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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16화 (416/425)

416. 새로운 세계 (3)

오랜만에 나바라 제국의 황성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연일 계속되는 집무에 골머리를 앓던 황제는 오직 그 소식만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환호하며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화, 황제 폐하! 그냥 가시면 안 돼요!”

“시끄러! 나머진 로잘린과 라시드가 알아서 할 거다!”

줄행랑을 치는 황제를 보며 어린 집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토마이어 나바라.

지금의 남부 대륙을 있게 한 위대한 영웅 중 하나.

그렇지만 어린 집사는 그의 전설적인 행보를 직접 목격한 적이 없다.

물론 황제의 통치 능력은 뛰어났다.

그에게선 일반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제왕의 혼이 느껴졌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많은 왕국을 통합해 대제국을 세웠다.

많은 이들이 황제를 공경하고, 사랑했으며, 한편으로 두려워했다.

황제가 지금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상대는 어린 집사를 포함해, 황성 안에서도 몇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린 집사의 눈에 비친 황제는 황후에게 꽉 잡혀 사는 어리숙한 사내, 그 이상이 아니었다.

“황후 폐하께 다 이를 거예요!”

“제발 하지 마!”

그 말을 남긴 채 황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평상시의 굼뜬 모습과 달리 날다람쥐처럼 재빠른 그의 행동에 어린 집사가 쯔쯔, 혀를 찼다.

그러고는 키득대며 웃었다.

“나이 차가 많으셔서 그런가, 황후 폐하한테는 정말 꼼짝도 못 하신다니까.”

* * *

넓진 않지만 아늑하게 꾸며진 황성의 방 안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엘프 여인 하나에 인간 남자 둘.

그들은 황성의 시녀가 내온 차를 마시며 가벼운 잡답을 나눴다.

“차 맛이 아주 좋군. 과연 황도의 특산물이라 불릴 만해.”

슈시아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차 향을 음미했다.

라일이 말했다.

“오고 있는 것 같군.”

잠시 후 벌컥! 출입문이 열리며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슈시아가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군 오토. 아니군. 역시 오토마이어 황제 폐하라 불러야 하는 건가?”

오토가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이고 황제의 황 자도 꺼내지 마슈! 그 이름만 들으면 아주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며 깬다는 거 아니요!”

라일이 싱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소?”

“후우. 진짜 왕은 괜히 한다고 해가지고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소. 오늘도 밀린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말이 황제지 이런 중노동꾼이 따로 없소! 지금 생각해 보면 아틸라 님과 함께 여행할 때가 바로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소!”

그렇게 외치던 오토가 무언갈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슈시아와 라일의 안색도 다소 어두워졌다.

오토의 시선이 라일의 옆에 앉은 또 다른 사내에게 돌아갔다.

“아틸라 님과 바토리 아가씨에 대한 단서는 아직인 거요?”

“그렇소. 우리의 정보력을 총동원해도 쉬이 발견되질 않는군.”

오토가 한숨을 내쉬었고, 슈시아와 라일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뱉었다.

아틸라와 바토리.

두 사람은 천지의 합이 발생했던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구 아인하르트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는 목격자가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이후 아틸라와 바토리는 남부 대륙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혹시 아틸라 님도 샤를 녀석과 함께 배 타고 떠나 버린 거 아니우?”

오토는 샤를이 몇몇 측근들과 함께 남쪽의 항구에서 배를 띄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정보력이 그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정보력도 아틸라와 바토리의 소재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 아틸라가 샤를을 따라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

슈시아의 말에 자리의 인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르 고개를 흔든 오토가 화제를 돌렸다.

“황금바위산에선 소식이 없는 거요?”

“오고 있을 거다. 드워프들이야 워낙 시간 개념이 없는 족속들이니.”

슈시아가 툴툴거렸다.

한때는 어깨를 나란히 한 동료 사이였지만 역시 엘프와 드워프는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토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나, 나 좀 도와주쇼 단주! 내가 집무를 내팽개치고 도망쳤다는 걸 알면 그 사람이 진짜 날 가만두지 않을……!”

오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렸다.

이어 퍼억! 하는 타격음과 함께 오토가 제 목을 쥐며 바닥을 굴렀다.

캑캑대는 신음을 뱉으며 오토가 소리쳤다.

“화, 황후! 왜 그러시오 황후!”

“황후는 얼어 죽을! 꼭 이럴 때만 황후라 하지!”

“히익!”

오토가 다급한 얼굴로 주위의 세 사람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들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제 자리의 찻잔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이, 이보게 라일 마탑주! 발키리 아가씨! 단주우우우!”

“역시 딱따구리 영주 나리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딱 대!”

“히이이이익!”

황후의 매서운 주먹에 오토가 얻어맞는 동안, 황후의 전속 시녀는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다급해진 오토는 나름 힘을 발휘해 황후를 제압해 보려고도 했지만.

“응? 뭐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이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히익! 힉!”

오토는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전사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황후는 그런 오토를 뛰어넘는 실력자다.

아무리 오토가 뛰어난 전사라 해도, 루미니우스의 도움 없이는 황후를 상대할 수 없다.

심지어 오토는 그 루미니우스조차 황후를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위대한 전쟁 영웅 오토는 지푸라기처럼 널브러져 사지를 떨고 있었다.

그제서야 손님의 존재를 감지한 황후가 히죽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슈시아. 거기 라일 아저씨도.”

“아저씨라니…….”

황후의 눈이 두 사람 옆의 사내에게 닿았다.

그녀는 슈시아와 라일에게 대하던 것과 달리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오랜만이에요 스승님. 헤헤.”

사내도 의자를 박차며 일어나 두 팔을 펼쳤다.

“오랜만이구나 카스피! 하하하하하!”

사슬낫의 사바흐.

그는 하싸씬의 단주가 됐다.

그것엔 카스피의 도움이 주효했고, 그렇게 사바흐의 손에 들어온 하싸씬은 현재 나바라 제국을 암암리에 조력하는 그림자 세력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에게 카스피가 가장 먼저 물은 내용은 역시 이것이었다.

“아틸라와 바토리는.”

“……미안하구나. 아직 찾지 못했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카스피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오토를 부축해 일으켰다.

또 때리는 줄 알고 흠칫하던 오토는 울상이 된 카스피를 보고는 가만히 품에 안았다.

카스피도 조금 전의 난리는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오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때마침 크누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오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배를 잡으며 웃었다.

“또 황후에게 얻어맞은 겐가 황제! 누음앗핫핫핫하!”

약속된 이들이 모두 자리하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오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다.

먼저 입을 연 건 사바흐였다.

“클라우디우스 제국으로 보냈던 밀정들이 돌아왔소. 역시 북부는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고 있더군.”

오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최근 클라우디우스 제국과 나바라 제국의 국경에선 크고 작은 전투가 빈번히 벌어졌다.

이계의 잔당 토벌이 슬슬 마무리되어가자,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륙 통일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토는 북쪽 국경 수비의 총책임자로 키릴을 보냈다.

“……역시 피할 수 없는 전쟁이란 말인가.”

오토는 가급적이면 북부와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오토는 샤를이나 샤다이 황제 같은 정복왕이 아니다.

그는 큰 무력 충돌 없이 남부 왕국들을 흡수해 황제가 됐다.

여전히 남부엔 나바라 제국으로의 복속을 거부하는 왕국들이 남아 있었고, 오토는 그들의 땅을 탐하지 않았다.

“어차피 치러야 할 전쟁이라면 서둘러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 서리나무의 발키리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

슈시아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엔 함께하지 않았지만 달빛우물의 엘프들도 참전할 것이다.

슈시아는 실질적으로 모든 엘프 일족의 대표자나 마찬가지다.

“내 생각도 그렇소. 어서 빨리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우리 마법사들도 5대 마탑의 재건에 집중할 수 있겠지.”

라일에 이어 크누트도 쿵쿵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황금바위와 청동바위도 함께 하겠소. 북부로 올라갔던 강철바위 형제들의 안부도 제법 궁금하니 말이오. 누음앗핫핫핫하!”

오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가급적 전쟁을 피하고 싶은 것이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나바라 제국은 강하다.

황제인 그 자신부터가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의 마스터이자 제국 최강의 전사다.

북경 수비의 총책임자인 키릴 또한 오토 못지않은 실력을 지녔다.

게다가 황제 직속의 나바라 기사단과 키릴의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은 제국을 수호하는 두 개의 창날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자랑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황후 카스피는 셰이카 라딤의 능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하는 것에 성공한 초월적인 살수다.

그런 그녀의 뒤엔 사바흐와 하싸씬이 있다.

아울러 나바라 제국의 곁엔 슈시아의 발키리 부대와, 라일의 마법사단과, 크누트의 드워프 돌격대가 있다.

오토의 목소리가 변했다.

“클라우디우스의 전력은 어느 정도요. 사바흐 단주.”

제왕의 혼이 서린 음성.

사바흐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지상 병력과 공중 병력 모두 클라우디우스 제국이 압도적이오. 물론 더 큰 위협은 지상보다는 공중이지. 사실상 나바라 제국의 공중 병력은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가 유일하지만,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여전히 레드 드래곤 카르노피아와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를 운용하고 있소. 거기에 더해 암피테르와 드레이크를 위시한 용족들도 상당수 포진 중이지.”

오토 역시 알고 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황성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다.

“게다가…….”

“게다가?”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도 클라우디우스 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소문이오.”

오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레드 드래곤과 화이트 드래곤만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까지 있을지 모른다니.

오토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황제의 위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래서 라일도, 사바흐도, 크누트도, 심지어 슈시아마저도 다소 긴장감을 느끼며 오토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고뇌하는 오토의 옆얼굴을 카스피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바라봤다.

평소엔 오토를 쥐락펴락하는 그녀였지만, 이럴 때만은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카스피는 오토의 양면성에서 매력을 느꼈다.

특히 지금처럼 황제의 면모를 드러낼 때의 그에게선 강한 남성성이 표출됐고, 그것은 카스피에게 치명적인 매혹으로 다가왔다.

카스피는 소리 없이 한숨을 뱉으며 맞닿은 두 다리를 옴지락댔다.

그 뒤로 한참 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이윽고 회의를 마치고 방문을 나서는 오토에게 카스피가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속삭였다.

“하아……. 오늘 밤은 안 재울 거예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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