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편_ 낚시는 세월이 아니라, 안주를 낚는다(3)
밤이 됐다.
연우는 이곳과 농장을 연결하는 워프 게이트를 만들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한 건 헤맨이었지만 말이다. 오자마자 만드는 걸 잊어 서 이제 만드는 거다.
여길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 생 겼기 때문이다.
“슬슬 들어가 볼까.”
“어떻게 들어가게?”
당연하게도 질문한 사람은 혜영 이었다. 엘프나 헤맨은 정말 신경 도 쓰지 않고 낚싯대를 점검하고 있었다.
“헤맨.”
“네, 주인님.”
“들어가 보자.”
헤맨은 대답을 하곤 아공간에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고 헤맨이 작은 구슬을 가져왔다. 그러곤 바 다에 던졌다.
퐁!
바닷물에 닿자마자 여섯 명을 충분히 넣고도 남을 투명한 공이 됐다. 세 엘프는 그걸 보자마자 챙긴 낚싯대와 장비들을 들고 뛰 어들었다.
투명한 막을 그대로 통과한 세 엘프는 안쪽에 가뿐하게 착지했 다. 연우는 혜영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꺄악!”
짧게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원 클래스 마스터 정도가 돼서 그런 지 크게 겁먹진 않았다.
뒤이어 헤맨이 따라 들어왔다.
“헤맨의 마법으로 가도 되지만, 이것저것 귀찮으니까.”
아무리 헤맨이라도 몇 가지의 마법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 다는 게 귀찮지 않을 리가 없었 다. 이 아이템 하나면 되는데 말 이다.
투명 공. 즉, 마법 잠수함은 수 면을 통과해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기 시작했다.
“자, 헤맨. 투어 시작하자.”
연우는 아예 의자를 꺼내 앉았 다.
“난 낚시할래!”
이자젤이 소리쳤고 후름도 좋다 는 듯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혜 영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연우 를 바라봤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 었다.
“낚시할 사람은 해. 심해 낚시 도 꽤 손맛이 좋지.”
연우도 좋아하긴 하지만, 더 깊 은 곳에서 하는 걸 좋아한다. 헤 맨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쪽 벽으 로 갔다.
“그럼 투어를 시작하겠습니다.”
헤맨이 손을 젓자 조종 키와 앞 을 밝히는 조명이 등장했다. 꽤 먼 곳까지 보였는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빛 때문인지 몇몇 물고기 가 빠르게 도망갔다.
연우는 혜영에게 옆자리를 권했 다.
“앉아. 어색하게 서 있지 말고.”
“…… 정말 이건.”
“즐겨. 이게 우리 농장이야.”
혜영은 더 할 말이 없는지 얌전 히 자리에 앉았다.
난 간단한 안주랑 술을 준비할 게.”
역시 수이니는 무드를 안다. 원 래 이런 투어엔 술이 필요한 법.
“꺄악! 바다뱀이야!”
마왕도 손으로 때려잡는 마법사 가 이자젤이다. 그러면서도 무서 워하는 게 참 많다. 후름이 옆에 서 최상급 정령을 이용해 바다뱀 을 멀리 쫓아 버렸다.
“에라, 뱀은 맛도 없고.”
육지 뱀은 맛이 좋지만, 바다뱀 은 영 아니다.
“좋아. 이번에도 내기 한판?”
“흥. 너 따위가? 뭘 잡을까. 조 명도 있는데 무늬 오징어 어때?”
“콜. 무늬 오징어랑 힘 좋은 옥 돔으로 하지.”
“옥돔은 바위 사이에 살지 않 나?”
“바위 사이라기보단 모래나 진 흙으로 된 바닥이랄까. 그리고 우 리가 언제 보통 물고기 잡았나? 몬스터지.”
둘은 투명한 막 밖으로 낚싯대 를 휘둘렀다. 나가고 들어오는 건 사용자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 물론, 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거나 의도치 않은 생물체가 들어올 일 은 없다.
연우는 이자젤과 후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조금 시끄러운 건 있어도 저렇게 열심히 잡아 주 니 안주가 부족할 일이 없다.
그때 수이니가 먹기 좋게 튀긴 그루퍼를 가져왔다. 언제 튀김기 까지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이니는 검술과 요리에 장인 정 신이 대단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공간에서 피그미온 라거를 담 아 온 케그를 꺼냈다. ‘케그’라 하 면 생맥주를 보관했다가 탄산 손 실 없이 먹을 수 있는 보관함을 말한다.
연우는 테이블과 의자를 하나 더 꺼냈다.
헤맨은 뒤를 슬쩍 보더니 공간 을 더 늘렸다. 헤맨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다.
수이니도 옆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었고 연우도 그루퍼 튀김을 하 나 집었다. 청양고추와 대파, 거 기에 다진 마늘까지 섞은 간장에 살짝 찍었다.
바삭.
입에 물자마자 촉촉한 생선 기 름과 고소한 향이 올라온다. 곧이 어 간장 소스의 매콤함이 느끼함 을 잡아 준다.
벌컥벌컥.
“ 크으.”
차가운 맥주의 청량감은 입안에 모든 기름을 싹 쓸고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갈증? 그런 건 순식간 에 사라진다.
연우가 먹는 걸 보곤 혜영과 수 이니도 갈증을 느꼈는지, 튀김을 하나 물고 급하게 맥주를 들이켠 다.
“ 좋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거다.
혜영이 이들을 보고 또 하나 놀 란 건, 먹는 양이었다. 사용자가 되면서 마력을 사용하고 육체가 강화된 덕에 많이 먹을 순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사람은 없었다.
푸드 파이터나 먹방을 하는 ‘튜 버’들이나 이 정도 먹는다. 게다가 연우는 술을 한 번도 빼먹지 않는 다. 사용자이니 알코올 중독이라 고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중독은 돼도 몸이나 정신 에 이상이 생길 걱정이 없다는 것 일까.
“참, 많이도 먹는다.”
“흐흐. 너도 곧 적응할걸.”
연우는 바삭한 튀김을 입안에 쏙 넣고 물었다. 역시나 바삭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고소한 기름도 마찬가지다. 몬스터가 아닌 보통 그루퍼였지만, 맛은 좋다.
거기에 피그미온 라거다.
질리지도 않고 물리지도 않으며 중독성까지 있는 맥주. 이걸 어떻 게 참을 수 있을까.
벌컥벌컥.
“후. 맛있지?”
연우가 혜영에게 슬쩍 물었다.
“맛은 있네.”
“그거 알지? 너도 우리 먹을 때 마다 계속 같이 먹은 거.”
“?????? 앗. 살찌면 어떡하지?”
“원 클래스 마스터나 돼서 살 걱정은.”
“그래도 혹시…… 그럴 일은 없 긴 하겠다.”
원 클래스 마스터라는 건 초월 적인 존재다.
어떤 한 스킬을 10단계까지 이 룬 것. 50년 전만 해도 인외의 취 급을 받을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 면 도시 하나 부수는 데 한 시간 이 채 걸리지 않고 바다를 가르거 나 산을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스킬. 즉, 직업적 특성이 아주 중요하긴 하다.
마법이나 민첩 관련된 스킬을 마스터하더라도 힘 위주의 탱커 5단계를 힘으로 이길 순 없는 거 니까.
그래도 한 분야의 최고 경지에 오른 거다.
기본적인 육체로 단련할 수 없 다는 것. 그건 육체가 퇴화하거나 상할 일도 없다는 걸 말한다. 살 이 찌거나 자잘한 병을 얻는다거 나 하는 것들은 전혀 걱정할 게 없는 거다.
“하여튼 걱정할 필요는 없지.”
착각할 만했다.
혜영은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어떻게 보면 사용자가 되고 사용 자로서 아무런 사회적 활동을 하 지 않고 농장에 자리를 잡은 거 다.
그런데 이곳엔 상식적으로 생각 할 수 없는 존재뿐이다.
세 엘프는 물론이고 헤맨과 두 강아지. 그리고 헤르메스와 요섭 까지.
‘게다가 연우.’
이제 확실히 느낀다.
농장에 있는 그 누구도 혜영보 다 약하지 않다.
혜영은 가늠도 하지 못할 정도 의 힘을 가진 게 농장 식구인 거 다. 혜영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아직 어색하기도 했고 무 섭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인님. 슬슬 심해 몬스터가 보일 겁니다.”
“오, 벌써? 몇 미터지?”
“2km쯤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는 건 아직 낮은 지대는 아니라는 거다. 보통 깊은 곳은 4.5km 정도 되고 가장 깊은 곳은 11km까지 된다고 알고 있다.
구우우웅.
빠른 물살이 벽을 쓸고 지나갔 다. 밖을 보면 보통 물살이 아닌 것 같지만, 이곳엔 헤맨이 있다.
그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 했다.
연우와 혜영은 목이 아플 정도 로 위를 바라봤다.
“와…… 역시 심해는.”
“저, 저게 뭐야?”
연우는 감탄했고 혜영은 당황했 다.
크다. 아주 크다. 길이를 보면 lkm는 넘을 것 같다. 이렇게 큰 생물체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였다.
하긴, 지상에서도 드래곤같이 큰 몬스터가 나오는데 중력에 부 담이 적은 심해에서 이 정도의 덩 치가 유지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 은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마력 이 없으면 불가능한 크기일 것이 다.
“우, 우리 괜찮은 거야?”
“왜,먹힐 것 같아?”
“그냥 숨만 쉬어도 콧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혜영의 말에 낚시를 끝내고 구 경하던 이자젤이 말했다.
“그럴 일 없어. 우리에겐 헤맨 이 있잖아.”
연우도 살짝 끄덕인다.
이자젤도 저런 크기의 몬스터를 만난다면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쓰리 클래스가 되지 못했으 니까. 하지만 헤맨은 포 클래스 마스터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저것도 한 투 클래스 마스터 돼 보이는데?”
“맞습니다. 그래도 육체를 유지 하는 걸로 하나 마스터하고, 먹고 소화하는 걸로 또 하나 마스터한 거 같습니다.”
헤맨이 알려 줬다.
“하긴, 그 정도는 돼야지 저렇 게 유지할 수 있지. 딴 놈들한테 당하지도 않을 거고.”
저 몸을 유지한 것도 대단하지 만, 저 정도까지 커졌다는 것도 대단하다.
“한 번 들어가 볼까요?”
헤맨이 물었다.
혜영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 른 이들은 모두 이해했다. 아스가 르드 안에선 몇 번이고 이런 경험 이 있기 때문이다.
“난 좋아! 저런 거 속에 들어가 면 신기한 게 많더라고!”
“재미있긴 하지. 몇 년 전인가. 그때도 이렇게 들어갔다가 유령선 만났잖아. 알고 보니 데스 킹의 배였지만.”
아스가르드에서 이런 거대한 몬 스터 뱃속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유령선처럼 으스스한 오라와 뼈 대만 남은 배가 있었다. 처음엔 진짜 유령선인 줄 알고 놀랐지만, 안엔 데스 나이트와 리치가 있었 다. 선장은 데스 킹이었는데 꽤 짭짤한 보상을 줘서 기억에 남는 다.
“아니야. 일단 더 들어가 보자.”
아직 2km 밖에 내려오질 않았 다.
한 1이cm까지 가면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헤맨, 뭐 느껴지는 건 없어?”
“아직 없습니다. 워낙 넓어서 요.”
아무리 헤맨이라도 태평양 전체 를 샅샅이 뒤질 순 없는 거다. 식 스 클래스 마스터인 연우가 힘을 되찾으면 가능할지 모른다.
‘아직 멀었지 뭐.’
이참에 심해에서 처음 보는 몬 스터를 발견하면 잡아다가 이종교 배를 해야 한다. 그래도 가장 높 은 확률로 업적을 주는 게 회귀 몬스터의 이종교배니까.
“그럼 더 내려가겠습니다.”
“그래.”
이자젤, 후름, 혜영, 수이니. 연 우까지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그루 퍼 튀김에 피그미온 라거를 마시 기 시작했다. 역시 심해엔 볼 게 많았다.
거대한 몬스터는 물론이고 몸이 투명하거나 기괴하게 생긴 것. 가 끔 유령 같은 몬스터도 나왔는데 해파리 몬스터의 일종이었다.
몸에 조명을 달고 있거나 마력 석을 미끼로 다른 물고기를 잡아 먹는 종. 간혹 사람 얼굴을 가진 바다뱀이 나와 혜영와 이자젤이 기겁하기도 했다.
깜깜한 바닷속이다.
심해는 더 깜깜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뿜어지는 조명 때문인지 몬스터나 심해 물고기가 뿜는 빛 때문인지 더 밝아진 느낌이다.
그때였다.
“와……
한결같은 감탄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몸에서 수 십 개의 빛을 내는 해파리 떼다. 그런 게 수만 마리다. 깊은 심해 를 점령하면서 어디론가 향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빛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모두 맥주를 마시거나 그루퍼 튀김을 집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름은 모른다. 이건 아스 가르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몬스 터이기 때문이다.
“4km에 도달했습니다.”
조금 더 지나자 해파리 떼가 사 라졌다. 하지만 장관이 끝난 건 아니었다.
훨씬 연한 빛을 뿜는 작은 새우 들이 보였다.
사실, 새우라고 보기에도 힘든 크기였다. 거의 플랑크톤이랄까. 하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 이 퍼져 꿈틀거리자 밤하늘의 은 하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헤맨이 경고했다.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덮친 것이었다.
쿠우웅.
물론, 위기감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