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편_ 에르메스(4)
수백 명. 정확히 235마리의 마족 이 쓰러져 있었고 65마리의 마족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처음 100마리는 이자젤의 한 방 에 기절한 거고 135마리쯤은 두 강 아지의 폭발하는 기세에 기절했다. 그리고 기절하지 않은 65마리의 마 족은 두 강아지의 힘인 마왕의 기 세에 알아서 부복한 거다.
“…… 뭐, 생각보다 평화롭게 끝 났네.”
에르메스는 넋을 잃고 서 있었 다.
연우는 그녀 앞으로 갔다.
숨겼던 기세를 풀었다.
주절주절 설명하거나 목줄을 채 우는 것보다 간단한 방법은 힘을 보여 주는 거다. 특히, 강자 지존인 마계에서 살아온 그녀에겐 이런 방 법은 절대적이었다.
화악.
털썩.
다른 반응을 할 시간도 없었다.
에르메스의 무릎은 땅에 닿아 있 었고 전신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 다. 오금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건 잠깐이었다.
연우는 기세를 감췄다.
“우리 농장엔 규칙이 하나 있 어.”
“대답.”
“네, 네! 죄송합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조용.”
“?????? 끄읍.”
이젠 눈물까지 홀린다. 연우는 헤르메스를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에 들진 않아도 식구의 혈육이 다. 머리색은 검은색과 보랏빛으로 달랐지만, 에르메스는 어떤 힘을 받아 변한 것 같았다.
연우는 조금 살살 하기로 했다.
“죽이지 않을 거니까 조용히 하 고.”
“네, 넵!”
“일단, 우리 농장에선 남에게 피 해를 주면 안 돼. 저런 거라든가.”
연우는 펍을 가리켰다.
“저런 거.”
이번엔 울타리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교 육하겠습니다. 앞으로 저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농장엔 자리가 없으니까.”
연우의 말을 오해한 에르메스. 거기에 헤르메스까지 가세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제발 목 숨만은!”
“연우 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 가 보증하겠습니다. 목숨만은……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연우는 이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 다.
수인 족처럼 마족을 이종족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벌레 같은 존재로 보니까. 하지만 딱히 적대감도 없다.
“므깃도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약간의 땅을 내줄 테니까 거기서 살아. 뭐, 진혈의 뱀파이어니까 멸 종할 이유도 없을 거고.”
진혈의 뱀파이어에게 종속을 늘 리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헤르메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 다.”
“너는 이곳에 있는 거고. 할 일 이 많잖아.”
“네! 당연합니다.”
조금 시끄러운 늦은 오후였다.
이자젤은 아직 화가 안 풀렸는지 씩씩대고 있었고 두 강아지는 오랜 만에 본 마족들에게 강아지의 모습 으로 있던 걸 보여서 마음에 안 드 는 모양이었다.
연우는 에르메스와 마족들이 이 주할 땅을 찾기 위해 헤맨과 므깃 도로 들어갔다.
“헤르메스.”
“괜찮은 거지?”
“어, 헤르메스. 도대체 저분은 누 구인 거야?”
에르메스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 은 걸 겪었다.
아프리카로 떨어지자마자 강력한 집 요정을 봤고 50년 전 사라졌던 오빠를 봤다. 그리고 어디론가 왔 는데, 이곳엔 상상도 못할 강자가 즐비했다.
“저 두 강아지는 마왕. 더그르트 와 흄트.”
에르메스는 숨이 턱 막혔다.
“저, 전설적인 북쪽의 패자! 차기 마황으로 유명했던 그 더그르트 장 군님이랑 악마왕인 제5 군단장 홈 트라고? 분명 알로 재탄생해 보내 졌는데! 아니, 저, 저기서 꼬리를 흔들고 배를 뒤집는 강아지가?”
“응, 그 알에서 깨어난 걸 연우 님께서 받아 준 거지.”
사실 더그르트는 납치됐고 홈트 는 더그르트가 납치한 거지만, 크 게 다를 건 없었다.
헤르메스는 으쓱했다.
그라니아에 있을 때 헤르메스는 평범한(?) 진혈의 뱀파이어였다. 마 계의 마신이나 전쟁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비교해 보자면 한국에선 외딴 지 방의 건물주 정도 되는 거랄까.
자신의 나라가 어딜 가서 전쟁하 든 별 관심 없이 혼자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니 전쟁에서 누가 국 방부장관이고 장군에는 누가 있으 며 어떤 군단장이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하여튼, 저쪽은 리젤이라고 상 급 던전을 운영하던 사신.”
“상급 던전을 운영하던 리젤? 설 마 리움트 피세리나 리젤너스?”
“모르겠네. 리젤이 풀 네임이 있 었나?”
그 말에 조금 떨어져서 조심스럽 게 살피던 리젤이 대답했다.
“어? 제 풀 네임을 어떻게 아세 요?”
“그걸 왜 몰라! 아니, 어떻게 몰 라요!”
에르메스는 머리가 핑 돌았다.
리젤이라는 이름은 마계에서도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는 그림자의 지배자 라는 이명을 지닌 유명 사신 가문 의 가주 ‘리움트 리그너트’였다. 최 근 천계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공 을 세우고 있는 마계의 영웅이었다.
또, 그녀의 어머니인 서큐버스는 마신의 하녀장 ‘피세리나 세린’이 다.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말이 하녀지, 마신의 집안을 총 괄하는 집사와 같은 인물이다. 무 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천재 적인 두뇌는 마신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리움트 리그너트’와 ‘피세리나 세린’의 혼인엔 마신이 직접 주례 를 서면서 ‘리움트 피셀리나’라는 성은 마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이 됐다.
문제는 다음. 50년 전 그때 사라 진 부부의 딸인 ‘리움트 피셀리나 리젤리너스’ 때문에 부부는 미칠 듯 날뛰었고 마신까지 나서서 범인 을 찾아 나섰다.
마계 전역에 퍼진 그녀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풀 네임까지.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있었다니.”
에르메스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런 거물의 딸에 전설적인 마계 의 장군과 군단장까지 있다. 여기 서 더 놀랄 게 있을까?
헤르메스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설명을 이어서 했다.
“지금까지 소개한 이들은 우리 연우 님의 최말단.”
≪......2”
헤르메스의 설명에 에르메스 머 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기 대장간엔 쓰리 클래스 마 스터인 요섭이 있는데, 나랑 같이 그들보다는 한 단계 위라고 할 수 있지. 바로 연우 님 아래랄까.”
헤르메스는 에르메스의 마음도 모르고 어깨가 위로 솟았다.
“헉. 쓰리 클래스 마스터?”
대장간에 무슨 군단장급 인물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저기 초록 머리 이자젤 과 앞치마를 맨 수이니, 커피를 내 리는 후름은 투 클래스 마스터지만, 사실 웬만한 쓰리 클래스 마스터보 다 강한 주인님의 친구지.”
에르메스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 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분 명히 투 클래스 마스터 정도의 힘 이라서 무시했는데, 발현한 힘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뛰어넘었으 니까.
“그리고 아까 봤던 집 요정은 주 인님의 집산데. 포 클래스 마스 터?”
“포, 포 클래스?”
집사라는 존재가 포 클래스 마스 터다. 당연히 상대가 안 되겠지만, 마신 님에게 어느 정도는 비벼 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그 집요정 이…….
“응. 그리고 우리 주인님은 식스 클래스 마스터.”
“시, 시, 시, 식스…… 커헉.”
결국, 에르메스는 뒷목을 잡고 넘어가고 말았다.
“야, 야! 정신 차려. 에르메스!”
연우는 에르메스와 300의 마족이 살 만한 곳을 찾았다.
그곳은 바로 므깃도 안의 지저 세계(地底世界).
아스가르드에서 요섭이 살던 곳 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수천 개의 던전이 이어졌고 수만 종의 마물과 괴수가 사는 곳. 서로 무리를 이루 고 영역 싸움이 끝없이 일어나며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가 완성된 곳 이다.
연우도 그곳만큼은 잘 가지 않았 다.
말을 잘 듣는 존재도 없고 알아 서 잘 돌아가니 굳이 신경 쓸 필요 가 없었던 것.
에르메스라는 헤르메스의 동생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였다. 300의 마 족도 투 클래스가 거의 다 된 정예 들. 지저 세계에서 충분히 영역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주인님, 사실 귀찮은 것 아닙니 까‘?”
“내, 내가? 아닌데?”
“그럼 혹시 배고프십니까?”
“?????? 왜?”
정곡을 찔린 연우는 움찔거렸다.
“주인님께서 항상 관리하기 귀찮 은 몬스터는 지저 세계에 넣었습니 다. 물론, 절대적인 지배가 안 되는 존재들은 제외하고요.”
“…… 내가 그랬었나?”
“네.”
“단호하네. 단호박인 줄.”
연우는 헤맨의 굳은 표정을 보곤 머쓱하게 웃었다. 역시 이런 농담 을 받아 주는 건 이자젤이나 혜영 뿐이 없었다.
“대충 이곳에 영역 하나 만들어 주고 우린 가서 밥이나 먹자.”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 오늘은 특별히 내가 요리 한다.”
괜히 말을 돌리는 연우였다.
므깃도 밖으로 나온 연우는 헤맨 에게 에르메스를 안내하라고 하곤 식당으로 바로 들어갔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어서 식당엔 수이니도 없었다.
소매를 걷고 냉동고를 열었다.
“홈. 좋아. 오늘은 이거다.”
햄버거다.
햄버거라면 가장 중요한 건 패 티.
고기 패티는 몇 가지 종류가 있 는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는 것. 둘째는 소고기만 쓰거나 돼지 고기만 쓰는 경우가 있다.
요즘엔 닭고기, 양고기, 새우도 있고 그중에 연우는 닭과 소고기 패티를 가장 좋아한다.
“소고기 패티로 햄버거를 만들 자.”
소고기 패티는 양지 살이다.
결 반대로 얇게 썰어서 굽는다면 맛은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두꺼우 면 질기고, 덜 익히면 비린 맛이 나서 구이엔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양지 살이 좀 쌓여 있 었다.
사실, 햄버거를 먹고 싶어 시작 했다기보단, 쌓인 양지 살을 보고 햄버거를 만들기로 한 게 컸다.
다다다닥.
연우는 마왕의 뿔로 만든 식칼로 양지 살을 다졌다. 거기에 양파, 청 양고추, 마늘을 다져 넣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대로 끝낼까 하다가 기름이 많 은 하얀 드레이크의 꼬리 살을 조 금만 꺼내 섞었다. 이렇게 하면 육 즙이 폭발한다. 조금 느끼할 수도 있지만, 고기 육즙을 좋아하는 이 들에겐 최고다.
여기서 마무리로 빵가루를 섞어 반죽했다.
작은 손바닥만 한 패티가 넉넉하 게 나온다.
치이이익.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 패티를 올 리자 기름이 타다닥 튀며 익기 시 작한다.
적당히 익었다고 생각했을 때, 빵을 올렸다. 속이 들어가는 안쪽 만 살짝 익혀 준다.
타닥. 슥. 탁.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빵을 꺼냄과 동시에 패티를 올리 고 블랙 카우로 만든 치즈를 올린 다. 그 위로 양상추와 양파. 그리고 마요네즈와 불고기 소스를 뿌린다.
이럼 완성이다.
“아, 맛있겠다.”
요리는 이 맛에 하는 거다.
자주하면 질리지만, 과정을 직접 보면 더 입맛이 돌기도 한다.
햄버거를 잔뜩 만들어 쟁반에 담 고 홀로 나갔다.
그곳엔 세 엘프와 혜영이 있었 다. 거기에 강아지 두 마리와 삼미 호까지 맛있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자, 밥 먹자.”
연우의 말에 이자젤이 외쳤다.
“햄버거엔 라거지!”
“앗, 그럼 제가 라거 좀 따라서 가져올게요!”
리젤이 먼저 움직였고 혜영이 따 라나갔다.
삼미호는 연우 다리에 착 붙어서 세 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맛있겠다! 좋은 냄새가 나요!”
“그래그래, 맛있겠지?”
연우는 삼미호와 두 강아지에게 도 햄버거를 하나씩 주고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렸다. 햄버거가 총 12개나 있었다. 음식은 언제나 부 족한 것보다는 남는 게 좋다.
연우는 햄버거 하나를 집어 앙, 물었다.
빵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지나 마요네즈와 불고기 소스가 느껴진 다. 동시에 트러플 치즈의 향긋함 이 코를 파고들고 양상추와 패티가 씹힌다.
입안에 육즙이 폭발하고 각종 소 스의 단짠이 조화를 이룬다.
“와, 역시 요리 8단계는.”
“이야. 장난 아니다.”
때마침 도착한 라거를 받아 들이 켰다.
벌컥벌컥.
입안에 기름을 싹 제거하고 텁텁 한 목을 비워 준다. 이렇게 되면 다시 한입 먹어 입과 목을 기름에 적셔 줘야 인지상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