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정복 (2)
아벨은 전신을 뒤흔드는 강한 충격을 감각했다.
아틸라의 검은 무겁다.
검기를 두른 검으로 방어했지만 그다지 충격이 흡수되지 않는다.
아틸라와 검을 섞을수록 아벨은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는 아틸라와 처음 검을 부딪쳤을 때부터 지금의 상황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틸라는 전투 시작과 동시에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등에서 사라졌다.
그러고는 에이스의 앞에 나타나 그녀를 몰아쳤다.
에이스는 아틸라를 감당하지 못했다.
카스피에게 당한 상처 탓도 있겠지만, 완전한 몸 상태였다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스는 죽었다.
프릴루이나도 반쯤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추락했다.
그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보단 길었지만, 아벨을 포함한 다른 마스터들이 에이스와 프릴루이나를 돕기 전에 전투는 끝났다.
그리고 이젠 아벨의 차례다.
“실력이 좋아졌군. 아벨.”
자신의 검을 막아서는 아벨을 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그는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프릴루이나와 그의 마스터가 부상당한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첫 번째 타깃은 그들이라 정해 두었다.
상대는 넷.
이쪽은 둘.
아틸라는 상대 드래곤을 넷에서 셋으로 줄여 놓은 다음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패배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승리에 자신이 있었다.
다만 아틸라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이었고, 그러려면 빠르게 전투를 끝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상처 입은 사냥감을 먼저 제거하는 편이 좋다.
콰앙! 쾅! 콰아앙!
드라칼리온이 아벨의 검을 밀어붙였다.
그 아래선 도롱뇽과 카르노피아가 이빨과 발톱을 들이대며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카르노피아.’
아벨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프릴루이나가 추락하며 전세는 기울었다.
자신은 아틸라에게 밀리는 중이고, 카르노피아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게 압도되고 있다.
다행인 점은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이 루미니우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미니우스는 강하지만,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정도는 아니다.’
루미니우스는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을 동시에 제압하기 어렵다.
오토마이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황궁 기사단 출신인 에이스보다도 앞선 전투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그도 제국의 두 마스터를 상대해 승리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이 전투의 변곡점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아틸라에게 먼저 쓰러지거나, 아니면.
‘오토마이어가 먼저 쓰러지거나.’
콰드드득!
섬뜩한 소음과 함께, 아벨은 카르노피아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아가리가 카르노피아의 목을 부숴 버릴 듯이 깨물고 있었다.
“카르노피아!”
그러나 아벨은 카르노피아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틸라의 공격이 질풍처럼 뻗쳐들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엄청난 공세였지만, 아벨은 신들린 듯한 방어를 펼치며 그것을 막았다.
아벨은 순간 자신이 무언가의 ‘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아벨은 직전보다 강해졌다.
그 엄청난 대응력에 아틸라마저 조금 놀랐다.
아까운 인물이다.
아벨은 오토와 닮았다.
바닥부터 시작했던 오토가 그러했듯이, 아벨 또한 가까운 장래에 클라우디우스 최강의 기사가 될 만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것은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
오늘, 자신의 손에, 죽을 테니까.
아틸라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벨의 검은 이미 중심을 잃었다.
그는 처음부터 아틸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다만 카르노피아와의 높은 동조율을 이용해 무리해서 잠재력을 끌어올렸을 뿐이다.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때였다.
키랴랴랴랴랴랴!
지상에서 강력한 얼음의 브레스가 솟아올랐다.
프릴루이나가 죽음의 문턱을 짓밟으며 공격 의지를 드러냈다.
도롱뇽이 카르노피아의 목을 놓으며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 브레스는 대단히 강력했고, 도롱뇽의 한쪽 날개 일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카앗! 저 빌어먹을 얼음 도마뱀 놈이!”
프릴루이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올랐다.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다.
프릴루이나는 생존 의지를 버렸다.
그는 꺼져가는 자신의 목숨을 활활 불태웠다.
이유는 오직 하나.
에이스의 복수를 위해서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으으으!
광란에 빠진 드래곤은 무시무시했다.
그의 충혈된 눈은 오직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아틸라만을 보고 있었다.
목숨을 내던지는 존재는 한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드래곤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카르노피아를 맡아라.”
아틸라가 도롱뇽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양손에 쥔 드라칼리온과 무휼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졌다.
그것이 프릴루이나의 눈동자에 꽂혔다.
키에에에에에!
프릴루이나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쪽 시력을 잃어 갑갑할 뿐이다.
프릴루이나는 몸의 수복을 포기했다.
자신의 마력을 오롯이 공격에만 집중했다.
마침 에이스의 원수가 눈앞에 떨어졌다.
녀석을 죽일 것이다.
하나 남은 눈동자를 굴려 프릴루이나는 아틸라를 노려봤다.
상대의 눈동자도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검은자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난 붉은 안구가 폭풍 같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다.
투트틋……, 투트트틋……!
아틸라의 몸 근육이 비대하게 부풀었다.
상처 하나 입지 않았건만 그의 전신이 핏줄기를 토했다.
프릴루이나는 날개를 휘둘러 아틸라를 공격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날개는 아틸라를 공격하지 못했다.
콰지지지짓……!
프릴루이나는 분리돼 날아가는 자신의 날개를 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쪽 날개를 잃었다.
몸의 중심이 흔들린다.
그러나 드래곤은 날개가 하나만 있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한쪽만 남은 날개를 강박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프릴루이나는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녀석을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콰콰콰쾅!
프릴루이나는 전신을 강타하는 충격을 느꼈다.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와 그의 몸을 덮쳤다.
아니, 날아온 건 프릴루이나 쪽이다.
프릴루이나는 지면과 부닥쳤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각오로 전장에 끼어든 그였지만 순식간에 추락해 지면으로 되돌아왔다.
프릴루이나는 다시금 날개를 움직여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드래곤은 날개가 하나만 있어도 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날개가 없는 드래곤은 비행할 수 없다.
으드득……!
프릴루이나는 목 안 깊숙이 날붙이가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자신이 두 날개를 모두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지를 버르적댔다.
그러나 목 위에 올라앉은 인간은 가볍지 않았다.
태산 같은 묵직함이 프릴루이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프릴루이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존재할 리 없는 날개를 움직여 비상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빠드드드득……!
섬뜩한 소음과 진동이 프릴루이나의 전신을 울렸다.
그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졌다는 걸 알았다.
목을 짓누르던 태산의 무게도 눈 녹듯 사라졌다.
프릴루이나는 날개를 움직였다.
두둥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얼마간 떠오르던 몸이 자리에 멈춰 섰다.
프릴루이나는 외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이내 알 수 있었다.
양날개와 머리가 잘린 채 널브러진 자신의 모습.
그것을 두 발로 짓밟은 채, 자신의 절단된 머리를 들고 포효하는 야만전사.
프릴루이나의 외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그리고 빛을 상실했다.
* * *
아벨은 프릴루이나가 죽는 과정을 똑똑히 봤다.
아틸라는 프릴루이나의 날개를 맨손으로 뜯어 버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비록 프릴루이나의 날개에 상당한 검흔이 있었다고는 하나, 인간의 완력으로 드래곤의 날개를 뜯어낸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아우우우우우우!”
아틸라의 포효가 전장의 공기를 달궜다.
무참히 도륙된 드래곤을 짓밟고 선, 그리고 한 손엔 절단된 드래곤의 머리를 들고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신화 속 전사 같았다.
“거,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맨손으로 드래곤을 때려잡았다……!”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드, 드래곤 마스터도 죽었어! 이제 전황은 우리 나바라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우와아아아아!”
나바라의 병사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검은늑대의 아틸라!”
“검은늑대의 아틸라!”
그들의 전투 함성이 해일처럼 번지며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와 반대로 클라우디우스 군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들도 아틸라와, 그의 손에 들린 프릴루이나의 머리를 봤다.
“화, 화이트 드래곤이 죽었다고……?”
“그것도 한낱 인간의 손에……!”
“저, 저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검은늑대의 아틸라다! 수년 전 언데드 군단의 우두머리였던 카르타고를 쓰러뜨린 전설적인 전사라고!”
“나, 나도 봤어! 북부 야만인들을 통합시킨 자! 검은늑대의 아틸라!”
전장의 공기가 송두리째 변했다.
최전방 지휘를 맡았던 키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을 들어라! 우리 뒤엔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있다!”
“우오오오오!”
나바라 기사단도 지지 않았다.
아론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나바라 기사단이여! 황제 폐하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말을 달려라! 목숨을 걸어라! 오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오토마이어 황제 폐하 만세!”
“황후 폐하 만세!”
“우와아아아아!”
아벨은 하늘 위에서 그 광경을 봤다.
그는 이번 전투의 향방이 완전히 나바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세에서 밀렸다.
더 이상 싸움을 이어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뿌우우우우.
아벨은 뿔피리를 불어 퇴각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고개를 내려 아틸라의 모습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콰드드득!
몸 안을 관통하는 이물감과 함께 아벨의 입에서 핏물이 터졌다.
그의 가슴과 등에서도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드라칼리온.
그것이 아벨의 가슴을 관통했다.
“아틸…… 라…….”
야만전사의 살기 어린 눈을 보며 아벨이 씹어뱉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직전까지 아틸라는 지상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앞에 서 있다.
퍼어어어엉!
아벨은 카르노피아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카르노피아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것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브레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과 카르노피아는 심장을 파괴당했다.
아틸라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손에.
아벨은 그것이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안다.
자신은 죽는다.
아틸라의 손에.
“유감이군. 아벨.”
핏물을 머금은 아벨의 눈동자가 아틸라를 봤다.
마찬가지로 피에 젖은 아틸라의 얼굴은 무정물처럼 무표정했다.
“아…… 틸라…….”
아벨은 손을 뻗어 아틸라를 만지려 했다.
그러나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의식이 저물었고, 그렇게 그는 두 팔로 드라칼리온을 안으며 숨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