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편? 낚시는 세월이 아니라, 안주를 낚는다(2)
낚시는 물고기를 낚는 게 아니 라, 세월을 낚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 들의 이야기다.
던지면 낚는다. 골라서 낚는다. 맛있는 걸 낚는다.
이게 이들의 낚시다.
팽!
투명한 해룡의 수염이 강하게 당겨졌다.
“끌어올려!”
“너무 무거워!”
“적당하게 풀었다가 감았다가, 지치게 만들어.”
“아, 알았어!”
혜영이 연우에게 받은 낚싯대를 힘차게 당기고 있었다. 마법을 이 용해 육체를 강화하고 부담을 줄 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 족했다.
수이니나 이자젤. 그리고 후름 까지는 어렵지 않게 건져 낸다.
“꺅, 이거 너무 크잖아. 버려!”
“싫은데, 내가 다 먹을 건데!”
파도 소리 때문인지 목소리가 커진다. 이자젤과 후름은 또 저렇 게 다투고 있다. 저건 뭔가 마음 에 안 들어서 다투는 게 아니라 심심해서 다투는 거다.
슬슬 혜영도 적응되는 모양이 다. 수이니는 Im짜리 철갑농어 한 마리를 검강으로 손질하고 있 었다. 맛있게만 보이지만 저것도 7단계 정도 되는 놈이다.
컹컹!
댕댕이와 검둥이가 수이니 곁에 서 꼬리를 흔든다. 내장을 달라는 얘기다. 그래도 마왕은 마왕인지 요리된 것보다 피가 있는 걸 더 좋아했다.
“먹고 싶니?”
컹컹!
“일어서!”
수이니는 피 묻은 내장을 이리 저리 혼들며 마왕 둘. 아니, 강아 지 둘을 조련하고 있었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태평양 중앙이 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그 위 에 적당한 나무배를 만들어 올라 탄 상태였다. 배라고 하기 뭐한 게, 사각형 판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한쪽에 수이니가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뿐이었다.
물론, 아래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긴 기둥을 트러스 형태로 길 게 빼고 마법으로 가장 중심 아래 에 무게를 늘렸다.
수면에서 배까지 높이는 대략 lm. 하지만 파도는 그 이상 올라 오지 못한다. 농장 주인이 가진 건설 스킬의 패시브랄까.
“자, 잡았다! 드디어 잡았어!”
혜영이 소리쳤다. 큰놈은 아니 었고 50cm짜리 그루퍼였는데 몬 스터가 아니라 진짜 물고기였다.
“에이, 힘들게 올리길래 몬스턴 줄 알았네.”
“뭐요?”
“아, 아니. 그냥 그렇다고.”
후름은 이자젤에게 하는 것처럼 혜영을 대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 다. 이자젤보다 더 표독스러웠다.
연우는 낚시하는 그들을 뒤로하 고 수이니에게 갔다.
역시 바다 위에선 회다.
하지만, 회만으로는 물릴 수 있 다.
철갑농어는 찜을 위해 손질 후 에 한쪽 면에 칼집을 냈다. 속에 마늘, 고추, 대파, 양파를 넣고 후 추와 조금을 뿌린다. 찜기엔 각종 야채로 끓인 육수를 넣었다.
거의 찜이라기보단 끓이는 느 낌.
“수이니, 참치는 내가 썰게.”
“좋지. 그럼 난 찜 올리고 밥이 나 준비해야겠다.”
연우는 오랜만에 칼을 들었다.
이건 마왕의 뿔로 만든 칼인데, 댕댕이와 검둥이가 왠지 무서워하
는 느낌이다. 하긴, 이 뿔의 주인 은 포 클래스 마스터로 꽤 강한 마왕이었으니까.
“참치 한 번 크다.”
이건 이자젤이 건진 거다.
보통 참치는 최대 3m까지 자라 고 무게는 560kg 정도 된다. 북 대서양에서 주로 잡히는 종이다.
하지만 몬스터 참치는 어디서나 잘 잡힌다. 힘도 몇 배고 크기도 훨씬 크지만, 먹기 좋게 작은 놈 으로 잡아 올렸다.
연우는 쓱 칼을 들어 머리를 떼 냈다. 동시에 마법으로 참치에 냉 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아주 살 짝 어는 정도로 썰어야 기름이 많 이 안 새고 좋은 맛이 난다.
참치의 맛은 냉동과 해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중요한 과정이 다.
“좋아. 참치는 목살이지.”
연우는 하얀 지방과 붉은 살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목살을 자르면서 머리를 수이니에게 줬 다. 참치 머리 구이를 부탁한 거 다. 오븐은 따로 없지만, 이자젤 의 마법이 있다.
“악! 크라켄이 잡혔어! 이자젤!
달라붙어!”
“젠장. 이거 거의 원 클래스 마 스터급인데? 게다가 너무 무거 워!”
“배에는 타격 안 가게! 낚싯대 부러지겠다!”
첨벙! 콰아아앙!
“걱정 마, 이 낚싯대 전설급이 야. 겨우 이 정도에 안 부러져.”
연우는 그 장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이 배야 헤맨이 보호하고 있어 서 괜찮았다.
“아무래도 애들이 바쁜 것 같 네. 헤맨에게 오븐 좀 얻어야겠 다.”
연우는 헤맨을 불러서 수이니를 도와주라고 전했다. 어차피 헤맨 도 같이 밥을 먹기 위해 나와야 했기에 좋아했다.
스 스 스
=?? =?? “*
연우는 참치 살을 먹기 좋게 썰 었다.
살짝 얼린 상태라 모양이 예쁘 게 유지됐다. 먹기 직전에 살짝만 해동하면 된다.
“너회도 이거 먹고 싶니?”
계속 쳐다보는 댕댕이와 검둥이 에게 붉은 살 몇 덩이를 던졌다. 몸집은 작은데 먹는 양이 엄청나 다. 참치 내장까지 덜어 줬는데 아주 맛있게 먹는다.
“허억. 허억. 연우 이것 좀 받아 줘.”
크라켄 낚는 게 꽤 힘들었는지 이자젤이 땀을 닦으며 크라켄의 다리를 가져왔다. 잡은 다음 축소 마법을 쓴 건지 성인 팔뚝만 했는 데 아직 살아서 팔딱거렸다.
“맛있겠네.”
“이 정도면 되려나?”
낚시를 더 해야 하는지 물은 거 다.
크라켄을 축소해 놔서 그런지 보통 문어의 크기다. 저래 보여도 9단계 몬스턴데 여기선 그냥 안 주에 불과했다.
“참치, 농어, 그루퍼, 문어라.”
양은 부족하지 않다. 이 정도면 사실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거 다. 이곳 식구들이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참치가 있으니까.
“양은 괜찮은데, 더 다양하게 먹어 볼까?”
“그래? 조금만 더 잡아봐야겠 다.”
“조심해. 괜히 용왕 같은 거 잡 지 말고.”
사실, 용왕이라는 건 현실에 없 을 것 같긴 했다. 이곳에서 발견 된 적도 없으니, 아스가르드에선 운영자들이 난이도를 올리기 위해 넣은 것 같았다.
하지만 용왕을 대체하는 드래곤 이라든지 강력한 지배층 해양 몬 스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엑, 그건 나도 싫어. 해산물은 맛이 좋긴 한데 썩으면 너무 끔찍 해.”
연우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참 치를 썬다.
크게 두 접시를 썰었다. 그루퍼 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머리를 쳐 기절시킨 다음에 바로 썰었다. 이 놈은 튀김을 위해 남겨 놓는다.
“자자, 밥 먹고 하자.”
그 소리에 혜영이 녹초가 된 몸 으로 다가왔고 이자젤과 후름도 아쉽다는 듯 낚싯대를 놓고 왔다.
사실, 지금까지는 낚시를 즐긴 다기보다는 식사를 준비한 거다. 당장 연우만 봐도 낚시를 하지 않 고 요리를 했다. 이유는 여러 가 지가 있지만, 해가 진 후에 낚시 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기다려.”
수이니가 요리를 마무리하기 위 해 움직였다.
그때 혜영이 물었다.
“이 정도면 될까?”
“아직 부족하지만, 나쁘지 않네. 그래도 마력 지배로 마스터가 된 거라 그런가.”
“죽겠다. 죽겠어.”
“하여튼, 밥 먹고는 심해로 들 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심해를 탐험하는 것도 좋은 경 험이다. 연우도 아스가르드에서의 경험이 전부였으니, 현실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심해를 어떻게 들어간다고…… 하긴, 아니다.”
혜영은 농장에서 보낸 시간이 하루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봐 버렸다.
헤르메스랑 요섭이라는 이는 사 람이 아니라 뱀파이어와 슬라임이 라는 걸 알아 버렸고 리젤은 사신 이라는 종족. 수이니, 후름, 이자 젤은 엘프라는 것도 알아 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헤맨.
연우의 아공간을 관리하는 집 요정. 아니, 아공간 요정이라는 존재도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다른 종족이 있을 순 있으니까.
그런데 낚시를 간단다.
그것도 태평양으로. 어느 세월 에? 농장에서 준비를 마치고 수초 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 에 태평양 중앙으로 이동했다.
허공에 떠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더니, 이런 뗏목을 순 식간에 만든다.
하긴, 그 정도까지야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원 클래스 마스터를 만드는데 그 정 도야.
‘자, 이거.’
‘ 뭔데?’
‘낚싯대야.’
푸르스름한 빛이 흐르긴 했지 만, 낚싯대였다.
하지만 혜영이 잡는 순간 전신 에서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원 클래스를 마스터하면서 무지막 지한 자신감이 생겼었다. 평생 느 껴 보지 못한 힘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차원이 달랐다.
무기도 아니고 장비도 아니다. 장신구라면 또 모른다. 원래 마력 이라는 게 보석 같은 곳에서 큰 효용을 보이곤 하니까.
‘낚싯대라니.’
투 클래스 마스터를 직접 본 적 은 없지만, 그에 맞먹는 힘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루퍼 하나 낚기 가 힘들었다.
‘낚시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자젤이라는 절세 미녀 는 한 손으로 떡하니 몬스터인 대 왕 참치를 낚았고 후름은 7단계 라고 하는 철갑농어를 손쉽게 낚 았다.
믿을 수 없었다.
딱히 별 힘이 느껴지지 않아서 일반인 엘프인 줄 알았기 때문이 다.
더 충격인 건, 후름이 실수로 크라켄을 낚았을 때였다.
크라켄이야 태평양의 폭군으로 유명한 9단계 몬스터다. 얼마 전 까지 일반인이었던 혜영이 알 정 도로 뉴스에도 많이 나왔다.
해양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 다르게 공격하기가 까다로웠다. 공격을 넣는 것도 힘들고 어그로 끌기도 힘들다. 체력이나 방어력 도 보통 몬스터를 뛰어넘는다.
혜영이 원 클래스 마스터를 이 뤘다고 하지만, 혼자선 크라켄을 이길 수 없었다.
후름과 이자젤은 낚싯대가 부러 질 걸 걱정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크라켄을 공격하고 힘을 뺀 다음 에 건져 내면서 축소까지 시킨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지친다. 사실 더 놀랄 힘도 없 었다.
그런데 연우와 수이니는 슬쩍 보곤 신경을 끈다. 두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 대는 크라켄을 보고 도 겁먹지 않았다.
‘여긴 도대체!’
소리치고 싶었다.
혼란스러웠고 적응할 수 없었으 니까. 하지만 혜영은 던전에서 정 신을 극한까지 단련시킨 후였다.
게다가 연우가 옆에서 너무 아 무렇지도 않게 혜영을 대하니 어 찌할 바를 몰랐다.
“혜영아.”
“어? 어.”
“무슨 생각해? 몇 번이나 불렀 는데.”
“아, 아니야. 그냥.”
혜영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빠르게 환경이 변했다.
혜영은 연우를 보기 위해 연구 실 후배들과 놀러 온 것뿐이었다. 거기서 던전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고 죽을 고비를 수백 번을 넘겨 원 클래스 마스터가 됐다.
그 정도면 세계 어딜 가도 대접 받는 능력자인 거고 연우도 혜영 을 다시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최 저 시급을 받으면서 강아지 두 마 리를 맡았다.
옆에서 연우를 볼 수 있다면 그 거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원 클래스 마스터라는 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래선 안 돼.’
그런데 여긴 너무 쟁쟁한 경쟁 자. 아니, 사실 원 클래스 마스터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무시무 시한 존재가 있는 곳이었다.
뭔가가 더 필요했다.
“아, 술이나 따라 봐.”
혜영은 연우에게 잔을 내밀었 다. 연우는 웃으며 차가운 소주를 따랐다.
“ 나도.”
혜영은 살짝 째려보며 따라 준 다. 눈앞에 참치가 있다. 붉은 살, 흰 살, 적절하게 섞인 살까지. 소 금을 넣은 참기름에 살짝 찍어 작 게 잘라 놓은 김을 싼다. 새싹과 얇게 채를 썬 대파를 올려 입에 넣었다. 기름이 사악 퍼지며 고소 함이 올라온다.
채 썬 대파의 매콤함이 느끼함 까지 잡아 준다.
이때, 소주를 먹어야 한다.
이건 환상이다.
“캬아.”
혜영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감탄 사를 내뱉는다.
“역시 낚시 하면, 안주지.”
“앗, 갑자기 무늬 오징어 먹고 싶다. 초장에 찍어서 먹으면 최고 인데.”
이자젤은 그게 아쉬운지 괜히 썬 크라켄을 뒤적거렸다. 하긴, 크라켄보다 무늬 오징어가 몇 배 는 맛이 좋다.
“그거뿐이냐, 키조개 관자랑 가 리비도 좋지. 꽃새우나 닭새우도 꿀맛인데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직 먹을 게 많았다.
혜영을 제외한 연우와 세 엘프 는 밤새 할 낚시와 맛 좋은 안주 를 상상하며 잔을 기울였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요리는 점점 줄어 가고 빈 초록 병도 쌓여 가는 게 슬슬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았다.
“심해로 들어가 볼까.”
연우가 붉게 타오르는 지평선을 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