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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편_ 에르메스(2) (69/207)

제79편_ 에르메스(2)

아공간엔 여러 구역이 있다.

전에 대장장이 장비를 구했던 곳 은 ‘평범한 보관소’일 뿐이다. 어떤 물건의 보관을 위해선 특별한 환경 이 필요했고, 정령 관련 물품은 그 중에 하나였다.

연우와 헤맨이 평범한 보관소를 지났다. 끝이 없는 싱크 홀이 보였 고 그걸 지나자 바다가 보였다. 파 란 바다, 초록 바다, 황금빛 바다가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작은 섬이 보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처럼 보였 다. 아름다운 색감이 섬 전체를 감 싸며 어지럽게 빛을 낸다. 해변은 모래 대신 정력석이 가득했고 하늘 엔 최상급 정령들이 노닐고 있다.

섬 자체가 정령석으로 이뤄진 정 령 섬이다.

연우는 이걸 만들려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래도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기 때문에 얼티밋 등급 장비 수천 개를 팔고, 지배자의 목줄에 여러 스킬 북 제작 노가다까지 했 었다.

거기에 정령 던전에서 한 달 내 내 앵벌이를 했던 게 최악이었다. 정말 끝도 없이 사냥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광경에 멀미가 났고, 질 릴 대로 질려 버렸다.

그래서 완성한 이후에는 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은 힘들게 만든 가치 가 있었다.

“생각보다 잘 유지되고 있네.”

이 정령 섬은 정령계와 연결돼 있다. 연우가 아스가르드에서 현실 로 가져온 후론 어떻게 됐을지 궁 금했는데, 다행히 변화는 없는 모 양이었다.

“정령석 생성도 문제없어 보이 고, 정령들도 잘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정령계와 연결된 문도 그대로다.

연우와 헤맨은 해변에 내려왔다. 여기 있는 정령석은 이곳에서 보관 해야 한다. 장비나 아이템을 만들 지 않고 정령석 자체로 가져가면 얼마 가지 못하고 평범한 돌로 변 해 버린다.

전에 연지에게 줬던 건, 속성력 을 강화해 섭취할 수 있도록 가공 한 소비 아이템이었다.

“최상급으로 몇 개 챙겨서 ‘정신’ 에 올인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보자.”

헤맨은 바로 이해했고 연우와 함 께 질 좋은 정령석을 주웠다. 좋은 장비와 아이템은 좋은 재료에서부 터 나온다.

요리나 제작이나 다를 게 없었 다.

연우는 오랜만에 제작에 열중했 다.

정령석을 이용한 장비나 아이템 은 대부분이 정령 친화력이나, 속 성력에 치중돼 있다. 연우가 착용 했던 팔찌도 ‘정신을 맑게’ 하는 정 도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는 템발이라는 걸 보 여줄수 없지.”

누군가는 장비에 의존하는 것보

다 본체의 힘을 키우는 게 현명하 다고 한다.

연우는 그들보고 말한다.

‘쓸데없는 개소리네.’

아스가르드에선 장비가 전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얼티밋 검 하나 착용하면 공격력이 두 배 이 상. 마력은 세 배 이상에 스킬 단 계까지 올라간다.

연우가 전성기에 사용했던 [GOD] 등급의 장비?

사실 지금 연우가 가진 식스 클 래스 마스터의 힘은 [GOD] 등급 장비를 착용했을 때의 10% 정도뿐 이 되질 않을 거다.

그래, 만약에 장비가 중요하지 않다고 쳐 보자.

그런데 본체의 힘을 한계까지 키 웠다면?

그 한계를 돌파하는 데 장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우는 기꺼이 장비에 의존할 생 각이 있었다.

“자, 완성했다.”

정력석을 이용한 장신구다.

하지만, 정력에 관한 모든 옵션 을 제거하고 정신력에만 을 인했다.

연우는 몇 번의 시도와 연구 끝 에 특수 능력에 필요한 소모적 요 소를 ‘정신력’이라고 명명했다.

[순수한 정령의 가호(전설)]

설명 : 정령의 섬에서 공수한 최 상급 정령석을 무속성으로 가공했 다. 모든 요소를 버리고 ‘정신력’에 만 집중해 만들어진 반지.

[불타는 정신의 소요(해攝)(전 설)]

설명 : 명인(名人)에 오른 대장 장이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팔찌. 최상급 불의 정령석과 최상 급 용광로의 불의 힘이 깃들었다.

이런 식으로 몇 개를 만들었다.

순수한 정령의 가호는 연우가 직 접 만든 거고 불타는 정신의 소요 는 요섭이. 추가로 세 개의 반지는 헤맨이 마법으로 제작했다.

연우는 순수한 정령의 가호를 혜 영에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직접 끼웠다.

“난 왜 하나야? 그것도 네가 만 든 걸?”

딱 봐도 무난해 보이는 건 연우 가 만든 거였고 나머지는 연우가 만든 것보다 화려하고 좋아 보였다.

“이런 장비에 너무 의지하면 안 돼. 그건 좋지 못한 습관이지.”

“…… 헐, 너는? 아니. 내가 이런 걸 꼭 달라는 건 아닌데. 네가 그 렇게 말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묻는 거야.”

“난 특수 능력이 연구용이고 서 브일 뿐이지만, 너에겐 세컨드 스 킬이기 때문이지.”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혜 영이 스킬이 마법뿐이었던 건 아니 지만, 두 번째 마스터를 노리는 스 킬은 [공간]으로 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렇게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는 말투를 사용하니, 어이가 없고 짜증이 날 수밖에.

“후, 할 말이 없다.”

“흐흐. 그럼 수고.”

혜영은 그런 연우의 뒤통수를 노 려보곤 훈련을 시작했다.

연우도 마찬가지였다.

염력이라는 게 꽤 단순하고 별 힘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우가 직접 만나 본 염력 능력자 는 다른 특수 능력자보다 훨씬 강 했다.

‘이렇게 움직였지.’

염력이라는 건, 그 물건에 직접 물리적 힘을 작용하는 거다. 그러 니까 허공에 보이지 않는 손을 사 용하는 거랄까.

게다가 놀란 건, 마력에도 저항 이 없다는 거였다.

‘내가 가진 보이지 않는 손은 마 법이나 마법체에 물리적 힘을 발휘 할 수 있지.’

그러려고 배운 거고 그게 큰 장 점이지만, 단점도 된다.

마력으로 만든 실드에 막힌다는 거다. 물론, 연우야 힘으로 부수면 된다지만, 그런 실드도 저항 없이 통과해 영향력을 끼치는 염력은 탐 이 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일인 거다.

“혜영, 이거 한 번만 해 보자.”

연우가 혜영에게 공간이라는 특 수 능력을 배우게 한 것은 실험이 필요해서 였다.

“염력과 공간 능력이 서로 영향 을 끼칠 수 있는지.”

엄밀하게 [염력]과 [공간]의 성질 이라면 서로 영향이 있을 수가 없 었다. [염력]은 ‘어떤 물체’에 물리 적 힘을 가하는 것이고 [공간]은 ‘어떤 물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 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서로의 능력을 저지할 수 있 어.”

연우의 염력을 혜영의 공간이 막 을 수 있고, 혜영의 공간을 연우의 염력이 저지할 수 있다.

“역시 배우길 잘했어.”

정말 혜영의 말처럼 그런 적을 만나면 바로 목을 날려 버리면 된 다. 사실 염력이나 공간처럼 발현 직전까지 알아내기 힘든 것도 연우 는 ‘심안’을 이용해 알아챌 수 있 다.

하지만, 정말 만약에.

특수 능력으로 투 클래스 이상의 적을 만난다면?

아니면, 연우와 같은 마력 계열 식스 클래스 마스터를 만난다면?

이 특수 능력을 배워 키운 게 신 의 한 수가 될 거다.

연우와 혜영은 의욕을 가지고 훈 련했다.

하지만 그건 몇 시간 가지 못했

“아, 많이 했다.”

연우가 지쳤다며 자리에 주저앉 았다.

“…… 우리 두 시간 한 거 알 아?”

“알지, 그 정도면 많이 한 거 아 니야?”

“…… 나 던전에 있을 때, 하루 에 3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는 건 알고?”

“음, 몰랐네?”

연우는 정말 몰랐다.

그렇게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 니기 때문이다.

하긴, 게임이라면 하루에 10시간 이상 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현 실에서 무언가를. 특히, 몸 쓰는 걸 몇 시간 이상 집중해 해 본 적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몸을 쓴 건 아 니지만, 서 있었으니까 몸을 썼다 고 생각하는 연우였다.

“하여튼, 밥이나 먹으러 가자.”

“…… 후, 내가 졌다.”

연우는 재미있다며 웃었고 혜영 은 이런 게 바로 금수저와 재능충 인가 하면서 투덜댔다.

식당엔 수이니가 파스타를 준비 하고 있었다.

“리젤! 밥 먹고 메리쉽한테 가 자.”

“네, 알겠습니다.”

“수이니는 이따 나랑 홍시 좀 따 서 디저트 좀 만들고.”

“좋지.”

“헤맨은 오늘 하늘 섬에서 가져 온 블루베리 씨앗 좀 챙기고.”

“네, 알겠습니다.”

“오늘 이것저것 할 게 많네.”

연우에게 큰 힘을 위한 훈련은 아주 작은 일과에 불과했다. 연우 는 먹고 노는 걸 좋아하는 농장 주 인이니까.

전 세계는 혼란의 시기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는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일반인과 사 용자의 사망자는 조금씩, 계속 늘 고 있었다.

그래도 연우가 푼 스크롤과 무기 덕분에 사용자의 수준은 대폭 올랐 다. 그 힘으로 인류는 계속 버티며 밀어붙였고 자연히 딸려 오는 몬스 터 부산물과 전투 경험으로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로?”

“네, 협회장님. 지금 아프리카 상 공에 어마어마한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남아 있는 7개 의 둥지를 제물 삼아서요……

이제 차기 한국 지부 협회장이 될 민아의 말에 협회장 이진철은 미간을 꾹 눌렀다.

“앗, 터졌잖아.”

농익은 여드름 진액이 튀었다.

“…… 여기 휴지요.”

“…… 고맙다.”

잠깐 이상한 곳으로 말이 샜다.

이진철은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7개의 둥지 게이트의 구동 에너 지로 사용한다. 그게 아니면 7개의 둥지가 합해지는 현상인 건가? 뭔 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상상 이상의 강력한 적일 거란 사 실이다.

“이건 우리끼리 해결할 수 없 어.”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안다.

“어? 협회장님. 지, 지금 당장!”

민아가 급하게 홀로그램을 올렸 다. 벽면에 환하게 펴진 홀로그램 영상엔 아프리카가 보였다.

“뭐야, 벌써 터진 거야?”

“그런 것 같습…… 꺄!”

민아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

렸다.

상상도 하지 못한 거대한 마력의 결집.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한 명의 여성과 수백의 마족들.

쿠아아아앙!

등장과 함께 거대한 폭발을 일으 켰고 그건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초고성능 카메라를 단번에 부숴 버 린 것이었다.

지직. 지직.

홀로그램의 영상은 거기까지였 다.

“…… 혀, 협회장님.”

“방금 내가 본 게 이상한 게

이진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거대한 폭발. 중앙에 선 여성에 게 뻗어 나간 그 폭발은 주변의 지 반을 모조리 뒤엎고 둥지, 숲, 몬스 터, 산, 건물. 모든 걸 한순간에 재 로 만들었다.

그 정도 파괴력이라면 핵에 맞먹 는. 아니, 그 이상?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아프리카는 지옥에서 죽 음의 땅으로 변했을 거란 거고, 셰 이크의 계획은 백지화됐을 거란 거 다.

두웅. 두웅.

구으으응.

그때, 육중한 진동이 발밑을 훑 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폭발력 이 지구 맨틀을 흔들었다는 증거다.

“빌어먹을.”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아프리카 에 가는 게 맞을까, 아니면 이곳에 남아서 경과를 보는 게 좋을까?

사실, 속으로 기대가 됐다.

이번에도 연우가 막아 주진 않을 까?

“제발-

그 시각, 농장에선 연우와 리젤 이 여유롭게 메리쉽의 털을 깎고 있었다.

“응? 무슨 폭발이지?”

불쑥. 옆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연우 님!”

“헤르메스.”

“네, 지금 다른 대륙에 제 여동 생이 나타났습니다!”

“이 폭발?”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알던 동생보단 훨씬 강하지만……

“음, 헤맨 분신하고 같이 가 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옆 허공에서 헤맨이 불쑥 나왔고 분신을 만들어 헤르메스와 함께 보 냈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다가 갸우뚱 하고는 메리쉽의 털을 깎는 것에 집중했다.

“이 털을 결대로 깎는 게 가장 중요해. 최대한 손상이 없게.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여기선 이렇 게!”

농장의 하루는 그날도 그렇게 평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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