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편_ 지저 세계(2)
연우는 아침이 오자마자 대장간 으로 향했다. 그곳엔 여전히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탕. 탕. 탕.
요즘 유난히 밤늦게까지 들리고 아침 일찍 들린다. 이놈들, 쉬기는 하는 걸까?
“어, 연우 님. 오셨습니까.”
요섭이 반질반질하게 기름이 올 라온 얼굴로 인사했다. 한쪽엔 바 벨이 살이 쏙 빠져 망치질을 하고 있었는데, 더 묻지 않아도 무슨 일 인지 알 수 있었다.
“요섭, 쟤 죽으면 안 된다.”
“아하하. 물론이죠. 요즘 담금주 도 한 잔씩 먹이고 마력 보충도 잊 지 않고 있습니다.”
쉬게 해 준다는 말은 없는 걸 보 니, 휴식은 없나 보다.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 다.
“무기점에. 아니, 장비 상점으로 이름을 바꿨네?”
“네, 무기도 팔고 방어구도 팔고
장신구도 파니까요.”
요섭과 연우가 배운 [대장장이] 스킬은 종합 제작 스킬이라 장신구 도 어렵지 않게 제작할 수 있다.
“장비는 부족하지 않지?”
“네, 남아돌아서 문제입니다. 이 런 식이면 보관용 공간 확장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섭, 다음 마스터는 어때.”
“그건 아직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헤르메스처 럼 청소나 해야 할까 고민입니다.”
연우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연우 자체가 너무 사기 캐릭터라 그렇지, 쓰리 클래스 마스터도 엄 청난 거다. 세 엘프를 보면 알겠지 만, 800년 동안 투 클래스 마스터 에 벗어나지 못했다.
헤맨이야 설정상 어마어마한 강 자였고 연우는 원래 사기.
그다음으로 요섭인데, 포 클래스 마스터에 대한 길을 벌써 잡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래, 그건 내가 따로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없네. 하여튼, 정기 적으로 제작 가능한 장비 목록 작 성해서 혜영한테 전해 줘.”
세계사용자협회 한국 지부에서 1 년에 8조 정도 되는 물량을 이곳에 서 정기적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깔끔하게 해결하겠 습니다.”
“바벨, 실력 향상은 어때?”
“역시 태생이 대장장이라 그런 지, 성장이 빠릅니다. 이 정도면 10 년이면 투 클래스에 도달할 것 같 고. 한 100년만 하면 쓰리 클래스 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 그렇겠지.”
원래 저게 정상적인 성장 속도 다. 수백 년을 수련한다 해도 원 클래스 마스터를 이루지 못하는 재 능을 가진 이가 있는 반면에, 협회 최민아처럼 20대에 투 클래스 마스 터를 바라보는 이도 있다.
‘하긴, 협회 간부들이 천재는 천 재였지.’
농장에 있다 보니 눈이 너무 높 아져서 문제다.
연우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아침밥까지 먹었다.
슬슬 염력이라는 걸 훈련할 차례 였다.
“허억, 허억. 죽겠다. 이거 너무 힘든데?”
연우는 방금 도착했는데 혜영은 새벽부터 나와서 훈련 중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연우는 그렇게 툭 말하면서 염력 을 시작했다. 정신력 관련 장비를 주렁주렁 착용하고 있어선지 어제 보다 훨씬 빠르고 범위가 넓었다.
그러길 5분.
“앗, 2단계로 올랐다.”
상태 창에 2단계로 오른 게 보였 고 범위와 물리력이 강해진 것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와, 이거 쉬운데? 혜영 너도 2 단계야?”
“우 씨!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장비발이지.”
“어우, 억울해! 난 어제 오늘 그 렇게 죽어라 해서 2단계 겨우 됐는 데!”
“쯧쯧. 이게 인생이란다.”
혜영이 화가 나서 연우에게 공간 왜곡을 사용했다. 하지만 연우의 염력도 같은 2단계다.
“훗, 같은 단계라도 내 장비가 훨씬 뛰어나지!”
“으아아아아! 억울해! 이게 금수 저와 흙수저의 차이란 말인가!”
“꼬우면 하나 사든지. 잘 쳐줄 게.”
“홍! 필요 없거든!”
이후에도 30분 정도를 더 훈련했 다.
어려울 건 없었다. 염력을 사용 하는 감각을 익히고 응용 방법을 연구하며 물리력을 사용한다.
가끔 무리하게 사용하면 머리가 띵 울렸지만, 연우는 전설급 장비 로 무장한 상태였다.
“크으, 이제 3단계다. 오늘은 그 만해야지.”
연우는 고작 35분 훈련으로 힘들 다며 잔디에 뻗었다.
그 모습을 보던 혜영이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다 슬 금슬금 연우 옆으로 다가왔다.
“…… 얼만데.”
“응? 뭐가?”
“?????? 후.”
계속 약 올리는 연우의 반응에 혜영이 폭발했다.
던전에서 나온 후에 기가 죽어 계속 얌전하게 지내던 혜영이었지 만, 본성격은 어딜 가는 게 아니었 다.
“야이, 개새야아아아!”
“어이쿠.”
하지만, 연우는 식스 클래스 마 스터다.
연우는 더 약 올리고 혜영은 더 약 오르는 상황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혜영이 지쳐 나가떨어지고 연우가 장비 하나를 선물하는 것으 로 끝이 났다.
덕분에 한계까지 능력을 몰아친 혜영은 3단계까지 성장했다. 그런 데 연우는 4단계로 또 올라 버려서 혜영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버렸 다.
물론, 금방 회복되긴 했다.
“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야, 아침 먹은 지 3시간도 안 됐거든?”
“앗, 그럼 아점인가.”
“브런치겠지!”
“그거나 그거나.”
연우와 혜영은 털레털레 식당으 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엔 수이니가 한쪽에서 쉬고 있었다. 고개를 푹 내리고 드르렁 거린다. 머리가 촉촉한 걸 보니, 아 침 훈련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였 나보다.
“오늘도 내가 좀 해 보지.”
“근데, 너 원래 요리 잘했었나?”
“뭐, 일단은.”
연우는 씨익 웃으며 식당으로 들 어갔다.
재료가 뭘 있나 훑었다.
“뼈가 좀 남았네.”
하긴, 고기를 그렇게 먹었는데 아직 뼈를 곤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오늘은 곰탕이다.”
원래는 며칠이나 걸리는 요리지 만, 연우는 그런 시간 정도를 확연 하게 줄일 수 있는 마법과 요리 스 킬을 지니고 있다.
곰탕.
핏물을 뺀 소의 뼈와 각 부위의 살을 동시에 넣어 푹 끓여 낸 음식 이다.
처음 끓는 물에 소의 발을 삶으 면 육수가 우러나오는데 진한 엑기 스까지 모조리 뺀다는 생각으로, 물을 섞어 계속 끓이는 게 중요하 다.
중간에 기름과 불순물을 잘 걷어 내는 건 필수.
그러다 중간에 몇 가지 재료를 넣는다.
세계수 잎과 마령석 잎. 그리고 만드라고의 잔뿌리는 잡내를 잡아 주고 산뜻하게 차오르는 향을 채워 준다. 또 몸에 마력이 충만해질 정 도로 풍부한 마력을 머금고 있는데,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에 국간장, 마늘, 양파를 썰 어 넣어 준다.
그리고 얼마를 더 끓였을까.
연우의 요리 스킬이 발동되고 마 법을 몇 가지 써 본다. 시간을 줄 이고 약한 불로 끓여야 하는 물리 적 법칙을 살짝 비틀어 준다.
그리고 마지막엔 역시 파와 후추 다.
간을 위해 거품 소금과 후추를 섞은 넣은 종지를 준비한다. 그리 고 잠시 생각하다가 파를 썰어서 그릇에 담았다.
“다 됐다.”
연우는 두 시간 정도 걸려서 곰 탕을 완성했다.
“와! 곰탕이야? 이게 얼마 만이 야.”
“오, 오랜만에 요리 실력 좀 뽐 내는데?”
이자젤과 수이니였다. 후름과 리 젤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있 었다.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을 생각이 었는데, 향이 진하고 오래 걸리는 곰탕을 끓여 버려서 농장 전체에 곰탕 냄새가 퍼져 버린 것이다.
“곰탕엔 소준데 말이야.”
꽈드득.
연우의 말소리와 동시에 리젤의 손이 움직였다.
“역시 빨라.”
“이 정돈 기본이죠.”
모두 자리에 앉았다. 이자젤은 댕댕이와 검둥이, 삼미호에게 곰탕 에 밥을 말아서 놔 줬다.
연우는 김이 솔솔 을라오는 하얀 곰탕 한 수저를 떠 입에 넣었다.
“윽. 싱겁다.”
연우는 종지에서 소금과 후추를 더 넣었고 잘게 썬 파를 한 움큼 넣었다. 뜨거운 곰탕을 조금 떠먹 어 본다.
“크으. 이제 좋네.”
연우는 밥을 뜬 수저를 곰탕에 살짝 담갔다가 입에 넣었다. 말아 먹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음미할 방법을 다 동원해 보는 것도 좋다.
리젤이 소주를 따라 줬고 연우도 식구들의 잔을 채웠다.
“자, 오늘도 짠!”
“짠!”
차가운 소주잔이 부딪쳤다.
제임스가 그랬다.
농장이라는 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왜 그러냐고? 농장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뭐냐고?
놀고먹는 거다.
그게 뭐가 단순하지 않은 거냐 고?
놀고먹는 게 얼마나 힘들고 까다 로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먹는 건, 돈, 재료, 건강, 맛, 요리, 좋은 술 등등 고려할 게 많다.
노는 것도 그렇다.
노는 게 어디 쉬운가. 특히, 이렇 게 항상 노는 것? 아무나 못한다. 좋은 장소, 좋은 음식, 좋은 사람, 좋은 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간.
그 모든 게 하나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누군가 분명 쌍 욕을 하겠지.”
“응, 내가.”
연우의 말에 혜영이 뚱하게 대답 했다.
“아직도 삐쳤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 금 다퉜다고 4단계까지 오르는 게 말이 되냐?”
혜영의 말에 연우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응, 나는 돼.”
“어후. 진짜.”
그래도 장비 하나 준 게 있어서 그런지, 성질이 많이 죽었다.
“하여튼, 오늘도 놀러 가자.”
“어디로 가게?”
“어디 어디! 나도 갈래!”
한쪽에 앉아서 졸던 이자젤이 벌 떡 일어나며 외쳤다. 자는 줄 알았 는데, 귀도 좋다.
“하여간, 노는 건 정말 좋아해.”
“홍, 아무리 그래도 너보다 더할 까. 넌 전쟁 중에도 놀러 다녔잖아. 한 번은 신마 전쟁 중에, 마계 놀 러 갔다가 큰일 날 뻔했잖아.”
“아니, 그땐 말도 안 되는 보스 몬스터가 나와서 그런 거였지.”
아스가르드는 게임이었고 운영자 가 충분히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우가 진입해선 안 될 마계 불가침 지역으로 홱 들어가 버리자 이상한 보스 몬스터를 만들 어서는 꽤 고생했었다.
“아, 그 보스 몬스터가 지저 세 계에 있었지?”
“그럴걸? 그 말도 안 되는 몬스 터를 잡은 게 또 너니까. 그때, ‘신’ 의 대리자가 와서 제발 놔 달라고 빌었었는데. 쿨하게 거절. 아주 대 단해. 아주 멋있어. 역시 내 친구 야.”
이자젤은 오랜만에 예전 이야기 가 나와 신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연우는 그 몬스터 생각뿐 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연우 가 잡아 버렸다. 신의 대리자라고 한 캐릭터는 운영자였는데, 운영자 가 제발 길들이지 말고 죽여 달라 고 빌었던 것도 생각났다.
연우야 그때가 전성기였고 그 몬 스터를 죽이고 나오는 보상이나 운 영자가 주는 보상은 궁금하지도 않 았다. 뭘 주든지 이 몬스터의 가치 보단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흐음, 오랜만에 지저 여행이나 해 볼까?”
“지저? 좋지. 거기 많이 성장했 을 텐데. 오랜만에 몸 좀 풀겠는 데?”
“간 김에 그 보스 좀 만나고, 통 통한 만드라고 몇 개랑 농장에 데 려올 몬스터도 구해 와야겠다.”
연우는 식구들을 데리고 짐을 챙 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왔던 곳 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연우가 가지는 무조건적인 지배력이 통하 지 않는 곳이면서 강한 몬스터가 수도 없이 존재하는 곳이다.
‘마계와 천계의 전쟁이라.’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