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5화
제50편_ 어쩌다 보니 세계 평 화(1)
협회장 이진철은 운이 좋게 살 아남았다.
연우와 헤맨이 떠나간 후의 일 은 이진철의 몫이었지만, 딱히 무 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살아남은 사용자들이 당황스러 워했다. 무시무시하던 적은 사라 지고 둥지는 텅 비어 버렸으니까. 시간 자체가 멈춰 버린 것인지 아 무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 했다.
갑자기 마왕이 사라졌고,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그게 전부였다.
“후……
이진철은 할 말이 없었다.
어둠만 가득했던 아프리카 하늘 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 =
-?-??-?-?.
지원군인가, 아니면 이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이들인가. 알 수 없는 헬기가 멀리서 날아온다.
이진철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이번 위험은 이렇게 넘겼다.
하지만 아프리카라는 곳은 이 정도로 평화가 찾아올, 만만한 곳 이 아니다.
이런 둥지가 8개나 더 있고 이 것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지 모른 다. 대신, 오늘의 교훈으로 한동 안 둥지를 건드는 일은 없을 거 다.
“일단, 좀 쉬어야겠어.”
이진철은 멀리 내리쬐는 빛을 보며 말했다.
이 근처만이다. 아프리카는 넓 고 어둠은 많았다.
아프리카 전체가 햇빛을 받을 날까지 계속 움직인다. 그러면서 투 클래스 마스터에 도달하고 협 회는 물론, 국제 사용자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이진철은 처참하게 무너진 둥지 를 뒤로했다.
농장의 아침은 여전히 평화로웠 고 부산스러웠다.
이자젤은 펍으로 출근하기 시작 했고 후름은 카페를 열었다. 수이 니는 역시나 식당 앞에서 검강을 휘두르며 재료를 손질했고, 헤르 메스는 댕댕이의 장난감을 반대쪽 산까지 던진 다음에 청소를 시작 했다.
댕댕이가 순식간에 물어 왔지 만, 헤르메스는 바빴다. 이자젤이 그 모습을 보고 더 멀리 던졌는 데, 동해까지 간 것 같았다.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 지만, 의외로 댕댕이는 신나게 달 리기 시작했다. 이 좁은 농장에 있으니 답답하기라도 한 모양이었 다.
탕. 탕. 탕.
요섭은 망치질을 시작했다.
느껴지는 힘에 의하면 이미 쓰 리 클래스 마스터를 되찾은 것 같 았다. 이젠 포 클래스 마스터를 향해 단련하는 중이었다.
리젤은 여전히 게헨나르를 다듬 는 중이었다. 가끔 마력도 주입하 고 몬스터가 아닌 야생동물을 잡 으면 혼을 내기도 했다.
연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 다만티움 슬라임이 만든 아다만티 움을 슬쩍 확인하고 양봉장으로 향했다. 사람 같은 걸 잡으면 당 장에라도 혼내 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몬스터뿐이었고 연우는 안심하며 안쪽에 모은 꿀을 한 덩 이 채취했다. 수이니가 오늘 꿀을 이용해 ‘꿀간장새우’를 만든다며 부탁한 거다.
오늘도 할 일이 많다.
연우는 잠재 능력치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재료를 전해 주고 밥을 먹는 게 먼저다.
“고마워. 아침은 기대해도 될 거야.”
“기대할게.”
그 정도면 됐다.
연우는 식당 테라스 의자에 앉 았다.
그리고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냈 다. 북극으로 캠핑을 갈 때 리스 트를 적으면서 챙겼던 거다.
[잠재 능력치 올리기]
1. 사냥 : 동화율이 너무 올랐 다. 지금 사냥으로 잠재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선 아프리카 토벌을 해야 할 정도.
첫 번째 목록은 일단 보류다.
웬만하면 농장 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2. 농장 건설 : 이것도 동화율 이 너무 올라서 비효율적이다. 잠 재 능력치보다는 동화율이 더 오 를 듯.
3. 이종교배 : 아무래도 이게 가장 효율적이고 좋다. 문제는 이 종교배를 한 후의 몬스터 처리.
“이걸 어쩐담.”
헤맨이 옆에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종교배가 좋긴 할 겁니다.”
“이종교배야 얼마든지 할 수 있 지만, 지금 농장 규모로는 다 못 키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 음. 동생분 한 마리씩 주 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면 하 급 길들이기 목줄 몇 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지금 당장 잠재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건 어차피 많지 않다. 최 우선을 이종교배로 한다. 농장 건 설로 잠재 능력치를 올리기엔 터 무니없이 규모가 커질 거다.
그렇다고 사냥을 하기엔…….
“귀찮아도 조금 해야겠지.”
이종교배로 2개 정도 올린다고 생각하고 사냥으로 하나 정도는 올려야 한다. 지금 단계에선 무리 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가능할 거 다.
대신, 그 과정에서 동화율이 잔 뜩 올라갈 건 고려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마령석을 먹어야겠 어.”
슬슬 익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협회장을 통해 조 금 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 제대로 해 보자.”
그때였다.
“연우! 밥 먹자!”
“…… 밥부터 먹고.”
분명 중요한 일인데 자꾸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 #: *
연지와 연호는 5단계를 넘어 6 단계가 됐다. 그것도 평범한 6단 계가 아니다. 2인 레이드. 탱커나 힐러도 없이 둘이서 다니는 특이 한 파티다.
튜브 생방송을 하기 위한 장비 까지 항상 동반하던 파티라 더 유 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 긴장되는데?”
“어휴,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저걸 봐. 어떻게 긴장을 안 하 냐?”
연호가 눈앞에 떡 벌어진 공간 의 균열을 바라봤다.
6단계 규모의 게이트다. 원래 둘이서 같은 단계인 6단계 게이 트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요즘 게이트 생성률이 급속히 증 가해서 ‘의무적 지원’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파티를 이룬 다.
“반갑습니다. 연지 연호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옆에서 탱커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했다. 이 게이트의 파티장으 로 온 사용자였다. 성격은 꽤 괜 찮은 모양인지 다른 사용자들도 잘 포용하는 것 같았다.
“네, 반갑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모두의 얼굴에서 긴 장이 풀리지 않았다.
당연하다. 곳곳에 생겨나는 게 이트는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며 몬스터는 자원이 아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었다.
레이드 세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지와 연호는 주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왜 갑자기 게이트가 늘어난 거 야?”
“난들 알겠냐. 문제는 던전이나 필드랑은 다르게 폭발한다는 거 지.”
“후, 미치겠다. 우리야 괜찮지 만,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쩌냐?”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온 거잖 아.”
그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 다.
지구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경우 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던전.
폐쇄된 지하 건물, 산, 동굴 등 에 생기는 왜곡된 하나의 공간으 로써 일정 수준의 몬스터가 끊임 없이 생성되고 중심엔 보스 몬스 터가 있는 형태를 말한다.
대부분 50년 전 몬스터가 세상 을 뒤덮었을 때 생성됐기에 정부, 기업, 대길드에서 선점했다. 간혹 새로 생기는 던전은 그나마 협회 에서 점령해 개인 사용자에게 공 유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필드.
50년 전 몬스터가 들끓었을 때, 인간과 몬스터는 서로를 멸종시킬 기세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몬스 터가 인간에게 자원이 된다는 걸 안 후로는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 해 일정 구역을 내주고 관리하게 됐다.
물론, 아무 지역이나 필드가 되 는 건 아니었다. 특정한 환경과 일정한 마력 농도를 가지고 있어 야 하며, 몬스터가 그 지역을 벗 어나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남아 서 유지가 되기 시작한 곳을 필드 라 부른다.
세 번째는 몬스터 게이트.
50년 전 몬스터가 들어온 차원 의 문을 말한다.
세계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열 린 거대한 게이트는 수십만 마리 에서 수백만 마리의 몬스터를 쏟 아 냈고 인류를 위협했다.
인류는 그 재앙을 막았다. 하지 만 게이트는 멈추지 않았다.
50년 전보다 수십 배나 줄고 사용자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과 학과 마법이 발달하면서 게이트의 생성을 추적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게이트는 인류의 자원 줄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 었다.
간혹, 예고 없이 게이트가 생길 때. 또는 8단계 이상의 게이트가 생길 땐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게이트는 왜곡된 차원 안쪽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폭발’이라는 건 게이트 속 몬스 터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걸 뜻 하는데, 게이트의 가장 무서운 점 은 ‘폭발’의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다. 게이트 생성 직 후일수도, 몇 년 이후일 수도 있 다는 거다.
“양도 문제지만, 그 수준도 올 라가니까 문제지.”
“하긴, 벌써 중국에 8단계, 일본 에 9단계, 미국에 원 클래스 마스 터급이 터졌다며?”
“그렇다니까. 우리나라에도 8단 계 하나 터졌다는데. 우리야 몇 개 정도는 쉽게 막으니까.”
한국은 인구수에 비교해 사용자
비율도 높았고 고위급 사용자가 많았다.
“하지만, 한계에 금방 다다를 거야. 한국에 상주하는 원 클래스 마스터가 다섯 명이나 되나? 8단 계 이상이라고 해도 수십 명이 고 작일 텐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전혀. 8단계 한두 개야 쉽겠지. 30년 전만 해도 전국 동시다발적 으로 원 클래스급 두 개. 8단계 이상 10개가 터졌어.”
“…… 그때 남쪽이 거의 폐허가 됐었지, 이런 사실이야 알고는 있 었는데 이렇게 징후가 있으니까 더 무섭네.”
“그래서 내가 미치겠다는 거야. 8단계 게이트엔 8단계 사용자가 최소 5명에서 8명은 들어가야 해. 우리나라가 막을 수 있는 8단계 는 칩룡이…… 많아야 두 개, 대길 드 대기업 합해야 세 개. 총 다섯 개야. 원 클래스급은? 협회장이 하나 이하 간부가 힘을 합해도 두 개 이상은 못 막아.”
파티장으로 온 사내와 그와 친 한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의 대화 였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사용자. 수준도 6단계 최상급에서 7단계 초반으로 보인다.
꽤 오랜 시간 전장에서 활동했 던 베테랑 사용자 같았다.
“자자, 잡담 그만하고 게이트로 진입하겠습니다.”
연지와 연우는 아까보다 더 긴 장한 얼굴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방금 들은 이야기들이 진실이고. 앞으로 게이트 생성 빈도가 높아 진다면 상상 이상의 위기가 온다 는 거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앞의 게이트를 토벌하고 더 강해지는 수밖에는.
“ 음?”
연우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 어 고개를 들었다.
연지와 연호에게 선물할 겸, 잠 재 능력치를 올릴 이종교배를 하 고 있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 고 동생 정도는 지킬 수 있을 만 한 몬스터 말이다.
“주인님도 느끼셨군요.”
옆에 있던 헤맨이 말했다. 연우 와 헤맨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 었다.
“찝찝해. 연지와 연호에게는 별 일 없지?”
“네, 약간의 긴장감 정도가 전 부입니다. 웬만한 위험이 와도 걱 정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뭐지.”
큼지막한 마력의 흐름이 포착됐 다. 마력이란 게 참 묘하다. 게임 에서는 잘 몰랐는데 이곳에서는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마치 태 평양 한가운데서 지진으로 생긴 작은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면서 쓰나미가 될 것 같은데, 그 지진 을 감지한 기분이랄까.
얼마 전에도 비슷한 게 느껴졌 는데, 너무 작아서 신경 쓰지 않 았었다.
“흠. 딱히 위험해 보이는 것까 진 아니지만.”
“위험할 건 없어 보입니다. 쓰 나미가 커 봐야 쓰리 클래스 마스 터 이하일 테니까요.”
“하긴, 그 정도면 네가 나설 필 요도 없이 댕댕이만…… 잠깐, 우 리가 기준이면 안 되지 않나?”
“……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는지 피식 웃었다.
“에이, 이참에 이종교배나 제대 로 해 봐야겠다. 쓸 만한 방파제 가 필요하겠어. 진짜 쓰나미를 막 을 방파제 말이야.”
“더없이 좋은 판단입니다.”
헤맨이 옆에서 순박하게 웃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