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편_ 지옥에서 돌아온 자 (2)
연우는 오후가 돼 ‘가로수길’로 왔다.
“여기 예쁘네.”
“그나마 가장 예쁜 곳이지.”
터무니없이 높은 건물도 없고 잔잔하니 괜찮은 곳이다.
“커피나 먹자.”
후름이 그래도 카페를 운영한다 고 예쁜 카페가 있으면 그냥 지나 치질 못한다. 연우나 이자젤도 나 쁘지 않았기에 카페로 들어가 앉 았다.
리젤이야 별말 없이 따라왔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들어서자마 자 시선이 확, 쏠린다. 어느 정도 예뻤으면 들이대는 이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공기 자체가 달라질 정도로 아찔한 외모다.
이 정도면 남자들이 접근할 만 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게 맞을 거다. 옷도 백화 점에서 벌당 수천만 원은 넘는 것 에 외모는 보통 외모인가.
“좋다. 역시 사람은 사람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해.”
이자젤이 뻔뻔한 얼굴로 중얼거 렸다.
“사람은 무슨. 엘프 주제에.”
“엘프가 어때서!”
“엘프는 엘프에 불과하지.”
“흥, 엘프도 인간 못지않거든!”
“엘프 중에서 가장 강한 엘프가 누구야?”
“그거야, 우리 족장님?”
“그래 봐야 포 클래스 마스터 지?”
“…… 그렇지?”
“나는 식스 클래스 마스터.”
“…… 그건 오바야!”
“오바는 무슨, 그런 말은 또 어 디서 배웠어?”
“어디서 배우긴, 플레이어들이 항상 하는 말이지.”
잊고 있었다. 이자젤과 후름은 아스가르드에서 왔다. 10대와 20 대 초반이 난무하는 곳이다.
“봐, 이게 엘프와 인간의 차이 다.”
“으악! 그게 무슨 억지야. 너는 인외 (人外)지!”
“연우,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 려고 했는데, 외모도 꽤 중요한 요소지 않을까?”
후름이 끼어들었다.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기냐?”
별 영양가 없는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후름을 여러 커피를 마셨 고 이자젤과 리젤은 서로 자기가 살았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연우는 듣고 싶은 마음도 없어 서 조용히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이럴 때, 밖에서 게이트 가 딱 폭발하고 그러진 않겠지?”
연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자젤 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풉. 그건 너무 소설 같잖아.”
“그렇지? 너무 뻔하지?”
그렇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고 그들은 농장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연우 일행이 농장에 도착했을 땐, 댕댕이가 들어와 있었다.
“댕댕아!”
이자젤은 댕댕이가 보고 싶었는 지 달려가 껴안았다.
“뭐야? 이놈은.”
연우가 댕댕이 옆에 있는 강아 지를 보고 물었다. 댕댕이는 갈색 털을 가진 대형 견인 골든 리트리 버를 보는 느낌이라면 옆엔 날렵 한 도베르만 같았다.
“어? 댕댕이가 친구 데려온 거 야?”
댕댕이는 이자젤의 손길을 느끼 며 배를 까고 누웠다. 옆에 도베 르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 는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댕댕이 친구구나.”
연우는 알 수 있었다.
이놈도 투 클래스 마스터 마왕 이다.
어딜 다녀왔나 했더니 아프리카 를 다녀온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댕댕이가 먹을 걸 밝히긴 해도 사고 칠 녀석은 아니다. 게다가 서열도 댕댕이가 높은 모양이니 알아서 잘 관리할 거다.
“좋아, 댕댕이 친구 이름은 내 가 짓겠어!”
“안 돼! 그것만은 참아 줘!”
“불타는 신검!”
“미친! 그건 네 검 이름이잖 아!”
이자젤은 마법사지만, 보조 무 기로 검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 것도 영원히 꺼지지 않은 태양신 이 파편으로 만든 신화급 무기.
“아, 그런가? 그럼 블랙 몬스 타!”
“몬스터면 몬스터지, 왜 몬스타 야?”
“더 있어 보이잖아.”
“있어 보이긴 개뿔.”
결국, 연우가 적당한 이름을 정 한 후에나 멈출 수 있었다.
그 이름은 ‘검둥이’였다. 이자젤 이나 연우나 거기서 거기인 네이 밍 센스였지만, 그래도 이자젤보 단 무난한 게 좋았다.
“아무래도 이자젤 옆에 있으니 까 피곤하네.”
평소보다 몇 배는 말이 많아지 는 건 물론이고 소리까지 쳐서 목 이 아플 정도였다.
연우는 댕댕이와 검둥이와 노는 이자젤을 떨쳐 내고 조용한 수이 니가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곧 저녁 시간이었기에 어떤 메 뉴가 나올지 궁금했다.
“수이니!”
“연우 왔어?”
수이니는 역시나 앞치마를 매고 칼을 들고 있었다. 푸른 검강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지만, 여기 선 이게 일상이다.
손질하고 있는 재료를 봤더니 파란 코코넛 크랩이다. 일전에 잡 아왔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 보 지 못했다.
손질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침샘이 자극된다.
“게랑 새우는 최고지.”
슬슬 여름이 지날 때는 더없이 맛이 좋다.
연우는 수이니를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식당을 나왔다.
“아, 마령석.”
며칠 전, 마령석 9개가 다 익었 다.
집 옆으로 가자 잘 익은 마령석 이 매달려 있다. 이걸 바로 수확 해 줘야 새로운 마령석이 열릴 거 다.
연우는 상태 창을 확인했다. 동 화율이 오르고 잠재 능력치를 얻 으면서 많은 게 변했다. 스킬, 칭 호, 능력치까지 말이다.
[플레이어 상태 창]
이름 : 신연우
닉네임 : 센느
직업 : 농장 주인
칭호 :
- 므깃도의 주인(모든 능력치 + 10, 지배력 +10)
- 차원 농장의 주인(지능 +10, 지배력 +10)
능력치 :
힘 75, 민첩 78, 체력 71, 지능 81, 마력 83, 지배력 95
잠재 능력치 : (483/637)
특이 사항 :
- 동화가 진행 중입니다.
- 진행률 : 63.131%(남은 시 간 33일)
스킬 :
길들이기(7단계), 보이지 않는 손(8단계), 은신(4단계), 사냥(4 단계), 절대자(3단계), 요리(6단 계), 건설(6단계), 정령사(5단계), 목축(6단계), 므깃도(2단계), 심 안(5단계), 마력 지배(6단계), 중 재자(3단계), 마법(6단계), 검술 (5단계), 아공간(3단계), 지배자 (2단계), 연금술(6단계), 흑마법 (7단계)
최근에 이종교배를 하면서 잠재 능력치 하나 오른 것까지 637이 된 거다.
연우는 마령석 9개를 모두 삼 켰다. 하나를 먹을 때마다 입안이 상쾌해짐을 느꼈고 잠재 능력치가 오른다는 소리가 들렸다.
-잠재 능력치가 1 올랐습니다.
-잠재 능력치가 1 올랐습니다.
총 두 개였다.
생각보다 적은 수치지만, 이 정 도 동화율에서 두 개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나쁘지 않네.”
총 잠재 능력치가 639가 됐다. 원래 630에서 9개나 오른 거다. 그렇다는 건, 체력 5개를 제외하 고도 힘이나 민첩. 아니면 지능까 지 105를 찍을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 능력치 100을 넘기면 관 련 스킬 8단계. 105는 돼야 9단 계를 이룰 수 있고. 110을 찍으면 10단계를 무난하게 찍을 수 있게 될 거다.
물론, 연우는 능력치를 제외하 고도 장비나 칭호. 그리고 다른 스킬의 영향까지 더해져 식스 클 래스 마스터에 다른 스킬 8단계 와 9단계를 찍을 수 있었다.
“빨리 100%로 올려 버릴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9개의 잠재 능력치를 활 용해 세븐 클래스 마스터를 이룰 수 있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얻어 보자.”
기회가 되면 마령석을 더 먹고 업적도 몇 개만 더 세워 보기로 했다. 전에 계산했던 16개의 잠재 능력치라면, 무난하게 세븐 클래 스 마스터를 이룰 수 있을 테니 까.
“연우야 밥 먹자!”
수이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밥을 빼먹을 순 없다. 연우는 고민하던 걸 까맣게 잊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빨갛게 익어 테이블 중앙에 올려 진 파란 코코넛 크랩이었다. 역시 게는 빨갛게 익어야 맛있어 보인 다.
수이니는 하나둘 모이는 식구들 을 보곤 길쭉한 가위를 꺼냈다.
우우웅.
파란 검강이 가위 형상으로 올 라왔고 파란 코코넛 크랩을 해체 하기 시작했다.
스적. 스적.
웬만한 오러 블레이드에도 갈라 지지 않을 껍질이 부드럽게 잘린 다. 꼬리 쪽을 뜯어 내 반으로 갈 라 팔뚝만 한 살코기를 꺼낸다. 머리엔 내장이 가득했는데, 따로 붓지 않고 찍어 먹기 좋게 벌려 놨다.
양쪽 집게는 더 단단해서 검강 출력을 높여 썰었다.
그러자 두꺼운 집게 살이 깔끔 하게 빠져나왔다.
완벽한 해체였다.
역시 한 마리로는 부족한 걸 아 는지, 수이니는 큼지막한 솥에서 두 마리를 더 꺼냈다.
“역시 수이니! 한 끼도 실망하 게 하지 않아.”
이자젤이 기분이 좋은지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후름이나 리젤도 좋은 건 마찬가지인지 웃음이 떠 나질 않았다.
뒤로 댕댕이와 검둥이가 꼬리를 살랑이며 따라왔다.
어쩐지 입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느낌이다.
연우는 차갑게 반쯤 얼린 소주 를 꺼냈다. 테이블 옆으로 얼음산 을 만들어 푹푹, 꽂았다.
“자, 먹자!”
수이니가 다 해체한 후에 자리 에 앉으며 외쳤고 모두 살코기를 한 움큼 집어 입으로 넣었다.
우걱우걱.
부드러운 살코기지만 양이 많아 턱이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맛 하나는 끝내줬다.
센스 좋은 리젤이 옆에서 소주 를 한 잔씩 따랐고 이자젤은 게 내장이 묻은 검지와 엄지를 피해 중지 아래로 소주잔을 들었다.
“자, 건배.”
“짠!”
“크으. 죽인다.”
감탄사는 기본이다.
이거 아무리 봐도 100% 한국 인이다. 저 외모에 어떻게 저런 추임새가 나오는지 연우는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게에는 소주지.”
“연우 넌 소주가 아닌 게 뭐가 있냐?”
이자젤이 괜히 시비였다.
“뭐, 위스키도 나쁘지 않지.”
“맞아! 이런 진한 내장에는 위 스키지!”
“난 맥주!”
후름은 역시나 맥주를 더 좋아 했다.
리젤은 조심스럽게 소주잔을 들 어 보였고 수이니는 그 모습이 귀 여웠는지 피식 웃었다.
할짝할짝.
밑에선 댕댕이와 검둥이가 이자 젤이 나눠 준 코코넛 크랩을 먹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정말 마왕이 아니라 ‘개’ 같았다.
어느 정도 먹었을 때, 연우는 먼저 일어났다.
“어디 가?”
수이니가 물었다. 이자젤이 물 었으면 무시하려고 했는데, 수이 니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마중 나가야 해서.”
“ 마중?”
“응. 나올 때가 됐거든. 1인분, 아니. 3인분 정도 준비 부탁해.”
연우는 산 중턱을 바라봤다. 던 전에 들어갔던 최초의 인간인 혜 영이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했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된 거다.
혜영은 몇 번이나 미치는 줄 알 았다.
팔다리가 잘리는 건 예사고 몇 번은 머리가 날아갈 뻔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보호한다는 걸 느 꼈다.
그때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죽지는 않게 해 놨구나.’
연우는 혜영이 진짜로 믿을 줄 몰랐지만, 혜영은 단순할 정도로 철석같이 연우를 믿었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해 버렸다. 말이 쉽 지, 인간이라면 절대로 떨칠 수 없는 게 죽음에 대한 공포다.
혜영은 계속 도전했다.
1번 구역은 쉽게 깼다.
그 정도 재능은 있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2번 구역에서 화염에 녹아내리는 고통에 연우의 욕을 입에 달게 됐고 3번 구역에서 냉 기로 떨어져 나가는 손발을 보며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마법의 4번 구역에 갔을 땐, 한 명의 전사가 돼 있었다.
5번, 정신의 구역에선 수십 번 이나 정신이 붕괴할 뻔했다. 죽음 을 극복한 기백 덕분인지, 누군가 보호해 주는 덕분인지, 극복하면 서 깨달음을 얻고 8단계에 도달 할 수 있었다.
9단계 아다만티움 슬라임에게 수십 번 죽을 뻔했고 [도전의 전 장(원 클래스 마스터)]에서 99번 의 죽음을 맞이했다.
혜영은 결국 그것까지 클리어하 면서 원 클래스 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었고 몇 번의 전투 끝에 초 월의 슬라임까지 죽일 수 있었다.
“꼬아아악! 드디어! 드디어!”
엘릭서와 공청 석유로 뽀얀 피 부를 가진 혜영의 얼굴은 악귀처 럼 일그러졌다.
복수를 하기 위해.
혜영은 지옥에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