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편? 힘을 되찾다(3)
므깃도는 하나의 대륙이다.
산, 바다, 빙하, 사막, 숲은 물 론이고 하늘 섬, 지저(地底), 가 스 필드 등등. 수많은 마법의 세 계가 펼쳐져 있다.
사실상 하나의 ‘세계’ 그 자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서쪽 늪, 회색의 땅 ‘왕의 무 덤’이라는 곳엔 세상을 삼킨 뱀 ‘요르문간드’가 있다.
“후, 주인님은 언제 깨어나실 까.”
요르문간드의 직속 부하이자 가 디언인 세이지가 중얼거렸다. 그 의 얼굴에 돋은 비늘이 그가 뱀의 일족이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주인님의 주인님. 그러니까 이 므깃도의 주인인 센느가 이곳에 온 지 3년이 더 넘었다. 이후로 요르문간드는 센느가 오기 전에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 며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센느가 오면 요르문간드는 고분 고분 따라 나간다.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나면 만신 창이가 돼 돌아오곤 했다. 무려 요르문간드다. 세계를 삼킨 뱀이 자 신의 자식이라는 요르문간드!
솔직히 왜 그 인간을 따라다니 면서 그렇게 다치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므깃도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요르문간드보다 강한 걸 까?
‘분명 인간은 뒤에 있고 주인님 만 싸운 걸 거야.’
세이지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 다.
그런데 요르문간드가 기세를 누 르지 않으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할 정도다. 최소 포 클래스 마스 터일 거다. 어쩌면 그보다 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보다 강하다 고?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주인이기 에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닐 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안 그래도 옆 동네 백호들이 난린데.”
머리가 아팠다.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인간이 나타나질 않으니 이곳저곳에서 전 쟁이 벌어진다. 이때를 놓치지 않 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던 거다.
분명 동쪽 지대에 있어야 하는 백호들이 늪의 경계를 침범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오려는 거지?’
세이지는 직접 그쪽으로 날아갔 다.
거대한 뱀과 작지만 빠르고 강 한 백호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 였다. 세이지가 난입하면 한 번에 뒤집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 다.
저쪽에도 세이지와 비슷한 수준 의 강자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 이다.
커허엉!
백호가 마력을 폭발시키며 뱀의 비늘을 파고든다. 뱀은 곧바로 몸 을 꼬아 백호를 잡아 보려고 하지 만 쉽지 않다. 독을 분사하고 마 법을 써 본다.
곳곳에서 그런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만이 아니다.
하늘 섬의 새들도, 북쪽의 얼음 정령들도, 화산의 화염 종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전투가 일어난다.
이러다가 대종족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다.
“우리 주인님이 깨어나든지, 이 세계의 주인인 센느 님이 오든지 해야 할 텐데.”
센느라는 인간이 강한지는 모르 겠다. 하지만 각 종족의 수장들이 센느에게 복종하니 문제는 깔끔하 게 해결될 거다.
그때.
오싹.
구우우우우.
세이지는 고개가 홱 돌아갔다.
“뭐지?”
거대한 힘이다. 점점 폭발적으 로 강해진다. 므깃도 전체가 흔들 리고 기후가 바뀐다. 공간 자체가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도대체……?”
세상을 삼킨 뱀인 요르문간드도 이 정도 힘을 낼 수가 없다.
그리고 저 하늘.
이곳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 진 곳에서 솟는 유형화된 기세가 그대로 보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주인이다. 므깃도의 주인 센느.
그가 온 것이었다.
세이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서서히 상체가 기울어 졌다. 그가 오고 있는 걸 몸이 알 고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세이지뿐이 아니다.
전투 중이던 모든 종족이 동작 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그의 등장만으로 모든 종족의 전투가 멈췄다.
‘내 생각이 완벽하게 틀렸다.’
그는 주인이라는 이름으로 종족 의 장들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진정으로 강했고 종족의 장들은 그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었 다.
구우우웅.
그동안은 몰랐다.
이 정도일지.
그런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절대자이며 지배자이며 중 재자다. 신들의 마지막 전장이라 는 이 므깃도의 주인이 확실했다.
연우는 가장 먼저 요르문간드를 보러 왔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 냈다는 이유도 있지만, 연우가 얼 굴을 내밀지 않으면 계속 잠만 잘 거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호, 이 녀석 오랜만이네.”
연우는 회색 바닥에 대고 말했 다.
그때 땅이 진동했다.
구우우웅.
‘주인님?’
머릿속에 울리는 여성의 목소 리.
“그래, 나다.”
요르문간드는 눈을 떴다. 그 눈 동자는 노란색에 갈색 선이 그어 진 파충류의 눈. 얼마나 거대했는 지 연우가 그 눈의 1/10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간드야. 그새 또 컸구나.”
‘주인님인 것 같았습니다. 세상 이 바뀐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오 시지 않았던 겁니까?’
역시 요르문간드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겁니까?’
“자주…… 는 아니겠지만, 가끔 들를 수는 있을 거다.”
아스가르드에선 요르문간드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었다. 특히, 대규모 전투가 있을 땐 더욱 그랬 다.
‘언제나 기다리겠습니다.’
요르문간드와의 인사는 거기까 지였다.
이후로 동쪽 숲의 제왕 ‘백호’, 서쪽 하늘의 제왕 ‘주작’, 남쪽 화 산의 우두머리 ‘화염룡’, 북쪽 얼 음의 여왕 ‘실리너스’. 그리고 각 종 지역의 왕들까지 한 번씩 만났 다.
인사라면 인사였다.
얼굴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 주인이 돌아왔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므깃도의 주인.
절대자의 귀환이었다.
연우가 농장으로 왔을 땐, 손님 이 있었다.
“꺄아! 여기 대박. 이 수영장 뭐야?”
“이런 곳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 어! 마법사인 거지. 그것도 엄청 난 경지의 마법사.”
공중 수영장을 본 손님들의 반 응이 었다.
여자 5명이 놀러 왔는데, 암살 자 한소영의 추천으로 온 사람들 이라 더 챙겨 줬다.
오자마자 계곡에서 놀더니 식당 에서 밥을 먹고 옆에 있는 펍으로 가 술을 마셨다. 그 와중에 블랙 카우랑 아다만티움 슬라임을 보면 서 연신 ‘대박’을 외치며 감탄했 다.
그렇게 술을 먹고 9시가 됐을 때, 이자젤이 꺼낸 공중 수영장이 란 말에 이렇게 올라온 것이다.
“조명 봐. 이거 6단계 마력석
아니야?”
“오, 진짜네? 완전 똑같아. 여기 마법사 언니가 실력이 좋은가 봐.”
당연히 진짜 6단계 마력석이라 곤 생각하지 못했다.
“와, 수영장 바닥으로 농장이 보여!”
“저 나무 이름이 반도 나무랬 나?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저런 빛이 나오지?”
“저 게헨나르라는 나무도 마찬 가지야. 붉은빛이 너무 잘 어울린 다.”
풍경 사진을 찍고 반도 나무나 게헨나르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 다. 정신없이 예쁘다고 감탄한다.
연우는 그 모습에 뿌듯했다.
농장을 운영할 때, 손님들이 예 쁘다고 칭찬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여기 직원들도 너무 예쁘지 않 니? 완전 배운 줄.”
“카페 직원 오빠도 그렇고 울타 리 청소하는 오빠도 그렇고. 여기 진짜 미친 것 같아!”
“그렇지? 농장 주인 아저씨만 평범한데. 아니, 사실 조금 잘생 기긴 했는데 다른 직원이 너무 잘 생겨서 묻힌다.”
어느새 아저씨가 돼 버린 연우 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가장 어린데 말이다.
“식당 언니는 진짜 시크했어. 또 요리는 엄청 잘해!”
“맞아. 이런 시골 식당에서 살 몬테르랑 대왕 참치가 나올 줄이 야! 또 블랙 카우 스테이크는 어 떻고!”
“술도 맛있는 거 많더라. 루프 탑도 분위기 좋았고
역시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없 었다.
연우는 뿌듯한 웃음을 짓고 펍 으로 갔다. 그곳엔 일과가 끝난 이자젤, 후름, 혜영, 수이니가 모 여 있었다.
리젤은 게헨나르에 붙은 몬스터 를 정리하러 나갔고 헤르메스는 요섭과 함께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만 들었다.
“연우, 이제 대장장이까지 마스 터 하려고?”
“음, 된다면? 그렇게 되면 세븐 클래스 마스턴데, 그게 될지 모르 겠다.”
“진짜 연우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모르겠다니까. 남들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하기도 힘든데.”
“맞아. 진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난 벌써 800 년이나 정령을 부렸는데 말이야.”
연우는 게임 시스템 문제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혜영이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혜영도 세 엘프와 지내면서 이런 대화에 적응된 모양이다.
“모르겠네. 난 쉽던데.”
“…… 재수 없어!”
“그냥 툭하면 오르던데.”
정말 재수가 없었지만, 맞는 말 이었다.
연우는 다른 플레이어처럼 투 클래스, 쓰리 클래스를 넘어서는 게 어렵지 않았다. 플레이어 중 연우를 제외하고 파이브 클래스 마스터까지는 있을 거다.
하지만 식스 클래스 마스터는 없다. 게임에서도 그 이상은 말도 안 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임일 뿐이고 난 현실 이라는 게 더 중요하지만.’
하여튼 중요한 건, 연우는 게임 이 너무나 쉬웠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현실로 힘을 가져왔지만, 세 븐 클래스 마스터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진짜 쉬워 보인 다. 여기 사람들은 원 클래스 마 스터도 엄청난 거라고 하는데.”
혜영이야말로 클래스 마스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확실하게 알 고 있다. 혜영도 멱살 잡혀 버스 를 탄 건 맞지만, 쉽게 오른 건 아니다.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이겨 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연우는 입을 열려다 말았다.
‘난 놀면서 올렸는데.’
정말이다. 농장을 운영하면서 놀았고 낚시를 하면서 놀았다. 마 계에서 넘어오는 마왕을 잡는 것 도 노는 거였고 심해의 습격 같은 것도 노는 거였다.
연우에게는 그냥 게임이었으니 까.
“…… 술이나 먹자.”
연우는 위스키를 마셨다. 발렌 타인 30년산이다. 거의 보약이라 고 알려진 고급 위스키.
그때, 수영장에서 다 논 손님들 이 펍으로 왔다.
“꺄아. 여기 언니들 다 모여 있 어!”
“오빠들은 없나? 아, 한 명뿐이 없네.”
이쪽을 보고 조금 실망한 표정 으로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헤르 메스나 요섭이 없기 때문일 거다. 연우는 오빠가 아닌 아저씨이기 때문일까.
“난 잠깐 손님 좀 보고 올게.”
이자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 난다.
“푸훕
혜영이 연우를 보며 웃었다.
“왜 웃냐.”
“한 명이래. 오빠가 한 명이래. 푸하하하.”
“…… 크홈.”
연우는 아무래도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경지를 찾으면서 모습이 바뀌긴 했는데, 타고난 미 남 미녀인 엘프나 뱀파이어를 따 라갈 순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렸 다.
“여긴 다 좋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
“맞아…… 분명, 거의 원가로 파 는 거긴 할 텐데, 다 고급이라.”
“술은 소주 먹어도 되는데, 안 주 가격이. 어후.”
그렇게 말하면서도 발렌타인 30년산으로 주문한다. 안주는 살 몬테르 회에 블랙카우숙주볶음.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사용자 다. 그것도 꽤 고위급 사용자. 그 래서 그런지 소비력이 굉장히 좋 았다.
“그러고 보니 장비를 파는 곳도
좀 만들어야겠네.”
연우가 요섭이 스킬을 올리면서 만든 장비들, 그리고 연우 본인이 만들었던 장비를 생각하며 말했 다.
“그것도 괜찮겠네. 운영이야 슬 슬 요섭한테 맡겨도 되지 않아?”
후름이 위스키를 홀짝이며 대답 했다.
“그래야지. 스킬도 다 올렸겠다. 슬슬 해도 되겠지.”
내일 해가 뜨면 대장간 옆에 장 비 판매점을 만들기로 했다. 어려 울 것 없는 간단한 건설이었다.
연우는 접시에 놓인 국물과 생 선을 동시에 떠서 입에 넣었다. 삶은 생선 요리인 아쿠아파차는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레몬과 버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안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