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편_ 에르메스(1)
붉은 숲의 일족, 호르드란 족장.
그는 헤맨의 분신에게서 스킬 북 을 하나 받았다.
[스킬 북 : 미래 예지(특수)]
설명 : 단편적인 미래를 보여 주 는 스킬이다. 하지만 스킬 사용은 아주 간헐적이며 비연속적이다.
(단, 전투 스킬을 전혀 익히지 않 은 얼티밋(Ultimate) 등급의 관망
(觀望) 스킬을 지니고 있어야 한 다.)
호르드란은 [진실의 눈]이라는 얼티밋 등급의 관망 스킬이 있었다. 그리고 이 스킬은 [진실의 눈]과 상성이 딱 맞는 상위 등급의 스킬 이었다.
연우의 선물이었고 호르드란은 기분 좋게 받아서 사용했다.
그리고 며칠 내내 꿈을 꿨다.
끄아아아악.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이건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 어!
끄으으윽!
휘이잉. 콰아아앙!
쿠우우웅.
‘종말.’
그건 세상의 종말이었다.
마계의 전사들이 지구를 습격하 고 마족과 마왕이 땅을 오염시킨다. 마신이 등장하며 지구 전체는 검게 변한다.
하지만 다음 날.
소리는 같았지만, 배경이 달랐다.
마족들이 죽어 간다.
각종 몬스터들의 의해서였다.
‘ 뭐지?’
자세히 보니 그건 므깃도의 생명 체들이 었다.
그 중앙, 하늘 위에 오롯이 선 한 명.
그건 신연우였다.
예지의 꿈은 단편적이었으며 간 헐적이었다. 비연속적이며 앞뒤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아니, 지구는 평화로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 정해졌던 미래가 바뀐 것일 까. 멸망했다가 되찾은 것일까. 중 요한 건, 지구의 미래는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호르드란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 다.
하긴, 센느다. 신조차 두려워했다 는 므깃도의 주인.
이런 미래 예지 스킬? 솔직히 딱 히 쓸 일도 없다. 앞으로 지구는 위험할 일이 없으니까.
신연우가 인류에게 분노하지 않 는 이상에 말이다.
호르드란은 가끔 이 스킬로 기상 을 예측해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생 각이 문득 들었다.
꺄르르.
삼미호는 너무 행복했다.
가끔 예전 생각이 나면 두려움에 흠칫 떤다. 특히, 악몽을 꿀 때는 더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래 봐야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얼굴이 제대로 기 억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검은 마력을 뚝뚝 흘리는 존재가 어머니에게 들러붙어 갈기갈기 찢 어 놨다. 산 전체를 울리는 어머니 의 비명에 귀를 틀어막았던 게 마 지막 기억이었다.
이후에 어떻게 깨어났는지 기억 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몇 개월을 숲에서 숨어 살았다. 기어이 살아남고 굶주리며 움직인 곳이 바로 여기였다.
처음엔 무서웠다.
붉은 머리의 여자가 뒷덜미를 확 잡아챈 것이었다. 바로 뒤까지 왔 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이대로 죽는 줄 알았다.
그 여자는 삼미호를 어디론가 데 려갔다.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살아 있는 붉은 꽃을 가진 나무 안쪽은 환상적이었다. 향긋한 풀 냄새는 물론이고 블랙 카우의 울음에 생기가 가득했다.
이상하게 몸에 힘이 솟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졌다.
그때 신연우라는 남자를 만나고, 삼미호는 순간순간이 모두 행복했 다. 세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라는 걸 처음 깨달은 거다.
“흡!”
삼미호는 살금살금 움직이다 멈 칫했다. 지붕 위로 몰래 다가가 무 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연우를 놀려 주려 한 건데, 딱 들켜 버린 것이 었다.
연우는 그런 삼미호가 귀엽다는 듯 웃고는 작업에 열중했다.
폴짝.
삼미호는 가볍게 점프해 연우의 어깨에 안착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연우의 어깨는 너무나 포근했다.
“뭐하는 거예요? 이거 소린 아니 에요?”
“이거 아는구나.”
“그럼요! 저 삼미호예요!”
연우는 그 말에 살짝 웃으며 소 린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잡아 움 직였다.
후두두둑.
소린의 주변으로만 비가 내린다.
“나무를 하나 심으려고.”
연우는 촉촉이 젖는 땅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살짝 두드린다. 소린 이 내리는 비는 많은 마력을 함유 하고 있어서, 강물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좋다.
이 녀석이 공격성만 없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무슨 나무예요?”
“이걸 봐.”
연우는 살짝 뒤로 물렀다.
성장 촉진제를 뿌리고 마력을 주 입한다.
드드득 ?
땅이 울리며 지반이 살짝 솟았 다. 땅속에 뿌리가 깊게 박힌 거다. 몇 초가 지나고 젖은 땅에서 무언 가 솟아난다.
구구구궁.
나무는 순식간에 성장한다. 어린 팔뚝, 굵은 허벅지를 넘어 성인 몸 통만 한 두께까지 성장했다. 높이 는 대략 15m.
작은 손바닥만 한 나뭇잎이 돋아 났다가 작은 봉우리가 생기며 점점 시든다. 다시, 봉우리가 점점 커지 더니 주황색으로 물든다.
“자, 여기까지.”
조금 더하면 완성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연적으로 익게 두는 것도 좋다.
“이게 바로 감이야. 곧 홍시가 될 거고.”
“홍시? 그 주황색의 말랑말랑하 고 달달한 거요?”
“잘 아네?”
“그럼요!”
구미호 같은 경우에 선술을 타고 나는 것처럼 어느 정도의 지식을 타고난다. 인간이 보기엔 신기하겠 지만, 그들에겐 이게 당연한 거였 다.
“마력도 잔뜩 머금고 있어서 몸 에 좋을 거고.”
“와! 좋아요! 저 먹고 싶어요!”
“지금은 떫을 거야. 며칠만 두고 보자.”
“흐잉. 알겠어요.”
연우는 그런 삼미호를 어깨에 두 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별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금방 배가 고팠다.
참 신기한 게, 위장이라는 건 먹 으면 먹을수록 는다는 거다. 연우 는 살도 찌지 않고 소화도 빠르다. 게다가 음식은 맛있고 술이 함께하 니 양이 계속 늘 수밖에.
“오늘은 요리도 내가 해야겠다.”
연우는 손을 걷어붙이고 주방으 로 들어갔다.
“오늘은 수육이다.”
가장 먼저 쌍뿔 멧돼지 삼겹살 부분을 꺼내 해동했다. 보통 고기 고 일반적인 냉, 해동 방식이었다 면 퍽퍽해질 우려가 있었지만, 이 곳에선 걱정할 게 아니었다.
수육은 어렵진 않지만, 잘못하면 잡내가 날 수 있다.
스윽.
마왕의 뿔로 만든 식칼로 팔뚝 정도로 나눈다. 꽤 양이 많았는지, 세 덩이가 나왔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두꺼운 쌍뿔 멧돼지 삼겹살을 넣고 된장과 마령 석의 잎을 한 장 넣어 준다. 처음 엔 몰랐는데, 마령석 나무의 잎이 상상 이상의 청량함을 지니고 있었 다.
그렇게 잡내는 사라지고 파와 양 파를 통째로 넣었다. 적당히 익었 다 싶어서 불을 살짝 줄여 준다.
이 정도면 된다.
조금만 더 익히고 꺼내 썰면 되 는 거다.
역시, 수육엔 무말랭이와 새우젓 이다. 하지만 연우는 겉절이와 함 께 먹는 걸 좋아한다.
마침 배추가 있었기에 두 포기를 꺼냈다.
겉절이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썬 다음 고춧가루와 마늘, 소금, 설탕, 간장, 액젓 등을 넣어 버무려 준다. 연우는 깔끔한 겉절이를 좋아해 이 상의 다른 재료는 넣지 않았다.
“오, 연우가 요리하네?”
“오랜만이지?”
“전장에서는 항상 연우랑 내가
같이 했었는데.”
수이니는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 다. 검술 수련을 하고 온 모양이었 다.
“오늘은 그 바벨이라는 드워프랑 함께 먹자고. 인사도 할 겸.”
“좋아. 씻고 오면서 다 불러올 게.”
연우는 다 익은 수육을 꺼내 썰 었고 겉절이도 정갈하게 담았다. 한쪽에 새우젓을 매운 걸로 하나, 보통으로 하나 준비했다.
접시를 테이블로 옮기기 시작할 때, 농장 식구들이 모이기 시작했
오랜만에 다 모이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식구가 온 기념이라 그런 다. 삼미호도 있고 바벨도 있다. 바 벨은 나중에 돌아갈 친구지만, 있 는 동안은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
요섭, 바벨이 사이좋게 걸어 들 어왔는데 바벨의 볼이 홀쭉하게 들 어갔고 다크서클이 깊게 패 있었다.
“괘, 괜찮은 거 맞죠?”
“아? 네! 괜찮습니다! 이렇게 열 정적으로 망치를 휘둘러 본 적이 언제인지. 생명력까지 불태우는 느 낌이었습니다.”
아마 느낌뿐만이 아니라, 정말 생명력이 소모됐을 거다. 요섭은 그런 바벨을 보며 뿌듯하다고 웃었 고 연우는 불쌍하게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늘 담금주를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와! 맛있게 먹겠습니다!”
“우와아! 이건 뭐야!”
조금은 더 시끄러워진 것 같지 만, 가끔 환기도 필요한 법이었다.
연우와 식구들은 새벽까지 술잔 을 기울였다.
혜영은 연우에게 [공간]이라는 특수 스킬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스킬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것에서 까무러치게 놀랐다는 건,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을 거다.
공간이라는 스킬은 다루기가 상 당히 까다로웠다.
그나마 혜영이 공대라서 한결 나 았다. 아무래도 공간에 대한 정의 는 머릿속에 있으니까. 하지만 직 접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 다.
“아, 머리 아파라.”
참 특이했다. 마력이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닳는 것도 아 니다. 그런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단순히 머리를 쓰는 공부와는 또 뭔가 달랐다.
아직도 1단계다. 작은 공간의 왜 곡을 만들어 날아오는 돌을 빗겨 낼 수 있는 정도. 게다가 그걸 몇 번 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얍! 얍!”
옆에선 연우가 작은 돌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하다가 짜증이 불쑥 났는지 주먹 으로 돌을 으깨 버린다. 그러다 한 숨을 푹 내쉬고 다른 돌을 찾는다.
“돌이 남아나질 않겠다.”
“어후, 답답해 죽겠어.”
“그러니까 이걸 왜 하는 건데?”
“어떤 원리인지 알아야 할 거 같 아서. 나중에 적으로 만나면 어떡 해.”
“흠. 아마 이런 힘을 쓰기도 전 에 적의 머리가 날아가지 않을까?”
진심이었다. 연우가 누군가에게 당할 일이 있을까? 아무리 다른 힘 이라도 말이다.
“…… 혹시 모르는 거니까.”
연우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헤맨을 불렀다.
“네, 주인님.”
“혹시 정신을 맑게 유지하거나, 스트레스 저항, 뇌 과부화 저항에 도움이 되는 장비가 있을까?”
“흠.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곧 헤맨이 아공간에 다녀오면서 10개의 팔찌를 가지고 나왔다. 모 두 전설급인지 진한 오라가 풀풀 풍겼다.
연우는 그걸 보다가 팔뚝에 모조 리 껴 버렸다.
그러곤 앞에 있던 돌을 올리기 시작했다.
휙! 휙!
아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돌 은 너무나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었 다.
“오! 이거 괜찮다. 머리가 하나도 안 아파!”
“저 사기꾼 새끼.”
연우가 낀 팔찌의 옵션은 대부분 정신을 맑게 유지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원리가 다르다.
가장 크게 세 가지 정도가 된다.
첫 번째는 마력의 흐름을 원활하 게 분배하며 마력으로 받는 스트레 스를 줄여 주는 것.
연우는 가장 먼저 이 장비를 빼 냈다.
“역시, 별로 효과가 없어.”
연우가 염력으로 느끼는 부담은 그대로였다.
두 번째는 힐링과 같은 원리다. 머리에 가중되는 물리적 스트레스. 그러니까 호르몬이나 뇌 신경을 회 복시켜 주는 것.
“이건 살짝 효과가 있는 것 같 고.”
세 번째는 그냥이다.
정신을 맑게 해 주는 것.
“오, 역시.”
이게 답이었다.
연우는 마지막에 남은 팔찌 세 개를 자세히 훑었다.
“헤맨, 이건 무슨 인첸트가 있는 거지?”
“정신 계열 마법입니다. 마력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고 정신에 바로 효과를 주는 겁니다. 재미있는 건, 주재료가 정령석입니다.”
“정령석?”
알고 있는 현상이긴 했다.
정령석은 정령과의 친화도를 올 려 주고 속성력에도 관여한다. 게 임 설정상, 친화도나 속성력이라는 건 타락하지 않은 영혼에 강인한 정신력이 밑바탕돼야 한다는 거였 다.
“흐음. 그래?”
“정령석을 모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