤과 혜영이 옆에서 테이블 을 세팅하면서 빅 일이 구워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 후름은 마력충을 채집했고 리젤의 연우의 말에 만드라고를 캐고 있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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