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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편_ 지저 세계(1) (73/207)

제83편_ 지저 세계(1)

두 사람을 감리로 보낸 건 별거 없었다.

꿀 빨면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걸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현장으로 보 낸 거다. 거기에 이쪽 계열 특성상 감리는 지금까지 설계 경력을 다 살리지 못하고 승진하기도 어렵다.

물론, 수완이 뛰어나고 인맥이 있으면 다르겠지만, 회장은 연우의 표정을 보지 못했을 리 없고 연우 가 과거에 이 회사에서 일한 걸 모 를 리 없다.

또, 경비 관련 투자는 한상길 경 비원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 각하면 된다.

‘이 정도면 되겠지.’

연우는 이미 인사를 마치고 내려 왔다.

그저 소유주 확인 문제였고 배당 금만 주면 큼지막한 투자도 기꺼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회장하 고 간부들이 연우를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협회장 이진철이라는 어 마어마한 인맥까지 보여 줬으니 저 항할 마음이 생길 리 만무했다.

“아, 깔끔하네.”

기분 좋지 않던 과거를 털어 버 린 거다.

아주 깔끔하게.

만약,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면 이 일을 지저분하게 처리했을 거다. 그때는 지금처럼 센느의 힘도, 가 진 것에서 나오는 여유도 없었으니 까.

“가는 김에 백화점도 들렀다 가 자.”

이번에도 인수한 김에 인사해야 했다.

S 그룹 계열사가 가지고 있던 거 라는데, 사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 다.

가진 힘은 아직 투 클래스를 찍 지 못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것 같은데 사회적 영향력은 꽤 있는 모양이다.

“우와 그럼 백화점을 샀으니까 안에 물건은 다 우리 거네?”

“그건 아니야. 백화점만. 안에 입 점한 점포는 다른 사업자야.”

“흐음. 그것도 다 사 버리면 안 돼?”

“뭐하러 그래, 돈 아깝게.”

“돈 없어? 내가 돈 줄까?”

이자젤은 그러면서 아공간에 손 을 넣었다.

그렇게 나온 건 주먹 한가득 잡 힌 여러 색의 다이아몬드였다. 노 말도 아니고 수십 가지의 마법적 기능이 담긴 인첸트용 아이템이랄 까.

아스가르드 안에서도 상당히 비 싼 물건들이다. 대충 예를 들자면 상급 마력석 수천 개는 살 수 있을 정도.

이곳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 만, 단순하게 상급 마력석과 비교 해서 계산하면 지구도 살 수 있을 거다.

“내가 언제 돈 없는 거 봤냐. 그 냥 그럴 필요가 없는 거지.”

이자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스가르드 안에서 가장 부자는 연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뭘 대충 만들기만 해도 대륙의 돈 이 몰려들고 레이드 한 번 뛰면 왕 국 몇 개 살 정도로 돈을 벌었다.

연우와 이자젤은 백화점으로 향 했고, 블랙 던 배지를 보자마자 백 화점 대표와 직원 몇 명이 조르르 따라왔다.

“…… 우리한테 추적 마법이라도 걸었나?”

“응? 그런 건 없는데.”

이자젤이 탐지 마법을 사용하면 서 갸우뚱한다. 이자젤은 다 좋은 데 살짝 멍청한 게 문제다.

“에라, 농담을 못하겠네. 협회장 이 알려 줬든지, 이 차를 알고 있 겠지.”

연우와 이자젤이 내리자 대표가 다가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S 백화점 대표 이 지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렇게 신경 쓸 필 요는 없습니다. 인사만 하고 쇼핑 을 할 거라서요.”

“그럼 제가 직접 수행하겠습니 다.”

이지혜라는 대표가 활짝 웃으며 옆에 섰다.

“뭐, 나쁠 것 없죠. 이자젤, 뭐 사고 싶어.”

“나? 시계 살래! 술도 좀 더 사 야 하고.”

“그래, 다 사자.”

연우와 이자젤은 대표와 직원을 뒤에 줄줄이 달고 백화점으로 입성 했다. 시선이 꽤 몰렸지만, 귀찮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리젤의 이야기.

그녀의 이름은 리움트 피셀리나 리셀너스.

‘리움트 리그너트’라는 사신 가문 의 가주와 ‘피세리나 세린’이라는 서큐버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 었다.

그런 그녀는 천계와의 전쟁에 목 을 매는 가문.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마족들. 그게 전부 싫었고 차원 밖으로 보이는 인간의 사회가 좋았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

물론, 부모님이 말리고 마신까지 말렸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 는 법이다.

인간 세상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 았지만, 상급 던전을 운영하고 몬 스터를 규합해 세력을 만들면서 인 간과 비슷한 세상을 만들기도 했었 다.

종종 마계에서 그라니아 대륙으 로 길을 뚫는다는 말을 들었고 기 어이 한 지역을 점령하면서 부모님 이 연락했지만, 리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축이 흔들렸 으며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건, 지구라는 곳의 작은 던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힘을 잃어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 바빴다.

그때, 어떤 요정과 남자 한 명이 던전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리젤은 꿈처럼 인간과 섞여 살 수 있고, 매일 행복했다. 맛있는 음 식과 술. 해야 할 일과 서로를 존 중하는 관계들. 모든 게 좋았다.

그리고 오늘도 게헨나르를 다듬 는다.

“리젤! 밥 먹자!”

“네! 가요!”

항상 밝은 이자젤이다. 분명 투 클래스 마스터인데 기세는 쓰리 클 래스 마스터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다.

그 옆으로 연우가 보였고 헤맨도 나와 있었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에 포 클래스 마스터다.

처음엔 살 떨렸지만, 지금은 이 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군이며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에 너무나 만 족스러웠다.

‘마계에서 지구로 온다고 했는 데.’

에르메스와 헤르메스에게 마계의 대략적인 상황을 들었다. 아버지는 공을 인정받아 영웅이 됐고 어머니 는 마신을 잘 보필한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 웠다.

리젤은 잠시 걱정이 됐다.

만약, 지구로 아버지가 직접 오 면 어떡하지?

“그건 안 되는데.”

지구는 아주 위험한 곳이다.

저걸 봐라, 마계 북쪽의 패자였 으면서 마계에 단 셋뿐인 마황의 후보였던 더그르크는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리고 있고, 옆에 악마왕 이었던 홈트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 들며 삼미호랑 놀고 있다.

“으으. 무서워.”

그뿐이 아니다. 방금 왔던 군단 장 에르메스라는 자는 최상급 마족 300이라는 엄청난 전력에도 불구하 고 울타리와 펍의 벽을 무너뜨렸다 는 것만으로 몰살당할 뻔했다.

“안 되겠어. 내가 힘을 키워서라 도 직접 막아야지!”

그날, 리젤도 강해지겠다는 결심 이 선 날이었다.

물론, 그 전에 밥부터 먹으러 간 다.

연우가 도착했을 땐, 한 팀의 손 님이 있었다.

저번에 왔던 여자 5명의 손님에 2명이 바뀐 인원이었다. 그들은 또 ‘꺄꺄’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수영장 에서 비키니를 입고 수영은 안 하 고 또 사진만 찍어 댔다.

그러곤 빙하 울타리에 있는 붉은 귀 북극여우를 보곤 너무 귀엽다며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에 파란 코코넛 크랩이 나와 물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연우는 그 모습에 웃음을 짓고 요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 다.

하지만 수이니가 손님을 맞기 위 해선지 미리 요리를 시작한 상태였 다.

“오늘 메뉴는 뭐야?”

“오늘은 밥을 간단히 먹고, 먹태 를 먹자.”

먹태는 좋은 안주다.

연우가 대학 생활을 할 때, 근처 에 유명한 먹태 맛집이 있었는데 한때는 그것에 중독돼 일주일에 5 일 내내 먹었다가 배탈이 난 적이 있었다.

먹태 자체는 괜찮은데, 간장에 마요네즈와 청양고추를 넣은 소스 가 너무 기름지고 자극적이었던 거 다.

“좋지, 오랜만이네.”

“특히, 맥주에.”

안주는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밥은?

역시나, 기대 이상이다.

반찬은 우엉조림, 더덕무침, 명란 젓, 오이소박이. 그리고 김치찌개와 돼지두루치기.

찌개는 고기와 두부가 잔뜩 들어 가 더없이 푸짐해 보였고 두루치기 도 국물이 없이 채소와 볶아진 모 습에 벌써 침이 고였다.

“냄새가 끝내준다.”

리젤이 옆에서 수저를 놓고 소주 잔도 놓는다. 이 정도면 이미 토종 한국인이었다.

“리젤, 난 위스키!”

“네, 온 더 락으로요?”

“좋지!”

이자젤은 위스키를 상당히 좋아 하는데, 두루치기엔 위스키가 은근 히 잘 어울린다.

아무리 그래도 소주를 따라올 순 없겠지만.

식구들이 한 명씩 들어왔고 한쪽 테이블엔 손님 5명도 앉아 있었다.

“와아! 오늘은 집밥이야! 집밥이 라 좀 싸려나?”

“여긴 너무 좋은데 돈이 너무 들 어. 하긴, 여기가 너무 싸져 버리면 눌러살아 버릴 듯.”

“힝. 여길 오기 위해서라도 레이 드 열심히 뛰자! 나 전에 여기서 산 장비로 딜 미터기 1등 먹었다!”

“나도 하나 지를까? 대출 조금 받으면 괜찮은 거 하나 사겠는데.”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적당히 시끌벅적하고 좋았다.

협회장 이진철은 아프리카로 건 너갔다.

거대한 돔 형태의 연구소. 축구 장 세 개는 연결한 정도의 크기를

가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미 몇 번의 검문을 마쳤지만, 연구소 정문을 통과하는 건 또 다 른 이야기다.

이진철은 무광의 검은 카드를 하 나 꺼냈다. 지문, 홍채, 안면 인식 까지 함께 검증한다.

-블랙 등급입니다.

-1 급 연구 시설까지 출입할 권 한을 확인했습니다.

-무기 및 아티팩트 소지를 금지 합니다.

-마력 제한 목걸이를 착용해 주 십시오.

이진철은 인상을 구긴 상태로 장 비를 벗고 목걸이를 착용했다. 아 직 블랙 등급인 이상 어쩔 수 없었 다.

어차피 곧 투 클래스를 마스터하 고 셰이크에게 블랙 등급 위인 언 터쳐블(Untouchable)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것만 있으면 위원회도 무섭지 않다.’

화이트, 블루, 골드, 플래티넘.

그리고 블랙이다.

각 계급은 사용자 무력 수준과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적합한 자 격을 지녔는지, 철저하게 인증한 후에 발급된다.

마지막인 언터쳐블은 사실상 지 구의 모든 곳에 자유롭게 출입할 권한을 얻는다. 심지어 백악관까지.

물론, 백악관을 직접 갈 일은 거 의 없겠지만 말이다.

‘슬슬 연우 님에게도 계급을 드 려야 하는데.’

의무는 없다. 권한을 주는 것뿐 이다. 연우라면 이런 연구소나 공 공 기관에 출입할 일도 없을 거고 누군가 막는다고 해도 막지 못할 거다.

하지만 그걸 막으려는 이를 지키 기 위해서라도 등급을 주는 게 맞 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진철이 연구소로 들어가자 홀 로그램이 하나 나와 이진철을 안내 했다. 실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 홀 로그램이었다. 새삼 근래에 성장하 고 있는 기술력이 무서워질 지경이 었다.

수십 개의 방을 지나고 엘리베이 터가 나왔다. 거기서 지하 20층까 지 내려간다.

띵.

“저 왔습니다. 박사님.”

“왔군요. 이진철 협회장님.”

하얀 가운을 입은 한국인, 김상 철 박사였다. 불세출의 천재였고 비전투인 연구 관련 사용자로 각성 한 후에는 정말 더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네, 뭐. 그건 그렇고 정말 어마 어마하게 강한 장비를 사용하고 계 시더군요.”

“그분이 주신 거죠.”

“곧 투 클래스 마스터에 들 거고 요.”

“약간의 깨달음만 있다면요.”

뭔가 어색하지만 편한 대화를 한 후였다.

이진철과 김상철 박사는 하나의 홀로그램에 집중했다.

그건, 한반도와 아프리카 상공에 생겼던 거대한 게이트의 분석 시뮬 레이션이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 니다.

“자, 여기서.”

탁.

김상철 박사가 엔터를 쳤고 그 게이트 홀로그램은 수만 개의 부품 으로 분해됐다가 다시 합쳐졌다.

“원래 게이트는 그라니아 대륙으 로 연결됐었잖아요?”

“네.”

“그 좌표를 스캔하던 도중, 새로 운 좌표를 발견했어요.”

“ 네?”

“그라니아 대륙, 지구, 그리고 새 로운 차원이 수평을 이루고 있었습 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라니아 대륙에서 넘어오는 것들이 왜 지구 를 침략하는지 알 기회랄까요.”

김상철 박사는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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