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편. 창조 경제란(2)
유럽엔 미국이나 한국처럼 세계 사용자협회 유럽 지부라는 게 존 재한다. 그것 말고도 수많은 단체 가 존재한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단체가 하 나 있다.
레드 문(Red Moon).
영국과 이스라엘. 중동의 셰이 크가 서로 협력해 만든 단체다. 무력 사용자가 주가 되지만, 무력 자체는 다른 단체보다 뛰어나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기술력은 세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특히나, 그들이 만든 무기와 방 어구는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 혀 있다. 몬스터가 착용하던 장비 를 그대로 입는 시기를 멱살 잡고 억지로 끌어올린 것도 그들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외계인을 납치 해서 고문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레드 문은 드워프를 영입했다.
그것도 그라니아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를 말이다.
그라니아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바벨은 입속에 침이 폭발했다. 눈 앞에 놓인 치즈 가득한 피자와 보 기만 해도 청량감이 터져 나가는 라거 한 잔.
꿀꺽.
목젖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나, 이, 이거……
“바벨 님, 잠시만 참아 주세요.”
한 명의 드워프와 네 명의 사용 자다. 넷 모두 검은 정장을 입었 는데 자유로운 용병보다는 군이나 특정 조직에 몸담은 것처럼 보였 다.
“와서 앉으세요. 먹으면서 이야 기하죠.”
연우가 웃으며 말했다.
바벨은 입을 헤벌리며 이미 발 을 움직이고 있다.
옆에 선 정장의 사내는 고개를 젓는다.
“일단, 알겠습니다.”
세 명이 뒤로 빠지고 한 명이 앉는다. 바벨이라는 대장장이는 이미 자리에 앉아서 치즈가 줄줄 흐르는 시카고 피자를 입속에 넣 었다.
“뜨거울 텐데.”
연우가 경고했지만, 바벨은 이 성이 없었다.
“컥! 커헉. 컥.”
뜨거운 연기가 폴폴 나는데 끝 까지 뱉지 않고 먹는다. 그러곤 몇 번 씹다가 라거를 한 모금 마 신다.
“캬아. 진짜. 이건, 정말.”
연우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수이니 도 뿌듯해 했다.
“일단,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레드 문의 대외협력부장이라는 직 책에 있고 지금은 바벨 님 임시 경호팀장을 맡은 데이비드라고 합 니다.”
“반갑습니다. 농장 주인, 신연우 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보다 저회가
“그 전에.”
연우는 말을 끊었다.
“저분들도 피자 하나씩 먹으면 서 얘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어젠 미국에서 다녀갔는데, 종 일 서 있던 경호원을 신경 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었다.
“그게 저희 규정상 모두 한 음 식을 먹을 순 없습니다.”
“당연히 연우 님을 의심하는 게 아니고……
“아, 알겠습니다. 일단, 하나씩 먹도록 하겠습니다.”
침묵이라는 건 생각보다 무섭 다.
기어이 경호원 세 명이 와서 피 자 한 조각씩 입에 물었다. 표정 이 확 변했는데, 당황, 어색, 환 희, 감동. 이 정도랄까.
그 모습을 본 데이비드가 이상 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하나 드셔 보세요. 음식 을 두고 딴짓하는 건 요리한 사람 에게 예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가 피자를 집었다. 옆 으로 치즈가 쭉 늘어나며 트러플 향이 확 덮친다. 옆에서 바벨이 데이비드를 향해 엄지를 척 세운 다.
쥬릅.
내고 싶어서 낸 소리가 아니다. 옆으로 치즈가 흐르기에 본능적으 로 흡입한 거다.
“ 아.”
감탄이 다.
이 정도로 맛있는 치즈 피자는 유럽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옆에 있던 라거 한 잔은 최고였다.
“크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요?”
“네, 그러죠.”
연우는 피자 한 입 먹고 라거도 한 모금 했다.
“실은, 바벨 님이 이곳에 반드 시 와야겠다고 억지를 부렸습니 다.”
데이비드는 이곳에 대해 아예 모르진 않았다. 미국 지부 협회장 스미스, 한국 지부 협회장 이진철, 느와 이그녹튼의 해서웨이까지.
모두 한 입으로 말한다.
절대로 선을 넘지 말아라.
그들은 ‘아무나’가 아니다. 위원 회나 셰이크를 제외하고 그들에게 함부로 할 사람은 없다. 설사 그 게 한 나라의 수장이라도 말이다.
그들의 힘은 그 정도다.
핵보다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갖고 한번 레이드를 가면 국가 예 산이 출렁거린다. 그들이 없었으 면 도시 몇 개는 물론이고 나라의 존속까지 위험했을 거라 말한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지 말아야겠다 고 다짐했다. 그들의 말을 다 믿 어서가 아니다. 작은 농장에 있는 사람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할 까.
‘그들’의 눈밖에 날까, 그게 걱 정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한 후에 생 각이 바뀌었다. 남들보다 감이 좋 다는 데이비드다.
이곳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농장이다.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니까 조용히 잠만 자는 드래곤의 입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었다.
긴장으로 올라온 침을 꿀꺽 삼 키고 바벨을 불렀다.
“바벨 님?”
피자와 맥주에 빠져 헤어 나오 지 못하는 바벨을 보고 데이비드 가 툭 건드렸다.
“응? 아, 그래. 잠시만.”
바벨은 남은 피자를 한입에 넣 고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먹었다.
마무리로 라거 한 잔을 한 번에 비운다.
“크윽. 맛있다.”
“맛있죠. 이건 없어서 못 먹는 겁니다.”
“정말, 여긴 대단하네요. 크흠. 하여튼 그 영상 봤습니다.”
“ 영상?”
“튜브 영상이요. 그 대장간 나 오는!”
바벨은 나이가 꽤 먹은 듯 보였 는데, 연우에게 존댓말을 했다. 게다가 심안으로 보이는 바벨은 원 클래스 마스터. 두 개 스킬이 중상급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대장장이로 꽤 대단 한 경지에 오른 거다.
“대장간에 관심이 있나요?”
“만나고 싶어요!”
“네?”
“그분! 그 엄청난 장비를 만들 던 분이요!”
드워프라는 종족이 원래 성정이 급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지는 몰랐다. 아니, 이 드워프가 조금 더 그러는 걸 수도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외모보다 는 꽤 어릴 것 같다는 느낌도 지 울 수가 없었다.
“ 왜요?”
“장비도 보고 싶고, 어떻게 만 들었는지도 물어보고 싶어요!”
드워프 바벨은 술 때문인지, 흥 분했기 때문인지 볼이 붉게 올라 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데이비드 는 한숨만 내쉬었다.
연우는 기분 좋게 웃었다.
“얼마든지요. 바벨 님만 가고 나머지는 얘기 좀 하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레드 문이라면 셰이크에 게 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곳 아닌 가. 아마 돈은 차고 넘칠 거다.
연우는 후름에게 바벨의 안내를 부탁했다.
“여긴 참 신비로운 곳이군요.”
밤이면 더 그렇다. 반도 나무가 빛을 뿌리고 사방엔 마력 반딧불 이 날아다닌다. 한쪽엔 선술을 쓰 는 삼미호가 있고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강아지 두 마리도 있다. 한쪽엔 작은 울타리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몬스터가 바글거렸 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바벨 님이 이곳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길 원하는 겁니까?”
바벨의 의사가 아닌 데이비드의 의사를 묻는 거다.
“바벨 님은 저희 레드 문 최고 의 기술자입니다.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손해지만, 그분의 기술력이 더 좋아진다면 더없이 좋겠죠.”
“그럼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한 다는 것도 알겠고요?”
“그럼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 다.”
역시 이래서 정체를 숨기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보여 주는 게 낫다. 괜히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 면 또 힘을 보여 주거나 협박하거 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잘 통해서 좋네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술이나 한잔 더 하죠.”
연우가 기분 좋게 웃으며 피자 를 입에 물었다. 치즈의 고소함과 트러플 특유의 향이 올라왔다.
이게 바로 드워프를 보조 인력 으로 쓰면서 돈까지 버는 창조 경 제가 아닌가.
요섭은 오늘도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에게 망치와 모루는 삶 이었다.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그럼 어느새 하나의 작품이 돼 있었다.
완성
그리고 그게 참 즐거웠다.
그런 요섭은 고민이 하나 있었 다.
무기점에 내놓을 무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 지부 협회 에서 한 보따리를 사 갔고 미국에 서도 사 갔다. 중간에 전설 등급 의 장비를 껴서 그 정도로 끝났 지, 아래 등급만 샀으면 무기점이 텅텅 비었을 거다.
그렇다고 장비를 대충 만들 순 없었다.
아니, 대충 만들어도 전설급이 었고 정성을 들이면 얼티밋급이 나온다. 아직 연우가 전성기에 입 었던 [GOD] 등급의 장비까지 만 들 순 없어서 더 문제였다.
성장을 위해 더 좋은 장비를 만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아.”
차라리 헤르메스처럼 농장 관리 스킬을 배워 볼까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당기지 않았다. 자신은 드 워프였고 그 본성은 어딜 가지 않 는다.
“요섭!”
대장간에 후름과 처음 보는 드 워프 한 명이 보였다.
“드워프?”
“오오! 그분이시군요!”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사용 하는 걸 보니, 꽤 괜찮은 사람 같 아 보였다. 대충 봐도 300살은 넘 어 보이는데 말이다.
“오오! 이 망치! 오라가 느껴집 니다. 오오! 이 모루! 여기선 이 럴 때 이렇게 외치죠. 대바악!”
후름이 뒤에서 피식 웃었고, 요 섭은 당황했다.
생긴 건 꼭 아저씨처럼 생겨서 말투가…….
“제 드워프 인생 80년 동안 이 런 작품은 처음입니다!”
드워프의 보통 수명은 500년 정도다. 요섭이야 쓰리 클래스 마 스터가 되면서 800년 이상은 쉽 게 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저 앞에 드워프는 이 제 ‘고작’ 80살이라는 것이다. 인 간의 나이로는 대충 20대 초중반. 그런데 얼굴은 거의 40대인 거다.
“…… 존댓말을 하는 이유가 있 었네.”
“네? 그건 그렇고 이건 뭘 만드 는 중이었습니까? 검? 검 맞군요. 이건? 아다만티움? 그리고 미스릴 과 오리할콘. 거기에 이건 뭐죠?”
요섭은 정신이 없었다.
후름이 그런 요섭에게 귓속말했 다.
“여기서 한동안 배우고 싶다는 것 같은데? 연우가 보조로 써먹으 라고 했어.”
요섭의 얼굴이 펴졌다.
딱 봐도 이제 원 클래스 마스터 가 된 어린 드워프다. 가르칠 건 많고 시킬 것도 많다. 안 그래도 무기점에 장비들이 부족해지는 판 국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무기점’이라 는 이름은 잘못된 것 같았다. 무 기점이 아니라 ‘장비 상점’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시간 끌 것 없지. 한번 해 보 자.”
요섭은 아다만티움 한 자루를 꺼냈다.
“허억. 무슨 아다만티움이 이렇 게 많습니까? 전 세계에서 싹 끌 어모았습니까?”
“겨우 이걸로 놀라면 안 될걸?”
요섭은 씨익 웃으며 망치와 모 루 한 세트를 줬다. 붉은 오라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전설 등급의 ‘요섭의 불타는 열정’이라는 장비 다.
예전에 보조가 생긴다는 상상 아래, 생명이 불타 꺼질 때까지 쉬지 말라는 의미로 만든 세트였 다.
“오오오! 힘이 마구 솟습니다! 이게 바로 전설급 장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 다!”
“자, 휘둘러라! 재료는 끝도 없 을지니!”
“네에에! 갑니다! 마구 두드립 니다!”
요섭은 가장 먼저 아다만티움을 던져 줬다. 용광로엔 마력이 공급 되며 강렬한 불길이 치솟았고 바 벨이라는 드워프는 그 앞에 서서 붉게 충혈된 눈을 부라렸다.
“으아아아!”
탕. 탕. 탕.
바로 두드렸다.
처음은 아다만티움, 다음은 합 금 순서대로 간 다음. 만년한철, 드래곤의 비늘, 마왕의 뿔 순서대 로 줄 거다.
‘좋아. 이대로면 팔 만한 장비 수급은 문제가 없겠군.’
꽤 오랫동안 요섭을 괴롭히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됐다.
그렇게 그날부터 대장간의 불은 꺼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기괴 한 비명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