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24화 (424/425)

424. 정복 (4)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제국의 시작점은 언제나 그렇듯 하나의 왕국이었다.

클라우디우스 가문은 무(武)를 숭상했고, 그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다른 왕국을 정복해 제국을 세웠다.

대제국이 건설된 뒤로도 클라우디우스 황가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국의 역대 황제는 모두 뛰어난 무인(武人)이었다.

그래야만 황궁 기사단을 지배할 수 있다.

‘그래야만 대제국을 다스릴 수 있다.’

샤다이 황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검술을 연마했고, 역대 황제를 뛰어넘는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

황제가 되기 전엔 그 역시도 황궁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샤다이 황제는 직접 전장으로 나섰다.

그러나 전장에 나선 황제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바라의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병력의 비대함만을 따지자면 클라우디우스가 몇 배는 위다.

아니, 단순 숫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전투력도 클라우디우스가 뛰어나다.

하지만 나바라의 몇몇 소수 인물이 문제였다.

샤다이 황제는 그들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인지 내 직접 확인해 주지.’

두 눈으로 확인한 그들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눈부신 백금빛 갑주를 입고 최전방에서 검과 방패를 휘두르는 성기사, 키릴 크레센시아.

발키리 부대를 이끄는 서리나무의 왕 슈시아 세이나자르.

남부 마탑의 주인 라일 플라마.

드워프 돌격대의 대장 크누트 스톤핸드.

그들의 실력은 클라우디우스 제국에서도 맞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더욱 강력한 존재가 있었다.

나바라의 황제이자 루미니우스의 지배자인 오토마이어.

황후 카스피.

바토리 에르제베트.

그리고.

‘검은늑대의 아틸라.’

키랴랴랴랴랴랴!

아틸라의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흑염의 브레스를 뿜었다.

그 가공할 힘에 클라우디우스의 두 드래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을 홀로 상대했다.

오토마이어와 루미니우스는 대 드래곤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바라의 지상군과 함께 클라우디우스의 나머지 용족들을 상대하고 있다.

“전선이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피해는 더욱 막심해질 것입니다!”

“일단은 퇴각하고 전열을 정비한 후 다시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각지의 지휘관들이 쉴 새 없이 전령을 보내 왔다.

샤다이 황제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다.

‘……빌어먹을 이크살.’

검은늑대의 이크살.

최근 북부 야만족의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또한 북부의 야만전사 중 가장 강력한 요툰을 지배하고 있는 자이기도 하다.

그는 샤다이 황제의 요청을 받아 나바라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이크살과 야만전사들의 참전으로 전황은 순식간에 클라우디우스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최근 동조율이 급상승한 드래곤 마스터들은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고, 이크살의 것을 포함한 세 마리 요툰은 나바라의 지상군을 압살하기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크살이 클라우디우스와의 동맹을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바라 제국군에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있다는 것.

‘북부인은 대무신왕과 싸울 수 없소.’

그 말을 남긴 채 이크살은 부하들을 이끌고 떠났다.

그러고는 나바라 제국군에 합류해 버렸다.

“서부 전선이 괴멸했다는 소식입니다!”

“동부 전선도 크게 밀리고 있습니다!”

“각지에서 지원 병력을 요청 중입니다!”

샤다이 황제가 직접 지휘하는 중부 전선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녀석은 단독으로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을 몰아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드래곤마저 잃으면 끝장이다.

샤다이 황제는 결국 퇴각을 결정했다.

그러나 나바라는 그것을 방관하지 않았다.

퍼엉! 펏퍼퍼펑!

아틸라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클라우디우스 제국군을 추격했다.

결국 샤다이 황제는 병력을 추가로 잃고,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북상한 뒤에야 군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양상이 한동안 이어졌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전선은 계속해서 북으로 밀렸다.

그렇게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황제는 제국 땅의 절반을 잃었다.

* * *

전쟁의 불길이 대륙을 뒤덮는 동안 리베르는 사르데니야 왕국 백성 유치에 한창이었다.

리베르는 바토리와 더불어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인물.

당연히 그의 언변은 뛰어났고, 게다가 예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잘생긴 외모는 제국 백성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다.

- 지금 입주하면 집값이 무료! 취득세 없음!

- 비옥한 논밭을 향후 10년간 무상으로 대여!

- 10년 동안 안정적으로 땅을 대여해 관리한 이들에겐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

그런 내용이 적힌 팻말을 거리에 박아 넣은 리베르가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마법을 이용한 잔재주를 부리며 이목을 끌었다.

“자, 오세요 오세요! 지금 아니면 못 얻는 기회! 아니, 평생 가도 찾아오지 않을 기회가 이렇게 직접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관심을 보인 건 역시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어머. 저 잘생긴 청년이 뭘 하려는 거지?”

“신기한 재주를 부리잖아?”

“엄마! 나 저거 볼래! 저거 볼래!”

여자와 아이들이 몰려들자 사내들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왔다.

자연스레 더욱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각종 묘기를 부리며 때를 기다리던 리베르가 입을 털기 시작했다.

그는 구경꾼들에게 사르데니야 왕국으로의 이주를 종용했다.

“사르데니야 왕국?”

“그런 곳이 있었어?”

“예끼 이 사람! 그럴 리가 있나! 이 땅에 왕국이 사라진 게 언젯적 일인데!”

사람들이 연이어 의문을 표했지만 리베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했고, 또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리베르는 역시 달변가였다.

하나둘 그의 말에 현혹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듣다 보니 뭔가 그럴싸한데…….”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가 모르는 작은 왕국이 어디 숨어 있었던 건가?”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쳐 있었다.

나바라와의 전쟁은 발발 초기와 달리, 모든 백성이 피부로 체감할 정도로 확장됐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이계의 괴물 소탕 전쟁이 있었고, 그전엔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리베르의 묘기를 보며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대부분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이었다.

물론 그들에겐 제국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지원을 받는다 해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이주민의 상당수는 자신의 집과 땅을 그리워했다.

‘언제까지 남의 땅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가.’

‘황폐화된 대지의 복구는 언제쯤 이루어질지…….’

‘상당한 세월이 걸리는 일이겠지.’

이주민들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백성의 안위를 무시하는 나라가 아니었고, 또 샤다이 황제는 다른 역대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현명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샤다이 황제가 남부에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남부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잘한 일이야! 우리 땅을 망쳐놓은 놈들에게 복수해야지!’

이주민의 일부는 자신의 터전을 잃게 만든 남부에 대한 복수전을 환영했다.

그러나 대다수 이주민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복수보다는 복구를 바랐다.

그렇게 점차 이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피어났다.

사실 이 정도의 불만이야 제국 차원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조금 달랐다.

전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레드 드래곤과 화이트 드래곤이 죽었다던데!’

‘드래곤 마스터인 아벨 경과 에이스 경도 전사했다 하더군!’

언젠가부터 백성들의 귀에 들리는 소식은 모두 암울한 것들뿐이었다.

그뿐 아니라 잃어버린 터전을 복구해야 할 젊은 사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으로 차출됐다.

이번 전쟁만 무사히 끝나면 삶이 점점 나아질 거라는, 그 희망 하나로 버티던 이주민들의 마음에 불안감이 중첩됐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국이 패배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이주민들 사이에서 불길처럼 번졌다.

전쟁에서 질지도 모른다.

설령 이긴다 해도, 이번 전쟁의 후유증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주민들은 리베르의 목소리에 점점 더 귀를 기울였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다시 집과 땅을 가질 수 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집이 무료라고? 게다가 땅도 10년 동안 무상 대여?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입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그러던 중 리베르의 어떤 말이 이주민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사르데니야 왕국의 백성이 되면, 그곳을 둘러싼 강력한 결계가 작금의 전쟁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

그제서야 이주민들은 저 청년이 말하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고대의 도시!’

그날 밤, 수십 명의 이주민이 밤의 어둠을 틈타 리베르와 함께 북으로 향했다.

그런 일이 며칠 후에도, 또 며칠 후에도 쉼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수개월이 흐른 어느 날, 믿기 힘든 소식이 온 제국을 뒤흔들었다.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이 죽었다!’

백성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언젠가부터 드래곤이란 존재는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런 네 마리의 드래곤이 모두 전사했다.

게다가 나바라 제국의 루미니우스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한다.

‘패전이다.’

수많은 백성들이 패전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그 후로 제법 오랫동안 제국은 나바라의 공격을 잘 막아 냈다.

샤다이 황제와 황궁 기사단, 그리고 마법사단이 그야말로 임전무퇴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다.

“돌격하라! 나 샤다이 클라우디우스가 앞장서겠다! 짐을 따르라! 자랑스러운 황궁 기사단이여! 제국의 병사들이여!”

“우오오오오오!”

몸을 사리지 않는 황제의 모습에 감동한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마찬가지로 목숨을 내놓고 적진을 달렸다.

나바라 제국의 입장에서도 가히 장엄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광경.

그 기세가 나바라 병사들을 압박했다.

게다가 드래곤은 모두 잃었지만 클라우디우스 제국엔 아직 드레이크를 포함한 상당수의 용족이 남아 있었다.

아틸라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등장 이후 승승장구하던 나바라 군이 주춤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말을 달려오는 황제와, 그런 황제를 지키기 위해 시뻘겋게 눈을 뜬 기사와 병사들은 어떤 면에선 드래곤 이상으로 위협적이었다.

클라우디우스의 병사들은 자신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활력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전투 함성이 온 하늘과 대지를 울렸다.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 폐하 만세!”

“클리우디우스 제국 만세!”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제국의 백성들은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전사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