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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편_ 에르메스(5) (72/207)

제82편_ 에르메스(5)

또 아침이 찾아왔다.

항상 맞이하는 아침은 새로웠고 기대가 된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기다리기 때문일까.

연우는 조금은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카페로 올라갔다. 하루의 시작은 역시 커피였기에.

“ 헤르메스.”

카페에는 헤르메스가 먼저 와 있 었다.

에르메스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거였다.

“네, 주인님. 그게……

그라니아에 관한 이야기였다.

50년 전 어떤 일이 있었던 거고 지금 상황은 어떤지.

“그러니까 천계와 전쟁 중인 마 계는 그라니아 일부를 점령해 마력 석을 수급하는 중이고. 지구로 차 원 게이트를 뚫으려고 하는 거다?”

“네, 맞습니다. 지구에 그라니아 의 몬스터를 보내면서 점령을 준비 한 겁니다. 또, 이후에 이곳에서 마 력석의 수급을 하려고 했답니다.”

“그라니아에서 이곳으로 몬스터 를 보낸 거 아니야? 그럼 굳이 그 럴 필요 없이, 그라니아에서 잡으 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말이 보내는 거지, 그라니 아처럼 지구에 필드나 던전을 만드 는 거랍니다. 음, 몬스터의 생산률 을 올리는 거죠.”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 차원에 가는 길목이라는 건 뭐야?”

헤르메스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 한다.

“아는 건 얼마 없습니다. 중요한 건, 차원은 마구 연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차원 구성은 수평적이다.

지구, 그라니아, 마계, 천계. 이런 순서로 말이다.

마계와 그라니아 대륙과는 바로 이어지는데 천계랑 그라니아랑은 연결되지 않는다. 천계는 또 다른 차원이랑 이어져 있는데 마계의 예 상으로는 신계라고 한다.

중요한 건, 마계의 행보다.

마계는 그라니아를 통해야 지구 를 올 수 있고, 지구 다음에 있는 ‘여명의 빛’이라는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다.

“음, 그러니까 그라니아 대륙에 서 여명의 빛으로 가려면 지구를 통해야 한다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걔네들은 절대 못 가겠네.”

헤르메스가 궁금한 얼굴을 해 보 였다.

“지구에 내가 있잖아.”

“…… 마, 맞습니다.”

“여명의 빛이라.”

사실, 그라니아 대륙이 있는 차 원의 마계와 천계의 전쟁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 정보로, 지구에서 일어 난 일들의 원인을 알았다는 게 중 요한 거다.

‘천계와 신계가 연결돼 있다면, 지구에 일어나는 일이 신계에서 계 획한 걸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여튼, 알았다. 간혹 동생 보러 들어가고 싶다면 말하고.”

“저, 정말입니까?”

“대신, 거기 가려면 투 클래스 마스터 정도로는 힘들 거야. 정말 괴물 같은 놈들이 득실대는 곳이거 든.”

“알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열정에 불타는 눈이 됐다. 투 클래스 마스터를 찍고 안 일해졌던 그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

그 길로 울타리를 향하더니 심구 를 사용해 블랙 카우의 젖을 짜기 시작했다.

연우는 후름을 불렀다.

“후름.”

“웅, 커피 더 줘?”

“아니, 그것보다는 혹시 여명의 빛이라는 걸 알아?”

“그런 건 모르겠는데……

하긴,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 도 게임 속 인물이었다. 연우는 잠 시 고민하다가 두 강아지를 불렀다.

컹컹.

강아지는 원래 땀을 흘리지 않는 데, 땀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연우만의 착각일 거다.

“짖지 말고 말을 좀 해 봐.”

“아, 알겠습니다.”

댕댕이와 검둥이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면서 두 발로 섰다.

“너희 여명의 빛이 뭔 줄 알아?”

“잘 모릅니다. 그저……

“그저?”

“천계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 다줄 어마어마한 힘이라고만 압니 다.”

“그래? 그것만 믿고 차원을 뚫고 다니는 거야?”

“저희 마계엔 예언자가 있습니 다. 마신의 측근이자 꽤 유명한 마 족이죠. 그 마족이 천계와의 전쟁 은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질 거고, 그걸 뒤집기 위해선 여명의 빛을 취해야 한다는 예언을 했습니다.”

연우는 조금 갸웃했다.

예언가면 예언가지, 승리하는 방 법까지 알려 준다고?

뭔가 조금 이상했지만, 연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천계 뒤에 뭐가 있는 줄은 모르 는 거고?”

“네, 모릅니다. 전쟁 중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신계의 물건을 보 고 예상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군. 그에 대해서 더 아는 건?”

“저희도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돌아가 봐. 삼미호랑 잘 지내고.”

“알겠습니다. 컹컹!”

저 정도 연기면 연기 대상감이 다. 마왕이었다가 강아지였다가. 아 주 자유자재다.

연우는 그 차원이라는 것에 생각 하다 말았다.

차원을 오가려면 특별한 능력이 있는 마족이 많은 마력석과 제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통 마법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 넘어오면 싹 쓸어 주지 뭐.”

연우의 고민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오늘은 나무를 조금 심어 봐야겠다.”

매일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과 일이 조금 당긴다.

포도나무, 사과나무, 무화과나무 정도를 심어 봐야겠다.

에르메스는 몇 번이나 멈출 뻔했 던 심장을 부여잡았다.

“후, 이렇게 무서운 곳이 있었다 니.”

마계의 마왕이 되면서 군단장까 지 올랐다. 그 와중에 어마어마한 적들을 만나 싸워 이겼고 마신 곁 에서 전투해 왔다. 천계와의 전투 는 대륙을 지워 버리는 규모의 전 쟁.

그런 일들을 보고 살아온 에르메 스다.

그런데도 당최 이 농장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또, 식스 클래스 마스터라니.

마신의 힘을 제대로 느껴 본 적 은 없지만, 결코 식스 클래스 마스 터는 아니었다. 그녀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마신이 한순간에 약자가 돼 버린 거다.

‘아니야. 그래도 그건 모르는 거 니까.’

마신의 힘을 모조리 끌어올리면 맞설 수 있을지 모른다.

“후,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야. 정 예 마족들도 마찬가지고.”

문득 헤르메스가 생각났다.

투 클래스 마스터라니, 에르메스 가 마신의 눈에 들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 이뤘던 경지다. 세례를 받 아 쓰리 클래스 마스터가 됐지만, 헤르메스의 경지는 결코 폄하할 만 한 게 아니었다.

이곳은 무서운 곳이지만, 성장할 기회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지저 세 계.

엄청났다. 에르메스의 볼이 붉어 지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강자존, 약육강식, 무법 지대.

마계보다 더했다. 아니, 마계는 이미 마신의 힘으로 평정돼 평화로 워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완벽하게 약육강식이다.

길고 어두운 통로. 곳곳에 거대 한 공동(空洞). 수천 개의 던전과 수만 개의 종족. 그들의 영역 싸움 은 하루에 수만 번 이상 벌어졌다.

새로운 종족이 생기기도 했으며, 몇 종족이 사라지기도 한다. 약했 던 종족의 기세가 갑작스럽게 하늘 을 찌르기도 했으며, 다시 사라지 기를 반복한다.

패자는 사라지고 승자는 모든 것 을 취한다.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 아남는 자가 강자다.

그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곳 이 바로 이곳이었다.

“가자, 나의 종속들이여.”

에르메스는 연우에게 부여받은 영역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300의 최정예 마족들을 종속화했으며 앞 으로 이어질 끝없는 전투를 위해 정비했다.

그녀는 오늘부터 이곳에서 성장 할 것이다.

으아아아!

그들은 수십 종족이 엉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거대한 동공에 뛰어들 었다.

“아함.”

연우는 턱이 빠질 듯 하품했다.

오늘은 나무를 세 개나 심었다. 과수원을 할 것도 아니라 숲에 한 그루씩이다. 이미 과일을 맺기 직 전까지 키워 놨기에 겨울이 되기 전에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았 다.

오늘도 농장은 평화로웠다.

한 명의 마계 군단장과 300의 마계 최정예 마족이 왔었지만, 별 일은 없었다.

“이자젤!”

“왜!”

이자젤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다. 펍 외벽이야 금방 복구 했지만, 아스가르드에서 항상 적이 었던 마족에게 당한 거라 더 분이 난 거다.

“ 나가자.”

“어딜?”

표정이 급격하게 좋아진다.

“음, 내 과거를 털어 버리러?”

“털어? 왜, 전쟁이라고 하게?”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 받아 줄 말이 없었다.

“…… 아니, 일단 따라와.”

“꺄! 좋다. 간 김에 쇼핑도!”

“그래그래.”

그나마 쓸데없는 연기를 즐기고 잘 맞춰 주는 이는 이자젤뿐이 없 었다. 혜영은 한쪽에서 ‘공간’을 훈 련하느라 바빠 보였다.

연우는 다시 롤스로이스 블랙 던 배지를 탑승해 바로 출발했다.

서울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금영이라는 설계 회사. 자본금은 20억 정도에 연 매출 240억 정도 는 찍는 중소기업이다. 직원 340명 에 3.4%의 영업이익률.

가지고 있어도 나쁘진 않을 회 사.

하지만 연우는 그런 이유에서 회 사를 인수한 게 아니다.

“ 가자.”

“우오, 이 건물도 크네. 여기서 연우가 일했던 거야?”

“웅, 3년 정도.”

연우는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낯설었다.

마침 로비에 있던 경비원 아저씨 가 보였다. 그때, 가로수 길에서 봤 던 동기 녀석과 과장도 있었다.

“오, 연우 씨 웬일이에요?”

경비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해 줬다. 연우는 기분 좋게 웃으며 상 체를 숙여 인사했다. 어떻게 보면 이 회사에서 친한 사람이랄까.

“뭐야. 여긴 왜 왔어?”

동기가 인상을 확 썼다. 가로수 길에서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제대 로 말이 끝나지 않은 탓이다.

리젤과 이자젤 등이 힘을 내보이 는 걸 봤지만, 연우는 직접 움직이 지 않았으니까 얕보는 거다.

“네가 여길 왜 와? 경비, 쟤 좀 내보네요.”

그 모습을 보던 과장이 연우에게 손가락질했다.

“네? 그래도 어떻게……

“어서! 꼴도 보기 싫으니까.”

과장의 외침에도 경비 아저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 가 평소 행실도 알고 있다.

“경비 아저씨. 아니, 한상길 경비 원님. 감사합니다.”

저 둘처럼 편협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한상길 경비 아저씨처럼 좋 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문득 기 분을 좋게 했다.

그때 였다.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검은 정장의 사 람들이 내리며 로비를 경계했다. 그 중앙에서 길을 열며 내려온 사 람은 협회장 이진철이었다.

어쩜 타이밍이 이리 좋을까.

설마 일부러 이 두 사람을 로비 에 두고 늦게 나온 건 아니겠지? 연우는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연우 님. 벌써 오셨네 요. 연락 주셨으면 미리 나와 있었 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도 막 나와서요.”

이진철 뒤엔 금영의 회장과 사 장. 부사장에 간부 몇 명까지 졸졸 따라 나왔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이번에 에르메스가 넘어오면서 큰 위기가 있었지만, 그걸 해결하 자 전 지구의 몬스터 웨이브가 확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있는 모양 이었다.

“하하. 다 연우 님 덕분입니다. 이번 일 덕분에 연우 님의 존재가 확인된 모양입니다. 물론, 신분까지 는 아니고 대단한 존재가 있다는 것까지요. 그래서 위원회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고 셰이크도 저에 게 더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파 제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앞으론 제 신분을 굳이 숨기지 않으려 해도 됩니다. 생각보다 힘을 빨리 되찾아서요.”

이진철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 지 못했다. 하지만 연우는 이미 발 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 제가 이곳 소유주면 작은 인사권 정도는 행사할 수 있겠죠?

작은 투자랑요.”

“경영권은 안 건든다고 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을 겁니다.”

“그럼 저 두 사람, 현장 감리 부 서로 발령 냈으면 좋겠네요. 제가 전에 일하면서 아는 분들인데, 설 계보단 현장 감리가 잘 맞겠더라고 요. 일도 잘할 것 같고. 무슨 말인 지 알겠죠?”

연우는 회장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 정도야 충분합니다.”

“그리고 50억 정도 투자할 예정 인데, 회사 소속 경비원이 대략 12 명 정도 되죠?”

“네, 맞습니다. 이 건물과 기숙사 건물까지 하면 그 정도 될 겁니다.”

“경비원 전용 기숙사 하나 구하 고 시설하고 사람도 좀 보충하죠. 너무 없어 보이네요. 이것도 무슨 말인지 알겠죠?”

연우는 전과 다른 따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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