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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편_ 어쩌다 보니 세계 평 화 (3) (43/207)

제52편_ 어쩌다 보니 세계 평 화 (3)

와이번 킹은 그렇다 치고 이하 와이번도 최소 7단계에서 8단계 급. 사체를 자세히 보니 흑색 날 개를 가진 블랙 와이번. 못해도 8 단계다.

“…… 그래, 잘했다.”

뭔가 찝찝했다.

요즘 뉴스가 시끄러운데 여기까 지 영향이 미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뭐 문제가 있을까. 생성되 자마자 바로 없애 버렸는데.

“리젤! 다 해체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리젤인 낫으로 와이번 사체를 빠르게 해체하고 있었다.

“해체 스킬도 배웠나 봐?”

“달라고 해서 하나 줬지.”

수이니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연우만 스킬 북이 있었던 게 아니다. 엘프들도 아공 간이 있고 그 안에 많은 아이템과 장비가 있다.

“자자, 다 먹고 하자.”

연우가 모두 불렀다.

오랜만에 맛 좋은 와이번으로 포식하게 생겼다.

“맞다. 와이번의 심장은 다 빼 서 술 하나 담그자.”

드래곤 하트에 비해선 한없이 작지만, 꽤 괜찮은 영약으로 통한 다. 블랙 와이번은 더 그렇다.

헤맨도 슬쩍 옆으로 앉았다. 그 러곤 와이번 갈비 하나를 물어뜯 었다.

반은 양념이 돼 있고 반은 소금 구이였는데 뭘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맛이 좋았다.

“연우, 오늘은 또 뭘 한 거야?”

이자젤이 우악스럽게 날개조림 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얼굴이 작아서 저 큰 게 들어갈지 싶었지 만, 이자젤은 아무렇지도 않게 꾸 역꾸역 넣었다.

“맛있게도 먹는다.”

연우는 이종교배를 했다고 알려 줬다.

“엑, 또 이상한 건 아니지?”

“아니야. 멀쩡한 거야.”

연우는 그렇게 말하고 갈비살을 하나 뜯었다. 적당하게 간이 된 와이번갈비살은 특유의 향과 부드 러운 육질이 하나가 돼 입안에 쾌 감을 선사한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기대하지 않고 입에 넣었는데 소름 끼치는 맛이 느껴지며 침이 폭발하는 그 느낌. 거기에 소주를 한잔 들이키면 더할 나위 없이 행 복하다.

“크으, 맛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근처에 왜 게이트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맛있는 음식 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할 일은 많다. 이종교배로 업적 을 얻었으니, 사냥도 해야 하고 농장 증축도 해야 한다.

“어? 손님인가?”

연우는 옆으로 날아온 실프의 속삭임에 고개를 돌렸다.

손님 받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아니, 먹는 건 조금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후우. 부상자는?”

“세 명입니다. 치료하고 있습니 다만,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완전 회복 가능성은?”

“…… 거의 없습니다.”

“…… 그렇군. 사망자는?”

“한 명입니다. 결국,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로열 나이츠 길드장 이지훈은 그 보고에 미간을 부여잡았다. 힘 들었다.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게 이트 폭발은 50년 전 전쟁을 생 각나게 했다.

슬프고 안쓰럽고 분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발목 잡힐 순 없었다.

구으으응!

콰아아앙!

뒤쪽이었다. 아직 해결하지 못 한 7단계 게이트가 기어이 폭발 해 버린 것이다. 며칠은 버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예상할 수 없었 다.

“부상자 챙기고!”

“몬스터 규모는 서른. 6단계에 서 7단계 정도입니다.”

“전투 가능한 사람은?”

“어, 없습니다.”

그렇다.

보급 기지는 엊그제 무너졌다. 그렇다고 이곳까지 지원을 올 정 도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때 돌아갔었어야 했다.

몇 개를 더 클리어하고 가고 싶 었다. 7단계 게이트, 8단계 게이 트. 길드장인 이지훈에겐 그렇게 힘겨운 곳은 아니다. 하지만 터지 면 근처에 있는 도시 몇 개는 박 살 날 위력을 가진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죽을 거 다. 그 사실을 아는 이지훈은 당 연히 편히 쉴 수가 없었고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거다.

‘내 잘못이야.’

일반인의 목숨이 소중하다면 길 드원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걸 알 아야 했다. 오히려 수천 명의 목 숨을 구할 길드원이 더 소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야 했 다.

“일단 이곳을 벗어난다!”

길드장 이지훈은 그렇게 외쳤 다.

서른이 넘는 7단계 몬스터를 처리할 힘은 없지만, 부상자를 데 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정도의 힘 은 있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바로 뒤까지 쫓아온 몬스터를 하나 떨 쳐 내는 것으로 모든 마력을 다 써 버렸다.

후욱. 후욱.

컹컹!

‘무슨 소리지?’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 누 구도 돌아볼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도 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달렸다.

“허억. 허억. 뭐지?”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가 쫓아오 는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돌아 볼 여유는 없었고 한동안 더 내달 렸다.

“…… 여긴 뭐야?”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붕이 있는 주차장엔 고급 외 제차가 주차돼 있고 넓은 공터에 는 울타리로 나뉜 세 구역과 중앙 에 자리 잡은 큰 나무. 강줄기 옆 엔 몇 개의 건물이 주르륵 자리 잡았다.

그것뿐인가.

산 중턱에는 두 개의 건물이 있 었는데, 하나는 화로가 있는 전형 적인 대장간. 또 하나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 건물이 있었다.

“도대체 여긴 뭐야?”

만약, 지금의 게이트 폭발 사태 가 아니었다면 그리 놀랄 것도 아 닐 거다. 이 근처야 어차피 고위 급 필드나 던전이 있는 건 아니었 으니까.

7단계 정도 되는 사용자 몇 명 이 모인다면 안전하게 꾸려 나갈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험한데, 빨리 대피시켜야겠

어.”

길드장의 머릿속엔 이곳에 살 사람들의 안전이 가장 먼저 떠올 랐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평범한 남자 한 명, 그리고 뒤 에 따라오는 아주 아름다운 백인 여자가 서 있었다.

“아, 아니요.”

대피하라고. 여긴 위험하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길드장 이지 훈은 무의식적으로 아니라고 대답 했다.

“그럼 식사부터 하시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따라오라 는 듯 돌아섰고 여자는 손을 쓱 움직이더니, 마력으로 뒤에 쓰러 져 쉬고 있는 세 명의 사용자를 들어 올렸다.

“힘들어 보이는데, 제가 도와 드릴게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손을 움직인 것도, 부상자 를 든 마력도, 이 둘이 뒤돌아 올 라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순 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가 났다.

그래서 기세를 끌어올렸다. 부 상자를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맡기 라고? 나쁜 마음을 먹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 응?”

전신을 휘감고 주변에 땅이 흔 들릴 정도의 기세가 솟아야 정상 이다. 아무리 마력이 고갈됐다지 만 그 정도 기세를 뿌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정하세요. 여기서 함부로 행 동하면 다칠 수도 있답니다.”

돌아가던 여자가 다시 이지훈을 보고 있었고 옆엔 어느새 대형 견 한 마리가 다가와 있었다.

컹컹!

섬뜩.

이지훈은 입을 열 수 없었다.

그건 뒤에 다른 길드원도 마찬 가지였다.

분명 강아지다. 저 남자도. 여 자도 아닌 저 강아지에게서 섬뜩 함을 느꼈다.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저 강 아지가 만들었다는 거다.

‘이게 도대체!’

대한민국 5대 길드, 길드장 이 지훈은 손에 땀이 찼다. 할 수 있 는 게 없었다.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강아지 는 옆에서 감시하듯 천천히 따라 왔고 남자와 여자는 빠르게 걸어 서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 섰다.

“수이니! 손님이다!”

“인원은?”

“9명. 아니, 세 명은 부상이라 못 먹을 거야.”

“알겠어. 6인분만 준비할게.”

이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 었다.

부상자는 이미 팀 내 힐러가 치 료했다. 그것도 8단계 힐러가. 하 지만 부상이 너무 심해 완전히 고 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을 마력으로 들고 왔던 여자가 외친다.

“리 커버리 (Recovery)!”

화악!

환한 빛이 그 셋을 감쌌다.

‘리, 리커버리라고?’

보통 사람은 잘 모른다.

하지만 로열 나이츠 길드장 이 지훈은 상당한 정보력이 있는 사 람이 다.

치료 능력으로 원 클래스 마스 터에 도달한 ‘성녀’, 세계사용자협 회 본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력 으로 뽑히는 유명한 사용자.

세상에서 오직 그녀만 사용할 수 있는 게 ‘리커버리’다.

‘설마, 아니겠지.’

그저 주문 이름만 같을 수 있 다.

그녀의 리커버리는 죽기 직전의 어떤 상처도 한 번에 치료할 능력 을 지녔으니까. 이 앞의 여자가 같은 힐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 었다.

“어? 살아났다. 9인분 준비해!”

“뭐,뭐? 살았다고?”

길드장 이지훈은 급하게 그들에 게 달려갔다.

정말이다. 겨우 붙어 있던 허벅 지와 팔. 반쯤 타 버려 평생 못 쓸 것 같던 안구와 눌어붙은 귀까 지. 모두 완벽하게 재생했다.

연우는 손님을 받았다.

몸에 걸친 장비는 처참하게 부 서져 있었고 마력은 고갈된 지 오 래였다. 중상이 세 명. 나머지도 전신에 자잘한 상처를 입었다.

요즘 게이트가 급격히 늘어난다 고 했는데, 그 때문인 듯했다.

손님도 손님 나름이다.

암살자 한소영이나 협회장의 손 님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접해도 됐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뒤에서 접 근하면 당장이라도 칼날을 들이밀 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이럴 땐, 조금 강하게 나가 줘 야지.’

10명이 기본 파티에 중상이 3 명이다. 그런데 6명뿐이다. 그렇 다는 건 한 명이 죽었을 수도 있 다는 것. 길드장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항을 시도할 틈을 주지 않고 식당에 데려왔고 이자젤과 댕댕이 가 잘 살펴 줬다.

“좀 드세요. 그럼 한결 나을 겁 니다.”

길드장와 길드원들. 부상자 3명 까지 이미 일어나서 테이블에 앉 아 있었다.

잠깐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수 저를 들어 앞에 놓인 죽을 떠먹었 다. 수이니가 한계까지 떨어진 체 력을 생각해 죽부터 내놓은 것이 다.

한 수저.

김이 올라오는 죽을 말라붙어 갈라진 입술 사이로 넣었을 때.

달각. 달각.

모두가 한결같이 며칠은 굶은 강아지처럼 죽을 흡입하기 시작했 다.

“마, 맛있다!”

“이거 장난 아닌데?”

감탄이 절로 나올 거다. 수이니 의 요리 솜씨는 연우도 인정하는 만큼, 보통 사용자들은 신세계를 만난 기분일 거다.

게다가 밋밋한 쌀죽에 아이스 크랩의 내장과 만드라고의 잔뿌리 를 더해 감칠맛을 더해 줬다. 맛 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인 거다.

어찌나 급하게 먹었는지, 한 그 릇씩 준 죽을 순식간에 비웠다. 수이니는 그 모습을 보다가 다음 음식을 내줬다.

큼지막한 드래곤 본으로 만든 냄비가 테이블 중앙에 놓였고 뚜 껑을 열었다.

숨을 한껏 참고 있었던 것처럼 하얀 김이 확, 올라온다.

와이번 뒷다리 살을 이용한 찌 개다. 푹 익은 김치로 비계와 살

이 적절히 섞인 살덩이를 감쌌다. 한입에 쏙 들어갈 크기로 잘랐기 에 먹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빨간 국물엔 마늘과 매운 고추 가 들어갔다.

이런 국물엔 하얀 쌀밥이다.

“꿀꺽.”

연우도 입맛이 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은 연우도 그럴진대, 어찌 저 배고픈 로열 나이츠 사람들이 참을 수 있겠는 가.

자, 잘 먹겠습니다!”

그래도 예의는 있는 모양인지, 인사를 하면서 수저를 들었다. 길 드장이고 길드원이고 순서 없이 찌개를 퍼 간다. 급하게 넣은 김 치에 감싼 고기가 뜨거웠는지 천 장을 보고 호호 불고 눈물을 찔끔 흘린다.

하지만 그것도 아까운지 뱉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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