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편_ 무명 세계(無名世
界)(2)
불쌍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저들을 그냥 둘 순 없 으니까. 연우가 저걸 막을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보낼 이유도 없는 거다.
“헤맨.”
“네, 주인님.”
“오랜만에 사냥 업적이나 올릴 까.”
안 그래도 마땅한 사냥터가 없 었는데 잘됐다. 특히, 이종족을 좋아하는 연우는 웬만하면 몬스터 라고 해도 이종족을 잘 죽이지 않 는다.
예외가 있는데, 하나는 마계의 마족이나 마왕이었고 또 하나는 수인 족이었다.
이유?
저들이 인간을 그저 먹이로 본 다는 것.
그거 하나다.
연우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 쁜 사람도 아니다.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왜? 원래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 이다.
“장비 좀 꺼내 줘.”
연우는 아직 저들을 상대로 학 살할 힘이 없다. 동화율이 오르고 있지만, 스킬 자체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비를 사용 한다면?
“여기 가져왔습니다.”
역시 헤맨은 센스 있게 맞춰 왔 다.
전성기에 입던 건 아니다. 어차 피 그건 입지도 못하니까.
‘쓰리 클래스 마스터 때 입었던 건가?’
연우는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 장비들을 훑었다.
마법, 희귀, 유일, 전설, 신화. 그리고 그 위의 등급인 얼티밋 (Ultimate). 일명 궁극 등급의 장 비였다.
[ 카이 로스 (Ultimate) ]
설명 : 한때 마계를 통일했던 마왕 포심이 전성기에 사용하던 마검. 신들의 대장장이를 헤파이 스토스가 수십 년의 수명을 쏟아 완성한 궁극의 마검이다. 수백 년 동안 마계의 피를 머금은 카이로 스는 필살검(必殺劍)의 칭호를 얻 었다.
- 사용 자격 : [절대자] 스킬 보유
- 필살검(必殺劍) : 이 검에 베이면 무조건 죽는다(투 클래스 마스터 이하까지).
- 신살검(神殺劍) : 미개방(개 방 조건 : ???)
세트 옵션 :
- 투구 : 마력 증폭 +1,300%
? 흉갑 : 영혼 수집가(공격력 증폭), 수집한 영혼의 수X0.1% = 27,430% 상승 중
- 견갑 : 방어술사 마스터급 절대 방어 상시 생성
? 신발 : 포심의 분신술(능력 치 50% 적용)
“오랜만이군.”
카이로스다. 연우가 최강자가 아니었을 때, 그러니까 쓰리 클래 스 마스터 정도였을 때 마계로 직 접 들어가서 구했던 검이다.
그때, 포심과 2개월은 싸웠던 것 같다.
처음엔 한 번 죽이는 데 5시간 정도 걸렸는데, 나중엔 1시간 만 에 죽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백 번을 죽이고 나서야 세트를 다 모 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가 중간고 사가 껴 있었는데 학교도 안 나가 고 아스가르드만 하다가 학사 경 고를 받고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맞을 뻔했다는 거다.
“으으.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살이 떨린다.”
연우는 검을 들고 장비를 착용 했다.
하나하나 몸에 걸칠 때마다 강 렬한 힘이 속에서 차올랐다.
다섯 개의 세트가 모두 착용됐 을 때, 이미 연우는 검은 마력에 싸여 피부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다. 겉모습만 봐서는 완전한 마 왕이다.
낑. 끼깅.
근처에 있던 두 강아지가 잔뜩 겁먹고 헤맨 뒤로 숨는다. 포심의 힘이 느껴질 거다. 전성기에 비하 면 형편없는 힘이지만, 이것만으 로도 보통 마왕 두 마리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인 거다.
“우리도 좀 도와줄까?”
이자젤이 재미있겠다는 표정으 로 지팡이를 꺼냈다. 후름은 정령 을 부르고 수이니는 검을 꺼냈다.
“좋지. 어차피 혼자 다 못 먹으 니까.”
“나, 나는?”
혜영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헤 맨 옆에 붙어 있어.”
사실 혜영은 여기서 큰 전력이 되지 못한다.
보니까 가장 약한 놈도 8단계 에서 원 클래스 마스터급이다.
연우는 가볍게 목을 풀었다.
당연히 긴장된다. 이런 규모의 전투는 현실에선 처음이고 모든 힘을 되찾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설레지?”
손에 땀이 차고 목이 뻣뻣하다. 그런데 이게 초조함이 아니라 짜 릿함이었고 기대였다.
연우는 몸에 마력을 폭발시켰 다.
파앙!
사라진 연우의 몸은 위로 올라 가고 있는 수인 족을 지나쳐 처음 에 들어왔던 입구까지 도달했다.
몸에 힘이 넘친다.
‘쓰리 클래스? 아니, 포 클래스 정도 되겠다.’
스킬이 완성되지 않고 장비의 힘으로 억지로 끌어올린 거지만, 연우는 이미 도달했던 경지다. 어 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맞 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뒤로 이자젤과 후름. 수이니가 빠르게 다가온다.
다른 수인 족은 그제야 연우 일 행을 발견했는지, 통로가 아닌 이 쪽으로 다가온다.
“포심의 분신술.”
장비에 담긴 스킬이다. 사용자 능력치의 50% 적용. 그 정도면 형편없는 스킬일 수 있다. 하지만 포심의 장비 세트 효과까지 포함 한 능력치다.
그리고.
“1만 개.”
푸확!
연우의 몸은 순식간에 1만 개 로 늘어났다.
정확히는 1만 1개.
“나 먼저 간다.”
연우는 도착한 세 엘프를 뒤로 하고 튕겨 나갔다. 1만 1개의 연 우가 동시에 말이다.
“흥, 우리도 질 수 없지.”
이자젤이 허공에 수천 개의 얼 음 창과 물의 소용돌이를 생성한 다. 후름은 물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했고 검을 꺼내 들었다.
수이니는 경건하게 검을 뽑은 후에 10m가 넘어가는 검강을 뽑 아 냈다.
우우웅!
“우리도 간다!”
세 엘프가 동시에 연우 뒤를 따 랐다.
그렇게 농장 식구들과 수인 족 의 전쟁이 시작됐다.
찌릿.
살갗을 쓸고 살벌한 살기가 지 나간다.
‘ 왕인가.’
다른 수인 족들은 연우의 분신 과 세 엘프가 맡을 거다. 연우는 가장 강하다고 느껴지는 수인 족 의 왕에게 달려들었다.
쓰리 클래스 마스터.
연우도 지구에선 처음 보는 강 자다. 농장과 비교하면 안 된다. 아스가르드에서 나온 캐릭터야 원 래 사기다. 그런데 이놈은 그런 사기 캐릭터와 맞먹는 힘을 가진 것.
“크르르. 너희 누군데……!”
왜 막느냐고 물어볼 게 뻔했다. 하지만 연우는 물어볼 틈을 주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검술 5단계, 마법 6단계, 절대 자 3단계.
검에 마력이 실리고 그 마력은 검술과 마법이라는 스킬에 의해 가공된다. 거기에 절대자라는 어 마어마한 기세가 합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포심의 세트가 가진 효과.
마력 증폭 +1,300%, 공격력 27,430% 상승. 그건 아직 원 클 래스도 되지 못한 연우의 힘을 쓰 리 클래스 마스터에 이를 정도로 강화한다.
푸확!
연우 근처의 모든 바닷물을 밀 어낸다.
물속이지만, 움직이는 게 어렵 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과 마력 지배는 그걸 충분히 가능케 한다.
“이, 이건!”
수인 족의 왕이 소리친다.
분명 보기엔 원 클래스도 못 미 치는 힘이었다. 전신에 두른 장비 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나오긴 했 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깨달음 으로 얻은 수준이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 다.
콰직.
콰아아앙!
왕의 팔 비늘로 막았다.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기에. 하지 만 비늘은 처참하게 부서졌고 왕 은 수백 미터나 밀려났다.
“제대로 해라.”
연우는 마력을 실어 말했다.
웅웅 울리는 연우이 말은 번역 돼 왕의 귀에 들어갔다.
동시에 지배자, 절대자, 중재자
의 스킬이 발휘된다. 왕은 철렁, 가슴이 주저앉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감각이 다.
두려움.
그리고 복종심.
끄득. 왕은 볼을 물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게 강 한 게 아니다. 아니, 힘은 무지막 지하게 강하다. 장비에 의한 버프 일 뿐이다. 잘 제련된 검은 강철 을 뚫을 수 있지만, 숙련된 검을 뚫을 순 없는 거다.
푸확.
연우의 신형은 튀어 나갔다. 지 나간 자리의 물은 모조리 사라졌 다. 바닷속에 긴 통로가 생겨 버 린 것이다. 하지만 곧 그 물은 채 워졌고 왕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로 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몸이 움직이지 않 는다. 이렇게 강한 고통 또한 처 음이다.
“태만을 허락한 적 없다.”
왕은 귀를 관통해 뇌를 짓이기 는 강렬한 기세에 눈이 하얗게 변 했다. 왕. 그건 자신에게만 허락 된 권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왕은 이 앞에 선 인간이다.
아니, 인간은 맞는 건가?
인간이 휘두른 검에 왕은 더 이 상 저항하지 못했다.
콰직. 스스슥.
그래도 질긴 비늘이라고 저항해 본다. 하지만 부서지고 찢기고 베 어진다. 왕의 의식은 거기까지였 다.
목이 잘린 왕은 쓰러지지 않고 무릎을 꼻었다.
왕이라 생각했던 가짜 왕은 절 대자 앞에서 허락 없이 쓰러질 수 가 없었다.
오직 무릎만 꿇을 뿐.
연우는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우하하하. 연우. 태만이라니. 태만이래! 증이병!”
중학교 2학년이 걸린다는 그 유명한 병이다. 이자젤이 그런 단 어를 모를 리 없었다. 이자젤은 신나서 놀리기 시작했다.
연우도 아차 했다.
실수였다. 아스가르드에서 많은 군세를 다스리기 위해선 위엄을 가질 필요가 있었고 절대자, 지배 자, 중재자의 스킬과 동시에 이런 연기가 필요했다.
연우는 완벽한 절대자가 돼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게 습관으로 남아 있 던 거다.
“젠장. 쪽팔려!”
정말 민망한 실수였다.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재미있 는 전투를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연우는 아직 원 클래스 마스터 도 되지 못했지만, 쓰리 클래스 마스터의 무력까지 어렵지 않게 압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서 힘을 되찾아야겠다.’
물론, 예전 그 이상의 힘을 말 이다.
“시작한다!”
연우가 외쳤고 이자젤과 후름. 수이니까지 적을 빼앗기지 않으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어쩔 수 없는 학살이었다.
그렇게 10분 후.
“후, 끝났나?”
“에이, 뭐야! 10분밖에 안 걸렸 어! 연우 분신이 너무 많았어.”
“싱겁다 싱거워.”
이자젤이나 후름이 투덜거렸고 수이니는 수인 족 사이를 돌아다 니면서 쓸 만한 걸 찾고 있었다. 가슴에 박힌 마력석은 헤맨이 마 법으로 적출해 챙겼다.
연우는 시체로 산을 쌓인 넓은 무명 세계를 바라봤다.
다 죽이진 않았다.
절반 정도 죽였을 때, 연우는 [절대자], [중재자], [지배자]의 스킬의 위엄으로 몸을 굳게 해 한 쪽에 몰아넣었다.
습격을 막는 것과 한 종을 말살 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이쯤 하면 되겠지.”
게다가 사냥 업적을 세워 잠재 능력치까지 얻었으니, 필요한 것 도 챙겼다.
혜영은 그 모습에 넋을 잃은 모 습이었다. 두 강아지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도 가장 만만했던 게 연우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강했 기 때문이다.
또, 착용한 장비에서 무시무시 한 마왕의 향기를 풍기니 겁을 먹 지 않을 수 없었다.
“헤맨, 슬슬 가자.”
“이번 투어는 어떠셨는지요.”
“보다시피 재미있네. 얻은 것도 많고.”
잠재 능력치 하나면 충분하다. 대규모 전투 솜씨가 녹슬지 않았 다는 것도 체감했고 말이다.
“우리 새벽 낚시하기로 했잖아! 빨리 가자!”
연우가 소리쳤고 이자젤와 후름 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수이니 도 뒤적거리던 것을 멈추고 돌아 왔다.
헤맨이 다시 마법 잠수함을 만 들었다.
이제 슬슬 더 깊은 심해로 들어 가 심해 낚시를 즐기고 아침이 될 때쯤 수면으로 올라가 일출을 보 면서 새벽 낚시를 해야 한다.
중간에 간식과 밥을 먹는 건 당 연하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연우의 낚시는 이 제 시작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헤맨이 출항을 알렸다.
연우는 오늘도 우연히 지구를 구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원래 지구 멸망이 운명이었나?’
요즘 심하게 멸망 플래그가 많 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